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생로병사의 인간의 실존적인 괴로움(苦苦)과 원증회고(怨憎會苦), 애별이고(愛別離苦), 구부득고(求不得苦)의 정서적인 괴로움(壞苦)을 포함, 존재를 구성하는 오온(五蘊)을 영원한 자아라고 집착하는 것을 괴로움(五取蘊苦, 行苦)으로 본다.
엡스타인은 괴로움을 전반적인 불만족으로 해석하였다. 고고(苦苦)는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써 인간이 바라는 불멸(不滅)의 환상과 충돌하는 것으로 보았다. 괴고(壞苦)는 호불호(好不好)를 원인으로 하는 불만족의 느낌이다. 행고(行苦)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족’으로 불완전성, 비실체성, 불확실성, 불안정한 정서에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그의 이러한 해석은 심리적 괴로움의 측면을 강조한 것이며 ‘이루지 못한 불멸’과, ‘불만족의 느낌’ 때문에, ‘초자아(superego)’ 즉, 이상적 자아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오는 2차적인 괴로움이다.
초기경전에서 괴로움의 원인은 3가지 갈애(渴愛)로 제시되는데, 감각적 쾌락, 존재(有), 비존재(非有)에 대한 갈망을 말한다. 엡스타인은 이 갈애를 프로이트가 제시하는 정신의 구성 요소인 본능(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해석하였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欲愛)는 프로이트의 쾌락원칙(id)과 그 의미가 상통한다고 보았다.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는 과대감으로 나르시시스적 갈망, 즉 자신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그 자족감(自足感)을 추구하는 갈망으로 보았다.
불교의 유애(有愛)는 ‘행복을 경험하는 자아가 영원히 존속하기를 바라는 갈망’이다. 이에 반해 엡스타인은 자아추구의 부정적 측면을 유애(有愛)로 보았다. 프로이트는 ‘본능(id)과 초자아(superego)가 있는 곳에 자아(ego)가 있게 하라’라고 하면서, 건강한 자아에 대한 추구를 강조하였다. 이는 정신분석치료의 1차적 목표가 자아의 강화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문에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건강한 자아(ego)에 대한 추구는 치료의 핵심요소로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교의 가르침에서 유애(有愛)는 초자아(superego)에 대한 갈망뿐만 아니라 자아(ego)에 대한 갈망도 포함한다.
엡스타인은 비존재에 대한 갈애(無有愛)를 공허감과 연관되는 ‘자신의 무가치성에 대한 믿음’ 혹은 허무주의로 보았다. 무유애가 괴로운 현실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죽음을 갈망하는 것이므로 불교의 입장과 유사하다.
불교는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를 남김없이 소멸시킨 것을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한다. 한편 엡스타인은 그 상태를 ‘승화(sublimation)’로 보았다. 안나 프로이트가 주장한 자아의 방어기제의 하나이인 승화는 정신적 전환 상태로, 자아 리비도(ego libido)와 대상 리비도(object libido)의 에너지를 현실에서 수용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정신분석의 입장에서 승화는 ‘유아의 소망적 충동의 불가능한 요구들’로부터 벗어 날수 있는 가능성으로, 충동이 더 상위의 목표로 대체되는 것이다. 이러한 엡스타인의 해석은 불교의 전통적인 갈애의 소멸과 차이를 보인다. 불교에서 말하는 갈애가 소멸된 상태는 생로병사(生老病死) 등의 모든 괴로움이 소멸한 열반(涅槃)을 의미한다. 승화는 ‘유아기에 형성되는 충동’에서 형성되는 갈애(渴愛)를 수용 가능한 형태로 전환시킴으로써, 현재의 괴로움을 유발하는 ‘불가능한 욕구’로부터 벗어나는 상태, 추동적 에너지를 좀 더 건강한 성장을 위한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므로,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세속적인 선업(善業)을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로 팔정도(八正道)을 제시한다. 엡스타인은 팔정도 가운데 특히 바른 마음챙김(正念)을 정신분석 기법과 비교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의 방법 꿈의 해석, 자유연상과 함께 분석가가 지녀야할 태도로 ‘고르게 떠있는 주의(evenly-hovering attention)’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주의에 대한 강조를 팔정도의 마음챙김과 비슷하다고 본 것이다. 엡스타인의 이러한 이해에 대해 많은 심리학자들이 동의하며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으로 마음챙김 명상(위빠사나)을 통해 주의를 기를 수 있다고 보았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불교신문 2705호/ 3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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