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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베다니 사랑과 복음 원문보기 글쓴이: 소자
kai autoV edwken touV men apostolouV
카이 아우토스 에도켄 투스 멘 아포스토루스
And He gave some as apostles,
touV de profhtaV touV de euaggelistaV
투스 데 프로페타스 투스 데 유양게리스타스
some as prophets, some as evangelists,
touV de poimenaV kai didaskalouV
투스 데 포이메나스 카이 디다스카루스
some as pastors and teachers,
proV ton katartismon twn agiwn eiV ergon
프로스 톤 카탈티스몬 톤 하기온 에이스 에르곤
for the equipping of the saints for the work of
diakoniaV eiV oikodomhn tou swmatoV tou
디다코니아스 에이스 오이코도멘 투 쏘마토스 투
service, to the building up of the body of
cristou
크리스투
Christ;
[벧전2:5-10] "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이 말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독교인은 거룩한 제사장의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볼수 있다. 사도의 필요성은 많은 성도의 공동체들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이 성도를 대변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것 이다.
사도권은 계급의 분리가 아니라 은사의 구분이다.
교회사에서에 있어서 예수의 재림이 지연됨에 따라서 교회의 제도가 형성되었다. 12명의 제자들은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장로.감독.집사를 임명하였다.
이 세 직책을 안수함으로서 권위가 인계되기 시작하였다(행6:6, 13:3, 딤전4:14).
[행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
[딤전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
그러나 이때까지 안수받아 계승하는 과정에서 계급의 차이는 없었다. 그러니까 2세기초 단일 감독제도가 등장하면서부터 교권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했다가 325년 니케아회 의 이후 계급 즉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극대화된 것이 로마 카톨릭이다. 감독이 감독을 안수하면서부터 교회내에 계급구분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사도권의 전통이 베드로 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고 있다. 초대교회시대엔 팔레스틴적 회중(베드로 계열)과 헨라적 회중(바울 계열) 사이에서로 갈등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사도 계승의 차원에서는 사도가 베드로-요한-야곱보로 계승되는 것은 카톨릭의 제도에 의한 계승이고 또 하나는 바울은 자신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부활하신 주님의 환상에 따라서 증언자가 되고 사도로 임명을 받은 즉 영에의한 사도권 임명 사이의 갈등이 초대교회때부터 있어왔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다양한 직임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직임은 목사이다. 목사는 행정적으로 교회의 대표권을 가지고있고 또한 교인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서의 책무를 가지고 있다.
목사 직임에 대한 바른 이해에 있어서 목사와 비슷한 어원은 구약성경에서는 히브리어로'로이(רעי)'라고 하는 단어인데, 그 뜻은 '목자'라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서 '양떼를 돌보다' 라는 의미로 사용이 되었다.
여기의 '목자'라는 말은 선지자가 가지고 있는 임무의 성격을 표현하는 말로서 신약의 목사 직임의 성격과는 다르다. 구약 가운데 선지서에서 목자라는 명칭은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들을 가리켜 사용하는 말로서 장차 오실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명칭인 것이다.
목사라는 말이 신약성경에서는 헬라어로 '포이메나스( poimenaV )'라고 표현하는데 . 그뜻 역시 원래 '목자'라
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신약성경에서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으나 바울의 서신인 에베소서에서 단 한번 엡4장 11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선물을 언급하면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기록한 내용에서 나타나고 있다.그 외에도 다른 시제로 하나는 '포이마이네(poimaine)'라는 단어로서 그 뜻은 양무리를 '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요 21장 16절에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이고 다른하나는'포이마나테'{poimanate }라는 단어인데, 그 뜻 역시'양 무리를 치라'는 뜻으로서 벧전서 5장 2절에서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말고……"라고 권하는 내용에서 언급된 것이다.
그리고 목자를 목사직의 대칭해서 사용하는 단어는 '포이메나스(poimenaV )' 외에도 그 의미를 같이 하는 단어들이 몇 개 더 있다. 그 대표적인 것들 중에 하나가 '에피스코포스(επισκοποζ)'라는 단어로서 감독'이라는뜻을 가지고 있고, 또 하나는 '프레스부테로스 (πρεσβυτεροζ)'라는 단어로서'장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상과 같이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단어들의 뜻을 종합적해서 정리해 보면 ''포이메나스(poimenaV )'(목자)'이라는
말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 기르는 자' 라는뜻으로 설명이 가능해진다.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
직임이 목사 직임의기원은 아니다.
구약시대에 있었던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 직임들은 그 시대에 필요했던 직임들이고, 신약시대 초기에 있었던 사도의 직임 역시 그 시기에만 단회적으로 있었던 직임들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목자 대칭 목사 직임의 기원에 대하여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너무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러므로 목자대칭 목사 직임이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의 직임들과 관계가 있고, 신약시대에도 사도 직임과도 관계가 있다라고 볼수없는 것이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목사 직임을 부여할 때에 장로교나 감리교 및 성결교 등의 경우에 노회나 지방회에서 목사 후보생을 선발하여 신학교육을 받도록해서 시험을 거쳐 목사로 안수를 주어 세우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어디까지나 목사 직임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유익하게 하시려고은사와 직임을 각 사람에게 직접 나누어 주신 것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목사 직임자가 세례와 성찬을 집행하는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고, 권징을 행하는 것은 전파되는 말씀의 능력에 의해 행해지는 결과인것이다.
다시 말하면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세우신 교회에서 세례를 베풀고 성찬을 행하며, 성도가 서로 교제케하게 하며,선한 일을 행하게 하며, 말씀으로 책망하고 격려하며 위로하는 일에 쓰임 받는 일이다. 정확무오한 하나님의말씀인 성경 66권을 정확하게 깨달아 택한백성들에게 잘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성도들을 가르쳐야 하는 디모데에게 성경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성경에서는 목사직임에 관련해서 목사의 기능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개신교 신앙의 입장에서 혹은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볼 때 천주교의 교황제도 및 독신 성직자 제도는 분명 잘못된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제도에 매여 있지 않을뿐더러 교황의 권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무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카톨릭 신자들은 만약 그렇게 하다면 당장 하나님이 무슨 벌이라도 내리는 것처럼 불안과 두려움 속에 빠지게 된다. 잘못된 종교적 습관과 전통을 스스로 깨뜨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는 바를 분명한 태도로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성경에는 성직자로서의 목사라는 직위가 설명되어 있는가?
우리나라의 한글 개역 성경에는 ‘목사’라는 단어가 단 1회 언급되어 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4:11)
이곳의 ‘목사’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포이멘’으로서 ‘목자’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shepherd(쉐퍼드)라고 하는데, 이 말은 sheep(슆 : 양)이라는 말과 herd(허어드 : 떼)라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따라서 이 단어의 정확한 표현은 ‘양치기’, 또는 ‘목자’이다. 그래서 성경의 여러 곳에는 똑같은 이 단어가 모두 다 ‘목자’로 번역되어 있다.
(마9:36)“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마25:32)“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막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눅2:8)“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눅2: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눅2:18)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요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요10: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10:14)“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요10:12)
(요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따라서 다른 번역 성경에서도 목자로 번역되어 있다.
①공동번역 성경과 킹제임스 번역 성경에서는 목자로 되어 있다.
②현대인의 성경에는 현대인들의 익숙한 용어를 고려해서 목사로 번역하고 있다.
③그러나 중요한 것은 앞서 살펴 본바와 같이 여기서 ‘목사’로 번역된 이 단어의 헬라어 원어는 ‘목자’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와 똑같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글 개역성경이나 현대인의 성경에서 마저도 다른 곳에서는 이 단어가 모두 ‘목자’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목자’와 ‘목사’는 어떻게 다른가?
우리나라의 언어적 표현으로는 ‘목자’라는 말과 ‘목사’라는 말의 차이가 잘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문제삼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의 표현을 가지고서 비교해본다면 그 차이점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다.
목자’라는 말은 영어로는 pastor(패스터)라는 말로서, ‘양을 치는 사람’, ‘양치기’라는 뜻이다. 따라서 목자라는 말은 양이라는 짐승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용어이다. 양들을 풍성한 꼴이 있는 곳으로 안전하게 인도하고 지키며 수고하는 소박한 자를 가리킨다.
이에 반하여 ‘목사’라는 말은 reverend(레베런드)라는 말로서 다른 사람과 특별히 구별되는 거룩한 자, 숭상할만한 자, 경외할만한 자, 공경할만한 자, 위엄이 있는 자, 성직자라는 의미가 강하다. 영어 reverend(레베런드)는 revere(리비)라는 단어에 nd가 합쳐진 말인데, revere(리비)라는 말은 ‘경건한 마음으로 숭배하다’, ‘경외하다’, ‘존경하다’라는 의미로서 다분히 계급적이고 권위적이고 특권의식이 강한 성격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목자’와 ‘목사’라는 용어는 상이한 성격을 담고 있다. ‘목자’는 단순히 교회를 돌아보는 은사를 지닌 교회 일군을 의미하고 있으며, ‘목사’는 일반 성도들과 신분적으로 구별되는 성직자를 의미하고 있다.
그렇다면 에베소서 4장 11절의 ‘목사(목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엡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전문적인 목자의 은사, 즉 장로들 중에 양무리를 돌아보며, 그들을 지키는 은사(재능)를 가진 자들을 말한다. 장로들 중에는 이와 같이 목자로서의 은사를 가진 자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전도자(복음 전도자)로서의 은사를 가진 자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교사(말씀을 쉽고 조화롭게 잘 가르치는 자)로서의 은사를 가진 자도 있다. 집사들 중에 전도자와 교사의 은사를 가진 자도 있을 수 있다(행21:8). 중요한 사실은 여기서의 목자는 이러한 은사로서의 목자를 의미하는 것이지 성직자로서의 목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 나오는 것들이 직위가 아니라 은사 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중복하여 이것들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사도이면서도 장로였다(벧전5:1).요한도 사도이면서 장로였다(요이1:1, 요삼1:11). 바울은 사도이면서 교사였다(딤후1:11). 빌립은 집사이면서 전도자였다(행21:9). 성경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바울, 베드로, 요한 등은 사도이면서도 전도자 였으며, 교사였다. 또한 장로였고 목회자였다. 만약에 이러한 것들이 은사가 아니라 직위였다면 얼마나 혼란스럽게 이들을 불러야 하겠는가? 어떤 한 사람을 향하여 '사도님’, ‘장로님’, ‘목사 님’, ‘교사(선생)님’, ‘전도자(전도사)님’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매우 혼란스럽다.
또한 여기서 나오는 것들이 직위가 아니고 단순히 그러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은사이기 때문에 그 순서에 있어서도 전도자, 목사, 교사 인 것이다. 만약 이것이 오늘날과 같은 직위였다면 그 순서가 목사, 전도사, 교사였을 법도 하다.
고린도전서 12장 28절 말씀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여기에서는 아예 ‘목자(목사)’라는 말이 언급되어 있지 않고 다만 ‘사도’, ‘선지자’ 다음에 ‘교사’가 언급되어 있다. 왜 목사직이 빠져 있을까? 그 이유는 초대교회 때에는 양들을 다스리고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하는 은사를 지니고서 활동하는 사람은 있었으나 목사라는 직함을 가지고서 일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능력을 행하는 자, 병 고치는 자, 방언을 말하는 자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도 은사로 보아야하는 것이지 이것을 직함(직분)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능력자’, ‘병 치유 은사 소유자’, ‘돕는 자’, ‘다스리는 자(통치자)’, ‘방언자’라는 직분을 가진 자가 결코 없지 않는가?
‘목사(목자)’라는 말은 아예 없고 다만 ‘다스리는 것’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을 뿐이며, 이것마저도 거의 맨 뒷 부분에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초대교회에는 오늘날과 같은 개념으로서의 목사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다만 은사의 한 영역으로 목회가 있을따름이었던 것이다.따라서 성경에서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의 한 영역이라고 그 뒷 구절들(고전12:29-31)에서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초대교회에는 오늘날과 같은 ‘목사’라는 직임이 존재하지 않았고 다만 장로들이 ‘목자’의 은사를 가지고서 그러한 일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성경에는 장로(감독)와 집사의 자격에 대해서는 직접 자세하게 언급이 되어 있어도(딤전3:1-13, 딛1:5-9) 목사의 자격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되어 있지 않는가?
만약 초대교회에도 오늘날과 같은 목사제도가 있었다면 목사의 자격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목사제도가 그 때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교회가 세워진 이후의 상황을 기록한 사도행전엔 목사의 자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을뿐더러 아예 ‘목사’라는 단어조차도 없다.
우리나라의 『한글개역성경』이나 『현대인의 성경』에는 에베소서 4장 11절에 딱 한번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현실성을 반영한 번역으로서 다른 곳에서는 동일한 이 단어가 모두 ‘목자’로 번역되었음을 앞서 지적한 바 있다.
신약교회(초대교회)가 세워진 이후에 교회와 관련하여 기록된 성경 말씀 중 ‘목자’라는 단어는 총 6번 밖에 사용되고 있지 않다. 교회가 처음 형성되어진 과정부터 점차 여러 지역에 교회가 세워진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에는 ‘목자’라는 단어가 한 번도 사용되어지고 있지 않다.
오직 서신서에 5번, 계시록에 1번 사용되어지고 있다. 그런데 에베소서 4장 11절은 교회 안에 성도들을 돌아보는 은사로서의 목자를 말씀하고 있으며, 히브리서 13장 20절, 베드로전서 2장 25절, 5장 4절, 계시록 7장 17절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고, 유다서 1장 12절은 이단자인 영지주의자들을 가리키면서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라고 표현되어 있다.
만약 초대교회에도 오늘날과 같은 목사 제도가 있었다면 사도행전에 최소한 몇 번은 목사라는 호칭이 등장했었을 것이며, 특히 각 교회에 보낸 서신서에는 당연히 매번 목사라는 호칭이 등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의 생각에는 목사 없는 교회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또한 편지에 그 교회의 목사에 대해 아무런 인사말이나 당부의 내용이 없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의문점들을 풀 수 있는 해답은, 그 당시의 교회 안에는 오늘날과 같은 목사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며 그 대신에 장로들이 교회를 다스리고, 양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하며 목회를 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장로에 대한 언급 과 또 그 자격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으며, 장로들이 교회를 돌아보고, 다스리며 목회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바나바와 사울(바울)은 구제헌금을 유대의 가난한 교회(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주었다.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행11:30)
왜 구제헌금을 목사에게 보내지 않았을까? 예루살렘 교회에 있는 장로들이 실제로 교회를 다스리고 교회를 인도하며 목회를 하고 있었기에 장로에게 구제헌금을 전달했던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은 교리적인 문제가 있었을 때 12사도들과 함께 의논도 했다(행15장).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행15:2, 4, 6, 22-23)
왜 이 중요한 회의에 목사가 빠졌을까? 이 해답은 그 당시에는 교회에 목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회 규모가 작고 재정이 부족해서 목사를 모실만한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고 애당초 초대교회 안에는 목사라는 직위가 없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애당초 성경에도 없는 독신 신부제도, 교황제도를 만들었고, 개신교는 이것을 모방하여 목사라는 직위를 만들었다.
바울과 베드로 사도는 교회 장로들에게 직접적으로 지역교회를 돌아보고 감독하라고 명했다. 그리고 장로들은 성령님께서 교회를 감독하도록 세운 사람들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20:17, 28)
바울은 왜 에베소 교회의 목사를 부르지 않고 장로들을 불러 그들에게 목회자의 사명을 일깨워주었을까? 또한 베드로는 왜 목회자로서의 올바른 자세에 대해 소아시아의 다섯 지방(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교회의 목사들에게 말하지 않고 교회의 장로들에게 말했을까?
만약에 교회 안에 오늘날처럼 목사라는 별도의 신분이 존재했다면 당연히 목사에게 이러한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직임으로서의 목사제도가 아예 없었다. 다만 장로들이 서로 그 역할을 분담하여 목회 활동을 했다. 그래서 바울과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장로들이 이와 같은 목회 활동을 하도록 교회의 감독자로 삼은 분이 바로 성령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목사를 교회의 감독자로 삼았다는 말은 없다. 그리고 장로라는 직분과 감독이라는 직분은 서로 다른 직분이 아니라 동일한 직분을 두 가지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이다. 감독이란, 교회를 감독하는 일을 한다는 측면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장로는 그 나이와 신앙 경륜이 깊다라는 측면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감독은 장로 위에 있는 어떤 계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감독과 장로는 동일한 직분이기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모아놓고, 성령이 그들을 교회의 감독자로 삼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에 의하면 본도와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그리고 비두니아 교회들도(벧전1:1) 복수 장로에 의하여 감독되었음을 볼 수 있다(벧전5:1).
(행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바 주께 부탁하고”
(행20: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빌1:1)“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딛1:5)“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사도 바울은 새로 세워진 교회에 왜 목사를 세우지 않고 장로들을 세웠을까? 여러 명의 장로보다는 한 사람의 목사를 세워 교회의 모든 것을 맡기면 교회가 일사불란하게 잘 돌아 갈 것인데 왜 여러 명의 장로들을 교회 안에 세웠을까? 하나님께서는 다수의 장로들에 의한 팀 목회(분담목회)를 더 원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지혜보다 더 뛰어나신 하나님의 지혜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 사도 바울이 세우고자 했던 장로는 역할을 분담하여 다른 장로들과 함께 목회하는 장로이다.
바울은 회중들에게 “잘 다스리는 장로들 특별히 말씀에 수고하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하라고 권했다. 이러한 존경의 표현에는 물질적인 공급도 포함된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딤전5:17-18)
이러한 사실들은 생각해볼 때 당시의 모든 교회들 안에는, 다만 서로 그 역할을 분담하여 목회하는 장로들만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교회의 장로들을 언급할 때 항상 복수형인‘장로들’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바울은 장로들이 지역교회를 돌아보는 청지기 또는 하나님의 집일을 맡아보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딛1:7)
바울은 장로들이 거짓 교사들로부터 교회를 보호할 엄숙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딛1:5, 1:7-11)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
베드로는 장로들이 권위주의자가 되는 것에 대해 경고했다. (벧전5:1-3)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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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른교회이야기 (글쓴이:고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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