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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 강좌.
무비스님 - 불교는 쉽다. 6강 - 1 (2009. 06. 17)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는 입정을 하겠습니다.
조계종의 제 1교재, 임제록 시중 13 - 6입니다.
13-6 地獄業(지옥업)
지옥 업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굳이 표현을 하자면 그런 짓거리가 지옥 업이다. 이런 의미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道流(도류)야,
莫取次被諸方老師印破面門(막취차피제방노사인파면문)하야
道我解禪解道(도아해선해도)하라.
辯似懸河(변사현하)하나 皆是造地獄業(개시조지옥업)이니라.
若是眞正學道人(약시진정학도인)은 不求世間過(불구세간과)하고.
切急要求眞正見解(절급요구진정견해)니
若達眞正見解圓明(약달진정견해원명)하면
方始了畢(방시요필)이니라.
道流야, 도를 닦는 여러 벗들이여, 또는 인생의 길을 가는 여러 벗들이여,
莫取次被諸方老師印破面門(막취차피제방노사인파면문)하야 이런 것은 취하지 말라. 뭔가 하면, 諸方老師들에게 면전에서 인가를 받는 印破面門.
면전에서 인가를 받는 것을 입어가지고, 입음을 취해서, 그런 것, 어디서 큰스님한테 갔다가 “불교공부 그 정도 하면 참 훌륭하다.” “그만하면, 그렇게 복을 많이 지었다면 됐다.”뭐 등등, 아는 소리 몇 마디 하면 그 諸方老師들이 어떤 의도에서 인가를 했는지 인정을 했는지 체면상 했는지 주먹이 겁이 나서 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취해가지고, 道我解禪解道(도아해선해도)하라. 道我, 말하기를 나는 解禪解道. 禪도 알고 道도 안다. 선이고 뭐고 나는 다 안다. 왜냐? 아, 어디어디에 큰스님이 나보고 인가를 했으니까, ←이런 짓 하지 말라. 남이 뭐라고 해주는 것.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겁니다.
또 제대로 알아서 해줬는지, 또 인가를 하는 사람은 온전한지, 그 별 의미가 없지요. 설사 인가를 받고 받지 않고 간에, 辯似懸河(변사현하)하나 능력이 있고 변재가 뛰어나서, 불교를 설명하는 변재가 懸河. 아주 그냥 강물이 폭포수처럼 쏟아 붓는 그런 거침없는 설법을 하더라도,
皆是造地獄業(개시조지옥업)이다. 그것은 모두가 지옥 업을 짓는 것이다.
若是眞正學道人(약시진정학도인)은 만약에 眞正學道人은 진짜 도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不求世間過(불구세간과). 세상의 허물을 구하지 않는다.
切急要求眞正見解(절급요구진정견해)니 그리고 매우 급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眞正見解다. 眞ㆍ正ㆍ見ㆍ解. 참되고 바른 소견을 무엇보다도 아주 급하고 절박하게 구해야 한다.
若達眞正見解圓明(약달진정견해원명)하면, 만약에 眞正見解를 통달한 것이 圓明하다면, 眞正見解를 갖추었는데 그것이 圓明해요. 아주 원만하고 밝다 이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方始了畢(방시요필)이라. 바야흐로 비로소 마쳤다. 공부 다 마쳤다. 일다 마쳤다 이겁니다. 그 사람은 진짜 성공한 인생이다. 그런 말입니다.
13-7 실다운 법은 아무 것도 없다.
問(문), 如何是眞正見解(여하시진정견해)오?
師云(사운), 儞但一切入凡入聖(이단일체입범입성)하며
入染入淨(입염입정)하며 入諸佛國土(입제불국토)하며
入彌勒樓閣(입미륵누각)하며,
入毘盧遮那法界(입비로자나법계)하야
處處皆現國土(처처개현국토)하야 成住壞空(성주괴공)하나니라.
佛出于世(불출우세)하야 轉大法輪(전대법륜)하고
却入涅槃(각입열반)하되. 不見有去來相貌(불견유거래상모)하야
求其生死(구기생사)하나 了不可得(요불가득)이니라.
便入無生法界(변입무생법계)하야
處處游履國土(처처유리국토)하야 入華藏世界(입화장세계)하야,
盡見諸法空相(진견제법공상)하야 皆無實法(개무실법)이니라.
唯有聽法無依道人(유유청법무의도인)이
是諸佛之母(시제불지모)라.
所以佛從無依生(소이불종무의생)이요 若悟無依(약오무의)하면
佛亦無得(불역무득)이니, 若如是見得(약여시견득)하면
是眞正見解(시진정견해)니라.
問, 묻기를 如何是眞正見解(여하시진정견해)오?
어떤 것이 眞正見解 인가? 師云, 사가 말하기를 儞但一切入凡入聖(이단일체입범입성)하며, 그대들이 다만 저~ 선재동자처럼 구도행각을 하면서,
一切에, 온갖 곳에 入凡入聖. 범부의 세계에도 들어가고, 성인의 세계에도 들어가고, 入染入淨(입염입정)이라, 물든 세계, 세속적인 세계에도 들어가고,
깨끗한 어떤 세계에도 들어가, 그리고 入諸佛國土(입제불국토)하며 제불 국토에도 들어가고, 入彌勒樓閣(입미륵누각)하며 미륵 누각에도 들어가, 그리고
入毘盧遮那法界(입비로자나법계)하야 비로자나 법계에도 들어간다.
이것이 화엄경에서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 하면서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납니다. 뱃사공도 만나고 불을 섬기는 외도도 만나고 슬퍼하는 기생도 만나고 별별 사람 다 만나거든요. 그것이 바로 이렇게 표현된 것입니다.
入凡入聖(입범입성)ㆍ入染入淨(입염입정)ㆍ諸佛國土(제불국토)ㆍ彌勒樓閣(미륵누각). 미륵 누각이 최후에 만나는 미륵보살인데, 미륵보살이 계시는 누각에서 미륵보살을 만나는 것.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만나는 선지식이지요.
그래서 결국은 毘盧遮那法界(비로자나법계), 법신부처님의 진리의 세계에까지 들어가서 處處에 皆現國土(처처개현국토)하야, 곳곳에서 다 국토를 나타낸다. 의지처를 나타낸다 이겁니다. 선지식을 만날 때 마다 그 선지식의 가르침이 나의 의지가 되어요. 나에게 공부가 되고, 나에게 위안이 되고, 나의 의지처가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따라서 成住壞空(성주괴공)해. 끌려 가 버리고 굴려가 버려요 그냥... 그 사람이 뭐라고 하면 ‘아 그건가 보다.’ 하고 그냥 끌려가는 겁니다.
임제록에서 그럴듯한 이야기 들으면 ‘아 그것 참 대단한 가르침이다.’라고 해서 거기에 그만 도취해 버리는 것. 이것이 成ㆍ住ㆍ壞ㆍ空이지요. 국토는 성주괴공하고, 우리 사람은 生ㆍ老ㆍ病ㆍ死(생로병사)하고, 사물은 生ㆍ住ㆍ離ㆍ滅(생주이멸). 이렇게 모든 것이 그렇게 생기고 변화하고 그래서 결국은 소멸해가는 그런 과정이듯이 선지식을 만날 때 마다 별별 법문, 별별 세계를 만나는데 그 만날 때 마다 거기에 도취하고, 거기에 끌려 다니고 그러면 결국은 세상이 성주괴공하듯이 그렇게 끌려 다니면서 지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주 부정적인 표현입니다.
佛出于世(불출우세)하사,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사, 轉大法輪(전대법륜)하시고 큰 법의 바퀴를 굴리시고, 却入涅槃(각입열반)하여, 도리어 열반에 들었지요. 세상에 나오셔서 법을 49년간 설하다가 열반에 들었어요.
그렇지만 不見有去來相貌(불견유거래상모)라. 去來. 가고 오고하는 어떤 모습이 있음을 도저히 볼 수가 없더라. 뭐 그것이 진불이 됐든, 아니면 육신의 부처가 되었든, 무슨 부처가 되었든 간에 이 순간 여기에서 무엇이 있느냐 말입니다. 우리는 그가 남겨놓은 찌꺼기, 그것을 “조갱미” 라고 그래서
“술 찌꺼기 맛을 본다.” 그래요. 진짜 술은 한 잔도 못 마시고요.
술을 뽑아버린 그 술 찌꺼기 맛을 보는 그런 실정이지요.
진짜 부처님은 求其生死(구기생사)하나 그 생사를 구하나 了不可得(요불가득)이라. 그가 정말 태어났는지 그가 정말 열반에 들었는지 그것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적인 석가모니부처님을 보더라도 사실은 그렇고, 또 석가모니를 석가모니이게 한 그 마음의 세계. 그 분의 마음의 세계를 찾아도 역시 了不可得입니다. 마침내 가히 찾을 수가 없는 도리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그거에요. 그래서
便入無生法界(변입무생법계). 곧 바로 無生法界에 들어가서 處處游履國土(처처유리국토)하야, 곳곳에서 국토에서 노닐어요. 노닐면서 入華藏世界(입화장세계)하야 화장세계에 들어가서 盡見諸法空相(진견제법공상)하야. 온갖 어떤 법회라든지 어떤 중생제도라든지 그리고 화엄경을 설할 때는 화장세계가 되겠고, 법화경을 설할 때는 법화회상이 되겠고, 반야경을 설할 때는 반야회상이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순간 알 수 있는 것은 諸法空相입니다.
諸法空相(제법공상) 皆無實法(개무실법)입니다. 그 무엇도 실다운 법이 없어. 그 무엇도 실다운 법은 없어요. 술 찌꺼기는 찌꺼기 맛이라도 그런 대로 조금은 있어요. 그런데 이것은 그런 맛도 아닙니다. 이것은 전부 가짜거든요. 그야말로 諸法空相이고 皆無實法이라. 다 실다운 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 것을 가지고 너무 우리가 팔려가지고 아주 위대했던 부처님. 훌륭했던 세존 뭐 어쩌고, 그래서 자기정신 다 빼앗기지 말고, 혼 빼앗기지 말고 그래서 껍데기만 남은 사람으로 살지 말고 뭐라고요?
唯有聽法無依道人(유유청법무의도인)이 是諸佛之母(시제불지모)라.
오직, 오직 聽法無依道人. 법문하는 지금 이 순간의 이 소리를 듣고 있는 어디에도 의지할 바 함이 없는 그 도인. 그것이야말로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다. 여러분이 지금 법문 듣고 있는 그 사실. 그 당체는 그야말로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는 당당한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서 이 순간 이렇게 홀로 있는 것이고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다 이겁니다.
지금 우리에게 부처님이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 당사자가 부처를 탄생시키는 제불의 모인데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뭐 있습니까? 지금 부처를 이야기할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 부처의 어머니인데, 부처를 탄생시킨 어머니다 이겁니다. 諸佛之母라.
所以로 佛從無依生(소이불종무의생)이라. 그런 까닭에 부처라고 하는 것은 의지함이 없는 데서부터 생기는 것이다.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고, 그런데 사실은 너무나도 歷歷孤明(역력고명)해요. 뚜렷이 밝아요. 너무나도 확실하고 역력한 이 사실. 若悟無依(약오무의)하면, 만약에 우리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듣는 이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그 어디에도 의지해 않다고 하는 이 사실을 깨달을 것 같으면 佛亦無得(불역무득)이라.
그것을 진불이다. 뭐라고 진인이다. 이렇게 해도 역시 그것도 또한 어디에도 찾을 길이 없고 얻을 것이 없다. 佛亦無得이니, 若如是見得(약여시견득)하면, 만약 내가 이와 같이 이해한다면 是眞正見解(시진정견해)니라.
이것이야말로 眞正見解다.
13-8 찾을수록 멀어진다.
學人不了(학인불료)하야 爲執名句(위집명구)하야
被他凡聖名礙(피타범성명애)일새.
所以障其道眼(소이장기도안)하야 不得分明(부득분명)이니라.
祇如十二分敎(지여십이분교)는 皆是表顯之說(개시표현지설)이라.
學者不會(학자불회)하고
便向表顯名句上生解(변향표현명구상생해)하나니
皆是依倚(개시의의)라. 落在因果(낙재인과)하야
未免三界生死(미면삼계생사)하나니라.
儞若欲得生死去住脫著自由(이약욕득생사거주탈착자유)인댄
卽今識取聽法底人(즉금식취청법저인)하라.
無形無相(무형무상)하며 無根無本無住處(무근무본무주처)하야
活鱍鱍地(활발발지)라. 應是萬種施設(응시만종시설)하야
用處祗是無處(용처지시무처)일새.
所以覓著轉遠(소이멱착전원)이요 求之轉乖(구지전괴)니
號之爲祕密(호지위비밀)이니라.
學人은 不了(학인불료)하야, 우리 공부하는 사람. 여기서 학인ㆍ학자. 이런 말이 자주 나오는데 전부, 정말 우리의 진정한 공부. 진리를 공부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소리입니다. 옛날에 전강 스님께서는 그 수좌들을 수좌라고 말하지 않고, 학자라고 그랬어요. 저는 처음 그 회상에, 인천 용화사에 처음 그 회상에 갔을 때 우리를 보고 학자라고 그래요. 우리가 생각하기로 학자는 세속에서 문자를 연구하고, 어떤 분야에 하나의 학설을 깊이 연구해서 일가를 이룬 사람을 학자라고, 이렇게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부하는 사람을 학자라. 참선학도. 참선해서 우리 심성을 깨닫고 참 나를 깨닫겠다고 하는 그 사람들을 학자라고 부른다 이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전부가 근거가 있고, 일리가 있는 말씀이더라고요. 그래 여기도 보면 학인. 학자. 이렇게 나옵니다. 이것은 강원 학인을 두고 학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고,
저기 학교 학생들을 두고 학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결코 아니에요.
공부하는 사람. 도에 뜻이 있는 사람들은 사실은 그것을 不了, 알지를 못해가지고서 爲執名句(위집명구)라. 명구를 집착해서, 명구를 집착하기 때문에, 이름과 구절을 집착하기 때문에, 被他凡聖名礙(피타범성명애)라.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그 이름에 그만 걸려있어. 모두가 다 “부처님” 해 놓으면... 우리가 어릴 때, 지금도 역시 그렇습니다. 땅에다가 손가락으로 부처 佛자를 써 놓으면, 일어서면서 발로 지워도 아무 상관이 없는데 발로 못 지웁니다. 손으로 곱게 지우고 일어섭니다. 부처라고 하는 이름에 걸린 겁니다.
부처라고 하는 이름에 걸린 것입니다. 그것은 흙일뿐입니다. 흙.
흙이고 모래일 뿐인데 거기다가 손가락으로 부처 佛자를 딱 지가 써 놓고는
지가 걸린 겁니다. 옴짝달싹 못하고... 그것을 종이에 써도요? 가르치기도 우리 어른 스님들이 가르치기도 그렇게 가르칩니다. 종이에 불경을 썼거나, 부처 佛자라고 하는 이름 하나를 썼어도 그것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
꼭 태워라. 함부로 휴지통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요.
신문지에다 부처 佛자 한자만 써놔도 그 종이는 이미 부처님 옷이 돼버려요. 어느새 불격으로 화해 버렸다고요. 그래서 함부로 버리지를 못하고 그것을 잘 태워야 돼요. 이렇게 우리는 어떻게 보면 그것이 참 순수한 신앙심이지요. 참 고맙고 정말 아주 선량한 그런 순수한 신앙심인데요.
어떻게 보면 또 그것이 크게 걸려있는, 그래서 부처라고 하는 그 이름과 명자에 꼼짝달싹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임제 스님은 끊임없이 그런 어떤 형식적인 성인의 이름에서 벗어나고, 그런 것을 다 깨부수고, 정말 진정으로 소중한 너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서 살라. 무엇이 그대 자신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가 있느냐? 설사 살아있는 석가모니가 옆에 있다손 치더라도 그는 그야. 어떻게 보면 나하고는 관계없는 분이라고요. 당당하게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야지 그가 밥 먹여주는 겁니까? 내 대신 아파주는 겁니까?
내 대신 죽어주는 겁니까?
죽어주지도 못하고 아파주지도 못하고, 내 대신 밥도 못 먹어요.
밥을 먹으면 그분이 배부르지 내가 배부르지 않아요. 그래서 하물며 살아있는 석가모니가 옆에 있다손 치더라도 그러한 것이 별로입니다.
그 종이에, 또는 모래밭에다가 그 글자 한 자 써놓고는 그렇게 우리가 걸린다니까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참 순수하고 선량한 마음이긴 하지만, 정말 인간의 그 주체성을 회복하는데 있어서는 너무나도 크게 장애가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제 스님은 이러한 것을 인간의 정말 살아있는 그 어떤 주체성을 드러내는 無位眞人(무위진인)의 입장에서 사람을 말하자면 보았기 때문에, 그 점이 임제사상의 아주 뛰어난 점이고, 또 어떤 선사도 임제 스님 같이 그렇게 아주 극단적인 표현을 감히 못합니다.
뜻은 비슷하다 하더라도 그렇게 아주 극단적인 표현을 못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점이 임제록이 위대한 점입니다. 그래서 그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이름에 걸림을 입었을세.
所以로 障其道眼(소이장기도안)이니라, 그러므로 도의 눈을 장애했다.
모두가 진리의 길을 볼 수 있는 그런 안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어둡게 했다. 그래서 不得分明(부득분명)이라. 분명함을 얻지 못했다.
祇如十二分敎(지여십이분교)는, 예컨대 다만 저 十二分敎. 불교의 8만 대장경을 내용과 형식으로 분류를 할 때, 12가지로 나눠요. 十二分敎.
그것은 결국 뭔가 하면, 다시 말해서 8만 대장경이라고 하는 것은 다 뭡니까? 皆是表顯之說(개시표현지설)이라, 무엇인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런 말에 불과한 것이다. 그 때 學者不會(학자불회). 학자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便向表顯名句上生解(변향표현명구상생해)여, 生解. 곧 표현한 名句의를 향해 가지고서 알음알이를 내는 것이다. “경전에 뭐라고 해 놨더라.”
“무슨 경에 뭐라고 했더라.” 하면 거기에 그냥 거기에 목을 매고, 그것을 이리 해석하고 저리 해석하고 정말 해석하는 그 주체. 그것은 망각해 버린 채, 그 지엽적인 문자에 그만 매달려가지고 이리 해석하고 저리 해석하고 그럽니다.
옛날에 전통 강원에서 “파리똥 학인”이라는 말이 있어요. 파리똥 학인.
얼마나 표현 명구 상, 生解. 표현한 명구 위에서 알음알이를 낸다. ‘온갖 이해를 만들어 낸다.’ 이 뜻이거든요. “파리똥 학인”이라는 것이 뭔 말인가 하니, 여기 보면 ‘~~하야 또는 ~~일세 ~~이니라 ~~하고.’ ←이런 것을 “토” 라고 그러잖습니까? 옛날에 파리가 많은 세월에 거기에 꼭 토를 달아야 할 그 자리에 파리가 똥을 쌌어요. 그런데 파리똥은 딱 점이라고요.
점은 뭔가 하니 “라”자에요. 라토입니다. 점을 딱 찍으면 “라”토라고요. 그것이 비단 羅(라)자 있잖아요. 비단 羅자를 온자를 쓰지 않고, 넉 사변에 八자하고 점을 딱 찍기도 하고, 거기서 더 생략하면 여덟 八자쓰고 점을 딱 찍기도 하고, 거기서 또 생략해 버리면 점만 딱 찍어 버려요. 그러면 그것이 “라”라고 하는 토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벌써 비단 羅자를 많이, 그러니까 세 번 생략한 것이거든요. 비단 羅자를 세 번 생략했을 때 그렇게 점이 되는 겁니다.
그래 점이 파리똥인데 그걸 가지고 “라”라고 하는 토라고 해서 논강을 하다가 그냥 막 사정없이 싸우는 겁니다. 그 라자는 토가 분명한데 왜 라자가 아니라고 하느냐? 그 라자는 토를 생각하고 글을 해석해야 된다.
아니다 이것은 누가 잘못 토를 달았다. 잘못 토를 단 것이지 라자가 아니다하고 대판 싸웁니다. 그래서 그 전통이, 그 이야기가 강원에는 꾸준히 내려옵니다. 책을 가지고 한참 싸우고 밀고 당기고 싸우다 보니까 파리똥이 떨어져 어디 가 버렸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것은 우리 전통 강원에서나 있는 이야기인데, 이것을 오늘 제가 다~......
그래서 그런 문자에 너무 집착한 사람을 “파리똥 학인”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표현 명구 상을 향해서 알음알이를 이해를 내나니,
皆是依倚(개시의의)라. 이것은 모두가 의지하고 의지하는 것이다.
落在因果(낙재인과)하야, 인과에 떨어져가지고서 未免三界生死(미면삼계생사)이니라. 삼계에 생사하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이다. 삼계에서 죽고 살고, 죽고 살고 끊임없이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고 하는 것을 면치 못한다.
落在因果. 우리 저기 前百丈(전백장)ㆍ後百丈(후백장). 百丈野狐(백장야호)라고 해가지고 소위 不落因果(불락인과)ㆍ不昧因果(불매인과). 많이 들어보셨지요? 학인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파리똥 학인이 있는가 하면, 잘 들으세요. “대승학인은 불락인과” 라고 이런 말도 있습니다. 대승학인은 불락인과입니다.
화엄경이나 법화경을 공부하는, 대승경전을 공부하는 그 학인은 인과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아주 당당하게 큰 소리를 합니다.
파리똥 학인을 이야기 했으니까 불락인과의 대승학인도 소개를 드립니다.
아~, 그 기개가 대단하잖아요. 因果(인과)에 昧(매)하지 않듯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떨어지지 않는다.”는 표현을 함부로 할 수가 없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감히 “대승학인은 불락인과야.” 하고 아주 당당하게 큰 소리 칩니다.
그것이 참 불교의 아주 妙(묘)지요. 쪼그라들기로 말하면 파리똥학인이 되는가 하면, 아주 당당하게 이 우주 법계에 자기를 표현할 때에 “대승학인은 불락인과야.” 인과에도 안 떨어진다.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자기표현을 합니다.
儞若欲得生死去住脫著自由(이약욕득생사거주탈착자유)인댄,
그대들이 만약에 生死ㆍ去住ㆍ脫著. 여기에 자유로움을 얻고자 할진댄, 정말 그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 부처가 됐든, 조사가 됐든 경전이 됐든 무슨 어록이 됐든, 그 어디에도 우리가 걸리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卽今識取聽法底人(즉금식취청법저인)하라.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말하는 소리 듣는 그 사람을 識取하라. 잘 알아라. 분명하게 알아라. 識取.
알 識자. 취할 取자. 자기 것으로 알아 버려라. 識取. 알아 취하라는 뜻은 그런 뜻입니다. 중요하지요. 그 사람은 우리가 이렇게 분명히 말을 하고 말을 듣고 있습니다. 정말 이 우주에 오직 그 사람 하나 꽉 차있을 뿐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은 無形無相(무형무상)이여, 형상이 없어.
無根無本無住處(무근무본무주처) 근본도 없고 住處도 없어. 그래서
活鱍鱍地(활발발지)라, 활발발해. 활발발해요. 아무리 철창에 가두고 옥에 가두고, 발목을 묶고 수갑을 채우고, 그리고는 2중3중 철문을 닫아걸더라도 바로 그 사람, 無形ㆍ無相ㆍ無根本ㆍ無住處한 그 사람은 활발발해. 자유롭다 말입니다. 어디든지 저 온 시방세계를 마음껏 돌아다니고, 어떤 생각도 다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아무리 가둬도 가두는 사람 죽이는 생각도 하고요.
별별 작용과 활동이 있습니다. 그것을 活鱍鱍이라고 그랬습니다.
이것이 고기가 헤엄칠 鱍자거든요. 우리 의식이 구애 없는 대 자유를 표현할 때 선가에서는 活鱍鱍이런 말을 잘 합니다. 그러니까 조금 강하게 표현하면 활빨빨. 이렇게 표현합니다. 활빨빨하다. 아 이것은 멋진 표현이에요.
應是萬種施設(응시만종시설)하야, 萬種施設. 만 가지로 베풀고, 펼치고 하는데 應하나, 그렇지요. 우리가 공부하러 오게 되면 공부하고, 돌아가서 자기 사업을 하게 되면 사업하고, 먹게 되면 먹고, 자게 되면 자고, 하루 가운데 온갖 만 가지 일상을 우리가 소화해 내는데, 다~ 이것은 그 사람은 응해요.
다~ 맞춰서 할 줄 안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用處祗是無處(용처지시무처)라. 그 작용하는 그 곳이 어느 일정한 곳이 없어. 일정한 곳이 없어요.
아들이 오면 아들하고 잘 맞추고, 아내가 오면 아내하고 잘 맞추고, 부모가 오면 부모에게도 잘 맞추고, 친구가 오면 친구에게 잘 맞추고, 공부하는데 오면 아주 다소곳한 학생이고,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척~ 당당한 선생님이고,
應是萬種施設에, 萬種施設에 잘 응하지만 그러나 그 주인공. 찾아보려면 無處. 작용하는 그 곳이 처소가 없어요.
所以로 覓著轉遠(소이멱착전원)이요, 그렇기 때문에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멀어져, 안 찾을 때는 상당히 가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찾으려고 하면 멀어져버려요. 붙들려고 하면 멀리 가버려요. 求之轉乖(구지전괴)니 號之爲祕密(호지위비밀)이니라. 그것을 구하면 구할수록 더욱 더 어기게 되나니,
그것을 불러서 비밀이라고 한다. 분명히 있긴 있으나 찾지 못해요.
틀림없이 이 우주에 지금 이 순간 가득 차 있어요. 각자가... 각자의 것이...
저는 제 것으로서 이 우주에 가득 차 있지만, 또 갑이라고 하는 어떤 거사님의 것은 그 거사님의 것으로 이 우주에 가득 차 있어요. 모든 사람 개개인이 전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가 자기 자신이 이 우주에 가득 차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찾을수록 더욱 멀어지고, 구할수록 더욱 어렵게 된다. 그래서 비밀이라고 밖에 말 할 수가 없다. 참~ 표현이 아주 근사해요.
이것은요. 우리가 견성을 못하고 도를 못 통해서 못 찾는 것이 아닙니다.
삼세제불도 못 찾습니다. 역대조사도 못 찾고요. 석가달마도 이것을 못 찾는 도리입니다. 그들이 찾는다면 우린들 왜 못 찾겠습니까? 그들도 못 찾아요. 왜냐?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요. 실체가 없는 것을 찾았다고 하면 그건 미친놈이지요. 누가 됐든지 간에 실체가 없는 것을 찾았다고 하면 그건 미친놈입니다. 숨겨놓은 통장을 찾았다면 그것은 찾을 수 있겠지요.
이것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다~ 우리가 해치울 수가 있어요.
應是萬種施設(응시만종시설)입니다. 萬種施設에 다 응해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요. 무엇이든지 우리가 풀어내는 것이지요. 참~ 대단한 표현 아닙니까? 이렇게까지 우리들의 주체성을...
그것을 무위진인 이렇게 하는데, 나의 참 주인공을. 자기를 自己(자기). 자기를 이렇게까지 극명하게 드러낸 가르침은 쉽게 만나보지 못합니다. 어느 다른 종교 다른 철학에는 말할 것도 없고, 불교 안 에서도요.
활발발하게 이렇게... 지금 제가 순전히 임제록만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그런대로 잘 순종하면서 듣지만, 제가 여기서 뭘 이상한 말 한 마디 하면 아마 전부 일어나서 나가 버릴 겁니다. 여러분이 그런 능력도 가지고 있어요. 어떻게 뛸지 모르고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것이 또 그 존재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활발발한 존재 아닙니까?
그러나 그것을 손에 잡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없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號之爲祕密(호지위비밀)이라. 아주 참 기가 막힌 비밀이지요. 비밀이라고 밖에 이걸 달리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비밀이라는 말 잘 쓰나 봐요. 뭐 대답하기 싫으면 “아 비밀이야” 그것 참 설명하기 애매한 일들이 많잖아요. 설명하기 애매한 일들은 그냥 비밀이라고 해버리면 간단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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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생물학적으로 '인간 종합신경망'이라고 표현하고 이대로 그냥 살면되는것아닌가? 단 생각좀 바꾸고... 연기법대로 그것을 활용하고(생각하고 되돌아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고 밥먹고), 不昧因果를 위해 어설픈 세속의 온갖인과 기술학문,정보를 인연닫는 대로 배우고 버리고 배우고..돈도 인과대로 들어오고 나가고 할 것이고.
諸法空相(제법공상)이고 皆無實法(개무실법)이니라.ㅡ그 무엇도 실다운 법이 없듯이...用處祗是無處(용처지시무처)일새.所以覓著轉遠(소이멱착전원)이요.ㅡ그 작용하는 일정한 곳이 없기에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멀어져. 대원성보살님, 고맙습니다. 더운 날씨 건강 잘 챙기시구요._()()()_
眞正學道人은 不求世間過라 若達眞正見解圓明하면 方始了畢이라.. 진짜 도를 공부하는 사람은 세상의 허물을 구하지 않느니라 만약에 眞正見解를 통달한 것이 아주 원만하고 밝게 된다면 비로소 공부 다 마쳤음이라.. 대원성 님! 날씨도 몹시 더운데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공부 잘 하고 갑니다.._()()()_
만월보살님. 여기는 아직은 몹시 안 더워요. 그제부터 장마가 되어서 눅눅 합니다.
아~~제주는 벌써 장마전선에 들어섰군요..건강 살펴가며 정진하세요....^^*
諸法空相 皆無實法 그 무엇도 실다운 법이 없다...대원성님 고맙습니다..._()()()_
唯有聽法無依道人이 是諸佛之母라... 법문하는 지금 이 순간의 이 소리를 듣고 있는 어디에도 의지할 바 함이 없는 그 도인. 그것이야말로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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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法空相 皆無實法 ....고맙습니다 _()()()_
若達眞正見解圓明하면方始了畢이라... 만약에 眞,正,見,解,를 통달한 것이 원만하게 밝다면 비로소 공부 다 마쳤다...대원성님, 고맙습니다._()()()_
眞正學道人은 不求世間過 진짜 도를 구하는사람은 세상의 허물을 구하지 않는다... 切急要求眞正見解 참되고 바른 소견을 참으로 급하고 절박하게 구해야 된다...若達眞正見解圓明 方始了畢 참되고 바른소견을 원만하고 밝게 갖추었다면 성공한 삶이다.. 감사합니다.._()()()_
諸法空相 皆無實法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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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
고맙습니다,,,_()()()_
삼배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_()()()_
무엇이 그대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있는가?
정말 진정으로 소중한 너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서 살라!
諸法空相 皆無實法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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卽今識取聽法底人 ... _()_
若是眞正學道人(약시진정학도인)은 不求世間過(불구세간과)하고...진짜 도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허물을 구하지 않는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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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不見有去來相貌 求其生死 了不可得
佛從無依生 若悟無依 佛亦無得 ... _()_
활발발.
고맙습니다_()_
다시한번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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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