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바른 도둑
부산에서도 가뜩이나 낙후된 지역 구평동, 어느 허름한 집에 사는 여섯 살짜리 현정이에겐 아빠만 있지 엄마는 없다.
아빠 얘기로는 현정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지개를 타고 파라다이스란 지극히 아름다운 하늘나라로 올라갔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현정이의 수호천사인 하늘의 별이 되어, 저 하늘 높은 곳에서 현정이가 잘 클 수 있게 늘 지켜준다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 현정이는 엄마의 소원대로 착하게, 그리고 무럭무럭 잘 커야 해.”
현정이는 아빠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엄마가 없어도 그리 불편한 줄 모르고 자랐다.
현정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아빠는 무리해서라도 가급적 다 들어주었다. 먹고 싶은 것이며, 갖고 싶은 인형이나 장난감이며, 옷이며 아빠는 현정이가 갖고 싶다는 것은 다 사줬다. 그래서 현정이는 아빠가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대단한 권능을 지녔기에 아빠만 있어도 충분하다 여겨왔다.
아빠는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린다. 그렇지만 아빠는 현정이에게 ‘아빠는 다리를 저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춘다’라고 했다.
아빠는 오전 10시쯤이면 현정이를 구평동 샛별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오후 6시쯤이면 현정이를 데리러온다. 어린이집 아이들은 걸핏하면 아빠를 흉내내며 다리를 절뚝거렸다. 선생님이 말려도 듣지 않았다.
“현정이 아빠는 다리병신이다.”
아이들의 놀림에 현정이는 발끈했다.
“아니다. 우리 아빠는 춤추는 거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에 현정이도 아빠가 춤추는 것이 아닌, 다리병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 미워! 아빤 춤추는 게 아니라며? 다리가 병신이라며?”
“누가 그러데? 아빠더러 다리병신이라고?”
“애들이 다 그래.”
“저런? 그래서 우리 현정이가 화가 났구나? 나쁜 아이들 같으니….”
어느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아빠의 직업에 대해 물었다.
“우리 아빠는 의사선생님이래요.”
“우리 아빠는요, 사장님이에요.”
“우리 아빤 회사원이에요.”
아이들은 저마다 씩씩하게 아빠의 직업을 얘기했다.
“현정이 아빠는 뭘하시는 분이시지요?”
선생님이 현정이 차례가 오자 말을 못하고 있는 현정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우리 아빠는예. 우리 아빠는예….”
“그래 현정이 아빠는?”
“잘 모르겠는데예.”
“그럼, 집에 가서 아빠더러 아빠 직업이 뭐냐고 여쭤보고 알아오도록 해라.”
집에 있는 동안 아빠는 식사를 준비하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집안청소를 하는 것 외엔 늘 현정이 곁에 있었다.
그리고 간혹 성치 않은 다리에 맞게 개발된 전동자전거를 끌고 일하러 갔다온다며 잠깐씩 어디를 다녀왔어도 현정이로서는 아빠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빠는 무슨 일을 해?”
“왜?”
“선생님이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래.”
아빠는 한동안 말없이 현정이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봤다.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아빠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달팽이’란 제목의 산문으로 교내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아빠의 재능을 인정하여 아빠더러 이담에 커서 작가가 되라고 격려해 준 것을 늘 기억 속에 간직해 왔다.
“아빠는 말이다. 글쓰는 작가란다.”
“글쓰는 작가? 작가가 뭔데?”
“응, 작가란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일들을 이야기로 꾸며 글로 쓰는 사람이란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살다보면 굉장히 기쁘거나 행복한 일도 생길 것이고, 반대로 굉장히 괴롭거나 슬픈 일도 생길 것이고…. 그런 일들을 이야기로 꾸며 쓰는 사람을 말해.”
“아하!”
현정이는 그때서야 아빠가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인지 알아들었다.
“내일은 어린이집에 가서 큰 소리로 자랑해야지.”
아빠는 아주 어려서부터 고아원에서 자랐고 초등학교만 겨우 마쳤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단순 육체노동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땐 몸이 건강하였기에 엄마를 만날 수 있었고, 또 현정이를 낳은 뒤로 한동안 단란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아빠에겐 그런 자그마한 행복도 한 순간에 불과했다. 건축공사장에서 일하고 늦은 시각에 귀가를 서두르던 아빠는 뺑소니차에 치어 한쪽 다리를 크게 다친 뒤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현정이가 네 살 될 무렵 엄마는 돈 벌러간다며 집을 나간 뒤론 연락마저 끊었다.
이후 아빠는 장애인으로 등록하여 동사무소에서 매달 20만 원에도 못미치는 돈을 지원받아왔으나 실제 그 금액은 생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냥 놀고 지낼 수가 없어 앉아서도 일할 수 있는 직장에 취직을 하려고 여러 군데를 쫓아다녔지만 마땅하다 할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쯤 현정이가 잠든 시간을 틈타 전동자전거를 끌고 밤일에 나섰다.
늘 검정 일색의 옷차림에 검정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가급적이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낮에 눈여겨 봐두었던 집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즉 아빠가 하는 일은 야심한 밤에 남의 집을 터는 도둑질인 것이다.
아빠가 털어왔던 집들은 모두 평범한 가정집들이었다. 씨씨티브이CCTV나 첨단보안장치는 물론 경보기나 뾰족한 철책도 없고, 개도 키우지 않는 고만고만하게 사는 집들이었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낮을 이용해 빈집만 골라 터는 낮털이는 엄두를 낼 수 없기에, 늘 한밤중에 몰래 담을 타고 넘어가는 좀도둑질로 만족해야 했다.
아빠가 남의 집을 털러갈 때 지니는 것들은 잠금장치를 풀 수 있는 간단한 도구와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마스크, 그리고 미리 문안이 작성된 메모지와 마취제가 전부였다. 그 외엔 흉기가 될 수 있는 물건은 단 한 가지도 몸에 지니지 않았다.
몸이 불편한 만큼 아빠는 도둑질에도 유난히 조심해야 했다. 현관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 안방으로 잠입한 다음, 잠든 사람의 코에 약간의 마취제를 뿌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한 뒤, 장롱을 뒤져 꼭 현금만 훔쳤다.
그리고 아빠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힌 메모지를 꼭 눈에 잘 띄게 탁자 위에 남겨놓곤 했다.
‘약간의 돈만 가져갑니다.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세요. 밤 손님 올림’
아빠는 통장이나 귀금속 따위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대개의 가정집이 큰 돈을 지니고 있지 않아 몇 만 원에서 많게는 몇 십만 원에 불과했고, 더 큰 돈이 있어도 10만 원 이상은 들고 나오지 않았다.
새벽 5시경에 낯선 사람 셋이 집엘 찾아와 한참 단잠에 빠져있던 현정이를 깨웠다.
“네가 현정이 맞지?”
“그런데요…. 아저씬 누구세요?”
“경찰아저씨인데, 나 따라서 어딜 가야겠다. 아빠가 기다리시거든….”
졸린 눈을 비벼가며 따라나선 곳은 집에서 한참 벗어난 낯선 곳에 위치한 신평동 지구대였다.
아빠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져있었고 몸에는 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뿐만 아니라 얻어맞은 때문인지 얼굴이 상처투성이에 피로 얼룩져 있었다.
현정이는 생전 처음 보는 그런 아빠의 모습이 낯설어 잠시 망설이다가 아빠한테 매달리며 울음보를 터뜨렸다.
“아빠, 우리 아빠 왜 이래요?”
“네 아빠가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려다 잡혀왔단다.”
“아니에요. 우리 아빠 나쁜 사람 아니에요. 우리 아빤 작가란 말예요.”
아빠가 하필 담 타넘고 들어간 집이 그 지역 경찰아저씨의 집이었다. 경찰아저씨가 야간근무 교대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 뒤 욕실을 나서려는 순간, 때마침 현관문을 따고 들어서려던 아빠와 마주친 것이다.
아저씨는 아무 저항도 않던 아빠를 마당으로 끌고나가 난폭하게 다뤘다. 그리고 수갑을 채워 지구대로 끌고온 것이다.
“제가 잘못한 것은 모두 인정하고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지금 제겐 여섯 살짜리 딸애가 있는데, 오로지 저 하나만 의지하고 있습니다. 저 외엔 보살펴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아이를 부탁드립니다.”
아빠는 그동안 도둑질한 것에 대해 낱낱이 밝혔다. 비교적 소상히 기억했던 터라 2년여에 걸쳐 대략 2백여 건에 이를 만큼 아주 많았다.
“작게는 2만 원에서 많아도 10만 원은 넘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그 정도의 돈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훔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남의 집을 무단으로 침입하여 절도행각을 벌인게 문제지, 금액이 문제가 아닙니다.”
경찰은 아빠의 진술을 토대로 조사를 벌였다. 그렇지만 아빠가 도둑질했다는 집 그 어디서든 신고 들어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아빠를 대동하여 집집마다 찾아가봐도 누구 하나 아빠를 고소할 생각이 전혀 없다 하였다.
아빠를 붙잡은 경찰아저씨마저 절도미수에 그친 아빠를 고소하지 않겠다하여 아빠는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라는 각서만 쓰고 풀려날 수 있었다.
전화위복이라 할까?
그런 사정이 알려진 뒤 아빠는 사하구청의 배려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오늘도 현정이의 눈에는 절뚝거리면서도 늘 웃는 얼굴로 일하는 아빠의 모습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