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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새 출발로 아름다운 가족의 달☜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요15:1-8절) 참 포도나무 .
한때‘신토불이’라는 말이 많이 유행했었습니다. 즉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 농산물이 가장 몸에 맞는 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남아시아나 유럽 등 다른 나라를 여행하거나 이민을 가서 살아보면, 이 세상에서 우리나라 과일만큼 신선하고 맛있는 과일이 없다는 것을 다 공감을 할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도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포도나무가 갖는 특성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는 특성이 너무나도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는 아주 특이하게 생긴 나무였습니다. 포도나무는 그 나무 자체로는 볼 품이 없습니다.
포도나무는 재목으로 쓸 수 없고 기둥으로 쓸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가 만들어내는 열매는 기가 막힐 정도로 맛이 있고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그 포도로 만든 술은 그야말로 너무나 맛있는 술이었습니다.
포도나무는 외모는 볼품이 없었지만. 그 풍성한 열매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었습니다. 특히 포도나무는 그 덩치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들이 외모로 보기에는 볼품이 없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만들어내는 삶은 기가 막힐 정도로 맛있고 신선한 과일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그 열매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제자들을 새로운 열매 맺는 자들로 만들려고 하십니다.
Ⅰ.나는 참 포도나무
15:1절)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 믿는 자들의 관계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아버지는 농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그냥‘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참 포도나무’라는 것은 다른 포도나무와 예수님 자신을 차별화 시키시는 말씀입니다. 원래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포도나무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말씀하면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나는 참 포도나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구약 이스라엘 종교가 진정한 포도의 맛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즉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의 포도나무는 다 죽어버렸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많은 포도 열매를 얻기 위해 열심히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이 포도나무는 잎만 무성했지, 포도 열매가 맺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이 포도나무를 모두 다 찍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진정으로 열매 맺는 포도나무는 멸종(滅種)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오셔서 하시려는 것은 바로 예수 믿는 자들로 하여금 이 참된 열매를 맺게 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마음속에 맺히는 열매를 맺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가나안 땅에 살고 있고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많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참 포도나무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그들의 겉모습은 포도나무와 비슷할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진정한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종교는 마음이 상한 사람들에게 새 힘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종교는 병든 자들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죄에 빠진 자들을 돌이키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5:1절)나는 참 포도나무요”무슨 뜻입니까? 다시 이 포도나무가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즉 절망 중에 있는 세상에 새로운 소망을 주고, 인간의 참된 가치와 기쁨을 회복시키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다시 이 땅에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초라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그는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내는 삶은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육체의 질병을 고치셨고, 정신병을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수많은 사람들을 죄에서부터 건져내셔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신종 참 포도나무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참 포도주 중의 포도주이십니다. 성령은 어떤 죄인도 변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고, 어떤 절망 중에 빠져 있는 자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지금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종교는 결코 참 포도나무가 아닙니다. 이 종교는 아주 쓰고 떫은 포도였습니다. 이 종교는 사람을 더 괴롭게 하고, 더 실망하게 하고, 더 좌절하게 하는 포도주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포도 종자는 어떤 종자입니까? 사람을 바꾸는 포도 종자입니다. 즉 낙심한 자에게 새 힘을 주고, 죄에 빠진 자를 거룩하게 하고, 침체된 자에게 새 능력과 힘을 주는 참 포도 종자인 것입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슈퍼포도’인 셈입니다.
Ⅱ.하나님의 농사법
표도나무를 재배하는 분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포도나무 가지를 치는 일일 것입니다. 아마 포도 농사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일은 이런 일일 것입니다. 즉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나 봉오리를 잘라버려야만 제대로 된 가지에 큰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도나무에 대하여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신다고 했습니다.
15:2절)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농부이신 아버지는 이 포도나무로부터 많은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포도나무가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가지에 대하여 두 가지 방법을 쓰십니다. 하나는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 가지를 치는 일을 하시고,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과감하게 잘라버리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도대체 본문에서‘열매 맺는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가지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며,‘가지를 제거해 버리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열매 맺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할 때, 이 세상에서 번창하고 잘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많은 자식을 낳고, 또 성공해서 잘 사는 것이 복 받은 것이고, 열매가 많이 맺힌 것입니다.
또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많은 종교적 업적을 남기는 것을 열매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으면 큰일을 많이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열매 맺는다’는 것은‘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대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삶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오랫동안 쫓겨났던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사는 열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두 다 자기 나름대로 야망과 욕심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이것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쳐서 복종을 시킬 때,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맛이 나오게 됩니다.
이것은 도저히 무엇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큼하고 신선한 맛입니다. 이러한 열매 맺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신선한 충격을 주게 됩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들어 내는 열매인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들은 모두 다 진부(陳腐)한 것들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이익이 되는 일을 위하여 달려갑니다. 즉 돈이 생기는 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갑니다. 또 자기 이름을 내고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면 별의 별 짓 다 합니다. 그래서 성공하고 나면 거드름을 피우면서 자신의 육체의 쾌락을 위해 모든 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익이 돼도 옳지 않으면 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리 하기 싫어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기 자신을 설득해서 그것을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런 삶이 다른 사람에게 아주 신선한 충격을 주게 됩니다. 죽 ‘아, 인생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한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내가 알지 못했던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 따로 있었구나. 그래 인생이라는 것은 좀 더 살아 볼 가치가 있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심한 낙심을 한 사람이 이런 사람을 보면
‘아, 이 사람을 보니까 나에게도 무엇인가 가능성이 있구나’는 희망이 생깁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만드시는 신종 포도 열매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사는 이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살 수 있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살면 되는 일이 없는데...’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사셨기에 많은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도 그런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가지에 대하여 하나님은 두 가지 방법으로 대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제거해 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상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예수님을 따르고 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즉 아무리 예수님의 제자요,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 하더라도 전혀 열매를 맺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일까? 마음 중심에 변화가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것 중 하나가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음 중심에는 변화가 없으면서도 어디서 열매를 하나 구해 와서 걸어놓고 열매를 맺었다고 떠들어 댑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다 그것을 믿고 칭찬을 합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내 안에 변화가 있어야 하고 내 안에 열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내 안에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로 변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진정한 변화가 없는 사람은 어느 순간에는 제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 자기 자신은 그리스도에게 속했고, 예수님의 제자라고 떠들어 대지만 그 사람 안에 진정한 변화가 없고 열매가 없으면 이 사람은 결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언제 이런 가지를 잘라내십니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라지 비유에서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면 가라지 처럼 보이지만 알곡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처음에는 열매 맺지 못하고, 오랫동안 지내다가 최근 갑자기 변하면서 열매를 맺는 많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열매가 없어도 하나님은 오래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언젠가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그 기회가 박탈되어 제거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끝장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항상 열매가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열매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깨끗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가지를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그 가지에 붙어 있는 여러 잔가지나 다른 봉오리를 잘라 주어 즉 가지치기를 한다는 뜻입니다.
아마 가지를 치려고 할 때, 농부는 참 아까울 것입니다. 왜냐면 멀쩡한 가지를 잘라야 하고, 또 멀쩡한 꽃 봉우리나 작은 포도 열매를 모두 잘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까워서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까? 절대로 좋은 포도가 열리지 않습니다. 즉 절대로 좋은 상품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열매를 맺으려면 과감하게 다른 잔가지나 꽃 봉우리나 작은 열매를 잘라 몇 개만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 속에 숨겨진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맛을 알고 중심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더욱 연단을 주셔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드신다는 뜻입니다. 즉 다른 모든 세상적인 의지나 생각들이나 방법들은 모두 잘라버리셔서 오직 하나님만 붙잡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은 주님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무엇인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거기로 달려가서 도움을 받기 때문입니다. 열매 맺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그 아까운 것들을 모두 잘라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꽃 봉오리나 작은 포도송이나 가지도 다 잘라버려야만 제대로 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창(唱)’을 하는 사람들은‘제대로 된 소리’를 내게 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아이들의 눈을 멀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세 때, 서양에서는 노래를 부를 때 남자 아이들이 소프라노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변성기가 오니까 남자 아이들에게‘거세를 해서 소리가 변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것이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 해서 천주교 안에서‘거세’를 하지 못하도록 법을 바꾸었습니다.
사람들은 노래 하나만을 위해서도 온 몸을 다 바치게 하는데, 특히 하나님의 열매 맺는 일을 위해서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는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구약 시대 나실인 들은 일체 술을 마시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머리도 깎지 못하게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을 위해 하나님께만 헌신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서 아주 유명하게 훌륭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은 모두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입다나 삼손이나 기드온 같은 사람들은 모두 나실인들 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고민이 생깁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열매 맺는 자로 헌신하기 위해서 과연 무엇을 얼마만큼 헌신하고 버려야 할까? 옛날에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온 몸을 다 바쳐서 헌신을 했던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기도와 성경 읽기에 자신을 바치기도 했고, 아주 간단한 식사 외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거의 전 삶을 금식하다 시피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바른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곧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는 이것이었습니다.
15:3절)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자신이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온 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직업을 버렸고, 어떤 사람은 부모나 형제나 재산을 모두 버린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리 예수님을 따라다녀도 마음이 깨끗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더 철저하게 자신을 학대하면 거룩해질 수 있을까? 그러나 아무리 자신을 학대한다고 해도 깨끗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죄는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보고‘겉만 깨끗한 대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접 안에 더러운 것이 가득이 들어 있는데, 겉만 깨끗이 닦는다고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속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속에 담기는 것이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더러운 것을 담으면 더러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속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담으면 아무리 겉이 나무 그릇이요, 뚝배기 그릇이라 하더라도 가장 고상한 그릇이 되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야말로 최고의 보화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질그릇 속에 담긴 보화’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상하게 모든 것이 깨끗해져 버렸습니다. 우리 인간의 정욕은 우리에게 찰거머리보다 더 질기게 달라붙습니다. 이것을 떼버릴 용사는 없습니다. 단지 모두 거머리를 달고 참는데, 이 참는 것이 오래가지를 않습니다.
결국 얼마가지 않아서 일을 저질러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불과 같기 때문에 이 거머리 같은 욕망이 힘을 잃게 됩니다. 그러면 손으로 떼어도 떼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가지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우리는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제거할 것은 제거하고 붙일 것은 붙여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원래는 생각이 아주 복잡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는 중에 그 모든 생각들이 다 정리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주님의 생명의 말씀만 붙잡았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성령이 오시고, 그렇게 했더니 열매가 주렁주렁 맺혔습니다.
우리에게도 성령의 능력 있는 삶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잔가지를 제거해야 합니다. 아무리 멋있어 보이고 아무리 좋아 보여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과 믿음이 아닌 것은 모두 잘라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그것을 아주 간단하게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15:4절)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가지가 열매를 맺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가지치기를 하고 나무에 붙어 있는 이것입니다. 가지는 비가 오지 않는 것이나 거름이 부족한 것이나 다른 것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면 그런 것들은 모두 농부가 염려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저절로 열매를 많이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고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면 아마 전혀 열매 맺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모든 정신적인 육체적인 진액을 예수님으로부터만 빨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이 나무 저 나무 양다리 걸치기를 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께만 모든 것을 다 거는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는 말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그분만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면 도저히 예수님 안에 있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세상을 양다리 걸치든지 아니면 세상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복과 축복이 오직 예수님께 다 있고 예수님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예수님만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우리 안에 계시게 됩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만 믿고 따랐는데, 예수님이 갑자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십니다.
그러면 그들의 믿음은 망한 것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끝까지 믿는 자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것은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시는 이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열매를 맺게 하는 유일한 진액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으면 저절로 과실을 맺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학식이나 재산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과는 상관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내가 누구며, 어떤 사람이든 상관이 없이 온 세상을 살리고 치료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굶어 죽지 않고 밥벌이하는 정도의 삶만을 살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명의 말씀에 붙들린 사람은 낙심한 자에게 포도주를 주어 기쁨이 생기게 하고, 다른 사람들도 변하게 하는 아름다운 일을 하게 됩니다.
주님은 믿는 자들 가운데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선,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 사람이 있습니다.
15:5절)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더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오직 예수님만 붙드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세상의 복도 붙잡지 못하고 하나님의 복도 붙잡지 못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서 많은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점점 하나님의 복이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에스겔 성전의 생수와 같이 처음에는 졸졸 흐르더니, 나중에는 발목까지 오고, 그 다음에는 무릎까지 오고, 그 다음에는 허리, 나중에는 헤엄 칠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복과 능력이 나의 삶을 떠밀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의지하게 않고 생명의 말씀대로 믿지 않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
15:6절)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얼마동안은 밖에 던져 놓습니다. 그래야만 잘 마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최후는 지옥의 땔감 심판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매 맺는 자들은 주야로 연단하셔서 가지를 치시지만, 그렇지 않는 자들은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십니다. 왜냐면 버릴 가지이기 때문에 더 이상 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 앞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열매가 없어도 가만히 내버려두는 이것입니다.
Ⅲ.위대한 약속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에게 붙어있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15:7절)너희는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두 가지 말씀은 같은 것입니다. 즉‘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의 능력을 믿으며 그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도 제자들이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고 붙잡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주님에게 붙어 있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생명의 말씀이 제자들 중에 있으면 그들은 엄청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은 주님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우리의 몸과 생명을 바쳐 땅 끝까지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안에 주님의 생명의 말씀이 충만히 있는 이것입니다.
주님의 생명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것을 제쳐놓고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읽고 듣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모이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제쳐놓고 우리가 다른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주님은‘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을 문밖에 세워놓고 자기들끼리 많은 의논을 하고 계획을 세우고 많은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을 그들 가운데 모시는 이것입니다. 즉 생명의 말씀의 잔치를 벌이는 이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들과 더불어 먹고 그들은 주님과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계속 연구해서 그 말씀의 의미를 밝혀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깊은 광산(鑛山)과 같습니다. 그 산과 바위 속을 뚫고 들어가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의미를 캐내어 성도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인하여 정금과 같은 신앙으로 변하게 됩니다. 즉 우리 자신들이 보물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가치가 하나님 앞에서 엄청나게 존귀한 자들이 되어버립니다.
모세가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종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수1:8절)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이 작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안에는 엄청난 세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온 세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말씀의 비밀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귀한 것을 다 가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또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15:7절)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연구하고 들을 때,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다 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기도(祈禱)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빌립보에서 전도를 하다가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즉 귀신들린 여자 아이를 고친것 때문에 붙들려 와서 채찍에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거기서 기도했을 때, 감옥에 지진이 일어나면서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모두 풀어져 버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 때, 성령이 우리를 통하여 이 세상에 부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행복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15:8절)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많은 열매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렇게 몸부림을 치면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먹을 것을 얻고, 병들지 않고, 오랫동안 사는 것이 아닙니다.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 이 세상에서 짐승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 자기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까? 거울을 볼 때입니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바르게 대해 줄 때입니다. 자기를 사랑해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많은 돈을 주었습니다.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까 그는 마약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부모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필요한 돈을 다 주었는데, 왜 자식은 이토록 비참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아낌 없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하여 살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통하여 이런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 사람을 만나고 나서 완전히 변했습니다. 너무나 놀라 그 사람에게 이렇게 변한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어떤 사람이 자기를 인격적으로 대해주더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정말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해주는 진정한 만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집니다. 제자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제자들은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선한 이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해서는 주님의 생명의 말씀에 내 자신을 철저하게 헌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우리의‘자아(自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나’라는 존재를 생각하는 동안,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나의 자존심, 나의 필요, 이런 것들은 사람에게 가야할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독차지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래서 주님은 계속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너희들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해서 염려하지 말라. 오직 내 안에 있기만 하라. 그리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그러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아-멘
찬송가 503장 * 세상 모두 사랑 없어*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늘에 보물 쌓을 교갱원 설립 創立member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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