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재명 정부의 자기부정을 멈추라
ㅡ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의 비판을 지지하며ㅡ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나라살림의 책임자이자 양극화 해소의 기수가 되어야 할 기획예산처 장관 자리에, 과거의 낡은 신자유주의 맹신자를 앉히려는 이재명 정부의 행보가 우려를 넘어 당혹감을 자아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이혜훈 전 의원을 지명한 것을 두고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철학 부재'와 '원칙 상실'이라는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가 지적했듯, 이번 인사는 단순히 인물의 호불호를 넘어 이재명 정부가 표방해온 '민복(民福)의 경제정책'과 '국가 주도 혁신'이라는 국정 기조 자체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이다.
헌법 가치와 공직 윤리의 실종: '내란 옹호'의 그림자
인사의 기본은 공직자의 헌법적 가치 수호 의지다. 용혜인 대표는 이혜훈 후보자가 과거 윤석열 탄핵을 '불법'이라 옹호하다가, 이제야 "불법적 행위로 판단했다"고 말을 바꾼 점을 꼬집으며 이를 "국민을 기만하는 무능 또는 거짓말"이라고 일갈했다.
광장의 민주주의로 탄생한 대통령이라면 무엇보다 민주적 정당성과 헌법 정신을 확고히 해야 한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차대한 시기에 내란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사를 국무위원으로 발탁하는 것은 국민 주권 정부로서의 도덕적 토대를 스스로 허무는 일이다. 헌법과 민주주의 앞에 용기 있게 행동하지 못한 인사가 어떻게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예산의 수장이 될 수 있겠는가.
신자유주의 전도사에게 맡긴 '개혁'의 모순
더 큰 문제는 경제 철학의 심각한 불일치다. 새 정부의 경제부처 개편은 단순히 기획재정부의 비대해진 권한을 나누는 행정적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부자 감세와 긴축 재정 일변도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낳은 불평등과 양극화를 타파하라는 시대적 명령이었다.
그러나 이혜훈 후보자는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인물이다. 그는 정부 재정 지출이 민간 투자를 위축시킨다는 '구축효과(Crowding-out)' 이론을 전파하며 확장 재정을 줄기차게 비판해 왔다.
구축효과는 정부가 돈을 풀면 이자율이 올라 민간 투자가 위축된다는 논리로, 신자유주의자들이 재정의 역할을 축소할 때 전임하는 논거다. 반면 이재명 정부가 지향하는 '승수효과'는 정부의 선제적 투자가 소득 증대와 경기 부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전제한다. 이처럼 정반대의 이론적 토대를 가진 인사가 어떻게 이재명 정부의 경제 정책을 지휘할 수 있겠는가.
양극화 해소와 민복(民福)을 가로막는 낡은 재정관
이혜훈 후보자는 유독 민주당 정부 시기에만 우리나라 국가채무 수준을 '나라가 무너질 위기'처럼 포장해왔다. 이는 사실과도 다르다. 한국의 채무 건전성은 세계적으로 양호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를 빌미로 민생을 위한 재정 사용을 원천 봉쇄해왔다.
실제로 그는 기본소득 정책과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에 끝까지 반대했다. 부동산 정책에 있어서도 종부세 축소와 민간 공급 확대만을 유일한 해법으로 제시하며 자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주장을 펼쳤다. 양극화를 시정하고 서민의 삶을 돌봐야 할 기획예산처 장관이 오히려 '부자 감세'의 논리적 방패막이 역할을 해온 셈이다.
'윤어게인', 정책의 퇴행을 멈춰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약속했다. 하지만 '윤석열의 경제통'이라 불리던 인사를 예산 수장에 앉히는 것은 경제 정책에서 '윤어게인'을 선포하는 것과 다름없다.
용 대표의 지적처럼 이 후보자는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다가, 윤석열 정부에서는 친재벌 정책의 대변인으로 변신했다. 이는 그에게 확고한 경제적 식견이나 철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요구에 따라 신자유주의 레토릭을 변주해온 '정치적 기술자'에 불과함을 방증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부의 편중을 심화시키는 낡은 관성이 아니라, 위 그림의 오른쪽처럼 소득 재분배를 통해 혁신 성장을 이끌어내는 포용적 성장 모델이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도식의 왼쪽, 즉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과거의 길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재명 정부의 자기부정을 멈춰라
나라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자리를 정리정략의 차원으로 접근하는 이재명의 정부의 생각이 어처구니가 없다.
이대통령은 콘크리트 친일수구 20%를 빼면 일반국민들 가운데는 2대1이 넘는 차이로 당선된 것이다. 탕평책이 필요한 게 아니라 대한민국호를 제대로 끌고가는 일이 중차대한 것이다. 우리는 고통스럽다.
이혜훈 후보자 지명은 이재명 정부의 자기부정이자 지지층에 대한 배신이다.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은 경제 정책을 전면적으로 전환하여 국가 주도 혁신을 이끌어야 할 중대한 책임을 가진 자리다. 국정 기조에 정면으로 반할뿐더러, 소신과 식견조차 의심스러운 인사를 임명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부적격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철학과 원칙 부재'의 선택을 인정하고 지명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통일 시대를 대비하고 양극화를 치유할 골든타임을 '윤어게인' 인사로 허비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스스로 선포한 '민복의 경제'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금 그 초심을 돌아보길 바란다.
정부의 경제 정책 전환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그 시작은 이혜훈 후보자의 지명 철회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