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에 대한 불만의 가장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과연 내가 나중에 돈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연금제도를 위협하는 것은 불공정·불공평·불합리한 지급규정에 대한 불만이다. 가장 빈번하게 거론되는 연금제도의 허점은 크게 7가지다.
송모(48·서울)씨는 작년 10월 청소회사에 다니다 사망한 부인 이모(47)씨의 유족연금을 받으러 국민연금공단에 갔다가 분통을 터뜨렸다. 공단에선 송씨에게 나이를 물어보더니 60세가 안 됐기 때문에 유족연금은 안 되고 장례비만 줄 수 있다고 했다.
“가입자가 죽으면 당연히 유족연금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하자, 공단 직원은 연금법을 꺼내 들었다. ‘여성은 남편 사망 후 바로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으나 남성은 60세가 넘어야 한다(63조1항의 1)’.
〈대안〉전병목 조세연구원 연구원=프랑스는 55세, 독일·영국은 45세 등이다. 우리처럼 남녀 차이를 두고 있는 곳은 일본뿐이며, 남자 55세 이상, 여자는 35세 이상이다.
재작년에 남편이 사망해 유족연금으로 매월 15만원을 받고 있는 이모(58)씨. 그가 용돈을 벌겠다고 구멍가게를 열자, 연금공단 직원은 “소득이 있다”며 직권으로 월 4만원의 보험료를 내라고 통보했다. 이씨가 이 보험료를 내 나중에 받을 연금액은 월 14만원. 이씨가 60세가 되면 이론적으로 두 가지 연금을 모두 받아야 마땅하지만, ‘1인2연금’을 인정하지 않는 연금법에 따라 이씨는 한푼이라도 많이 받는 유족연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대안〉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면 그대로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88년부터 연금에 가입해 올해 월 30만원의 연금을 받기 시작한 민모(60)씨는 경영난을 겪던 회사에서 연금 보험료 2년치를 체납, 그 기간만큼 민씨의 연금액이 적어졌다는 설명을 들었다.
〈대안〉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사업주가 내지 않은 보험료 때문에 가입기간이 줄어 근로자가 손해를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연금법 개정안에도 절반만 인정해주는 것으로 돼 있다.
중소기업 부장으로 퇴직한 뒤 월 50만원을 받고 주유소에서 일하는 이모(60)씨. 그는 지난달 연금공단에서 연금(월 40만원)을 받게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공단에 찾아가니 월 42만원(연 500만원) 이상의 소득이 있어 첫 해는 연금을 절반밖에 안 준다는 것이었다. 61세가 되면 원래 받을 연금액의 60%를 받게 되고, 65세가 돼서야 제대로 받게 된다.
〈대안〉윤병식 보건사회연구원 초빙연구원=문제는 소득 기준이 너무 낮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4월까지 전체 대상자 3만2391명 중 61.9%인 2만66명의 연금이 삭감됐다.
대장암에 걸려 시한부 생명 판정을 받은 이모(55)씨는 장애연금을 받으러 갔다가 진단서를 받아오라는 말에 발길을 돌렸다. 암 진단을 받은 지 2년이 지나야 장애로 인정, 연금이 지급된다는 것이다.
〈대안〉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발병 후 연금 지급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어 줄여야 한다. 개정안에는 1년 반으로 줄여 놓았다.
중소기업에 다니다 명예퇴직한 이모(58)씨는 작년부터 매월 40만원씩 연금을 받기 시작했다. 이씨는 빚내서 튀김집을 연 뒤 사업자등록증을 냈다. 하지만 올 4월부터 사업자등록증이 있다는 이유로 연금 지급이 정지됐다.
〈대안〉김상호 관동대 경제학부교수=2000년 대전지방법원에서는 사업자등록증만으로 소득이 있다고 인정한 반면, 올해 서울행정법원은 실제소득이 없는데 사업자등록증만으로 소득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안 된다고 판결했다.
시골에서 부모를 모시고 사는 박모(34)씨는 미혼인 동생(32)이 죽자, 부모님 대신 유족연금을 받으러 갔다가 낭패를 봤다. 공단에선 “사망한 동생의 주민등록이 부모와 함께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정기적으로 부모님께 돈을 보내준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박씨가 “자료가 없다”고 하자, “연금 대상이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안〉오근식 광주대 겸임교수=유족 인정 기준이 너무 까다롭다. 이 경우는 유족 기준에 들지 않아 사망일시금조차 못 받을 수도 있다. 유족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