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책망과 탄식”(요한복음16:5-15, 로마서8:26-27) 2012.5.27.성령강림절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신적본질로는 한 분이시나 신격으로는 삼위로 계시는 분이신데 이를 신학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표현합니다. 즉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시지요. 또 사역면에서도 창세 전부터 영원토록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항상 함께 사역하시지만, 인류구원을 위하여, 구약시대는 성부 하나님 중심의 사역이라는 관점에서 그 시대를 성부 하나님의 시대로, 그 다음 신약시대는 성자 하나님의 시대로, 뒤이은 그 다음은 성령 하나님께서 사역하시는 시대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우리 시대는 성령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성령 하나님은 본성면에서 신성과 인격성을 지니고 계시는데, 특별히 성령의 인격성에 대하여는 우리가 잘 헤아리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동양의 범신론적인 종교문화 속에서 우리 기독교의 차별화된 참된 신앙을 드러냄에 있어서 성령의 인격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인격의 삼요소인 지,정,의 즉 지성과 감정과 의지면에서 볼때 성령의 인격성은 분명합니다. 요14:26에“..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엡4:30에“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고전12:11에“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 한 말씀은 인격적인 성령이심을 말해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같이 중요한 성령의 인격적인 면 중에서, 특별히 정적인 면을 드러내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는 책망하시며 탄식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교회는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에 대한 많은 관심이 있어왔습니다. 특히 1950-70년대의 큰 부흥은 주로 성령의 은사와 관련이 있으며, 1980-2010년대는 성령의 열매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6.25전쟁 이후 30여년 한국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날 때,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고 회개케 하시는 역사와 함께 성령의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감당케 하셔서 교회가 부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오늘까지의 30년간은 다소 교회가 침체한듯 보이기도 하나 실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열매를 결실케 하시려고 기다리시는 과정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한국교회의 성숙의 정도는 어디까지 왔는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면을 감안할 때, 오늘의 우리 모두를 향한 성령의 책망과 탄식에 귀를 기울여야 마땅할 것입니다.
먼저 성령께서는 오셔서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6장8절 이하에서 보혜사 성령은 세상에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가 뭔지, 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또 바른 심판의 기준은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혼동하고 있기에 성령께서는 오셔서 진리를 밝히 드러내심으로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로,“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라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이 죄라고 성령께서 가르치고 책망할 것이라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구세주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을 불신앙함이 모든 죄의 근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교만하게도 인간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불신앙으로 나오니, 그의 모든 죄가 해결되지 않은채 그대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라고 하면 단지 도덕적인 죄를 생각하고 양심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성령께서 오셔서는 죄의 근본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것이 죄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떠난데서 시작된 것이며 바로 이 종교적인 죄가 인간의 죽음을 비롯한 모든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문제를 야기한 문제의 핵심인 것입니다. 바로 성령께서 이를 지적하고 가르치고 책망하여 주심으로써 우리는 비로서 죄를 죄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요16:10)라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참된 의는 곧‘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참된 의임을 깨닫게 하여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증거는 유대 당국자들과 로마인들이 예수님을 사악한 이단자와 위험인물로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활케 하시고 제자들을 떠나 승천케 하시어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게하심 그 자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참된 의이며 그가 하나님의 의로운 분임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유대 당국은 예수님을 처형하는 것이‘의로운’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요11:50)라면서 이것이 민족을 보존해 주고 더불어 성전예배와 신성한 율법을 보존해 주기 때문에 유익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줄곧 이를‘의로운 행위’이며 심지어‘하나님을 섬기는 일“(요16:2)이라 하였지만 그들은 줄곧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들의 마음 속의 교만,탐욕,시기심,무지,불법,살인,외식은 감춘채 입으로는 자신들의 의를 외쳤지만 성령께서 오셔서 저들을 책망하시어 저들의 의로운체 하는 모든 인간의 가면을 벗기시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영원한 참된 의를 드러내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의 부활과 하나님 아버지께로의 올리우심으로 그 의가 온 천하에 드러난 것이며,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 우리 죄가 용서받고 의인으로 인정되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이신칭의라고 합니다만, 이같이 성령께서는 이를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이 참된 의이며 그를 통해서 의를 덧입게 됨을 깨닫게 하시고 확신 시키는 일을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셋째로,“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요16:11)고 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서‘세상 임금’이란 세상에서 죄와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말하며,‘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마귀를 이기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죄받아 십자가형의 심판을 받아 처형되어 죽으셨으나 도리어 죽음에서 부활하셨으니, 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의미하는 것은, 죄와 죽음의 권세를 잡은 이제까지의 마귀의 모든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심을 의미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한 마귀와 그의 추종 세력들을 역으로 정죄하여 심판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정죄가 뒤집어진 것이며 심판이 뒤집어진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요12:31에서“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미 사탄 마귀에 대한 심판은 종결되었음을 성령께서 오셔서 사람들에게 이를 확신시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 심판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시는 세상 종말 때 완전히 집행되고 실현될 것입니다.
이 세가지는 신약의 복음 전파의 중요한 3대 내용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심판을 면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의 처음 설교 내용도 이것이었습니다. 그 설교를 듣는 중에 사람들의 마음이 성령의 책망으로 찔림을 받고“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2:37)하며 회개하였던 것입니다. 성령은 오늘날과 같은 상대주의 다원주의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죄와 의와 심판’의 절대성을 드러내시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죄로 여기며, 무엇이 의의 기준이 될 것인지 그리고 심판이 어디에서 올바르게 내려지는지에 대하여 인간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성령께서는 인간의 내면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을 밝히 드러내시며 세상의 저들로 하여금‘죄’의 참된 특성과‘의’의 참된 의미와‘ 심판’의 참된 위치를 깨닫도록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다음은 성령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탄식하시면서까지 중보의 기도를 하신다는 놀라운 말씀입니다.“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에서 특별히 성령의 탄식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로마서 본문 바로 앞의 몇 절에 나타나듯이 피조물의 탄식과 그리스도인들의 탄식과 성령의 탄식 이렇게 삼중적인 탄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 탄식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눔물 짓고 한숨 짓는 그러한 탄식이 아닙니다.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는 만물이 회복되는 날을 탄식하며 기다리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 역시 믿음으로 영적인 구원은 이미 받고 있으나 몸의 구속은 아직 미래에 속하여 있기에, 속으로 탄식하며 이런 미래에 대한 소망을 기리며 현재의 고난을 참고 영광의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우리의 구속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탄식하시면서 기도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사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여전히 우리는 이 땅에서 몸을 지니고 있는한은 연약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기도에서도 드러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이사야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외치기를“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8-9)고 하였고, 시편 기자도“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시94:11)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앞 일을 내다 볼 수 없기에 우리에게 해가 될 것도 알지 못한채 구하기도 하며, 우리에게 분명코 유익이 될 것도 모르고 당장 힘들다고 없애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올바르게 기도할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며, 기도의 제목도 주시지만, 대신 중보의 기도를 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요14:16-17상),“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2-13)고 하셨습니다.
오늘 성령강림절을 맞아 우리가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도 보혜사 성령께서는 우리의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고 또한 탄식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위해 기도하여 주시므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믿으시고 매일 매일 성령과 함께 동행하시므로 신앙생활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