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언삭궁(多言數窮)
많을 다(多), 말씀 언(言), ‘다언’이라 함은 ‘말이 많다’는 뜻이고, 자주 삭(數), 궁할 궁(窮), ‘삭궁’이라 함은 ‘빈번하게 어려워진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다언삭궁’이라 함은 “말을 많이 하면 자주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數’자라는 한자의 발음에 유의 할 필요가 있다. ‘ 헤아린다, 센다’ 할 때에는 ‘수’로 읽는다. 수식(數式)이라든지 수차(數次)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빈도수라든지 자주’라는 뜻을 나타낼 때에는 이를 ‘삭’으로 발음해야한다. ‘매우 잦은 것’을 빈삭(頻數)이라 하고, ‘자주 여러번’을 삭삭(數數)이라고 읽는 것과 같다.
다언삭궁이라는 말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지도자가 시시콜콜 너무 말이 많으면 결국 궁지에 몰릴 수 밖에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상대방을 설득할 때에도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설득되는 것은 아니다. 말을 적게 하고 상대방에게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는 것이 설득하는데 보다 효과적일 수가 있다. 희랍의 철학자 소포클레스가 말했다. “짧은 말이 때로는 많은 지혜를 내포한다 (A short saying often contains much wisdom)”
요즘 정치인들은 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얼마전 영부인이 캄보디아 프놈펜 심장병 아동을 방문했을 당시, 사진촬영을 위해 조명장치를 사용했는가, 아닌가에 관하여 티격태격하고 있다. 지금이 그럴 때인가? 민생경제가 심각하고, 또 이태원에서 150명이 넘는 꽃다운 젊은이들이 어이없는 참사를 당한 상황에서, 그런 사소한 것 가지고 말씨름이나 하는 모습들을 보느라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자는 사람이 말을 많이 할수록 꼬투리가 잡혀 자주 궁지에 몰릴 수 있기 때문에 중용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다언삭궁 불여수중 (多言數窮 不如守中)이라고 한다. 무릇 백마디의 말보다 한가지의 실천이 더욱 소중하다. 그저 말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에‘조조삼소(曺操三笑)라는 말이 나온다. 조조삼소는 조조가 경솔하게 말하면서 세 번을 비웃는다는 뜻이다.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대패하여 도주하는 처지가 되었다.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가는 패군지장(敗軍之將)이면 잠자코 행군함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입이 가벼운 조조는 산림이 우거지고 험준한 곳에 이르러 “자기라면 이런 곳에 군사를 매복시켜 상대를 섬멸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주유와 제갈량의 지략이 별것이 아니라고 비웃었다. 그때 조자룡이 군사를 이끌고 나타나 공격하여 조조는 겨우 목숨을 구하여 패주했다.
이렇게 달아나던 조조가 호로구에 이르자, 또다시 이러한 요새에 군사를 매복시키지 아니한 주유와 제갈량을 비웃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번에는 장비가 나타나 큰 타격을 받고 도망갔다.
그러다가 화용도에 이르러. 조조는 화용도의 험준한 지형을 가리키면서 “이러한 험준한 곳에 수백명 군사만 매복시켰더라면 능히 적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주유와 제갈량의 무능함을 비웃었다. 조조의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관운장이 나타나 공격하였다. 조조는 관운장에게 사정하여 목숨만을 겨우 유지한 채 패주했다.
이처럼 조조는 교만을 버리지 못하고 상대방을 비하하다가 곤욕을 세 번이나 당한다. 말이 많은 조조는 재주는 승하나 덕은 박약한 인물로 경솔하게 말을 하고 비웃다가 망신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입을 닫고 가만히 있었으면 될 것을 공연히 말을 함으로써 망신을 당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래서 주자(朱子)는 말이 많으면 반드시 실수하게 마련이다 (다언즉필실:多言則必失 ) 라고 말했다.
말은 필요한 말만 하여야한다.
서양에서도 “필요이상으로 말하지 말아라”(Naver say more than is necessary)라고 강조하고 있다.
현명한 우리 선조들은 말조심을 속담에 담고 있다.
⌜말은 적어야 하고, 돈은 많아야한다⌟
⌜말은 반 만하고, 배는 팔 부만 채우랬다⌟
⌜말을 할 때는 반드시 두 번 생각한 다음에 한다(언필재사:言必再思)⌟
⌜말이 많은 집은 조용할 날이 없다 :말이 많은 집은 싸움이 잦아 조용하게 지낼 수 없는 법이다⌟⌜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쓴 법이다⌟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려있는 무명씨의 시조가 가슴에 와 닿는다.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하는 것이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당나라 때 풍도(馮道)라는 정치인는 평생 입조심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가 지은 설시(舌詩)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안신처처뢰:安身處處牢) 공자께서도“일에는 민첩하고 말에는 신중해야 한다” 라고 말했다. 지도자가 되려면 함부로 말하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 천근의 무게를 가지고 신중하게 말을 해야한다. 충무공이 말씀하신대로 ‘산과 같은 묵직함’이 있어야한다. 이를 정중여산(鄭重如山)이라고 한다.
필요할 때 말을 하되, 바르고 품위 있는 말을 써야 한다. 말을 자주하면 궁지에 몰린다는‘다언삭궁’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2022.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