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늘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들어오지도 못하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황실사랑회가 있기에 우리나라의 역사의 맥도 이어져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와서 늘 좋은 자료 보고 갑니다.
정말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면서...
서삼릉을 지키고 가꾸자는 캠페인이 있어 몇글자 적어보려 합니다.
일단 서삼릉의 경우 골프장 증설 반대에 적극 찬성을 표합니다.
안그래도 골프장 때문에 말들이 많은데 황실 묘역 인근에 또 골프장을 증설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리구요 일단 서삼릉의 경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 원래 일본 육사출신으로 1961년 5월 16일 군사구데타로 집권을 하게 됩니다.
이후 1962년 그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있을때 법사위원장에게 명령을 내려(?)
영친왕 이은공의 한국 국적 회복을 지시합니다.
물론 당시 상당수의 관료(대개는 권총을 차고 집무했던 장군들이었음)들이 반대했지만
박정희 의장은 기어이 이를 실현시키고 영친왕 이은공의 영구 귀국을 주선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박정희 전대통령의 행동에도 결국은 연막작전이 숨어 있다고 보아 지는 것이
관련 자료를 제가 본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어딘가에서(그 출처는 기억이 안나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결론은 먼고하니 박정희의장은 당시에 군사반란으로 집권을 하여서 정권의 정통성이 약했습니다.
사실 없었다고 보는게 좋을 듯합니다.
그런 가운데 박정희가 생각해낸 것이 영친왕 이은공의 귀국입니다.
영친왕 이은공을 잘 모시는 것이 자신이 스스로가 조선황실의 뒤를 잇고 있다는 뜻으로 국민들에게 비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할까요.
사실상 그는 정통성이 약한 그의 정권을 정통성 있게 보이기 위하여 이은공 전하의 영향력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철저하게...
그랬던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이른바 집권 세력들 중에서 일부 모리배들은 민간업자들에게 뇌물을 받아먹고 국유지를 상당부분 헐값에 넘겨 주게 되는데 이때 넘겨준 국유지 중 일부가 황실소유의 땅과 묘역 그리고 궁궐터였지요.
결국 1964년인가요. 정기국회에서 야당의 김준연 의원이 이러한 검은 커낵션을 폭로하나
정권은 오히려 김의원을 허위사실 유포죄를 덮어씌워 제명하려 했지요.
이때 김대중 당시 민주당 의원이 나서서 필러버스터(의사진행 발언)를 시도하여 장장 8시간 넘는 시간 동안 의사진행 발언을 하면서 동료의원의 제명동의안 처리가 무산되도록 시간을 끌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한양골프장이 지어졌고 사실상 이 골프장은 박대통령의 전용 골프장이나 다름없었을 정도였습니다. 이후 다른 분께서 올려주신 글에서 처럼 박대통령의 지시로 목초지를 만들고 종마목장도 만들게 됩니다.
(지금 종마목장은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자주 이용되며 1983년 안소영 주연 영화 애마부인의 촬영지이기도 합니다.-바로 눈앞에 황실묘역이 있거늘 그위에서 감히 외설 영화를 찍었다는 자체가 분노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도로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수도 서울을 방어하고자 서삼릉 인근 지역에 군부대를 주둔시킵니다. 문제는 이 군부대입니다.
사실 서삼릉 묘역을 지키는 운동을 함에 있어서는 골프장 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바로 이 군부대의 철수입니다. 그러나 안보논리와 국방부의 이상한 파워(요즘의 군기빠진 국방부와 육군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마음) 때문에 이전이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만은...
그럼 이 군부대는 소속이 정확하게 어떻게 되느냐? 일단은 그렇습니다.
부대 정문은 지하철 3호선 원당역 앞에서 관산동 방향으로 올라가는 낙타고개 언덕자락에 있으며 위병소에 보시면 5161 부대라고 쓰여져 있을 것입니다.
정식 소속은 그렇습니다.
육군본부 예하 제3야전군 사령부 예하 제1보병군단 예하
육군 제30 기계화 보병사단 90 기계화보병 여단
이렇습니다.
그런데 이 부대의 경우 기계화 부대로써 1개의 전차대대와 2개의 보병대대가 있으나
서삼릉 바로 뒤에는 2개의 보병대대만 주둔하고 있습니다. 물론 장갑차가 있어서
늘 시끄럽지요. 거기다가 자주 장갑차가 주위를 기동하면 땅이 울리고 아스팔트가 엄청 피곤해 합니다.
그런데 평소에 이 부대의 군사훈련은 군사보안의 범위를 넘지 않는 범위내에서만 말씀드리면 주로 한양골프장을 중심으로 하여 대침투 간첩 섬멸작전을 자주 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서삼릉 묘역 인근 언덕이나 서삼릉묘역 가는 포장 도로 인근 논과 밭 일대에 엄청나게나 많은 구덩이를 파고 덮고 또 파고 덮고
해놓았는데 대부분이 훈련용 엄폐호이지요.
그렇다 보니 서삼릉 묘역에 잠드신 황실의 웃 어르신들이 편히 잠들 날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서삼릉 묘역 일대를 둘러싸고 늘쌍 군인들이 자주 행군 훈련과 구보 훈련을 하는데 그옆에 있는 뉴코리아 골프장 주변으로 하여 자주 행군훈련과 구보를 반복하지요.
그러하다보니 서삼릉 묘역 주변이 홰손이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인근에 사시는 분들이나 농협대학교 학생들에게 물어보셔도 금방 아실 수 있는 사항들이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골프장도 당장에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은 그보다더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군부대의 이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황실의 묘역이었으나 서울외곽을 방어하고 한양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던 박정희 대통령을 호위하던 군부대인데...
사실 그렇습니다. 이부대가 일반 30보병 사단 시절에는 군편제상 90연대로 불리었는데...
이 부대의 과거 행적을 살펴볼까요...
두 가지 사실에만 주목해도 됩니다.(어떤 부대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1. 1961년 5월 15일 밤 군사쿠데타 당시 제일먼저 이 부대(30사단 90연대)에서 병력을 불법으로 출동시키려 하지요. 그러나 이상국 사단장이 반대하여 병력 출동이 지연되었으나 당시 일단의 지휘관들이 이상국 장군을 협박하여 사실상 감금하고 이 부대를 서울로 출동시켜 쿠데타 군의 주력부대가 됩니다.
사실상 박정희 대통령에게 있어서는 듬직한 충복과도 같은 부대였지요.
2. 1979년 12월 12일 밤 군사쿠데타 당시 이 부대가 관할하던 행주대교를 통하여 반란군이던 1공수여단이 서울 중심부로 진출을 시도할 당시 30사단장 박희모 장군이 명령을 내려 이 부대에게 1공수여단이 행주대교 지나갈때 막지말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새벽녘에 이 부대를 고려대로 출동시켜 사실상 군사반란에 합류하게 됩니다.
이런 역사의 있을 수없는 군사반란에 제일 앞장서온 부대가 서삼릉 묘역 주변에서 얼쩡거리면서 서삼릉 묘역 주변을 홰손한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이 나라에서 정말로 역사를 사랑하고 조선의 황실 역사를 이어가고자 하는 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주한미군 이전 문제에만 용을 쓸 것이 아니라 이 군부대의 이전을 적극 고심해보실 의향은 없으신지 저는 묻고 싶습니다.
물론 지금의 이상한 파워의 국방부가 과연 동의해줄지 아니 저의 이러한 주장을 경청해줄지 의문입니다. 아니 군사보안 어쩌구 해서 안잡아가면 다행일거 같네요.
그러나 저는 용기 있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의 황실 역사의 일부분인 서삼릉 묘역이 더 이상 이상하게 황폐화 되는 것을 막고자 한다면 제일먼저 이 부대가 철수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물론 현실상 어려움이 더 많겠지만요...
이상은 저의 횡설수설 겸 조그마한 희망사항이었습니다.
우리의 조그마한 힘이 한데 모이는 그날에는 서삼릉 묘역이 다시금 제위치를 찾을 날이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운영자님과 회원님들 모두 내일 선거 투표 잘하시구요.
즐거운 한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수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