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영광
우리는 결혼식을 앞둔 신부가 며칠 전부터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얼굴 마사지를 하는 등 자신을 가꾸고 단장하는 모습을 봅니다. 혼인예식은 오직 사람에게만 있는 풍습으로서 이 날은 신부에게 있어 인생 최고의 날입니다.
오늘날 마지막 시대에 관한 예언들의 성취를 직접 목격하면서 우리는 세상 역사의 마지막 끝자락에 서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재림이 성큼 다가온 이때에 신랑 되신 주님을 맞기 위해 우리 영혼의 등불이 잘 준비되었는지 살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 21:2)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계21:10-21)
거룩한 성이 각종 지극히 귀한 보석들과 진주와 정금으로 지어졌다는 표현은 바로 주님의 풍성을 닮은 변화된 성도들의 아름다운 품성으로 지어진 것을 상징합니다. 조개가 자신 속에 있는 이물과 인내로 싸워 이긴 결정체가 진주이듯, 성도가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속에 있는 옛사람과 싸워 이긴 열매(진주)와,
불순물이 섞인 금을 불로 제련하듯 단련을 통해 얻은 순결한 믿음(정금) 등으로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이 지어집니다. 천국에 가면 화려한 내 맨션이 예비되었다고 기뻐하기도 하지만 정작 천국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안다면 혹 천국에 가기를 주저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천국은 “너희 중에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마 20::16-17) 하는 곳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품성을 닮아 종으로서 남을 섬기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나라입니다. 정말 그런 나라가 사모되십니까?
주님은 세리와 창기들이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부족하고 부패한 죄인이라는 것을 애통해하고 뉘우치며 회개한 겸손한 자들입니다. 반면 주님은, 천국은 따놓은 당상인 줄 알았던 교만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질책하십니다. (마 21:42)
합당한 열매(성화)는 내 힘으로 맺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의의 옷’을 더해 주셔야 합니다.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고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사 61:10)
의의 옷을 덧입는 경험을 신부가 보물로 단장하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바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거듭남의 경험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의의 겉옷은 흰 옷이요= 세마포 옷이요 = 예복입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노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잔치에 손이 가득한지라” 주님은 누구든지 구원받도록 다 초청하지만 대신 의의 옷인 예복을 입지 않은 자에게는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 22:2-14) 라고 엄히 경고하십니다..
오늘날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가득합니다. 하지만 부르심을 받고 빼어내심을 입은 택한 자들, 곧 자기를 부인하며 거듭남의 회개를 한 자들 만이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멸망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님을 시인하고 영접했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배웠습니다” 라고 호소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영접 한다는 것은 나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조건을 받아드리겠다는 결단입니다. 천국은 “그리스도의 마음”인 “의의 옷”을 덧입은 의인이 가는 곳으로서.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계 22:27) 못합니다.
오류를 전하는 것도 거짓말에 포함되며,
주여 주여 하면서도 불의를 계속 한다면 그 믿음은 속되고 가증한 가짜 믿음입니다. 지금 이 시간이 거짓 진리에서 깨어날 마지막 기회입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
마지막 때에 알곡과 가라지로 갈라지는 상황으로서 위 말씀을 보면 이 땅에서도 의를 행하는 거룩한 성품을 가진 자가 분명히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연약하여 계명을 지킬 수 없었다” 라고 한다면 마지막 날에 위 말씀이 저를 심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결혼제도를 주신 것은,
그 제도를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성도들)의 관계를 잘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구속사업은 우리의 신앙을 총 결산하는 신랑 신부의 혼인잔치로 결말이 납니다. 주님은 신실한 성도들과의 혼인잔치를 열렬히 원하시기에 “내가 속히 오리라”고 여러 번 약속하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그런 혼인잔치의 소망과 꿈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벅찬 은혜요 기쁨입니다. 우리 모두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마냥 등불을 잘 준비해 황홀한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영광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서로 얼싸안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통해 거듭나야 주님에 대한 사랑과 동기와 소원이 바뀌어 순결한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신랑 되신 주님을 맞기 위해 거듭난 품성인 보석으로 신부단장을 잘해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글쓴이 / 송전서님

첫댓글
우리가 영광에 동참하기 전에 먼저 주님의 말씀 안에, 주님 안에 거해야 하며, 이는 고난과 아픔, 애통, 통회자복, 회개,
자아파쇄, 자기부인..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 없는 영광 없고, 죽음없는 부활 없고, 십자가 없는 면류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광은 소원하나 고난은 거부한다면.. 아름다운 신부의 성품이 빚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은혜주신 주님께서 고난도 함께 받게 하십니다. 주님 주시는 고난을 외면하지 말고 기도로 돌파해 나가면 반드시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영광이 기다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