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지음
《“아내가 결혼했다. 이게 모두다. 나는 그녀의 친구가 아니다. 친정 식구도 아니다. 전남편도 아니다. 그녀의 엄연한 현재 남편이다.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녀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 인생은 엉망이 되었다.”》
‘한 아내 두 남편’ 발칙한 상상
‘冒頭’라는 제목을 붙인 첫 페이지에서 ‘이게 모두’라고 굳이 거듭 짚어 얘기한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개봉을 앞두고 지난해 10월 만났던 박현욱 씨(42)는 “여기서 ‘모두’는 ‘첫머리’이기도 하고 ‘전부’라는 뜻도 된다. 나는 작가 혼자 알고 시시덕거릴 수 있는 말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수다스럽지 않으면서 아기자기한 이 소설의 문장은 무표정하면서 무뚝뚝하진 않은 박 씨를 빼닮았다. 한 여자가 이혼 없이 두 남자와 차례로 결혼한다는 발칙한 이야기. 웃음기 없는 얼굴로 배꼽 빠질 농담을 퍼붓는 재담꾼처럼, 작가는 납득하기 힘든 설정을 능청스런 입담으로 술술 풀어냈다.
서로에 대한 호감을 보일 듯 말 듯 마음 한구석에 품은 채 술잔을 나눈 남녀. 여자 주인공 인아가 스스럼없이 “집에서 커피 한잔 하고 가실래요”라고 하자 남자 주인공 덕훈은 속으로 만세를 부른다. 하룻밤의 섹스로 시작된 연애. 질투로 인한 다툼. 화해와 결혼. 가벼운 템포로 전개되는 초반부는 누구나 아는 그렇고 그런 연애 얘기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모든 게 예뻐 보인다. 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줄지라도 뭐든 퍼주고 해주는 게 행복이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의 간절한 소원이 ‘나 아닌 다른 사람과의 결혼’이라면? 여기서 ‘아내가 결혼했다’는 특별해진다.
작가의 말처럼 “어떤 사람이건 사랑을 하게 마련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다른 이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드러난 문제점의 대안을 고민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지만 애써 노력해서 얻은 이해는 곧잘 치명적 좌절로 끝난다.
소설 말미 박 씨는 ‘폴리아모리(polyamory·동시에 여러 사람과 연애하는 것)’에 대한 정리를 어쩔 수 없이 해치운 숙제처럼 짤막하게 실었다. 이 소설이 결혼에 대한 통념에 정색하고 저항하는 제안이 아니라는 것을 장난기 어린 괄호 속 추임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에서의 집단혼(集團婚) 연구 결과를 보면 그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학교에서 대체 뭘 배운 거냐), 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그럴 리가!),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망할 놈의 자유주의).”
아내와 결혼한 또 다른 남편은 아내와 비슷한 자유주의자다. 두 명의 보헤미안에게 휩쓸려 위태롭게 표류하는 덕훈의 시선은 우디 앨런 감독의 최근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위에 덧대 볼만하다. 보헤미안 부부와의 폴리아모리 세계로 일탈했다 돌아온 이 영화 속 여주인공들의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하지만 불만스런 기색이 없다.
배우자가 된 연인이 들이민 엄청난 요구사항. 예상 못한 불균형을 어떻게 해결할까. 행복을 위한 노력과 고민은 복잡하게 방향을 꺾으며 가지를 친다. 소설은 결말을 뚜렷하게 정리하지 않는다. 박 씨는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해서 생각과 행동을 멈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결혼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고 결혼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일단 저지르고 본다. 예상할 수 없기에 모든 결혼은 두근두근 흥미롭다. 결말과 상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