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여선교회
주일밤 여선교 헌신예배 2007.11.25 눅8:1-3
“1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쌔 열 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하나님의 은사)와 또 수산나(백합)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서론 - 교회내의 조직이 주님의 몸된 교회에 큰 이로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고린도교회처럼 당파를 형성하여 큰 해를 입히기도 하였다. 오늘 본문의 여선교회는 참된 여선교회 상을 보여 준 것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참된 여선교회에서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 무엇인가?
1. 은혜를 받아 은혜를 아는 사람들
본문에서 등장되는 여자들은 하나 같이 주님께 은혜를 받은 여인들이었다.
악귀에서 자유를 얻게 된 여인, 병에서 고침 받은 여인, 등 주 예수께로부터 은혜를 입은 사람들임을 짐작케 한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자들로서 은혜를 아는 자들이다. 은혜를 아는 자들이기에 그 은혜를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에 드려지는 헌신이 은혜가 넘치는 헌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은혜롭게 헌신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힘들게 하는 헌신이 있다. 마르다처럼 타인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면서 헌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왈가왈부를 들어가면서도 감사하면서 은혜를 가지고 드려지는 헌신도 있다.
어떤 경우 은혜가 없이 억지로나, 투덜거리며 하거나, 마지못해 인상을 써가며 하는 헌신은 참으로 오히려 고통을 주는 헌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본문의 여선교회는 은혜를 받아 은혜로 은혜를 갚기 위한 헌신이다 보니 참으로 은혜로운 헌신의 모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헌신의 이유와 목적은 오직 은혜 베푸신 예수께 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예수님이 헌신의 목적이다. 이유이다. 그분 때문에 헌신한다. 오직 그분을 위해서 일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사람들도 기꺼이 섬긴다. 12제자들...
2. 자발적인 모임이다.
강요가 아니다. 한자도 없다. 자기들의 소유로 섬긴다. 그래서
1) 감사가 있다.
감사함으로 넘치게 하는 헌신이 된다. 감사가 없는 헌신은 은혜로운 헌신이 될 수 없다. 감사가 은혜의 척도이다.
2) 화평이 있다. ( 교회 조직이 힘써야 할 최대 과제는 화평이다.)
거기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 텃세, 세도를 부릴만한 사람이 있다. 헤롯의 청지기 아내 요안나가 있다. 권세와 빽과 돈이 있는 여자다. 세도를 부리고 티를 낼 수 있는 여자이다. 그러나 화평이 있다.
7귀신이 내 쫓겨진 여자가 있다 인생을 험악하게 살아서 험악하게 행동할 수 있는 여자이다. 그러나 화평이 있는 것은 화평을 위해 부름을 받은 자녀로서 화평을 위해 헌신함을 알 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헌신에는 반드시 교회를 평안케 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는 사명을 감당하여야 한다.
여인들의 갈등이 교회의 불화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문제의 발단이 되기도 한다. 교회를 어지럽히고, 피차에 상처를 주게 되는 악성 종양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참된 헌신은 화평이 있어야 한다.
은혜가 있는 사람들이 화평의 사신이 되어야 한다. 빌립보 교회는 참으로 생각할수록 기쁨을 주는 교회였으나 그러한 아름다운 교회도 여인들의 갈등이 교회의 불화의 불씨가 되었고, 화목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바울은 이점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그는 급기야 이 문제를 집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서로 돌아보아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권면하고 또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섬기라고 하면서 여인들의 갈등을 우회적으로 권면하고 있다. 나아가서 마지막 장에서는 더 이상 참을 수도 없고, 감춰서는 안 되기에 곪은 상처를 드러내게 되는데 그 여인들이 바로 유오디아(창성한 여행)와 순두게(행복한 기회)이다.
서로 화목하라는 것이다. 서로 관용(에피에이케스:온유, 용서, 감정의 절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하고 시험에 들까봐 다시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부녀들을 돕고, 생명책에 이름이 있다고) 그들이 교회 내에서 화평하도록 클레멘트에게 부탁하는 말을 한다. (빌4:1-2, 2:1-5)
주님도 잘못된 자들에게 권면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우회적으로 권면하고 지적하는 경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집적 지적해서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은 집적 지적할 수 없다.
미련한 사람도 집적 지적할 수 없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기에)
너무 약해 빠진 사람도 집적 지적할 수 없다.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치적에 집착하는 사람은 집적 지적하면 시험에 든다.
3) 권리 주장이 없다.
그러므로 기득권이 교회 안에 없다. 직분의 권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교회는 벌써 깊은 병에 걸려 있는 것이다.
오래된 교회 , 헌신을 많이 한 교회는 그러한 병에 걸릴 수 있다.
그러한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갚아야할 은혜를 기억하며, 자신의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고 악성 종양 같은 마음들을 재빨리 회개로 절단해 쓰레기통에 쳐 박아 쑤셔 넣어 버려야 한다.
안타깝게도 교회 내에서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온 교회에서 왕 노릇하려고 온 통 교회를 엎어 치고 있었다. 자기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를 내쳐 버리고, 자기 뜻대로 다 되어야 직정이 풀리는 교회에 악한 종양이었다. (요삼9-11)
교회 권리 주장이 많아(직분, 오래됨, 치적, 헌신) 계급장이 달리고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경례를 붙이고 경의를 표하고 그것으로 권력을 삼고 복종을 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목사가 목회를 하기 힘들다.
빌립보교회는 자주장사 루디아가 세운 교회이기에 여인들의 공로가 클 수밖에 없는 교회였다. 그러기에 여인들의 공로가 무시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그 권리를 두고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불화의 권력 다툼이 있을 수 있었다. 이러한 교회가 되면 그때부터 주님은 그러한 교회를 떠나실 수 밖에 없다. 주님도 부려먹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목사보고 나도 그들을 해볼 수 없다. 라고 하실 것이다.
3. 희생이 있다.
자기들의 소유로 주님과 그 제자들을 섬겼다. 요구나 요청이 아니라 자발적 모임이다. 그러므로 불평이 없다. 요구가 없다. 조건이 없다. 치적이 없다.
순결한 달처럼 빛나는 뵈뵈처럼...
뭐니뭐니 해도 신앙은 말없는 희생을 통하여 증명된다. 어떤 사람들은 말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희생은 없이 말만 하는 사람들이 있고, 희생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신앙 이력서에 자랑과 경력을 하나 더 추가한 것에 불과 하다. 어떤 사람들은 남이 해 놓은 일에 생색만 내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공로도 가로채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극히 얌체 같은 신앙도 있다.
그러나 희생을 하고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도 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은 정말 주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말없이 희생하는 사람들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는 그러한 헌신에 대해 주의하여 보시고 주 예수께서 값아 주실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결론 - 참된 여선교회가 있는 우리교회가 되자!
정말 본이 되어 포천에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교회로 도전하자!
하늘에 상급이 있는 교회 여선교회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