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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도방랑기 원문보기 글쓴이: 선등
보드가야
가는 길
기차를 타고 가야로 갔다. 이제 세시간 타고 가는 기차는 그냥 옆 동네에 가는 기분이다. 가야역에 내리니 비하르주의 빈곤이 피부에 와 닿는다. 인도의 여러주들중 가장 가난한 주라는 비하르주, 눈으로 보기에도 가야역에서 내리는 순간 우중충하고 가난함으로 덮인 도시를 보며, 우리는 수자타 아카데미로 가기로 했다.
릭샤를 타고 120루피에 흥정해서 수자타아카데미에 데려다 달라고 했는데, 이 릭샤왈리가 도착한 곳은 보드가야 대탑(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곳)앞이다. 관광객들이 대부분 이 곳으로 오니까 무조건 이 곳으로 와 버린 것 같다.
둥게스와리 수자타아카데미라고 분명히 이야기했는데,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라고 이야기하자, 따라서 하는데 발음의 억양이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 방향이 완전히 다른 곳이어서 릭샤를 돌려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향하는데, 가는 길의 집의 모습과 길 위의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눈물겹다.
지붕과 벽이 있고, 내부에는 화덕 하나만 있고, 그냥 바닥에는 지푸라기만 깔린 집, 집의 형태만 갖춘 곳에서 돼지와 함께 기거한다.
벽에는 연료로 쓸 소똥들(소똥을 물에 개서 짚을 썰어넣고, 번개탄 모양으로 만들어서 벽에 말려서 연료로 사용한다)이 담벽을 거의 가리고 있다.
나무가 귀하고 가난한 둥게스와리 사람들의 중요한 땔감이다.
그 토인들이 사는 마을같은 집을 지나, 릭샤를 뒤따라 달려오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산이 없는 이곳에 드러선 전정각산(前正覺山:깨달음을 얻기 전의 산, 즉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직전에 6년의 고행을 했던 산이다) 아래의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했다. 대탑으로 돌아서 온 덕택에 우리는 약간의 실강이 끝에 200루피를 릭샤비로 지출해야 했다.
수자타아카데미-1
둥게스와리 수자타아카데미!
인도에 존재하는 유일한(내가 아는 바로는) 한국인이 세운 학교.
둥게스와리는 인도말로 버려진 땅, 버림받은 땅이라는 뜻이다.
2,500년 전에 싯다르타가 “남의 불행위에 내 행복을 쌓아가는”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나와 네가 함께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아 6년의 고행을 했던 곳,
시체와 죽어가는 사람들을 내다버려, 죽어가는 사람들과 썩어가는 시체들만이 존재하던 곳,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은 버림받은 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인도의 계급중 최하층의 천민인 불가촉천민이 일만명이 모여 사는 곳(인도는 크게 4개의 계급으로 분류하지만 실재로는 약 3,000개의 계급이 존재하고 그 중 맨 하위의 계급이 불가촉천민이다)
땅을 파도 금속이 함유된 시뻘건 물만 나와서 먹을 물도 없는 곳, 아무런 생산시설도,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일자리도 없는 곳.
이곳에, 버림받은 사람들, 세상의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일만명이 짐승처럼 살고 있다.
이곳을 한 수행자가(정토회 법륜스님) 순례를 하러 들렀다가 학교에 갈 시간에 구걸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 왜 학교에 안가느냐고 물으니, 아이들은 학교가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 거지가 되고 싶은지 물으니, 모든 아이들이 거지가 되고 싶다고 한다.
왜냐고요?
이 아이들은 태어난 이후에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부모, 조부모, 이웃들-이 모두 거지여서 거지 이외의 세상을 모르고, 자기들도 당연히 거지가 되는거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사람이란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 뜻을 모르는 말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스님은 1년간의 준비를 하고,
이 곳을 다시 찾아서
마을 사람을 모아
“여기에 학교를 짓겠다. 나는 아이가 없는 사람이다. 내 아이가 이 학교에서 공부하지는 않는다. 이 학교에서 공부할 아이들은 당신들의 아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당신들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우리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요”
“서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모아서 함께 학교를 지읍시다. 나는 당신들이 가지지 않은 돈을 대겠소. 재료와 기술자를 내가 댈테니, 학교를 지을 땅을 기부하고, 재료를 나르는 일등의 단순작업은 당신들이 하시오”
이렇게 해서 마을에서 기부 받은 땅위에 마을 사람들의 손으로 학교가 지어졌고, 정토회의 많은 사람들이 그 학교의 자원봉사자로 근무하게 되었다.
학교를 처음 짓고 나서 아이들은 학교에 오려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너무나 의미 없는 짓이고 귀찮은 일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학교를 가면 먹을 것을 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아이들은 학교에 몰려들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 아이들을 등에 업고, 손에 잡고 몰려왔다. 이제 이 아이들을 돌보아야 할 시설이 필요하게 되었다. 학교를 짓는 동안에도 나무그늘 아래에서 수업은 진행이 되었고, 학교를 다닐 수 없는 더 어린아이들을 위한 유치원 시설이 준비되게 되었다.
도중에 돈이 많은 줄 알고 총을 든 강도들의 습격을 몇 차례나 받았고, 그 과정 중에 자원활동 봉사중이던 한분이 강도의 총에 맞아 죽기도 하였다. (수자타아카데미에 이분의 기념비가 서있다. 이분이 돌아가신 다음해에 달라이라마가 이곳을 방문해 추도하기도 하였다)
비하르주가 인도에서도 아주 위험한 지역이고, 특히 둥게스와르 지역은 지금도 밤에는 아무도 다닐 수 없다. 학교도 해가지면 문을 닫고, 아무도 출입하지 못한다.
한분이 총에 맞아 죽은 후, 인도 주정부에서는 10명의 경찰을 파견해 주었다. 이 경찰들은 학교건물 옥상에서 텐트를 치고 기거하며 실탄을 장전한 총을 들고 24시간 보초를 선다. 이 경찰들마저도 해가 진후에는 학교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만큼 위험 지역이다.
아이들이 초등과정을 마치고나자 중학과정을 원했다.
스님의 원칙은 상대방이 아주 급박한 상황이거나, 아주 어린아이들이 아니라면, 공짜로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초등과정을 졸업한 아이들이 중학과정을 요구하자, 그 댓가를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중학과정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수업료를 내라.
너희들은 돈이 없으니 그만큼의 봉사를 해야 한다.
그래서 오전에는 유치원 교사가, 오후에는 중학교 학생이 되었다.
중학과정을 졸업한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오후에 유치원을 지었다.
유치원을 짓는 일을 통해 기술고등학교의 실습을 겸한 교육이었다.
그렇게 15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 이 학교는 둥게스와리의 희망이 되었다. 거지가 되고 싶다던 아이들은 뒤에 뭐가 되고 싶느냐고 물으면 “자원활동가”라고 서슴없이 대답한다. 그리고 지금 이 학교의 월급 없는 교사들은 거지가 되고 싶다던 그 아이들이다.
그 사이에 모든 것이 무료인 지바카병원이 들어서면서 마을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크게 늘었고, 신생아의 사망률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수자타 아카데미
지바카병원
이제 한국에서 파견된 자원봉사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한다.
갓난아이에게 영양을 제공하고, 산모의 건강을 돕고, 마을을 계몽하고, 우물을 파서 식수문제를 해결하고, 피임법을 교육해서 산아제한을 시키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을 해결할 수 있는 노동의 기회를 만들어간다. 예를 들어 학교에 재봉틀을 준비해서 재봉틀 교육을 시킨 후, 외상으로 재봉틀을 사주고, 일감을 받아다 준다. 그 일감으로 일한만큼 재봉틀 값을 값고 난 후에 고정적으로 생긴 일감을 맡아 하도록 한다.
이 학교의 재정은 한국에서 후원자들을 통한 모금, 정토회 회원들의 거리모금을 통하여 이루어진다.(후원은 정토회 www.jungto.org, 02-587-8995로 문의)
이곳에 봉사자로 파견된 사람들은 정토회의 100일 출가 교육을 통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들로 한정한다. 그만큼 어려움이 많고, 위험하고, 마을사람들과 동화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자타아카데미-2
우리 일행은 오후 4시경에 수자타아카카데미에 도착했다.
학교 책임자는 이 학교의 특성상 외부인을 재워주기는 어렵다 한다.
사고위험성이 높은 비안전지대여서 일반 여행객의 숙박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안 된다고
지금 시간은 곧 해가 지기 때문에 오늘은 그냥 돌아가서 가야나 보드가야에서 자고, 내일아침 일찍 오라고 한다.
나만이 정토회와의 인연으로(100일 출가 생활을 거쳤음) 숙박을 허락받고, 나머지 두사람은 어쩔 수 없이, 보드가야로 돌아가야 했다. 해가 진 뒤에는 아무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두사람은 다음날 아침 오기로 하고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수자타아카데미는 편안히 쉬는 휴식처는 아니다.
엄청난 일거리, 열악한 환경조건들 속에서 함께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노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이곳에 머물려면 누구든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내가 3일을 머물고 싶다고 했더니, 하루 동안 그냥 구경할 것을 허락받았다.
인도의 전기사정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동안 다닌 곳 중에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은 없었는데, 이곳은 수도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온다.
현재 이곳에는 한국사람 10명이 월급없이 자원봉사자로 근무하고 있다. 저녁을 먹는데 촛불을 군데군데 켜두긴 했지만 잘 보이지를 않는다. 설거지를 하는데 아무것도 안보이는 곳에서 잘도한다.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니 이제 습관이 돼서 깜깜한 곳에서도 잘 한단다.
방에 들어가니 너무 덥다. 낮에는 기온이 50도까지 올라간다는데, 밤에도 더워서 숨이 턱턱 막히는데 전기가 없으니 선풍기도 없다. 인도에 온 후로 선풍기 안 틀고 자는것은 히말라야 빼고는 처음이다. 자다가 더워서 일어나서 샤워를 몇 번이나 해가며 4시에 일어났다.
이곳의 일과는 아침 4시에 기상이다.
모두가 4시에 일어나야 한다.
4시 30분부터 5시30분까지 새벽기도를 하고, 각자 자기 소임에 따라 한시간 동안 식사준비, 청소를 한다.
아침식사 후에 여는모임-각자 오늘 할 일, 발전기를 돌리는 시간 등의 공유할 사항들, 모두가 알아야 할 일을 공유한다-을 하고, 8시에 각자 자기가 맡은 오전 일과를 시작한다.
12시가지 오전일과를 끝내고 점심식사 후에 1시부터 5시까지 오후 일과, 저녁을 먹고 닫는 모임-오늘 한 일에 대한 반성-을 한 후 8시부터 10시까지 자유시간, 10시 취침이다.
발전기를 하루 한시간을 돌리는데 이 시간에는 모두가 분주하다.
이때에 학교에서는 컴퓨터 수업을 하고, 기숙사를 짓고 있는 곳에서는(현대그룹에서 2억원을 지원해서 기숙사 짓는 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에 필요한 기계를 돌린다. 사무실은 이때, 충전기를 이용해서 필요한 것들을 충전한다. 컴퓨터도(이곳의 컴퓨터는 그래서 전부 노트북이다) 이때 충전을 해서 사용한다.
오전내 기다렸는데도 보드가야로 갔던 두사람은 안 돌아오고, 가야역으로 기차표를 예약하러 갔다.
낮에는 위험하지 않다고 해서, 큰 길까지 한시간을 걸었다.
걷는 도중에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들이 참 눈물겹다.
그래도 이 아이들은 한국에서 온 사람을 무슨 신의 나라에 서 온 천사라고 여기는 듯하다.
수자타아카데미로 인하여 이곳에서 한국은 신의 나라가 되었고,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구경꾼일 뿐인 나까지도 덩달아 위대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괜히 나의 잘못된 행동하나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오점이 될까봐 조심스러웠다.
릭샤가 와서 합승을 했는데, 나는 평소의 습관대로 먼저 가격을 아주 잘 절충해 100루피로 합의를 보았다.
가야역에 다 와서 나는 100루피를 내는데, 같이 합승한 사람들은 2루피, 3루피를 내고 내린다.
수업료는 끝없이 내는구나..
가야역에 가서 뭄바이행 기차표를 예약하려고 예약표를 적어 냈더니,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들어가 보니 기차표가 없단다. 작은 역이라 외국인 쿼터표가 없나보다.
이를 어쩌나, 지금까지 다른 역에서는 다 외국인 전용창구에서 해결을 했는데, 작은 역인 이곳은 외국인용 표가 없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SL, 3A표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비싼 2A로 좌석을 끊었다. 30시간을 가는데 무려 1,800루피다. 본의 아니게 여행 막바지에 호강을 하게 되었다.
다음날 사무실에서 잡무를 도와주고, 릭샤에 싣고 온 석탄을 창고에 삽으로 퍼 내리고, 지바카 병원에서 아이들의 몸무게를 재고 분유를 나눠주는 일을 돕고, 기숙사 짓는 곳을 얼쩡거리며 이야기해보며 하루를 보냈다.
이곳 기숙사를 짓는 사람들의 8시간 노가다 하루 일당이 50루피다.(환율에 따라 다르지만 약 1,200~1,500원 정도) 조금 더 주면 안되느냐고 물어보니 주위의 다른 곳보다 20% 정도를 더 주는 것인데 그 이상을 주면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아무런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이곳 사람들에게 그것도 중요한 소득이다. 보드가야 주변에는 논, 밭도 많이 있지만 그 땅을 소유하기는커녕, 불가촉천민들은 부정 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을 줘서는 안 된다고 해서 소작조차도 얻지 못한다.
전기만 들어와도 일하기가 훨씬 좋을 것 같은데, 사무실도 어둡고, 선풍기도 안돌고 덥다, 너무 덥다, 런닝구와 반바지만 입고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모기는 왜 이렇게도 많은지, 온 몸이 모기가 안 물린 곳을 찾기가 더 어렵다.
그런데도 참 열심히들 일한다. 월급 한 푼 안 받고, 이 열악한 조건에서,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감동스러웠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인도에서 가장 싼 과일이 바나나인데도,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쓰여 지는 돈이 모두 후원금이고, 거리에서 모금한 돈이라, 가장 싸구려 안 익은 과일, 가장 싼 채소만을 사다 먹는다. 그래서 인도에 온지 일년이나 되는 사람이 인도에는 덜 익고, 못생긴 바나나만 있는 줄 안다.
인도에 온지 일 년이 되었는데도 인도에 익은 바나나가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봉사자를 위하여 남은 돈에서 2,000루피를 회식비로 냈다.
그 돈으로 모두 사다가 먹자고 했는데도 사온 것을 보니, 과자, 비스켓 몇 개, 사탕 몇 개, 사과 11개, 덜익고 못생긴 바나나 몇 개, 파인애플 한 개가 11인분 회식의 전부다. 왜 이것밖에 안 사왔느냐고 물어보니, 나머지 돈으로는 학생들에게 학용품을 사서 나눠주겠다고 학용품을 사왔다고 한다. 나는 많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너무나 당신들만 희생 하는 게 아니요? 당신들은 그 정도의 댓가는 얻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소??”
“우리 중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어떻게 희생이 되겠어요? 우리는 너무 많이 누려왔고, 저들은 너무 못 누리고 살아왔고 저들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는데 이걸 희생이라고 말 할 수 있겠어
요?”
괜한 말을 꺼냈다가 나는 더 부끄러워져 버렸다.
당신들이 존재하는데 이 세상이 어떻게 아름답지 않을 수가 있겠소???
새벽에는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나올 수가 없어서, 새벽에 기차를 타기 위해 나는 오후에 보드가야로 나왔다.
수자타아카데미의 유일한 교통수단이 릭샤(석탄을 실어나르던 릭샤하고 동일한 릭샤)한대라서, 그 릭샤를 얻어타고 나오는데, 이 릭샤가 년식이 오래되서 모터소리가 얼마나 시끄럽던지 릭샤 안에서는 악을 써도 대화가 안 된다. 내릴 때까지 조용히 앉아 있는 수밖에 없다.
릭샤라도 하나사면 안되느냐고 물었더니, 이것도 이 아이들을 위한 후원금으로 산 것인데, 아직 몇 년은 쓸 수 있다고 한다.
눈물겹고, 미안하고, 부끄럽고, 자랑스럽고, 이런 기분들에 휩싸여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헤어졌다.
한명 한명을 정말 가슴으로 안아주고 싶었다.
헤어져서 가야대탑으로 향하면서 부끄러움에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가야 대탑 앞에서
나의 삶이 너무나 부끄러워 한참을 울었다.
가야대탑
2,500년전 인간이 가진 어떤 학문이나, 사상도 남의 불행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는 것이고,
왕의 길이야 말로 정복자의 삶으로 남의 위에 군림하며,
남을 죽이고,
많이 죽일수록 위대항 왕으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왕자로서의 편안함을 버리고,
나와 남이 동시에 행복해지는 새로운 사상의 체계를 만들어내고자,
뼈를 깎는 6년의 고행을 거치며 다시 네이란자라 강을 건너 수자타의 도움을 얻어 보드가야의 보리수 나무 밑에서 삶의 커다란 비밀을(연기법-모든 것은 연하여 일어나고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고, 네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하고, 네가 불행하면 내가 불행하다)얻어내어 부처를 이룬 사람.
그 깨달음의 자리에 2,500년 전과는 다른 나무겠지만 엄청난 크기의 보리수 나무가 서 있다.
탑을 들어가는 입구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 그리고 순례객에게 한푼을 얻어 오늘을 지내고자하는 구걸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티벳사람들은 이곳에서도 오체투지를 한다.
며칠씩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는 사람들을 보며 부처님의 뜻은 오체투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수자타아카데미의 아름다운 영혼들 곁에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부처님이 입멸하신지 2,500년, 그래도 당신이 깨달음을 얻은 이 곳 주변에는 당신의 뜻을 따르고자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 볼 시간도 없이 바쁘고, 기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감동으로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당신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이 우글거리며 경배하는 이 보리수나무보다는, 저 수자타아카데미의 기쁜 봉사자들이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살아난 부처님의 모습이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다시 뭉클해 졌다.
첫댓글 ....
순수한 영혼을 가진이들에게 고개가 숙여집니다.
부처님의 가피와 감로수네요
읽다가 코끝이 찡해서 잠시 화면 스크롤 멈추게 되는군요. 봉사하시는 모든 분들과 그 사랑을 얻은 모든 이들이 다 함께 행복하게 사시길...
봉사의 아름다운 참 의미를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도에 갔을때 이곳에 들렀습니다 마침 우리가 갔을때 한국에서 온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운동장에서 풍물놀이를 하고있었지요 인도에서 듣는 꽹가리소리 눈물이 나더군요 즉석에서 성금을 모았는데 100루피를 낸 기억이 납니다 어떤분은 100달러를 선뜻 내더군요 그때 모인 성금이 꽤 많았는데 자원봉사자분도 많은 액수에 깜짝 놀라던 기억이 납니다 정토회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찾아가기 쉽지 않은곳인데, 찾아가셨군요,,,감사합니다,
감동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도단체 여행은 다녀왔지만 사찰에서 가면서도 알리지 않아 전혀 모르고 갔네요.
인도는 꼭 다시 가보고 싶은곳인데... 그때 가능하면 들려보고 싶어지네요..정보 감사합니다.............
현장의 감동을 그대로 전달 받은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제자신이 많이 부끄러워지는 오늘이네요...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에는 건성건성 읽었고 그때는 선등님에 대해서도 잘 몰라서(제생각에 지금은 많이 친해진것 같아서..)
책 읽듯이 읽었는데 다시금 읽어보니...
그때와는 또다른 찐~한 감동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전율이 흐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희생이라 여기지 않고 기쁨으로 여기며 하는 봉사야말로
진정 값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봉사랍시고 독거노인집에 들러 하잖은 물질을 건네면서
그 상대가 당연하다는듯이 받으면 속으로 미운 생각이 들때가
많았는데 참 부끄럽습니다.............
저도 늘 부끄럽답니다,
댓가를 바라고 어떤 일을 행하는건
상대를 위한게 아니고
자기자신을 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건넨 물질에 상대가 고마워하고 감사해야 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지요..
알면서도 상대가 당연하다는듯...
더 큰것을 바라고..
나를 반기는게 아니라 내손에 들린 물질에 신경을 쓰는 걸보고
실망도 하고 미워도 했던
건방지고 오만한 내 과거의 행동들이 생각납니다...........
많이 반성합니다...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