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꽤 여러 번 가봤던 곳이었기도 하지만, 굳이 그런 경험적인 면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건 사람들 간의 인맥으로건 모든 인과와 관계가 교차하는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무수한 경우의 수 중에서도 조금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서울여행을 다녀왔다.
대한민국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그 학생들을 이끌어주는 무수히 많은 부모님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결정하는 교육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최고로 뽑는 3개의 대학, 서울대와 연세대 그리고 고려대의 투어를 다녀온 것이다.
물론, 하루 동안에 SKY를 전부 꼼꼼하게 살펴보고 오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면도 없지 않은데다가, 그 대학들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를 제공해줄 선배님들 역시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 모든 것을 전수(?)해주시긴 선배님들의 개인적인 학업이나 다른 활동에 많은 지장이 될 것을 우려하여 하루 동안의 일정을 통해서 대략적으로나마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으로 손꼽히는 ‘SKY’의 특징과 그곳에서 공부하는 선배들의 비법을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나 같은 경우에는 본래 이 활동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학교에서 상위권 학생들의 반인 SKY반에 속해있지 않지만, 나 역시 공부를 하는 학생인데다가 이런 기회를 통해서 좀 더 선배들에 대한 정보나 대학 입시에 대한 것을 알고 싶었기에 입학사정관제도의 대가이신 권혜수 선생님과 함께 이번 투어에 다녀올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엔 나처럼 애매한 성적을 가지고 이런 대학에 다니는 선배들이나 이런 대학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과 같이 행동한다는 것이 처음엔 조금 어색하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호랑이를 그리려다가 고양이라도 그린다고, 이런 기회를 통해서 내가 가진, 스스로 정해버린 한계나 다른 친구들의 비전, 선배들의 노력이나 다른 부모님들의 기대에 대해서 나 스스로 이해를 하고, 본받을 부분은 본받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하는 부분은 고쳐나가는, 좋은 활동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서울까지 가는 차는 꽤 오래 걸렸다. 항상 버스를 타고 올라가긴 했지만, 전세버스를 이용해서 올라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나름 긴장이 되기도 하고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3시간이 좀 넘어서 버스를 타고 갔을 터였지만, 새벽동안 부모님과 다음 날의 투어나 서로 고민하고 해결해야할 문제에 대한 피드백을 하느라 잠이 부족했기에 버스에선 거의 잠으로 보냈었다. 서울에 간다고 생각을 하면 설레고 뭔가 해보려는 마음을 가져야할텐데, 이 나이에 벌써 신선함이란 젊음의 선물을 잃은 건 아닐까? 스스로는 그저 잠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핑계밖에는 안 될 듯도 싶다. 어찌됐건 서울대 정문, ‘샤’마크를 지나서 버스 정류장 앞에서 내리고 조금 기다리자,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권혜수 선생님이 계셨다. 그리고 잠시 뒤엔 서울대에서 재학 중이신 선배를 만날 수 있었다. 이름도 물어봤으면 좋았으련만, 내 3초 붕어기억력은 그런 간단한 것조차 생각해내지 못한 듯해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무지무지 짜증나기도하고 어이가 없다. 선배를 따라서 처음으로 간 곳은 ‘규장각’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에 나는 처음엔 조선시대부터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한옥건물정도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규장각 앞에 서자 그것은 큰 오산임을 깨달아버렸다. 현대식의 커튼월로 멋지게 처리된 건물의 모습은 요즘 볼 수 있는 다른 건물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도 표지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법! 그곳에 전시되어있는 각종 국보급 문화재의 필사본이나 원본들은 처음에 잘못된 판단을 180도 바꿔놓고도 남을 정도였다. 특히 교과서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용비어천가나 대동여지도 같은 유명한 시료들을 통해서 사진만으로 봐왔던 것 이상의 무언가를 느낄 수가 있어서 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규장각을 뒤로하고, 우리 일행은 법과대학 건물을 지나서 중앙도서관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소리인가? 도서관 단체관람은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선배가 직접 1시에 찾아간다고 예약까지 해주셨건만, 다른 두 개의 대학도 돌아봐야하는 일정관계상 아쉽게도 도서관을 구경해보진 못하였다. 그 대신, 점심을 먹기로 결정이 났던지라 서울대 캠퍼스 내에 자리 잡고 있는 한 한정식 전문점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코 일반적인 점심은 아니었던 것이, 서울대학교의 행정실 총무님이 우리 영생고 출신이시란다. 그래서 일반적인 투어를 했다면 절대로 해보지 못했을, 총무님이 직접 사주신 점심을 먹으며 우리를 안내해주신 두 선배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뒤 짧게 서울대 캠퍼스관광을 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후문 앞에서 두 선배와 헤어지게 되었다. 다음 목적지는 연세대학교, 물론 나는 이동하는 내내 그대로 곪아 떨어져버렸었다. 연세대학교에서 내리자 이번엔 가슴에 매단 명찰 때문에 이름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김철은 선배와 연세대학교를 둘러볼 수 있었다. 우리 일행에게 더욱 좋았던 점은, 김철은 선배가 학교 홍보동아리에 속해있다는 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을 전혀 지루하게 만들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가는 설명과 학교 내의 여러 가지 역사적인 시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김철은 선배덕분에 연세대학교 캠퍼스를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둘러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김철은 선배는 내려갈 무렵에는 어머니들 사이에서 매우 큰 호감을 얻었다나, 어쨌다나?
선배가 우리를 맨 처음 안내한 곳은 조그마한 한옥건물이었다. 광혜원이란 이름을 가진 이곳은, 연세대학교라는 이름의 ‘연’과 ‘세’의 뿌리가 되는 중요한 장소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런 덕분일까? 광혜원은 지난 연세대학교 100주년기념을 맞이해서 뒤의 박물관과 함께 복원이 되었다고 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같이 지어진 현대식 박물관의 2층에 장독대가 놓여 있다는 점인데, 선배의 말로는 양 건물의 괴리감을 덜하게 만들려는 학교와 학생들의 세심한 배려의 결과라고 한다. 광혜원을 지나서 우리가 다음으로 간 곳은 루스채플이었다. 여기서도 연세대학교의 세심한 배려를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무리 연세대학교가 기독교 이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도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가진 학생들을 배려해서 십자가와 함께 종을 놓았다던가, 건물의 양식을 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의 양식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다음의 대강당에서도 그런 부분을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이, 대 강당 위의 십자가를 천, 지, 인의 합해진 형태로 만들어서 우리나라의 유교 사상을 같이 수용하고 있다는 점을 볼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상당히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여러 드라마의 촬영지로 쓰일 정도로 아름다운 연희관이라던가 연세대학을 이루는 ‘연’의 뿌리가 되는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하신 언더우드씨의 동상과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윤동주 시인의 필체 그대로 새겨진 비석이라던가, 연세·삼성학술정보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최첨단 시스템을 이용한 여러 국적의 학생의 편의를 목표로 하는 도서관 같은, 내 3초 붕어기억력이 한계를 보일 정도로 수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모든 실외관람이 끝난 다음, 실내로 들어가서 다시 연세대학교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고 우리를 위해서 노력해주신 김철은 선배와 인사를 하였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는 서로 비교를 당하는 비슷한 수준의 대표적인 두 학교였기에 김철은 선배역시 고려대학교보다 연세대학교가 더 좋다는 여러 ‘증거(?)’를 보이며 고려대학교를 비하하였다. 물론 서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같이 발전해가는 긍정적인 비난이지만 외부의 시야로 보면 조금 웃기기도하고 한편으론 저런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선배들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버스를 타고 고려대학교로 향하였다. 이번엔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 가는 도중에 실컷 잤던지라 내내 각성한 상태로 캠퍼스의 정문을 볼 수 있었다. 처음 고려대학교의 캠퍼스를 보고 느낀 것은 ‘멋지다’라는 느낌이었다. 웅장한 중세풍의 건물들과 넓게 나있는 광장과 그 뒤를 살짝 둘러싸고 있는 산의 모습까지, 그 무엇 하나 놓칠 수 없는 장관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권혜수 선생님이 하신, ‘캠퍼스건물만을 보고 SKY중 하나를 지원한다면, 다들 고려대학교를 선택할 것이다.’ 라는 말이 정말 공감이 갔다. 조금 문과 쪽의 주요 건물 몇 가지를 둘러보고 선배와 잠시 벤치에 앉아서 궁금한 것을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여러 질문이 오갔지만 특히 메인이 됐던 것은 아무래도 고려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던 선배의 ‘논술전형’이 아니었나 싶다. 선배님의 조언으로는 논술전형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기회를 더 얻는 것이지, 그것이 절대적으로 대학을 가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는데, 몇몇 아이들은 그와 대조되게 ‘정 내신 안 되면 논술로 대학가야지’라고 해버리는지라, 이 짧은 머리로도 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안타까움이 들기도 하였다.
이야기가 끝나고, 연세대학교 김철은 선배가 시험을 본 다음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갔다. 물론, 저녁식사도 허투루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선배들의 조언이나 부모님과 학생들의 질문을 통해서 좀 더 얻어갈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의외였던 것이, 고려대와 연세대는 좀 라이벌 의식이 강할 터인데 고려대 선배보다 연세대 선배가 더 나이가 많아서 그런 라이벌 의식 이상으로 선배에 대한 예의를 존중해주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고려대 선배는 연세대를 까는 발언을 한 번도 하질 않았다. ㅎ
이제 진짜 전주로 내려가야 할 시간이 되고, 나는 지금 버스 안에 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비록 선배들이 알려준 수많은 조언과 지혜 중에서 건질 수 있었던 것은 일부였지만, 이렇게 정리를 해놓음으로써 그 일부라도 제대로 활용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젠가 오늘 경험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될 날 이오면 다시 이 글을 보면서 그때의 그 감정을 다시 경험해보리라고 믿으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