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조(목적) : 일본불교사연구소 교육활동의 일환으로서 일본불교사에 대한 이해를
사회 저변으로 확충하고, “일본불교사연구소”의 제반활동을 함께 할
인재양성을 그 목적으로 한다.
제2조(규모) : 독서회의 규모는 다음과 같다.
1) 최소 5명에서 최대10명으로 한다.
2) 11명이 되면 5명과 6명의 두 개 독서회로 분방(分房)한다. 단, 다른
조직 속에 존재하는 독서회일 경우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는다.
3) 분방해 나가는 독서회의 새로운 권진(勸進)은 기존 공부방의 권진이
추천한다.
제3조(리더) : 독서회의 조직과 운영, 그리고 연구소와 연락관계를 담당할 리더는
다음과 같다.
1) 독서회에는 권진, 독사(讀師), 강사(講師) 중에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
2) 권진, 독사, 강사는 모두 스스로 독서회를 구성한 뒤에, 연구소로부터
위촉을 받는다.
3) 본인 이외 4인 이상을 모시고 독서회를 조직하는 사람을 권진으로 삼
는다.
4) 권진이 “한일문화교류아카데미”를 수료하거나, 독서회 모임을 100회
진행하면 독사로 승급한다. 독사가 공부방 스터디를 100회 행하면 강사
로 승급한다. 2개 이상의 공부방을 운영하는 경우에는 그 회수를 합산
한다.
5) 불교학 분야의 석사학위 소지자와 사미, 사미니 스님은 권진을 거치지
않고 독사로 위촉한다.
6) 불교학 분야의 박사학위 소지자와 비구, 비구니 스님은 권진과 독사를
거치지 않고 강사로 위촉한다.
7) 권진과 독사는 자기가 조직한 공부방만을 운영하지만, 강사는 스스로
조직한 공부방 이외에도 순회강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일본불교
사연구소의 연구회원 중 박사학위 소지자는 순회강사로 위촉할 수 있다.
8) 권진, 독사, 강사는 모두 자원봉사를 원칙으로 한다. 다만, 학생이거나 연구회원으로서 순회강사를 하는 경우에는 소정의 여비 내지 운영비를
연구소가 지급할 수도 있다.
9) 권진, 독사, 강사에 대해서는 적어도 한 학기에 1회, 1년에 2회 이상의
연수교육을 시행한다.
10) 권진, 독사, 강사가 회원이 되는 “권진협의회”를 조직하여, 서로 정보교환 및
운영에 대한 협의를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
제4조(명칭) : 일본불교사 연구소 소속 회원이 스스로 공부방을 조직하였을 때는
“일본불교사 ( ) 공부방”이라 하고, 사찰 내지 다른 기관에서 일본불교
사 공부방을 설치해 주어서 운영될 때는 “( ) 일본불교사 공부방”이라
한다.
제5조(운영) : 운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다.
1) 본 연구소는 권진, 독사, 강사들과만 연락을 취할 뿐 공부방에 참여하
는 회원들의 신상정보를 수집하지 않으며, 개별연락을 취하지 않는다. 공
부방 스터디 외에 연구소의 다른 활동(강좌기행, 아카데미, 학술세미나 참
여 등)에 대한 홍보와 참가 여부, 재정적 후원 등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권
진, 독사, 강사의 판단에 맡긴다.
2) 본 연구소는 권진, 독사, 강사 등과의 원할한 연락업무를 위하여 카페에
‘공부방(독서회) 뉴스’방을 개설한다.
제6조(회비) : 독서회의 운영에 따른 비용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권진, 독사, 강사
책임 하에 자율적으로 결정하여 집행하고 결산하며, 이에 대해서는 본 연
구소가 감사하지 않는다.
제7조(공부) : 공부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다.
1) 최소한 월 2회는 모여서 공부해야 하고, 1회 공부시간은 1시간에서 2
시간 사이로 한다.
2) 교재와 내용에 대해서는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3) 서적의 독서 외에 일본불교와 관련된 영화 관람, 일본사찰 순례 등 다
른 문화적 활동도 가능하다. 일본 사찰순례의 경우에는 1회에 독서회 10
회를 한 것으로 평가한다.
4) “일본불교사 공부방”(잡지)를 기본 교재로 할 경우에는 본 연구소에서
제공한다.
5) 공부 방식은 선택한 교재를 함께 읽고 토론하거나, 집에서 읽은 뒤 발
제하여 토론하는 등 자율에 맡긴다.
6) 권진, 독사, 강사는 스터디를 한 뒤에는 반드시 카페의 ‘공부방(독서회)
뉴스’란에 “공부방 일지”(일시, 장소, 참여자, 내용, 질문, 다음 회 계획은
필수포함 사항)를 작성하여 회향(回向)한다.
제8조(해체) : 독서회의 성격을 불교책 전반의 독서회로 변경하고자 하거나, 독립된
단체로 전환하고자 할 때는 언제든지 그 뜻을 존중한다.
제9조(기타) : 이 세칙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은 본 연구소와 권진, 독사, 강사가 긴
밀히 협의하여 결정한다.
2011년 3월 2일 제정
첫댓글 권진, 독사(讀師), 강사(講師) 라는 용어가 왠지 낮 설어지고 멀어지는 듯 하네요. 좋은 우리말을 젊은이들에서 찾아보면 어떠하실른지요?
낯선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말들은 모두 일본불교사에 등장하는 말들입니다. 그래서 차용해 보려고 합니다. 말에서부터 익숙하게 하려구요. 권진(勸進)이라는 말은 용맹정진을 권유한다는 말입니다만, 사실은 시주하기를 권하는 것과 공사 같은 불사를 총감독하는 일을 합한 개념이라 보면 됩니다. 나라의 도다이지(東大寺) 대불조성 불사 당시에 교키(行基)스님이 권진이었지요. 전국을 다니면서 화주(化主)를 하시면서, 그 불사의 총책임을 맡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총책임자라는 뜻의 소임을 도감(都監)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일본불교의 권진은 우리불교에서 쓰는 화주 + 도감, 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일본불교사 공부를
하자고 권유하기 (공개적으로, 드러내놓고, 잡지니 연구소니 만들어 가면서), 시작한 사람이 저입니다. 누가 묻기를, 당신 도대체 뭐냐? 저는 권진입니다.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일본불교사 공부방 제4호 권두언)
그러니까 이제 독서회를 통해서, 일본불교 공부를 권유해 가는 운영자(=조직자, 리더)는 모두 '권진'이라는 직역(職役)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권진이라는 직역을 맡은 사람들 중에, 공부나 독서회 경력을 파악해서 다시 직위(職位)로서 권진 --- > 독사 ---> 강사가 됩니다.
독사와 강사는 일본의 교종 사찰의 강당(講堂)에 가면, 부처님 앞에서 서로 마주보면서 한 사람은 경전을 읽고 한 사람은 그 경전의 의미
를 해설해 주는, 두 사람이 올라가서 앉는 높은 의자(테니스 심판이 앉는 의자 비슷하게)가 있습니다. 이 분들을 각기 독사와 강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끄 말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 말을 씀으로써 우리는 이 세 말을 알게 된 것입니다. 권진과 독사는 자기가 조직한 모임에서만 공부를 리드해 갑니다. 하지만, 강사가 되면 다른 모임에 가서도 공부를 지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순회강사라는 것은 우리 연구소의 연구회원(석박사 선생님)들을 각 독서회 모임이 파견할 때, 그 분을 순회강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젊은 학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이야기입니다. 좀 속된 비유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가수들은 방송국에서만 노래
부르지 않습니다. 밤무대에서도 노래부릅니다. 젊은 학자들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것은 '방송국'입니다만, 이렇게 독서회를 통해서 민중들 저변으로 들어가서 지식을 전파하는 것은 '밤무대'입니다. 우리는 그분들께(순회강사) 적으나마 여비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독서회 차원의 예산으로 지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우리 연구소 자체예산이 충실하게 된다면 그렇게도 할 생각입니다.
도서회 운동은 "혁명"입니다. 신앙의 혁명이고, 포교의 혁명입니다. 지금까지는 부처님의 향해서 바라보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독서회 권진을 한다는 것은 부처님을 등지고 돌아서서 다른 중생들에게 다가가서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종래 수신자이기만 했던 불자들이 다시 발신자가 되어서 부처님의 메시지를 전하게 됩니다. 이 어찌 혁명이 아니겠습니까? 거사님, 어떻습니까? 이 거룩한 혁명에 참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성스러운 혁명의 초기에 참여하여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감'으로써, 청사(靑史)를 장엄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독서회 권진을 해달라"고 부탁드려
볼 생각입니다. 이 질문은, 이 질문을 받는 모든 분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부처님을 향해서 가르침을 받고서 그 가르침에 기뻐서 눈물 흘리고, 폴짝폴짝 환희용약하고 신수봉행(信受奉行)하는 것에서 머물러 왔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 말하는 것입니다. 대승경전 작자들의 최대의 오류가 여기 있습니다. 왜 그들은 경전의 끝을 "부처님의 법을 들은 모든 대중들이 환희용약하고 신수봉행했다"는 것으로 끝맺었던 것일까요? 후대에 경전을 해석한 학자들이 그 부분을 "유통분(流通分)"이라 판정한 것처럼, 그렇게 기뻐하면서 그 가르침을 들은 제자들은 이웃에게 다가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했노라. 혹은
전하기 위해서 떠나갔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대승경전이 초기경전의 되살림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이를 저는 一音敎)라는 말로 불렀습니다만, 왜 이 경전의 마지막 유통분만은 초기경전의 가르침을 배반했던 것일까요? 자, 보세요. 초기경전에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했습니다. "자, 떠나가거라. 전도를 위하여.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 정신을 그대로 이어서 대승경전을 지었더라면, "신수봉행하고 환희용약하면서, 제자들은 이웃 사람들에게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법을 전하였다" 이렇게 끝나야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감히 저를 아는 모든
분들께, 독서회 권진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칼'을 밀어놓는 것입니다. 칼끝을 잡는지, 칼집은 잡는지 봅니다. 정말로 송구한 말씀인지 모르지만, 이는 '후미에(踏繪)'입니다.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소설 "침묵"에서, 에도시대 포교를 하러 온 서양의 선교사들은, 또 그 신도들은 개종을 강요당합니다. 배교(背敎)를 강요당하는 것입니다. 하도 고문이 심하니까 더러는 거짓말로 배교했다고도 합니다. 그때 도쿠가와 막부가 내놓는 것이 바로 '후미에'입니다. 예수가 그려진 그림입니다. 밟으라는 것입니다. 밟을 수 있다면 배교를 진실한 것으로 보고, 살려준다는 이야기이지요. 실험이고, 시험입니다.
이게 후미에입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였습니다. 일이 너무 많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라면 잠을 줄이고 노는 것을 줄이고 먹는 것을 줄여야 하겠지요. 나의 무엇인가를 포기할 때, 부처님을 위해서 포기할 때 그 순간 공덕이 되는 것이겠지요. 용어의 문제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저는 제 속내를 다 풀어보았습니다. 그래서 금년 1년은 어떡하든지 독서회 10개를 목표로 노력할 것입니다. 이미 두 개는 성립되었습니다. 남은 8개를 위하여, 정진하겠습니다. 많은 동참 빕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