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저는 늘 새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제가 신앙인이어서이기도 하지만 사는 보람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먹을 수 있고, 입을 수 있으며, 잠잘 수 있는 세상. 누구나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고 행복을 꿈꾸며 사는 세상 그리워하며 삽니다.'
요즈음 이런 꿈이 너무 터무니없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세상이 제 꿈의 맞은편 길로 빠르게 가는 듯싶어서입니다. 그래도 저는 실망하지 않고 나름대로 제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합니다. 그 노력의 한가지를 작은책 독자들과 나누며 할 수 있다면 하는 기대도 해봅니다.
새로운 세기를 살기 시작하며 그동안 인류의 행적을 보면 적어도 세가지에서 큰 잘못을 저지른 듯싶습니다. 유전공학이 첫째요, 핵산업이 둘째요, W.T.O로 드러난 무한경쟁이 셋째라고 여깁니다. 이모두가 저와 저의 둘레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눈으로 제 삶의 둘래(환경)를 살펴보았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행복을 꿈꾸며 살기보다는 겨우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 저의 느낌입니다. 특히 제가 지금 살고 이는 곳은 더 합니다. 국가 산업의 기반이며 중심 기둥 노릇을 하는 전기를 생산하지만 참으로 무서운 시설인 핵발전소가 있으니까요. 1기에 2조 2천억 원 정도 하는 발전소기 네 개니까 8조 8천억입니다. 생산하는 전기도 1년에 대략 2조 원어치입니다. 엄청납니다.
저는 이 거대한 산업을 반대하는 운동 조직들의 연대 대표입니다. 우리는 절대 핵산업에 찬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핵과 생명은 공존할 수 없다'는 선언과 평화로운 에너지 생산을 통한 새로운 문명건설을 목표로 일합니다. 에너지가 문명을 바꾼답니다.
핵발전소의 발전 원리는 파괴입니다. 생성과 파괴가 자연스런 생명의 과정입니다만 핵발전소는 전기를 얻기 위해 기계조작으로 물질을 파괴하고 이 때 나오는 열을 전기로 변화시킵니다.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 과 정에서 방사능 물질이 나오고 방사능 물질은 생명에 영향을 줍니다.
만일 방사능 물질이 생식세포를 건드리면 자손 대대로 증거가 남는답니다. 방사능 물질이 많은 구역에서 노동자가 일을 하려면 우주인처럼 방호복을 입고 정한 시간 동안만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을 '원자 인간' 이라 부릅니다. 위험은 늘 있고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너무 위험합니다. 핵연료가 분열하면서 내는 온도가 5천 도에서 7천 도 정도라니. 저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만일 사고가 나면 끔찍합니다. 미국의 드리마일 발전소나 구 소련의 체르노빌 발전소가 너무 분명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또한 쓰고 남은 연료의 플루토늄은 10g만으로 현재 인류를 모두 죽이고도 남는 답니다. 그런데 플루토늄을 만드는 발전소의 수명은 대개 30년 정도지만 이 플루토늄의 독성이 생명에 해가 없을 만큼 되는데 약 30만 년 정도 걸린답니다. 그래서 이 상상할 수 없는 지질학의 시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해야 합니다. 그런 장소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전기를 쓰는 우리가 책임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겠습니다. 또한 플루토늄은 인류가 개발한 가장 무서운 핵무기를 만드는 원료입니다.
이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늘 안전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기술 수준에서 안전이지 모두가 인정하는 절대 안전은 결코 아닙니다. 그 동안 일어난 사고들이 증명합니다. 저는 이 분들이 안전신화에 중독되었거나 세뇌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는 아직 농업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업사회의 특징인 초정밀, 완벽한 안전문화는 우리에게 아직은 낯설다고 생각합니다. 곧 설계는 내진 설계를 했지만 시공도 완전한 내진 시공을 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해변을 낀 평화로운 농촌 마을에 발전소가 들어서면 생기는 일이 무척많습니다. 산업사회에서 경쟁을 원리로 공부를 한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도시의 향략문화를 가지고 밀물처럼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이 문화의 세력은 대중매체를 등에 업고 오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소리 없이 이어온 전통 문화를 한순간에 여지없이 깨버립니다.
시골 마을에 밀려온 국적 없는 산업 사회의 향략 문화는 자리잡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졸지에 외딴 시골 마을의 사람들은 문화의 공백을 겪으며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 내버려 둔 꼴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대대로 살던 이들은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밀려온 이들은 10년을 넘게 살아도 정을 주지않고 떠날 생각만 합니다. 더구나 함께 따라 온 돈은 정으로 살아 온 마을 사람들을 갈갈이 찢어놓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땅에서 태어난 아가씨는 시집가기도 힘듭니다. 농산물도 수산물도 기피대상입니다. 버려진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다 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작은책'이 이문제에 관심을 보인 것을 너무너무 기뻐합니다.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면서 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의 내용, 그리고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우리 사회의 내일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80:20으로 지구를 파멸로 이끌고, 세상의 모든 것에 독과점을 인정하여 불평등을 구조화한 자본주의와 그것을 이끌어 가는 산업사회의 재생산이 아니라 적정 기술로 적정량을 생산하고 적정량을 함께 나누어 사용하는 세상. '모든 너'의 둘레인 나를 귀히 여기고, 나의 둘레인 '모든 너'의 둘레인 나를 귀히 여기고, 나의 둘레인 '모든 너'를 소중히 여기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면 참 좋겠습니다. 장사익 님이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라며 '희망가'를 울부짖습니다. 작은책 독자 여러분, '한국 반핵 평화 운동 연대'를 기억해 주십시오.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새로운 세기의 첫 인사 올립니다.
-'작은 책' 기고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