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기독병원으로 검사 받기 위해 떠난 아내와 강 성도님
지난 주 원주 기독병원에 갔을 때 함께 간 안사람과 강 성도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갑상선 때문에 진료를 받고 나와선 아내는 한숨부터 쉰다.
“갑상선 저하증이라 약을 그렇게 오랫동안 복용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어요. 한번만 큰 병원에 와서 진료를 받았어도 되는 것이었는데.”
성도님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갑상선 약을 드셨다. 기독병원에서 보내준 처방전으로 평창읍에 있는 한 가정의원에서 그동안 약을 처방해준 것이다. 멀리 원주까지 갈 수가 없으니 그렇게라도 약을 타온 것이다. 기독병원 담당 선생님도 강 성도님이 다니시던 가정 의원과 직접 전화통화를 하시더니 그동안 먹지 않아도 될 약을 다년간 먹었다며 혀를 차셨다는 것이다. 그동안 누군가 조금만 관심을 갖고 챙겨주었다면 되었을 것을…….
성도님은 혼자 사신다. 함께 동거하던 아저씨와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별거 중이다. 합천에 살다가 어려서 양녀로 부산 어느 아주머니 댁에 간 이후로 그 집에서 나와 공장을 돌아다닐 때부터 줄곧 혼자였다고 한다. 여자 혼자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힘든 것임을 성도님은 요즘 몸으로 보여주고 계신다. 혈압에 당료에 고지혈증에 갑상선 저하증까지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다. 거기다 요즘은 주변에서 조금씩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 걱정들을 하신다. 내 앞에서는 되도록 조심하려고 노력하셨는데 얼마 전부터 함께 살던 아저씨가 몰래 들어와서 집안 물건을 하나씩 훔쳐간다고 열을 올리신다. 알고 보면 자신이 잘못 두고는 엄한 사람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꾼 적도 없는데 꾼 돈 갚으라며 찾아오기도 하고 밥 차려 달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 주변에 사는 이웃들도 성도님을 보면 짜증도 나지만 걱정이 앞선다. 혼자 살고 있는 처지에 그것도 기초생할 수급 대상자인 상황에서 정작 아프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는 것이다. 피붙이는 언니 하나가 있긴 하지만 서로 연락을 안 하고 지낸지 꽤 된 것 같은 눈치다.
아내는 바쁘다 강 성도님이 요즘 하루에 몇 번씩 사택을 오간다. 성도님은 아침저녁으로 아내에게 약을 타간다. 약을 깜빡하고 못 먹기 일 수고 또 못 먹었다고 몰아서 먹는 경우도 있어서 아내가 내린 응급조치다. 아내도 물건을 놓고는 이리 찾고 저리 허둥거리는 성격인데 참 볼만하다. 얼마 전에는 전화가 왔다. 급하게 아내를 찾는 것이다. 변비가 너무 심해서 화장실에 앉아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아내는 급하게 차를 몰았다. 그리 가 놓고는 연락이 없다. 한참 후에 와서 하는 말이
“딱딱한 똥이 걸려서 나오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고 얼마나 고통스러워하시는 지 손가락으로 빼보려고 해도 나오질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차에 태우고 평창의료원에 갔어요. 응급실 선생님이 관장을 해주긴 했는데 워낙 기운이 없어서 숙변이 다 나오지 못하고 그냥 겉에 있는 것들만 나오고 말았어요.”
그 다음부터 아내는 전화가 오면 가장 먼저 화장실을 다녀왔는지부터 챙긴다. 일본이 낳은 20세기 성자라고 불리는 가가와 도요히코가 세계 2차 대전 중 못 먹어서 극심한 변비에 걸린 이들을 위해 항문에 손을 넣어주었다고 한다. 그래도 변을 보지 못하면 자기 혀로 항문을 녹여 주었고 그렇게 하고 나면 변을 보았다고 한다. 나는 아내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가가와 도요히코가 왔다고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어제도 멀리 다녀오면서 아내는 가장 먼저 강 성도님네 전화를 했다. 사택에 연탄불이 꺼진 것도 밥솥에 밥이 없는 것도 아내에게는 별 관심 밖이다. 전화로 저녁에 먹을 약을 성전 신발장 어디쯤에 놓아두었으니 찾아다 꼭 먹으라는 것이다. 지극 정성이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기야 베델의 집에서 일할 땐 투석을 하는 순간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아주머니, 그 똥오줌을 다 받아내면서도 편하게 가시라고 두 손을 잡아주던 아내였다. 술에 취해 한 겨울 얼어 죽기 딱 좋게 누워 있던 할아버지를 업고는 근처 쪽방에 가서 처녀 몸으로 목욕을 시켜 주었던 아내였다. 그 때 관성이 나오는 것일까 요즘 아내를 보면 불꽃이 인다.
새벽 기도회를 위해서 머리를 감고 나왔더니 아내도 덩달아 나온다. 잠을 설친 모양이다. 조금 더 자라로 했지만 아내는 그 시간부터 갈 준비를 서두른다. 기독병원에서 8시 30분 검사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6시 정도에는 출발을 해야 한다. 어두운 길이고 초행이니 마음이 더 급한 모양이다.
주기도를 한 뒤 나는 조용히 내려왔다. 그리고 강 성도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나도 덩달아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건강하시길 주님 피 묻은 손으로 만져 주시길. 가고 오는 동안 이처럼 따뜻한 시간들이 되길. 세상에 나 혼자 같지만 그러나 둘러보면 따뜻한 사람들이 있음을 무엇보다 우리 주님이 있음을 잊지 않으시길…….
새벽기도 귀가차량운행을 하려고 했더니 아내는 벌써 차를 끌고 나갔다. 언제나 나보다 아내가 빠르다. 차량 운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짐을 꾸린다. 밥상을 차려준다 했더니 굳이 싫단다. 그리고는 바나나 하나를 챙겨 먹는다. 아무래도 검사를 위해 금식하는 성도님 때문인 것 같다. 아직 어두운 길 아내는 차를 몰고 갔다. 지금 가면 저녁은 되어서 올 것이다. 오전에 하나 오후에 하나 검사가 두 번이다. 한꺼번에 몰아서 하면 좋을 것을 그런 큰 병원은 병원 계획에 환자들이 맞추어야 한다.
조금 있으니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다급했다. 평창 읍내에서 어떻게 가야 하냐는 것이다. 주천 쪽으로 나 있는 길을 알려 주었는데 자꾸 내비게이션은 방림 쪽으로 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내비게이션은 고속도로로 무조건 안내를 한다. 그런데 그 길보다 조금 더 가깝고 좋은 길이 있다. 그래서 평창에 사는 이들은 고속도로를 가지 않고 주천에서 신림으로 가는 길을 많이 탄다. 우리도 빠른 고속도로보다는 평창강을 끼고 도는 그 길을 좋아한다. 그 옛날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이들이 봉평 평창 장을 돌고 주천 장으로 가기위해서 걸었을 법 한 그 길을 말이다.
아내가 걱정이다. 제 시간 맞춰서 도착은 할지 그리고 검사는 제 때 받을 수 있을지 그러나 그 무엇보다 검사 결과는 좋을지 말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 하나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