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초고] 한국 금융·부동산 구조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를 ㅡ'국력 역전'의 경고장과 주택법·감정평가 체계의 설계 오류를 직시하라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2026-05-10
필자는 도시계획가 출신이다. 공간의 배치뿐 아니라 그 공간을 흐르는 자본의 성격, 그리고 환경과 사회 정의의 관계도 함께 고민하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의 혈맥인 금융과 기초 체력인 부동산 정책에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과연 우리의 시스템은 미래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는가, 아니면 과거의 지대에 기생하고 있는가.
첫째, 금융은 생산적 자본 배분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최근의 '대만 쇼크'는 단순한 GDP 수치의 역전을 넘어, 금융 구조의 질적 차이를 드러낸다. IMF 전망에 따르면 2026년 기준 대만의 1인당 GDP는 약 44,000달러, 한국은 약 39,000달러로 격차가 벌어지고 있으며, 향후 5년 내 그 차이는 1만 달러 수준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대만의 구조가 한국에 그대로 이식될 수는 없다. 도시 집중도, 토지 면적, 인구 구조가 다르다는 반론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비교의 핵심은 지리적 조건이 아니라 '자본 배분의 철학'이다. 같은 수출 중심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조건 하에서, 대만은 부동산으로의 자금 쏠림을 법적으로 차단하는 선택을 했고, 한국은 하지 않았다. 그 선택의 누적이 지금의 격차를 만들었다.
대만 금융의 핵심은 부동산으로의 자금 쏠림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데 있다. 대만은 은행법을 통해 시중은행의 주택 및 상업용 건물 대출 총량을 전체 예금 및 금융채 발행액의 30% 이내로 제한한다. 실제로 2026년 현재 대만 은행들의 비중은 26~27%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반면 한국 금융은 대출의 절반 이상이 부동산 담보에 집중된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대만은 6,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와 IT 중심의 실물 수출을 기반으로 통화량을 창출하는 반면, 한국은 가계의 부동산 담보대출을 통한 신용창조(화폐발권)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가 상승이 곧 화폐 팽창으로 이어지는 부채 주도형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그 결과 대만은 부실채권(NPL) 비율을 0.1% 수준으로 유지하며 자본을 산업과 기술로 흘려보내고 있지만, 한국은 가계부채가 GDP 대비 90%에 육박하며 경제 활력을 제약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둘째, 부동산 정책은 토지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가
토지임대부 주택은 토지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주거비를 안정시키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현행 주택법의 임대료 산정 방식인 '적산법(積算法)'은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적산법은 '토지 가격 × 기대이율'을 기준으로 한다. 문제는 토지 가격이 시장에서 형성되는 교환가치라는 점이다. 투기적 수요로 주변 땅값이 오르면, 아무런 생산적 기여 없이 공공임대료까지 함께 상승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는 투기적 가격 상승을 공공이 추인하고, 그 부담을 입주자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정책 목표인 사용가치 중심의 주거 안정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싱가포르가 토지를 공공이 소유하고 장기 임대하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주거 안정성을 유지하는 이유는, 주거를 투기적 교환가치로부터 철저히 분리했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단순한 적산 방식에서 벗어나 소득·물가·실제 거주 편익을 반영한 사용가치 중심의 임대료 체계로 주택법 시행령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셋째, 감정평가 체계는 토지의 공공적 성격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의 자산 가치를 측정하는 최후의 보루여야 할 감정평가가, 지금 '상식의 실종'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현재의 거래사례비교법 중심 평가 방식은 투기적 가격을 '객관적 가치'로 공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금융기관은 이를 근거로 대출 한도를 늘리고, 이는 다시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순환 구조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도로·학교·지하철 등 공공 인프라와 지역 공동체의 활동이 만들어낸 토지 가치, 즉 공유부(共有富)가 개인의 독점적 자산으로 전환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감정평가업계가 이 구조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대 사례가 부족하다'는 항변은 핑계에 불과하다. 데이터가 없으면 발굴하고, 수익성 분석 모델이 없으면 정립하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이다. 이미 공인된 공시지가에 기대어 계산기만 두드리는 행태는 감정평가사를 '가치 분석가'가 아닌 '단순 대행인'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정부는 행정 편의를 이유로 지가 연동 방식을 고수하고, 금융계는 담보 가치를 지탱하기 위해 이 구조를 묵인한다. 서민과 소상공인의 고통은 이 삼각 카르텔 속에서 '시장 원리'라는 미명 하에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이제는 토지와 건물을 분리 평가하고,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의 성격을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 나아가 토지분 가치 상승에 대해서는 보유세 강화와 연동하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에스토니아와 싱가포르는 이미 토지가치세(Land Value Tax) 체계를 통해 지대의 사회적 환수를 제도화하고 있다. 한국도 감정평가 체계를 단순 시세 확인 도구에서 토지 정의를 실현하는 정책 수단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지금 당장, 행정적 결단이 필요하다
결국 핵심은 자본이 어디로 흐르고 있으며, 그 흐름이 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있다. 대한민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등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금융과 부동산 구조는 이러한 혁신을 뒷받침하기보다 오히려 제약하고 있다.
당장 할 수 있는 첫걸음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은행법에 부동산 대출 총량 상한을 명문화' 하는 것이다. 대만이 30년 전 선택한 그 조항 하나가 지금의 격차를 만든 출발점이었다.
또 하나는 '주택법 시행령의 임대료 산정 조항을 지금 즉시 개정'하는 것이다. 시행령은 국회를 거칠 필요가 없다. 감정평가업계가 적산법이라는 '산수'에 안주하고, 정부가 행정 편의를 이유로 이를 묵인하는 동안, 투기적 지가 상승은 공공임대료로 고스란히 전가되어 왔다. 사용가치와 무관하게 치솟는 임대료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부르고 공간의 창의성을 말살한다. 지가가 임대료를 결정하고, 그 임대료가 다시 지가를 밀어 올리는 이 기괴한 순환을 끊는 데 필요한 것은 복잡한 입법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행정적 결단'이다.
금융은 자본을 미래로 보내는 통로여야 하고, 토지는 사회 전체의 기반이어야 한다. 대만과의 격차는 우연이 아니라, 자본을 어디로 보낼 것인가에 대한 철학의 차이가 만든 필연적 결과다. 토지 정의와 생산적 혁신이 결합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마주한 '국력 역전'의 경고를 극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