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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실할배 조성학(趙性學, 1891-1965)님 가계의 족보 번역 (조병규, 조완규, 조선규, 조식규 가계)
1. 조시보(趙始輔, 1770-1809, 40세亡)
묘소는 하림 집전리에 있다. 부인은 해주정씨이고, 남편 묘에 합장했다. 장인은 정덕윤(鄭德潤)이다.
2. 조준상(趙準祥, 1816-1904, 89세 亡)
조준상은 현감공파의 시조 조수억(趙壽億, 어계할아버지의 손자)의 증손자로서 국왕의 경호실[금군禁軍] 출신인 조산(趙山, 1558년생)의 6대손(孫)인 조윤련(趙允鍊)의 넷째 아들이다. 자(字)는 경집(景集)이고, 호는 돈재(遯齋)이다.
조준상은 성효궁검(性孝躬儉) 성품이 효성스럽고, 몸소 검소하였으며, 학정심담(學正心淡) 바른 것을 배워서 심성이 담박했고, 물아무간(物我無間)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았으며, 구모경안(九耄經案) 아흔이 다 된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늘 책상 앞에 앉아서 학문에 힘썼다. * 躬 몸 궁. 몸소, 스스로. 淡 묽을 담. 묽다. 싱겁다. 담박하다. 耄 늙은이 모.
1904년 9월 20일에 사망했고, 89세의 수(壽)를 누렸다. 산소는 하림 집전리 끝 부분의 등성이에 묘좌(卯坐) 방향으로 앉혀져 있다.
부인은 진양강씨이고, 장인은 강우림(姜宇琳)이다. 부인은 1877년 6월 20일에 사망했다. 산소는 진주 이반성면 정수 매화동에 해좌(亥坐) 방향으로 앉혀져 있다.
(족보 한문원문) 縣監公(현감공)諱(휘)壽億(수억)曾孫(증손)禁軍公(금군공)諱(휘)山(산)六代孫(육대손)允鍊(윤련)第四子(제사자)字(자)景集(경집)號(호)遯齋(돈재) 純祖(순조)丙子(병자)生(생) 性孝躬儉(성효궁검)學正心淡(학정심담)物我無間(물아무간)九耄經案(구모경안) 高宗(고종)甲辰(갑진)九月十二日(구월십이일)卒(졸)享年(향년)八十九(팔십구) ○墓(묘)執田洞(집전동)末(말)嶝(등)卯坐(묘좌) ○配(배)晉陽姜氏(진양강씨)父(부)宇琳(우림)丁丑(정축)六月(육월)二十日(이십일)卒(졸) ○墓(묘)晉州(진주)二斑城(이반성)丁樹(정수)梅花洞(매화동)亥坐(해좌)
*(도움말) 1. 조준상 할아버지는 남계공할아버지의 막내 동생 집안인 현감공파에서 감찰공파 조시보(趙始輔)의 양자로 들어왔다. 조준상 할아버지는 두뇌가 명석하고, 문장과 인물됨이 좋아서 감찰공파가 양자로 영입하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마산에 사시는 조희제(1940년생, 청동할배 조용수의 둘째 아들) 아제가 잘 아신다. 보통은 같은 파 내의 가까운 혈족을 양자로 데린다. 하지만 이 경우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였다. 그 당시 감찰공파가 함안조가 내에서 세력은 좋았지만, 글이 좋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 점을 보강하기 위해 취한 특별한 조치였다. 조준상님이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좋은 사람임을 알고, 그 분을 감찰공파로 영입하기 위해 돌아가신지 40년쯤 지난 조시보(趙始輔)의 양자로 들여왔다. 과거 족보를 다 살펴보면 어느 시기에 조시보의 양자로 들였는지 알 수 있겠지만, 옛날 족보를 다 가지고 있지 않아서 나로서는 확인할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조준상 할아버지 대(代)에 양자로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족보에 그렇게 기록돼 있고, 조준상 할아버지 산소가 하림 집전리에 있기 때문이다.
조직래(1947년생)님은 그의 부친 남촌아제 조선제(趙善濟)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조시보 할아버지의 친형이 조시현(趙始顯)이고, 그의 아들이 조치상(趙治祥, 1788-1855, 67세亡)이다. 조치상 할아버지가 조준상(趙準祥, 1816-1904, 향년 89세)님이 대단한 문재(文才)를 가진 사람임을 알고서 그를 감찰공파의 양자로 영입했다고 한다.”
즉 조치상 할아버지가 28살 적은 조준상님을 그의 사촌 동생으로 맞아들였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조준상 할아버지가 30세가 넘은 이후에 양자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조치상 할아버지가 감찰공파 집안의 이런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60세 이후라야 가능했을 것이고, 조준상님의 한문작문능력이 드러나는 것은 그의 나이 30이후라야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치상과 그의 아들 조영식(趙永植)도 그 당시 함안지역의 최고 학식을 갖춘 분 중에 한 분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족보에 이 두 분의 언행록(言行錄)이 있기 때문이다. 족보에 언행록이 있다는 것은 보통 인물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 조산(趙山) 1972년에 간행된 족보 <함안조씨 세보世普> 상권 21쪽에 조산(趙山)의 족보 내용이 소상하게 언급돼 있다. 그 내용을 보면 현감공파 조산(趙山)은 1558년생이다. 그는 1585년 무과시험에 급제했다. 국왕 경호실인 금군(禁軍)에 근무하다가 정유재란 때 적 수백 명을 무찌르고 순절하였다. 그는 정유재란 때 왕을 호위하는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려주는 선무원종(宣武元從) 2등 훈장을 받았고, 이 사실이 조정의 서훈대장에 기록돼 있다. 선무원종 2등 훈장은 왕족이 아닌 자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의 훈장이다. 이 훈장을 받으면, 그 후손들은 공역, 병력, 조세 등을 면제 받을 뿐만 아니라 과거시험을 치루지 않고서도 벼슬자리에 나아갈 수 있었다.
3. 금군(禁軍) : 위의 족보기록을 보면, 조준상님의 7대조가 금군출신이다. 금군은 조선시대에 설치됐던 국왕의 친위군(親衛軍)으로서 오늘날 대통령 경호실에 해당한다. 조선시대 금군으로는 1407년(태종7)에 오위(五衛)와는 별도로 무예가 특이한 자 190인으로 편성했다. 왕과 가장 가까이에서 경호를 맡았으므로 선발에 있어서도 탁월한 무술 실력은 물론, 왕의 신임이 중요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공이 있는 조상 덕분에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 벼슬에 오른 양반자손 중에서 무(武)를 업으로 하는 자가 이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왕의 경호원으로서 가장 좋은 대우를 받았다.
3. 조인식(趙麟植, 1850-1931, 향년 82세)
묘소는 집전리 부친의 묘소 좌측 고개등선에 자(子) 방향으로 앉혀져 있다. 유고집(遺稿集)이 있다. 족보에는 이 할아버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해 놓았다. 早擅詞壇(조천사단, 이른 나이에 시인 문사들이 시문을 짓고, 우열을 겨루는 대회에 나아가 그 대회를 휩쓸어버렸지만) 終違世用(종위세용, 끝내 세상의 쓰임과는 가까이하지 않았다.) 反喫經典(반끽경전, 도리어 경전을 통달하고) 處之淡如(처지담여, 그 어떤 동요도 없이 차분하고 침착한 경지에 머물러 있었다.)
부인은 안악이씨(安岳李氏, 1852-1921, 70세亡)이고, 장인은 이상필(李祥弼)이다. 산소는 하림 앞산 외야골 곤좌(坤坐) 방향으로 앉혀져 있다.
(족보 한문원문) 위의 사진 참조
* 擅(천) 천단 천. 제멋대로 하는 일. 제멋대로 함. 전횡. 詞(사) 1) 고할 사. 알림. 말함. 2) 호소할 사. 소송함. 고소함. 3) 계승할 사. 이음. 상속함. 4) 시문(詩文) 사. 문체이름 사. 詞壇(사단)=詞場(사장)=시단(詩壇) 시인 문사들이 시문을 짓고, 우열을 겨루는 곳. 違(위) 1) 어길 위. 법령, 약속 등을 위반함. 2) 어그러질 위. 맞지 아니함. 3) 다를 위. 틀림. 4) 떨어질 위. 서로 거리를 둠. 5) 피할 위. 회피함. 멀리함. 가까이하지 아니함. 世用(세용) 세상의 쓰임. 여기서는 벼슬을 의미한다. 喫(끽) 먹을 끽. 마실 끽. 淡(담) 1) 싱거울 담. 맛이 심심함. 맛이 없음. 빛이 옅음. 2) 담박할 담. 집착이 없음. 욕심이 없음. 淡如(담여)=담담(淡淡) 동요 없이 차분하고 침착하다.
(인물평 해설) 이 족보의 기록을 보면, 조인식 할아버지는 문재(文才), 즉 한문작문실력이 뛰어나, 이른 나이부터 당시 문단을 마음대로 주물렀지만, 끝까지 벼슬자리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경전을 깊이 연구하여, 늘 마음의 동요 없이 차분하고 침착한 경지에 머물러 있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는 한문 작문실력을 평가하여 인재를 뽑았다. 남명 조식(1501-1572년)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영남학파에서는 학문연구에는 열중하지만 벼슬자리에는 나아가지 않고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며, 제자를 기르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필자는 낙도(樂道)는 좋지만 가정을 가진 사람이 안빈(安貧)낙도를 고집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4. 조성학(趙性學, 압실할배, 1891-1965, 향년 75세)
자(字)는 인가(寅可)이고, 호는 지강(芝岡)이다. 묘소는 집전리 골짜기 증조부 묘소 아래 임좌(壬坐) 방향으로 앉혀져 있다.
1) 부인은 인천이씨(1891-1913, 23세 출산 중 亡)이다. 장인은 이규(李珪)이고, 처조부는 이상두(李尙斗)이다. 산소는 증조부 묘 아래에 임좌(壬坐) 방향으로 앉혀져 있다.
2) 후부인은 영산신씨(靈山辛氏, 1898-1947, 49세 亡)이고, 장인은 신영률(辛泳律)이다. 산소는 하림 앞산 외야골 건좌(乾坐) 방향으로 앉혀져 있다.
3) 세 번째 부인은 안동권씨이고, 1911년생이며, 장인은 권상현(權相顯)이다.
(족보에 기록돼 있지 않은 압실할배의 행적)
1. 압실할배 조성학님은 유년시절(8세, 1898년)에 진주 논개백일장에 출전하여 장원을 하였다고 한다.
2. 진양군 지수면 신산마을(조성학의 둘째누님시댁 夫:허만선)에 사는 어느 부호가 어릴 때부터 조성학의 인물됨과 재능의 비범함을 알고, 부친 조인식에게 자제를 일본으로 유학(학비, 체재비 등 일체경비를 부담하는 조건을 제시)을 권유하였으나, 부친이 그 당시 현대공부에 대한 지식이 없을 뿐더러 대대로 한학자의 길로 정진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 생각해서 사양하여,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만약 그것이 성사되었더라면 육당 최남선에 버금가는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지인 및 후손들이 큰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3. 압실할배는 족보에 인물평이 없다. 왜냐하면 압실할배를 평할 수 있는 한문작문 실력을 갖춘 사람이 그 이후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문으로 된 족보책 발간은 이것으로 끝이 아닌가 한다.
4. 압실할배는 도무실할배 조종규(1878-1959, 1955년생 조태래의 증조부)님과 더불어 당시 감찰공파를 대표하는 학자였다. 그래서 1954년에 발간된 감찰공파의 갑오(甲午)족보에 발문을 썼다.(맨 밑의 사진 참조) 그 외 족보의 언행록에 압실할배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맨 밑의 사진 참조)
5. 압실할배 글씨
위의 "孝閭(효려)" 현판 글씨는 원북리에서 진주 쪽으로 1km 쯤 가다가 태실 쪽으로 빠지는 길로 접어들어서 밑으로 약 200m 쯤 가다가 옛 철길 건너기 직전 왼편에 있는 안악이씨(安岳李氏) 모씨의 효행 정려비각에 붙어 있는 것이다. 이 글씨는 압실할배 조성학님의 글씨이다. 압실할배의 외가가 안악이씨이다. 위의 비석의 머리 제목 글 내용은 "孝子安岳李公諱(효자안악이공휘)"이다.
6. 압실할배 슬하에 아래와 같이 4남 2녀가 있다.
5. 1) 조병규(趙炳奎, 검암아제. 1926 – 2016, 91세 亡)
字(자) : 尙文(상문)
한국전력 전신인 남선전기주식회사(마산) 근무
부인 : 성산이씨 필수(1927년생)
후부인 : 경주이씨 점순(1931-2017)
아들 : 조용운(1970년생)
며느리 : 진양정씨인숙(1970년생)
손자 : 1. 조우연(2000년생)
2. 조은호(2006년생)
1녀 : 조경순(1950년생)
사위 : 김응성(1943 – 2014, 71세 亡) 경주인
외손자 : 김승일(1976년생)
외손녀 : 김승수(1974년생)
2녀 : 조영희(1958년생)
사위 : 이달성(1955년생) 경주인
외손자 : 이관제(1983년생)
3녀 : 조정순(1963년생)
사위 : 이상익(1959년생) 경주인
외손자 : 이정철(1994년생)
외손녀 : 이수미(1990년생)
4녀 : 조은영(1966년생)
사위 : 김기태(1960년생) 김해인 외손녀 : 황심미(1994년생)
김누리(2002년생)
2) 조완규(趙完奎, 1933-2018, 86세 亡)
호 : 黃水(황수) 교육행정학박사, 중등교장
부인 : 경주최씨 정연(1946년생) 장인 : 최동호
아들 : 조용원(1977년생)
며느리 : 전주이씨 은혜(1976년생)
생명과학박사/의무석사, 백병원의사
손자 : 조성언(2015년생)
1녀 : 조숙영(1966년생)
사위 : 류제성(1966년생) 문화인
외손자 : 류경태(1995년생)
외손녀 : 류지인(1993년생)
2녀 : 조민지(1976년생)
사위 : 이은곤(1973년생) 전주인
외손자 : 이현두(2013년생)
3) 조선규(趙宣奎, 1937 –2020, 84세 亡)
호 : 林泉(임천) 중등장학관, 중등교장, 불가불소(不可不笑) 등 한문학습에 관한 저서가 있다.
부인 : 창녕조씨 해숙(1953년생) 장인 : 조춘환
1. 장남 : 조용군(1971년생)
며느리 : 전주이씨 은경(1974년생) 손자 : 조영태(2003년생)
손녀 : 조규빈(2009년생)
2. 차남 : 조용진(1976년생) 대한항공 기장
며느리 : 전주이씨 진희(1976년생)
손녀 : 조민경(2005년생) sbs tv 강호동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스타킹 전국암기왕대회에 출전하여 전국암기왕으로 선발되었다.
3. 녀 : 조용미(1973년생) 중등학교 영어교사
사위 : 이지연(1971년생) 전주인
외손녀 : 이정민(2002년생)
4) 조식규(趙寔奎, 1954년생)
호 : 鄕林(향림)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관리부 근무
부인 : 인천이씨 갑순(1957년생) 장인 : 이찬
1. 아들 : 조량근(1984년생)
며느리 : 창녕조씨 안나(1990년생)
2. 딸 : 조경령(1987년생)
5) 조자양(趙子讓, 1923 – 2006, 84세 亡)
남편 : 노철수(1922 - 1998) 교하인.
시부 : 노현범
장남 : 노개호(1946년생)
며느리 : 김해김씨 복자(1950년생)
차남 : 노일호(1949년생)
며느리 : 밀양박씨 순호(1953년생)
1녀 : 노월선(1950년생)
사위 : 최도근(1939년생) 경주인
2녀 : 노숙희(1953년생)
사위 : 유실규(1951년생) 거창인
6) 조복남(趙復男, 1930 –1999, 70세 亡)
남편 : 구원대(생,졸 연대미상) 능주인
시부 : 구만회. 시증조부 : 연학 선전관
(도움말) 선전관은 왕의 가마 앞에서 훈도(訓導)하는 임무를 맡은 무관이다.
* 이 글은 다음카페 <함안조가 감찰공파 하림유사>에 올려져 있는 글입니다. 주변의 관계자들에게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약 한 달 전 조선규(趙宣奎)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가계의 족보를 번역해 올렸습니다. 이 뒤 쪽에 사진 4장이 첨부돼 있습니다. 관정 조성래(1959년 하림태생) 올림
첫댓글 이 글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족보의 해당 내용의 사진이 아직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족보에 서술돼 있는 압실할배에 관한 내용이 보완될 예정입니다. 압실할배 후손들은 다 다음카페 <함안조가 감찰공파 하림유사> 카페에 가입해주시기 바랍니다. 댓글 등 글도 좀 올려주시고예.
가계도 한글 번역본을 접하니
부럽습니다 ~~~!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관정의 압실할아버지 가계에 대한 연구노력은 대단합니다.거의 완벽에 가깝고 아마 10일이상 자료조사에 투자했을 겁니다.만약 준상할아버지께서 우리쪽으로 입적하지 않았다면 하림에 압실할아버지 가문이 없을거고 하림이 무게가 많이 약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압실할아버지는 저의조부趙鏞澤(1880.11.7 ~1960.2.26. 字 泰栗 號 春坡)할아버지보다 11살이 적지만 촌수는 11촌 아제입니다.두집안은 윗대부터 형제간으로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압실할아버지는 저의조부와 서로 말씀을 높였습니다.압실할아버지께서 태율집에계시요 라고하면 예아제어서오세요 라고 말씀하셨어요.밑으로 자녀들도 굉장하게 친했어요 ㅡ병규아제와 숙제 선제 완규아제와 상제 선규아제와 해제ㅡ나이도 비슷하고 서로아꼈어요. 저의부친 남촌께서는 검암아제의 코메디실력이 배삼룡보다 훨씬 우수하였답니다.아버지는 노래와우스개를 잘하시니까 두분이 장난을 시작하면 날새는 줄도 모르고 동네여자들은 모두 오줌을 쌌답니다~~~~~~~~
저의조부께서 돌아가셨을때 압실할아버지는 대성통곡을 하시고 輓章을 쓰셨는데 아버지유고집인 南村抄稿 제1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나이70중반에 두서없는글이지만 친족들의 양해바랍니다.
아버지께서는 南村抄稿 1편과 2편 ㅡ두권을 남겼셨는데 기회가되면 우리카페에 연관되는 부분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