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 레위를 부르신 예수님
누가복음 5:27-32
문둥병자와 중풍병자를 치유하신 예수님은 또 다른 유대사회에서 격리된 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예수님이 찾아내신 또 다른 사람은 세리 레위였습니다. 세리는 그 당시 유대사회에서 멸시받는 직업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사회에서 멸시의 대상이었던 세리 레위를 찾아가신 것도 그를 회복시켜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게 하려한 것입니다.
1. 세리 레위를 부르신 예수님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5:27-28)
문둥병자와 중풍병자를 치유하신 후, 예수님은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27절). 세리(텔로넨)는 로마정부 아래서 유대인을 상대로 세금을 징수하는 직업이었습니다. 로마 정부는 유대인들로부터 인두세(마 22:15-22)와 토지세, 통행세 등과 같은 각종 세금을 거두기 위하여 감찰관(censor)들을 각 지방에 파견하였는데, 이들은 돈을 받고서 위탁 형식으로 조세징수권을 유대 고위 인사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러자 유대 고위층들은 이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다시금 조세 징수원을 고용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세리입니다. 이들 세리도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곧 세관에 근무하면서 통행세와 같은 간접세를 받는 세리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인두세와 같은 직접세를 징수하는 세리입니다. 아무튼 이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창녀와 같은 죄인 취급을 당하였는데, 그 이유는 (1) 이들이 유대를 지배하는 로마 정부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는 점에서이고, (2) 이들이 동족들에게 그것도 가난한 자나 부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똑같이 과다한 세금을 부과하여 그 잔액을 자신들이 착복하였기 때문입니다.
세관은 가버나움에 있던 로마의 세관입니다. 가버나움은 로마 군대가 상주해 있을 정도로(7:1-10; 마 8:5-8) 중요한 도시였는데, 특히 북쪽으로는 수리아 지방으로, 남쪽으로는 유대와 애굽 지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목에 위치한 탓에 통관세를 징수하는 로마의 세관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레위'(마태)는 이곳에서 근무하던 세관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있는 세리 레위를 보셨습니다. ‘보시고’(에데아사토)라는 동사는 관찰자가 주의 깊게 보는 것, 즉 '눈여겨보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레위를 주의깊게 살펴보아 그를 특별히 골라 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세리 레위(마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28절). 자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명령에 레위는 주저하지 않고 즉시로 그를 따라 나선 것입니다. 레위가 예수님을 따라나선 것이 세리라는 직업을 버리고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선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모든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지속적으로 살았으리라고 짐작됩니다. 레위의 이런 행동은 후에 상세히 밝혀지게 될 제자도(discipleship)의 모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가는 레위의 행동의 두 가지 면, 즉 모든 것을 버리는 소극적인 면과 그를 따르는 적극적인 면을 모두 보여줍니다(9:23-25).
2. 예수님을 위한 잔치를 베푼 레위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5:29-30)
레위가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29절). 신약성경에서 잔치는 기쁨을 상징하며, 때로는 하나님이 성도들을 위해 베푸실 종말론적인 천국 잔치를 암시하기도 합니다(13:29; 14:16). 레위가 예수님을 모시고 잔치를 배설한 것은 접대와 송별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또한 자신들의 옛 친구들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함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레위는 자신을 세리의 자리에서 떠날 수 있도록 도우신 예수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과 자신의 옛 동료들을 예수님께 소개하여 그들도 자신과 같이 결단하도록 하는 전도의 마음으로 잔치를 베풀고 동료들을 초청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방하여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30절). 29절에서 '다른 사람'이라고 언급된 사람들은 결국 '죄인들'이었습니다. '죄인들'을 나타내는 '하마르톨로스'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사회적 신분을 규정하는 말로도 사용되었습니다(막 2:16).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죄인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율법의 준수 여부였습니다. 이는 곧 율법을 지닌 사람들은 본래 거룩하며 반면에 율법 밖에 있는 사람들(이방인)은 본래 죄인임을 의미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또한 그들의 계명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 즉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마 12:1; 15:2)을 죄인으로 간주했습니다(K. H. Rengstorf, TDNT. I, 317-35). 특히 압제자인 로마의 앞잡이로 동족의 고혈을 짜는 세리는 죄인중의 죄인이요 극단적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불경스런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의 계명의 본질적인 한 부분을 범하는 행위였습니다. 이들 바리새인들은 특히 유대교적 신앙과 생활을 고수하는데 헌신하였습니다. 그러한 헌신의 노력으로 그들은 도덕적, 의례적 순결성에 있어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분리시켰습니다. 여기서 분리된 사람들은 죄인으로 간주가 되어 반드시 정결 예식을 거쳐야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중 갈릴리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 제시하는 그러한 율법의 조항들을 경멸하고 무시한다는 평판을 듣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특별히 먹고 마시는 행위에 대해 비난한 것은, 식탁에서의 교제가 그들의 사회에서는 '서로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말해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3.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비난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5:31-3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비난에 대해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나니”(31절) 예수님은 속담이나 비유를 만들어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퍼져있던 속담이나 비유를 지혜롭게 사용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건강한 자'와 '병든 자'의 대비는 32절의 '의인'과 '죄인'의 대비와 연결됩니다. 한편 영혼의 의사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아픔을 호소하는 모든 병자를 진단하시고 치료하십니다. 그러나 의사의 몫까지 자처하여 스스로를 건강한 자로 진단내리고 처방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는 예수님의 처방이 적용되어질 수 없었습니다. 오직 그들에게는 자신의 오진(誤診)으로 인한 죽음의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32절) 예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신 것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상 그들의 의인 인체하는 태도는 스스로의 무지와 잘못을 폭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실상 이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3:10).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물리치시며 자신의 무가치함과 구원의 필요를 깊이 느끼는 자들에게 구원의 초대를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구원의 초대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진실된 회개가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의 요지는 누구든지 회개에의 호소에 진실로 응답하려면 먼저 죄인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행구절인 마 9:13과 막 2: 17에는 빠져있는 '회개'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누가는 예수님께서 인용한 속담의 신학적 의미를 밝혀줍니다. 또한 이 '회개'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누가는 매우 중요한 주제를 도입합니다. 그것은 은혜와 용서의 복음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임은 사실이지만(2:10), 그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8:13,14에 나오는 세리는 이런 전제조건을 충족시켰지만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18:11,12). 한편 본 구절의 '회개'라는 주제는 15:7,10,22-27,32에서 '기쁨'이라는 주제와 연결되고 있습니다.
적용: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
세리 레위의 다른 이름은 마태입니다(마 9:9). 그는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세리로서 세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즉시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12 사도 중 한사람으로 뽑혀 예수님으로부터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초대교회를 세운 사도들 중 한사람이었고 후에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복음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특히 그는 예수님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을 잘 해석하여 그의 복음서인 마태복음에 잘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그가 예수님의 12 사도 중 한사람으로 훈련을 받고 위대한 사역을 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에 순종할 때 예수님의 제자로서 온전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하실 때, 그 음성을 바로 들어야합니다. 양떼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함을 따라 가듯이 예수님의 음성을 바로 들은 후에 따라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매일 아침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또 우리가 주님께 기도할 때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면, 현재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라야합니다. 우리의 형편이나 상황을 핑계하며 주님 따르기를 지연하려 하거나 뒤로 돌아가려고 하지 말고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떼를 부를 때 만일 그 중 한 마리가 다른 길로 가버리면 그 결과는 홀로 길을 잃고 헤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즉시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 따라가는 일에 대해서 가족에게 상담한다고 돌아가거나 가족의 일을 정리한 후 따르겠다고 핑계하지 말고 즉시 지체 없이 주님을 따라야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을 지체없이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눅 9:5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