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무한한 수명과 빛의 부처님인 아미타불은 ‘영원성’과 ‘현실적 구체성’을 갖춘 대표적인 보신불이다. 서원을 세우고 수행한 결과 부처가 된 분이기 때문이다. 중국 용문석굴 아미타불.
어떤 이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떤 사람은 힘든 일을 무사히 마쳤을 때 자기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친다.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 귀의(歸依)한다’는 뜻으로, 팍팍한 세상살이를 부드럽고 살만한 것으로 바꿔 주는, 유명한 ‘염불’이다. 도시화.산업화 여파로 이 말을 외치는 사람을 주위에서 보기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힘들 때면 자기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사람들이 지금도 적지 않다.
어려울 때 이름만 불러도 용기를 주는 ‘아미타불’이 우리 생활 속에 들어온 지는 대단히 오래됐다. 신라 경덕왕(?~765) 시대를 살았던 월명스님이 지은 ‘제망매가’에도 보인다. “죽고 사는 길 여기 있으매 두렵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도 가는 곳 모르누나. 아으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내, 도 닦아 기다리로다.” 월명스님이 죽은 누이를 위해 이 노래를 불렀더니, 갑자기 바람이 불어 지전(紙錢)이 서쪽으로 사라졌다. 노래에 등장하는 ‘미타찰’이 바로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사는 곳, 서방(西方) 극락정토(極樂淨土)다.
미타찰의 주인 아미타불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의 귀의를 받았다. 〈삼국유사〉 제5권 감통편에 나오는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念佛西昇)’은 이런 사실들을 잘 보여준다.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에 욱면이라는 이름을 가진 계집종이 살았다. 그녀는 많은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염불을 충실히 수행했다. 심지어 뜰 좌우에 긴 말뚝을 세워놓고 두 손바닥을 뚫어 노끈으로 꿰어 말뚝 뒤에 매어 놓고 합장하며 염불했다. 감동한 하늘이 당(堂)에 들어가 염불하라고 했다. 욱면은 당에 들어가서도 일심으로 정진했다. 잠시 후 하늘의 음악 소리가 서쪽으로부터 들려오더니 욱면은 몸이 솟구쳐 집 대들보를 뚫고 올라갔다. 서쪽으로 날아 교외(郊外)에 이르러 해골을 버리고 부처의 몸으로 변했다.” 대단히 감동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욱면은 계집종으로 매우 비천한 존재였지만, 현신성불(現身成佛)했다. 아미타불을 정성껏 부르며 염불했기에 나타난 결과다. 주어진 일이 많고 노비였기에, 교리에 대해서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일념으로 왕생을 원하면 아미타불이 구제해준다는 말을 듣고, 열심히 염불한 결과 살아서 서방 극락정토로 날아갔다. 이처럼 아미타불은 - 다른 모든 부처님들처럼 - 중생들의 지위고하를 결코 따지지 않는다. 스님이던 노비이던 똑같이 대했고, 자신의 이름을 정성껏 부르는 중생을 외면하거나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아미타불이 도대체 어떤 부처님이기에, 무슨 원력(願力)을 세우고 성불했기에, 일념으로 자신을 부르는 사람들을 무조건 구제해줄까.
대승불교의 여러 부처님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처님의 한 분인 아미타불이다. 아미타불 신앙을 토대로 성립된 것이 정토교다. 아미타란 ‘무량수(無量壽)’.‘무량광(無量光)’을 나타내는 산스크리트 ‘아미타유스(amityus)’와 ‘아미타브하(amitbhas)’를 음사(音寫)한 것이다. 아미타불의 본성에 대해 좀더 깊은 이야기를 하자면 ‘삼신불(三身佛)’을 알 필요가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후, 제자들은 부처님 내부에서 여러 부처님을 찾으려는 노력을 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인 ‘법신(法身)’과 석가모니 부처님의 신체인 ‘색신(色身)’을 - 이를 ‘이신설(二身說)’이라 한다 - 만들었다.
교리가 발달함에 따라 ‘영원한 본체신(本體身)으로서의 법신’과 ‘현실적.역사적 실존 인물로서의 색신’의 관계도 변했다.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의 ‘삼신설(三身說)’ 사상으로 발전됐다. 이신설의 법신은 영원성은 있으나 현실적 구체성이 없고, 색신은 현실적 구체성은 있으나 무상한 몸이라 영원성은 갖추지 못했다. ‘영원성’과 ‘현실적 구체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부처님인 보신불이 필요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부처님 가르침은 본체신인 ‘법신불(비로자나불)’로 정립되고, 법신이 중생제도를 위해 사람 모습으로 화현한 분은 ‘응신불(혹은 화신. 역사적 부처님인 석가모니불)’로 불렸으며, 응신으로서의 부처님이 특별한 수행을 해 법신의 영원성마저 성취한 분은 ‘보신불(특별한 수행으로 무량한 수명과 광명을 성취한 아미타불)’로 받아들여졌다.
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불 등이 국내 대표적
극락전에 봉안… 극락회상도 등 후불탱화로
사진설명: 계유명아미타삼존석상. 673년 조성된 아미타부처님으로 국보 제106호다.
아미타불의 출신과 원력을 잘 설명해 놓은 경전이 〈불설무량수경〉(2권. 강승개 譯. 252), 〈불설관무량수경〉(1권. 강량야사 譯. 424~442), 〈불설아미타경〉(1권. 구마라집 譯. 402) 등 정토3부경이다. 부처님이 미륵과 아난존자에게 무량수불과 극락세계에 대해 설명하는 경전이 〈불설무량수경〉인데, 왕사성 영취산에서 설했다. 일찍이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때 어떤 국왕이 설법을 듣고 위없이 높고 바른 불법에 눈떴다. 국왕은 왕위를 버리고 출가, 이름을 법장(法藏)이라 했다. 세자재왕불은 법장 비구에게 210억에 이르는 불국토를 비춰, 그곳에 사는 천인들의 선악을 낱낱이 다 보여주었다. 광경을 본 법장 비구는 “제가 부처를 이루었을 때 그 국토에 지옥 아귀 축생이 있다면 깨달음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등의 48가지 원력을 세웠다.
원을 실현하기 위해 법장 비구는 5겁 동안 수행해 지금으로부터 10겁 전에 성불해 아미타불이 됐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10만억불토(十萬億佛土) 떨어진 곳에 극락(極樂. 산스크리트어로 수카바티 漢譯은 須摩題)이라는 정토를 세워” 가르침을 펼치고 있다. ‘나무아미타불’ 염송하는 사람은 누구나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해 안락함을 누릴 수 있다. 이에 따라 뭇 생명 있는 자들은 모두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통해 극락세계에 왕생, 위없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게 됐다. 아미타불의 48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극락정토’와 ‘서방’이라는 관념이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점인데, 학자들에 따라 다르다.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사후의 천계가 불교적으로 순화돼 불국토로 변하는데 극락정토도 여기서 왔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서쪽에 있는 사막 가운데 존재하는 오아시스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학설도 있다. 이런 저런 주장에도 극락신앙과 아미타신앙이 1~2세기 경 북서인도를 주름잡았던 쿠샨왕조 문화권에서 성립됐다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초기의 아미타불상이 파키스탄 간다라지역이나 아프가니스탄 잘랄라바드 근방에서 출토된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미타신앙은 중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에서 만개됐다. 서방 극락정토는 동아시아에 살던 모든 이들의 이상향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누구나 ‘서방’세계를 - 간다라와 아프가니스탄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서쪽에 있다 - 동경했다. 그곳에 가기만 하면 안락함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자연스레 아미타불은 그림과 조각의 훌륭한 소재가 됐고, 아미타불은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무수한 조각과 그림 속에 등장했다. 낙양 근방의 용문석굴에 가면 특히 많은 아미타불을 볼 수 있는데, 현실의 고단한 삶을 구원해줄 부처님, 아미타불은 봉건왕조시대 핍박받던 모든 이들의 ‘희망’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조성됐다. 통일신라시대인 720년 김지성이 만든 국보 82호 감산사 아미타불상입상, 국보 제45호 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불, 양산 미타암 아미타불입상(8세기 후반), 국보 106호 계유명 아미타삼존석상 등이 대표적이다. 전국 각 사찰 극락전.무량수전.아미타전에 모셔진 아미타불 역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부처님이다. 대웅전.대적광전과 함께 3대 불전(佛殿)으로 꼽히는 극락전에는 주불인 아미타불과 함께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된다. 극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 극락의 구품연대화를 묘사한 ‘극락구품탱화’, ‘아미타탱화’ 등이 후불탱화로 모셔진다.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무위사 극락전 등이 유명하다.
그러나 서방 극락세계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다섯 가지 악(惡)을 없애고 다섯 가지 선(善)을 행하면 자기가 있는 그 자리가 바로 극락이다. “사바세계가 곧 극락정토요, 현실세계와 극락세계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이 바로 정토인 것이다.
극락신앙과 아미타신앙이 1~2세기 경 북서인도를 주름잡았던 쿠샨왕조 문화권에서 성립됐다는 점..아미타신앙은 중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에서 만개됐다..대웅전.대적광전과 함께 3대 불전(佛殿)으로 꼽히는 극락전에는 주불인 아미타불과 함께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된다.
첫댓글 교리가 발달함에 따라.............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불 등이 국내 대표적 ()
극락신앙과 아미타신앙이 1~2세기 경 북서인도를 주름잡았던 쿠샨왕조 문화권에서 성립됐다는 점..아미타신앙은 중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에서 만개됐다..대웅전.대적광전과 함께 3대 불전(佛殿)으로 꼽히는 극락전에는 주불인 아미타불과 함께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