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초암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초암
대 (代) |
종손 휘(諱) |
자(字), 호(號) |
관직 |
배위(配位) |
비고 |
1 |
김기선(金幾善, 1568~1613) |
원길(元吉), |
안기도찰방(安奇道察訪) |
?반남박씨(父,박 록,外祖 허사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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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김겸(金겸, 1590~1626) |
응구(應久), |
생원(生員),이괄(李适)의 반란에 의병참모(義兵參謀) |
?의인(宜人) 경주이 씨(父,교리 이광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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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김종준(金宗準, 1616~1666) |
경칙(景則), |
통덕랑(通德郞) |
?공인(恭人) 풍산류 씨(祖,류성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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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김정하(金鼎夏, 1643~1722) |
중숙(重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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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홍씨(祖,두 곡 홍우정) ?고령박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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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김비연(金斐然, 1665~1689) |
문백(文伯), |
통덕랑(通德郞) |
?공인(恭人) 인동장 씨(父, 장령 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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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김홍운(金弘運, 1711~1753) |
응보(應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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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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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김일련(金一鍊,1733~1799) |
순칙(純則), |
효릉참봉(孝陵參奉) |
?의인(宜人) 의성김 씨(曾祖, 김성구) ?의인(宜人) 수성라 씨(祖, 나만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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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김영희(金永羲,1769~1833) |
일소(逸少)/서계(西溪)?정좌재(靜坐齋) |
문행이 있어 사림에서 삼도(三道)의 소수(疏首) |
?청주정씨(曾 祖, 정옥) ?나주정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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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김락호(金樂浩, 1798~1835) |
선오(善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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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정씨 ?평해황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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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김휘태(金輝泰, 1826~1867) |
대래(大來) |
통덕랑(通德郞) |
?공인(恭人) 의성김 씨(父,승지 김용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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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김경규(金慶奎, 1846~1879) |
시응(時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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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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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김택진(金澤鎭, 1874~1960) |
원중(源仲)/동려(東黎) |
파리강화회의 독립청원서에 유림의 한사람로 서명 |
?완산최씨 ?야성송씨 |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음. |
13 |
김제동(金濟東, 1892~1938) |
치민(致民)/가전(可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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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曾祖, 이휘녕) ?의성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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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김만영(金萬榮, 1926~2009) |
응일(應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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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유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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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김양묵(金養?, 1950~) |
호연(浩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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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황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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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김준모(金埈模, 1976~) |
맹범(孟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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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전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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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길사
1. 길사를 준비하는 손길들
가. 길사 전날
편에 떡을 괴는 시각 옆방에서는 종녀가 적환에 제물을 괴고 있는 데 이 또한 정성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떡은 편대에 괴고 고기는 적환에 괸다. 먼저 적환 바닥에 명태 아홉 마리를 깔고 그 위에 배추적 세 채를 괴고 그 위에 전(명태전) 세 채 얻은 다음 돼지고기 꼬지 다섯 채를 놓고 마지막으로 쇠고기 꼬지 다섯 채를 올려 마무리 한다. 꼬지를 꿰고 한 채 한 채 올리는 정성이야말로 효심이 아니면 할 수 없고 종가 사람들만이 해내는 일이다. 저녁 식사 후 사랑방에서는 남자들이 과일을 괸다. 밤과 대추, 호두와 땅콩을 괼 때는 제물과 편을 괼 때와는 또 다른 집중과 세밀함과 인내를 요한다.
대추를 괼 때, 먼저 대추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다음 정종과 설탕을 조금 넣어 섞으면 윤기가 나고 접착이 잘 된다. 목기 가장자리에 대추를 빙둘러 놓고 가운데 대추하나를 놓아 높이를 맞추고 빈 공간은 쌀로 채운다. 그 위에 복지를 놓고 다시 대추를 빙둘러놓고 채우고 또 복지를 놓고를 반복하여 일곱채를 괸다. 밤과 호두 땅콩 등 다른 과일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괴는데 밤 대추 호두는 일곱채, 땅콩은 열한채를 괴어서 높이를 맞추는데 모두 홀수로 괸다고 한다. 호두와 땅콩은 더욱 시간이 많이 걸려 한 접시 괴는데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데 각각 여섯 접시를 괴야 하니 모두다 괴고 나면 날이 샌다고 한다.
나. 길사의 새벽
음력 시월 열엿새날(양력 11.21) 새벽은 어둡고 춥다. 노종부가 기침을 하니 종부와 차종부가 자리를 떨고 일어나 부엌 일을 시작한다. 노종부는 제기를 만지고 종부는 탕과 채를 장만한다. 차종부와 친인척 부녀자들은 아침 식사 준비와 200명이 넘는 제관들의 음복례 준비를 해야 한다. 제상에는 삼채와 오탕이 올라가야 한다. 삼채는 나물인데 콩나물과 무우, 고사리와 도라지와 토란, 오이와 배추와 시금치를 담는다. 탕은 오탕을 만드는데 소탕(두부)탕, 육탕(쇠고기)탕, 육탕(돼지고기)탕, 어탕(명태), 알탕(계란) 이다. 이 얼마니 잔손길 많이 가는 음식인지 종가 사람이 아니면 모를 일이다. 예부터 백암 종가에서는 음식을 많이 잠만하여 제관과 마을 사람들이 넉넉히 먹을 수 있도록 했고 이웃과 마을에 어려운 사람들까지 불러 음식을 대접했다고 하니 적선과 나눔에 익숙했던 백암가의 정신을 오늘에 본받아야 할 것 같다.
다. 시도석(時到席)과 집사분정(執事粉定)
길사 예정 시각이 오전 10시다.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두루마기에 중절모자를 쓰고 종가로 걸어서 들어오는 종친도 있고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도포에 유건을 쓰고 오는 제관도 있다. 친인척 관계와 사돈 관계에 있는 사람 등이 서로 악수로 인사를 나누는데 원로 종친에게는 읍하기도 하고 허리 깊숙이 굽혀 절을 하기도하는 모습은 근래에 보기 드문 장면이다. 의관정제하고 상견례를 마친 종친들은 시도석에 들려 접수를 하거나 부조를 내기도 하고 방명록에 등록하기도 한다. 등록을 마친 제관은 분정에 참여한다. 집사분정은 전날 선성김씨 종친회관에 모여 이미 마쳤고 길사 당일 참석자에 대해 추가로 집사분정이 이루어지는데 분정 마지막 부분에 추가 참여자의 이름을 붓글씨로 써나가는데 그 필력이 예사롭지 않고 보기드문 장면이다. 집사분정한 한지(韓紙) 두루마리는 긴 현수막(懸垂幕)이 되어 구학정(龜鶴亭) 난간 아래에 걸었는데 그 길이가 자그마치 15m나 된다.
[시도석 사진 19] [집사분정 당일 사진 20]
이날 집사분정은 다음과 같다.
丙寅十月十六日 吉祀時執事
相禮 金永鎭
初獻官 金養?
亞獻官 宗婦
終獻官 金肅鎭 金濟晩 金漢珽 金暻鎭 金栢 金濟大
祝 金濟德 金聲浩 金明鎭 金周鉉 金昌濟 金善愚
贊者 金宗煥 外一人
陳設 金東元 外四人
奉香 金濟九 外五人
奉爐 金濟江 外五人
奉爵 金大鉉 外四人
奠爵 金濟旭 外四人
司尊 金濟卓 外六人
時到 金喜榮 外二人
直日 金光昊 外二十人
2. 진설(陳設)
종가 내당 대청(마루)에 보관된 제수는 집사분정 진설 담당자들이 제청(구학정)으로 운반한다. 떡과 제물은 편적대 통째로 들고오고 채와 탕 등 잔 그릇은 소반에 담아 옮긴다. 종가와 제청 사이의 거리가 100m 넘고 여섯 위에 차려질 제수의 양은 (편대 적대 국쟁반 접시 종지 등) 한 위당 33개 정도 되고 퇴주기와 향로 등 제기는 모두 200개가 넘는다. 그러기에 운반하는 인력도 남여 20여명이 넘는다. 옮겨진 제물은 정자 마루에 위별로 정렬해 두고 미비한 제수가 있나, 빠진 것은 없는지 점검한다. 점검이 끝나면 원위부터 진설을 시작한다. 앞줄 과실부터 진설하고 채와 탕을 놓은 다음 전과 적, 제물(고기), 면, 편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밥과 국을 진설하는데 조율이시(棗栗梨?), 좌포우혜(左脯右醯), 면서병동(麵西餠東)의 격식이 적용되고 있다.
진설도
교의 |
신주 |
|
2. 길사(吉祀)의 시작
가. 출주례(出主禮)
출주는 사당에서 신주를 모셔 내는 의식이다. 집사분정에 의해 선정된 축관 여섯명이 백암 선생 불천위 묘우(廟宇, 사당)으로 가서 사당 앞에 선다. 종손이 잠금장치를 열고 사당 안으로 들어가면 축관들도 모두 입실한다. 모두 묘전에 재배(再拜)하고 일어섰다가 꿇어앉는다. 축관이 신주를 모셔 간다는 고축(告祝)을 읽는다. 축이 끝나면 모두 일어나 재배(두 번 절함)하고 일어선다. 축관들은 신주를 받들어 모시고 원위를 선두로 고조고, 증조고, 조고 순으로 제청(祭廳)으로 향한다. 원위 신주는 제상 안쪽 교의(交椅, 제사를 지낼 때 신주를 모시는, 다리가 긴 의자)에 모시고 다른 5대조 신주는 제상 가운데 안쪽에 모시면 출주례가 끝난다.
나. 취위(就位)
종손과 종부를 비롯한 모든 제관들은 의관정제하고 진설과 출주례를 지켜보다가 신주가 모셔지면 각자의 자리에 선다. 즉 취위란 제사를 지내는 자리에 서는 것을 말한다. 이날 제관은 많고 자리는 좁아 여러 줄, 여러 겹으로 줄을 섰다. 종손과 축관, 헌관은 제청 안에 서고 원로들은 제청 마루에, 젊은 제관들은 정자 마당과 문간, 좌우측면에 임시 자리를 갈고 취위했다. 제관들은 불천위의 조상을 모신다는 자부심과 종손의 취임 축하하며 백암 선생을 추념(追念)하는 숭고(崇高)한 정신(精神)이 오래오래 전수(傳受) 되길 바라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자리에 선다.
나. 청행례(請行禮)
신주가 봉안되고 제관이 취위하면 찬자(贊者 金宗煥)가 초헌관(宗孫, 金養?) 에게 행례를 시작할 것을 청한다. 이 때부터 길사가 시작된다. 즉 청행례는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제사를 시작하자고 찬자가 제례의 주관자인 초헌관에게 청하는 예이다. [홀기사진 28]
다. 강신례(降神禮)
강신은 하늘에 계시는 혼(魂)과 땅에 계시는 백(魄), 즉 혼백(魂魄)을 인도하여 모셔오는 의식으로 옛 제례에서는 새벽(축시, 오전 1시-3시 사이)에 행하였으나 길사의 경우는 낮에 제를 올리기 때문에 제사의 첫 의식이 된다. 찬자(贊者,제향 때 홀기를 맡아보던 사람, 사회자)의 창홀에 의해 모든 집사가 위치로 나아간다. 축은 개독(開?, 제사를 지낼 때에 신주 모신 독을 엶)하고 제관들은 모두 재배한다. 알자가 초헌관을 인도하여 신위 전에 나가 꿇어앉는다. 먼저 삼상향(三上香) 한 후 꿇어앉는다. 봉작(奉爵)이 술을 부어 초헌관에게 주면 초헌관은 술을 모사 위에 세 번 나누어 붓는다. 부복하였다가 일어나 재배한다. [삼상향, 강신 사진29]
라. 초헌례(初獻禮)
제례에서는 삼헌(초헌, 아헌, 종헌)을 하는데 초헌관은 신위에게 첫 번째 잔을 올리는 순서로 반드시 주인(종손,金養?)이 드리며 헌작, 독축, 재배 순으로 이어진다. 찬자가 “행초헌례” 창홀에 의해 알자가 초헌관을 인도한다. 초헌관은 원위(元位, 불천위) 전에 끓어 앉는다. 봉작이 술잔을 소반 위에 잔을 놓고 술잔에 가득 따르면 헌관이 받아 전작에게 주면 전작이 잔을 받아 신위 전에 올린다. 헌관이 부복하면 원위(불천위) 축관이 초헌관 왼쪽에서 동향으로 꿇어 앉아 축문을 읽는다. 축이 끝나면 모두 일어나 재배하면 원위 초헌이 끝난다. 이어서 향로와 집사가 고조위 전으로 이동하고 따라서 초헌관도 고조고위 전으로 이동하여 헌작, 독축, 재배를 하고 증조고위 전으로 이동하며 조고위와 고위 전도에서도 위와 같이 반복한다. 마지막으로 오대조위 전에서 헌작, 독축, 재배하면 초헌례가 모두 끝나고 초헌관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不遷位 祝
維歲次庚寅十月庚申削十六日乙亥
유세차경인시월경신삭십육일을해
孝玄孫養?敢昭告于
효현손양묵감소고우
顯先祖考贈資憲大夫吏曺判書行嘉義
현선조고증자헌대부이조판서행가의
大夫吏曺參判諡敏節公府君
대부이조참판시민절공부군
罪逆不滅歲及免喪世次迭遷昭穆?序
죄역불멸세급면상세차질천소목계서
先王制禮不敢不至謹以淸酌庶羞祗薦
선왕제례불감부지근이청작서수지천
歲事 上
세사 상
饗
향
高祖考位 祝
維歲次庚寅十月庚申削十六日乙亥
유세차경인시월경신삭십육일을해
孝玄孫養?敢昭告于
효현손양묵감소고우
顯高祖考處士府君
현고조고처사부군
顯高祖?孺人義城金氏
현고조비유인의성김씨
罪逆不滅歲及免喪世次迭遷
죄역불멸세급면상세차질천
昭穆?序先王制禮不敢不至
소목계서선왕제례불감부지
謹以淸酌庶羞祗薦歲事 上
근이청작서수지천세사 상
饗
향
曾祖考位 祝
維歲次庚寅十月庚申削十六日乙亥
유세차경인시월경신삭십육일을해
孝曾孫養?敢昭告于
효증손양묵감소고우
顯曾祖考處士府君
현증조고처사부군
顯曾祖?孺人完山崔氏
현증조비유인완산최씨
顯曾祖?孺人冶城宋氏
현증조비유인야성송씨
罪逆不滅歲及免喪世次迭遷昭穆
죄역불멸세급면상세차질천소목
?序先王制禮不敢不至 謹以淸酌
계서선왕제례불감부지 근이청작
庶羞祗薦歲事 上
서수지천세사 상
饗
향
祖考位 祝
維歲次庚寅十月庚申削十六日乙亥
유세차경인시월경신삭십육일을해
孝孫養?敢昭告于
효손양묵감소고우
顯祖考處士府君
현조고처사부군
顯祖?孺人眞城李氏
현조비유인진성이씨
顯祖?孺人義城金氏
현조비유인의성김씨
罪逆不滅歲及免喪世次迭遷昭穆
죄역불멸세급면상세차질천소목
?序先王制禮不敢不至 謹以淸酌
계서선왕제례불감부지 근이청작
庶羞祗薦歲事 上
서수지천세사 상
饗
향
考位 祝
維歲次庚寅十月庚申削十六日乙亥孝子養?
유세차경인시월경신삭십육일을해효자양묵
敢昭告于
감소고우
顯考處士府君 喪制有期追遠無及今以
현고처사부군 상제유기추원무급금이
吉辰式遵典禮?入于廟 謹以淸酌
길진식준전예제입우묘 근이청작
庶羞祗薦歲事 上
서수지천세사 상
饗
향
五代祖考位 祝
維歲次庚寅十月庚申削十六日乙亥
유세차경인시월경신삭십육일을해
五代孫養?敢昭告于
오대손양묵감소고우
顯五代祖考通德郞府君
현오대조고통덕랑부군
顯五代祖?恭人義城金氏 今以?遷
현오대조비공인의성김씨 금이조천
親盡埋安神主墓側開于破瑩域
친진매안신주묘측개우파영역
不勝感愴 謹以淸酌用伸虔告
불승감창 근이청작용신건고
謹告
근고
五代祖 埋魂 考位 祝
維歲次庚寅十月庚申削十六日己亥
유세차경인시월경신삭십육일기해
五代孫養?敢昭告于
오대손양묵감소고우
顯五代祖考通德郞府君
현오대조고통덕랑부군
顯五代祖?恭人義城金氏
현오대조비공인의성김씨
?以先考處士府君喪期已盡禮當遷主
자이선고처사부군상기이진예당천주
入廟先王制禮祀止四代心雖無窮分則
입묘선왕제례사지사대심수무궁분즉
有限神主當?將埋于墓所 不勝感愴
유한신주당도장매우묘소 불승감창
謹以淸酌庶羞百拜告辭 上
근이청작서수백배고사 상
饗
향
五代祖 山神 祝
維歲次庚寅十月庚申削十六日乙亥
유세차경인시월경신삭십육일을해
幼學宣城金養?敢昭告于
유학선성김양묵감소고우
土地之神今爲五代祖考通德郞府君
토지지신금위오대조고통덕랑부군
五代祖?恭人義城金氏神主親將
오대조비공인의성김씨신주친장
埋于墓所神其保護?無後艱謹盡
매우묘소신기보호비무후간근진
以 酒果祗薦于 神 上
이 주과지천우 신 상
饗
향
축은 축문이다. 즉 제사 때 돌아가신 선조에게 드리는 글이다. 요즘 세대들은 한문으로 된 축문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시대에 맞게 한글로 번역된 축문을 원하기도 하고 또 그렇게 제사를 지내는 집도 있다고 한다.
축문을 한글로 해석하면
“돌아가신 15대 할아버지 할머니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게 되니 감회가 새롭고 추모의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정성껏 마련한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을 드리오니 많이 드시옵소서” 라는 뜻 이다.
마. 아헌례(亞獻禮)
아헌례는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순서로 길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종부(宗婦 (昌原황黃씨氏, 鶯相)가 잔을 올린다. “행아헌례” 창홀에 의해 제청 북문 밖에 있던 종부가 좌우 시자(侍者)의 부측을 받으며 제청 안으로 들어와 신위 전에 꿇어앉는다. 봉작이 술을 부어 술잔이 종부의 손을 감은 수건(手巾)에 살짝 닿게 한 후 전작에게 전하면 전작이 신위 전에 잔을 올린다. 종부는 시자의 부축을 받으며 사배(四拜)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고조고위 전과 증조고위전, 조고위전, 고위전, 오대조고위 전 등 모두 여섯위 전에 네 번씩 모두 24번의 절을 올린 후 제자리로 돌아간다.
바. 종헌례(終獻禮)
종헌례는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순서로 길사(吉祀)에서는 초헌관인 종손이 여섯 위에 잔을 올리고 아헌관인 종부가 여섯 위에 잔을 올린 후 아헌은 각각 헌관을 정하여 잔을 올린다. 이에 먼저 원위 전 종헌관(金肅鎭)이 신위 전 앞에 꿇어앉는다. 봉작이 술잔을 내려 술을 쳐서 헌관에게 전하면 종헌관은 잔을 받아 첨작에 대비해 잔을 세 번에 나누어 비운다음 전작에게 주면 전작이 신위 전에 잔을 올린다. 다음으로 고조고위 전 종헌관(金濟晩), 증조고위 전 종헌관(金漢珽), 조고위 전 종헌관(金暻鎭), 고위 전 종헌관(金栢) 오대조고위 전 종헌관(金濟大) 순으로 잔을 올리고 재배한 후 제자리로 돌아간다.
사. 첨작례(添酌禮)
첨작이란 초헌, 아헌, 종헌에 걸쳐 세 잔을 드렸지만 더 권해 드리는 의식으로 종헌에 드린 잔에 술을 가득 채우는 예이다. 백암 종가 길사에서는 집사들이 주전자로 원위에서 오대조위 까지 술잔에 세 번 나누어 첨작했다.
아. 유식례(侑食禮)
유식례는 신이 음식을 편안하게 드시도록 하는 절차로서 삽시정저(扱匙正箸)라 하여 집사가 메 뚜껑과 메국수 뚜겅을 열고 숟가락을 메 가운데 꽂고 젓가락은 시접 위에 가지런히 놓는다. 모든 제관은 신이 음식을 드시는 동안 부복한다. 부복하여 기다리는 동안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유지(遺志)를 받들 것을 다짐한다. 신이 아홉 숟가락을 뜨시는 시간이 지난 후 축관은 세 번 헛기침으로 식사가 끝났음을 알리면 모두 일어난다.
자. 진다례(進茶禮)
진다례는 식사후 신에게 차를 드리는 예이다. 백암 종가 길사에서는 철갱(撤羹)이라하여 국그릇을 비우고 그 국그릇에 물을 부은 다음 숟가락으로 밥을 세 숟가락 떠서
물에 말아 숭늉을 만든다. 그리고 숟가락은 숭늉 그릇에 걸쳐놓다. 신이 숭늉을 드시는 동안 모든 제관들은 국궁하고 있다가 숭늉을 다 드신 시간이 이르면 축관의 헛기침으로 평신한다.
타. 낙시저(落匙箸)와 합독(闔?)
신이 식사를 다하였으므로 집사는 메에 꽂아놓은 수저를 내려 시접 위에 올려놓고 밥그릇의 뚜껑을 덮는다. 제관들은 모두 재배하고 바로 선다. 이제 신에 대한 예가 다 끝났으므로 합독한다. 합독이란 신위함의 뚜껑을 닫는 것을 말한다.
이어서 축관이 초헌관에게 “이성(利成)” 이라고 고하여 길사의 모든 절차를 마친다.
그 후 신주(神主)를 복위(復位)하고 축문은 불태운다. 그러면 모든 제관과 친척빈객(親戚賓客)이 재배(再拜)하고 철상(撤床,차려놓은 제물을 물려낸다)한다.
하. 길사 음복연(飮福宴)
모든 제례 절차가 끝남에 따라 철상을 하게 되고 소반에 담은 제물은 내당 대청과 부엌 옆에 있는 과방으로 옮겨진다. 과방에서는 다시 음복상을 차려 모든 제관이 음복할 수 있도록 사당과 사랑채 그리고 임시(비닐하우스)식당로 낸다. 200여명이 먹을 수 있는 음식상을 차리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이 때 제관들은 술과 음식을 나누면서 조상 숭배와 가문의 명예에 대한 덕담을 나누기도 하고 후손들이 학문과 예의를 존중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종손과 종부를 비롯한 집사들의 수고를 치하(致賀)하고 그 손길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제관들이 종가를 떠날 때는 종가에서 만든 음식 가지가지를 봉개로 싸서 참여자 손에 들려준다. 이렇듯 종가는 늘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는 교육장이 된다.
출처: 초암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초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