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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불교사공부방(일본 불교사 독서회)
 
 
 
카페 게시글
▒ 독서회 ▒ 일본불교사 공부방(독서회) 운영세칙(시안)
김호성 추천 1 조회 281 11.03.03 18:41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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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3.04 10:39

    첫댓글 권진, 독사(讀師), 강사(講師) 라는 용어가 왠지 낮 설어지고 멀어지는 듯 하네요. 좋은 우리말을 젊은이들에서 찾아보면 어떠하실른지요?

  • 작성자 11.03.04 11:18

    낯선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말들은 모두 일본불교사에 등장하는 말들입니다. 그래서 차용해 보려고 합니다. 말에서부터 익숙하게 하려구요. 권진(勸進)이라는 말은 용맹정진을 권유한다는 말입니다만, 사실은 시주하기를 권하는 것과 공사 같은 불사를 총감독하는 일을 합한 개념이라 보면 됩니다. 나라의 도다이지(東大寺) 대불조성 불사 당시에 교키(行基)스님이 권진이었지요. 전국을 다니면서 화주(化主)를 하시면서, 그 불사의 총책임을 맡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총책임자라는 뜻의 소임을 도감(都監)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일본불교의 권진은 우리불교에서 쓰는 화주 + 도감, 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일본불교사 공부를

  • 작성자 11.03.04 11:22

    하자고 권유하기 (공개적으로, 드러내놓고, 잡지니 연구소니 만들어 가면서), 시작한 사람이 저입니다. 누가 묻기를, 당신 도대체 뭐냐? 저는 권진입니다.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일본불교사 공부방 제4호 권두언)
    그러니까 이제 독서회를 통해서, 일본불교 공부를 권유해 가는 운영자(=조직자, 리더)는 모두 '권진'이라는 직역(職役)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권진이라는 직역을 맡은 사람들 중에, 공부나 독서회 경력을 파악해서 다시 직위(職位)로서 권진 --- > 독사 ---> 강사가 됩니다.
    독사와 강사는 일본의 교종 사찰의 강당(講堂)에 가면, 부처님 앞에서 서로 마주보면서 한 사람은 경전을 읽고 한 사람은 그 경전의 의미

  • 작성자 11.03.04 11:24

    를 해설해 주는, 두 사람이 올라가서 앉는 높은 의자(테니스 심판이 앉는 의자 비슷하게)가 있습니다. 이 분들을 각기 독사와 강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끄 말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 말을 씀으로써 우리는 이 세 말을 알게 된 것입니다. 권진과 독사는 자기가 조직한 모임에서만 공부를 리드해 갑니다. 하지만, 강사가 되면 다른 모임에 가서도 공부를 지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순회강사라는 것은 우리 연구소의 연구회원(석박사 선생님)들을 각 독서회 모임이 파견할 때, 그 분을 순회강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젊은 학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이야기입니다. 좀 속된 비유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가수들은 방송국에서만 노래

  • 작성자 11.03.04 11:26

    부르지 않습니다. 밤무대에서도 노래부릅니다. 젊은 학자들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것은 '방송국'입니다만, 이렇게 독서회를 통해서 민중들 저변으로 들어가서 지식을 전파하는 것은 '밤무대'입니다. 우리는 그분들께(순회강사) 적으나마 여비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독서회 차원의 예산으로 지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우리 연구소 자체예산이 충실하게 된다면 그렇게도 할 생각입니다.

  • 작성자 11.03.04 11:29

    도서회 운동은 "혁명"입니다. 신앙의 혁명이고, 포교의 혁명입니다. 지금까지는 부처님의 향해서 바라보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독서회 권진을 한다는 것은 부처님을 등지고 돌아서서 다른 중생들에게 다가가서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종래 수신자이기만 했던 불자들이 다시 발신자가 되어서 부처님의 메시지를 전하게 됩니다. 이 어찌 혁명이 아니겠습니까? 거사님, 어떻습니까? 이 거룩한 혁명에 참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성스러운 혁명의 초기에 참여하여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감'으로써, 청사(靑史)를 장엄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독서회 권진을 해달라"고 부탁드려

  • 작성자 11.03.04 11:32

    볼 생각입니다. 이 질문은, 이 질문을 받는 모든 분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부처님을 향해서 가르침을 받고서 그 가르침에 기뻐서 눈물 흘리고, 폴짝폴짝 환희용약하고 신수봉행(信受奉行)하는 것에서 머물러 왔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 말하는 것입니다. 대승경전 작자들의 최대의 오류가 여기 있습니다. 왜 그들은 경전의 끝을 "부처님의 법을 들은 모든 대중들이 환희용약하고 신수봉행했다"는 것으로 끝맺었던 것일까요? 후대에 경전을 해석한 학자들이 그 부분을 "유통분(流通分)"이라 판정한 것처럼, 그렇게 기뻐하면서 그 가르침을 들은 제자들은 이웃에게 다가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했노라. 혹은

  • 작성자 11.03.04 11:35

    전하기 위해서 떠나갔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대승경전이 초기경전의 되살림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이를 저는 一音敎)라는 말로 불렀습니다만, 왜 이 경전의 마지막 유통분만은 초기경전의 가르침을 배반했던 것일까요? 자, 보세요. 초기경전에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했습니다. "자, 떠나가거라. 전도를 위하여.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 정신을 그대로 이어서 대승경전을 지었더라면, "신수봉행하고 환희용약하면서, 제자들은 이웃 사람들에게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법을 전하였다" 이렇게 끝나야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감히 저를 아는 모든

  • 작성자 11.03.04 11:39

    분들께, 독서회 권진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칼'을 밀어놓는 것입니다. 칼끝을 잡는지, 칼집은 잡는지 봅니다. 정말로 송구한 말씀인지 모르지만, 이는 '후미에(踏繪)'입니다.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소설 "침묵"에서, 에도시대 포교를 하러 온 서양의 선교사들은, 또 그 신도들은 개종을 강요당합니다. 배교(背敎)를 강요당하는 것입니다. 하도 고문이 심하니까 더러는 거짓말로 배교했다고도 합니다. 그때 도쿠가와 막부가 내놓는 것이 바로 '후미에'입니다. 예수가 그려진 그림입니다. 밟으라는 것입니다. 밟을 수 있다면 배교를 진실한 것으로 보고, 살려준다는 이야기이지요. 실험이고, 시험입니다.

  • 작성자 11.03.04 11:41

    이게 후미에입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였습니다. 일이 너무 많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라면 잠을 줄이고 노는 것을 줄이고 먹는 것을 줄여야 하겠지요. 나의 무엇인가를 포기할 때, 부처님을 위해서 포기할 때 그 순간 공덕이 되는 것이겠지요. 용어의 문제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저는 제 속내를 다 풀어보았습니다. 그래서 금년 1년은 어떡하든지 독서회 10개를 목표로 노력할 것입니다. 이미 두 개는 성립되었습니다. 남은 8개를 위하여, 정진하겠습니다. 많은 동참 빕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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