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노화 과정에 작용하는 텔로미어
1982년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엘리자베스 블랙번 박사는 염색체 끝에 붙어있는 말단소체(텔로미어)가 유전자 정보를 가지지 않으면서 단지 DNA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이 연구 결과에 흥미를 느낀 미국의 생물학자 잭 쇼스택은 공동 연구를 제의하여 두 사람은 텔로미어의 작동 원리를 알아냅니다.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아지며 다 닮아 없어지면 더 이상 세포는 분열하지 않고 죽는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입니다. 이 발견으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노화 과정을 분자 과학에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인간 세포는 50~70회 분열 후 더 이상 분열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헤이플릭 한계라고 합니다. 1961년 레너드 헤이플릭이라는 해부학자는 보통의 세포는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일정 정도 분열하면 더 이상 분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되는지는 알 수가 없었는데 블랙번과 쇼스택의 연구 결과 이것이 텔로미어의 작용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세포 가운데 분열을 하여도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생식세포와 줄기세포가 그 예입니다.
재미있는 가정을 해 볼까요. 만약 생식세포의 텔로미어가 짧아진다면 즉 노화가 진행된다면 30세의 어머니가 낳은 아이는 날 때부터 30세가 되어 있어야 하고, 40세에 낳은 아이는 40세로 태어나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생식세포의 텔로미어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이 텔로미어를 복구시킨 것일까요? 2년 뒤 1984년 블랙번의 제자인 캐럴 그라이더가 텔로미어를 복구하는 효소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효소를 텔로머레이스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텔로미어를 복원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연구의 공로가 인정되어 2009년 블랙번과 쇼스택, 그라이더는 공동으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합니다.
스트레스는 텔로미어를 짧게 만든다.
이 세 사람의 연구로 인간 노화에 원인에 대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간의 노화는 염색체 말단의 텔로미어의 길이에 달렸고 이 텔로미어의 길이를 복원하는 효소를 발견하였으니 이제 ‘진시황의 불로초’를 발견한 것인가요. 그러나 결론은 그렇지 간단하지 않습니다.
(궁금한 학생들은 ‘늙지 않는 비밀 /엘리자베스 블랙번, 엘리사 에펠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을 읽어 보세요.)
이후 블랙번은 유전자와 텔로미어 그리고 텔로미어를 복원하여 주는 텔로머레이스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고 그 외 많은 학자들도 텔로미어와 텔로머레이즈의 비밀을 풀어 인간의 노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텔로머레이즈는 암 치료를 위하여 매우 중요한 효소이기 때문에 많은 제약회사들이 막대한 돈을 들여 연구를 했습니다. 암세포의 특징이 무한 증식인데 이 무한 증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텔로머레이즈이기 때문에 만약 암세포에서 텔로모레이즈를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 낸다면 암 치료는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텔로머레이즈는 일반 세포에서는 텔로미어의 길이를 늘여 주어 노화를 늦출 수 있지만 암세포에게는 강력한 후원군이 되기 때문에 자칫 일반 세포를 암세포로 전화시킬 수 있어 ‘양날의 검’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텔로머레이즈와 멜로미어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노화 방지와 암 치료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습니다. 텔로미어 발견 이후 이것이 블랙번의 연구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0년 경 블랙번에게 엘리사 에펠이라는 심리학자가 찾아옵니다. 당시 에펠은 중증 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들의 스트레스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만성적인 극심한 스트레스가 우리의 정신과 신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를 연구하게 됩니다. 그 결과 스트레스가 텔로미어의 길이를 짧게 하는 주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냅니다.
운동은 가장 효과적인 스트레스 해소 방식
스트레스는 인간이 위급한 상황 즉 싸울 것인가 도망할 것인가(fight or flight)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처했을 때 일어나는 신체 반응입니다. 혈관이 수축이 되고 심장 박동수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몸이 외부의 위협에 즉각 반응할 수 있도록 신체적인 조건을 갖추는 것이 스트레스 상황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를 해소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우리 몸에 많은 무리가 오게 됩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물질 특히 코르티솔로 인하여 우리 몸의 유전자가 손상되게 되고 결국 이 유전자 손상이 계속 쌓여 노화를 촉진하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운동입니다. 스트레스와 운동은 역의 상관관계를 가집니다. 운동을 하여 땀을 흘리면 스트레스로 인하여 생긴 여러 가지 호르몬을 배출하여 우리 몸은 더 이상 스트레스 상황으로 인식하지 않게 됩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우리 시대 가장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합니다. 이제 운동은 시간이 나면 틈틈이 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먼저 하고 다른 일을 해야 할 만큼 중요한 신체활동이 되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먼 후일 어른이 되어서 노화를 지연시키고 치매 등 뇌질환을 예방하기 위하여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우리 몸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하여 운동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스트레스는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운동은 면역력을 강화시킨다.
앞으로도 올해와 같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인간을 공격하는 일이 훨씬 많아질 것입니다. 이에 맞서서 일차적으로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건강한 면역 체계입니다. 바이러스에 대항해서 싸울 체력이 되어야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가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므로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운동은 필수적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무슨 스트레스냐 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과도한 학업 경쟁으로 학생들이 느끼는 스트레스 지수는 OECD 국가 중 으뜸입니다. 게다가 학업을 위하여 운동까지 제한하고 있으니 아이들은 시한폭탄을 안고 생활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는 운동을 먼저하고 공부나 일상생활을 시작한다고 인식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