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기념주일]
조국이여 안심하라/누가복음23:26-31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선진국입니다. 그러나 불과 100여년 전만 하여도 나라를 잃어버리고 온 민족이 슬픔과 비탄에 잠겨있었습니다. 1910년 일본 제국의 강압에 의한 한일합방으로 나라의 주권과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19년 기미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이 낭독되고, 평화적인 만세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당시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길선주 목사님을 포함한 기독교인이 16명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제국으로부터 엄청난 핍박이 있을 것을 충분히 예상하였지만 더 이상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전국 각 지역의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평화적인 만세운동은 잠자는 민족을 깨워 조선은 독립된 나라요 조선사람은 자주적 민족임을 세계 만방에 선포하였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이런 사명을 감당한 것을 생각하면, 1천만 기독교인을 가진 지금 우리의 모습은 매우 부끄럽습니다.
삼일운동 이후 일본 제국은 대한민국 국민들도 일본의 신사를 참배하라는 명령이 전달됩니다. 일부 목사들은 이에 동조하여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선동합니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는 우상을 섬기는 것이요, 신앙에 위반되는 행위라 하여 끝까지 저항하고 일사각오의 항쟁을 벌였습니다. 목사님은 세 번 투옥 끝에 옥중에서 순교를 하셨는데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다섯 가지 나의 기도”란 제목으로 마지막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 다섯 가지 기도 제목은 ①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옵소서. ②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옵소서. ③ 노모와 처자를 주께 부탁합니다. ④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옵소서. ⑤ 내 영혼을 주께 부탁합니다.
특히 네 번째 기도 제목과 관련하여 목사님은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못합니다.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부는 다른 신에게 정절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신사에 절하지 못합니다.”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아! 예의 동방의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났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백세에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칼날이 나를 기다린다하여도 나는 저 칼날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 외에도 김구, 안중근, 안창호, 유관순, 윤동주, 윤봉길과 같은 분들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분들이 남긴 짧은 말을 영상으로 보시겠습니다.(유튜브 쇼츠 영상 주소 https://youtube.com/shorts/hypuoB1xgcw?si=nMjrolnxjtEyKfn7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대한민국이 복을 받은 것은 이 나라를 사랑한 하나님의 사람들,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목숨을 걸고 앞장서서 싸우면서 기도한 신앙의 선배들이 계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면서 성 가까이에 이르실 때 갑자기 통곡을 하십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에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눅13:34-3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고 수많은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를 죽이고 파송된 자를 돌로 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고 오히려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란 이름의 뜻은 ’평화의 도시‘ ’샬롬의 도성‘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 그곳은 더 이상 평화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는 사라지고, 음란과 우상숭배와 거짓으로 가득찬 도시입니다. 강도들의 소굴이 되어 있었습니다. 살육과 전쟁의 위험 속에 놓여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통곡할 수밖에 없는 도시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예루살렘 도성이 심판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하십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눅19:41-42)
예루살렘이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고 장엄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상태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을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눅19:43-44)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마23:38)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13:2)
그러나 당시 지도자들은 ”괜찮다 괜찮다“ 말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켰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말만 믿고 회개하지 않았고, 현실에 안주하였습니다. 이를 보시며 흘리신 예수님의 눈물은 사랑의 눈물이요, 하나님 아버지 고통의 눈물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자기 민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모습을 보면서, 민족이 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통한 심정을 토하였습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렘9: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안타깝게 울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까? 남과 북, 진보와 보수, 지역간, 세대간 갈등으로 사분오열된 대한민국을 생각하면서 울어보셨습니까? 세속화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교회를 위하여 울어보셨습니까? 그러한 여러분의 눈물이 우리나라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우리 가정과 자녀를 살릴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우는 여자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달려 죽으실 십자가를 어깨에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십니다. 예수님의 온몸은 채찍에 맞아 선혈이 낭자합니다. 걸어가는 발자국마다 핏방울이 떨어집니다. 무게 70㎏의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쓰러지면 로마 병정의 무자비한 발길질이 가해집니다. 이제는 로마 병정들도 예수가 더 이상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다고 판단하여 구레네 사람 시온을 붙들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이 울면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그 모습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미 말씀을 드린 것처럼 장차 예루살렘에 임하게 될 멸망의 모습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40년이 지나지 않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AD 70년 로마의 티토 장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2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땅에서 추방당하여 1948년 독립할 때까지 거의 2천년동안 나라없는 백성으로 여러 나라로부터 핍박을 당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의 나찌 정권에 의해 600만명의 유대인이 죽임을 당합니다.
이를 아셨기에 예수님께서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바꾸어 말하면 “너희들이 살고 있는 땅에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이니 지금 회개하라. 애통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경고를 우리 마음에도 새겨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겉으로 볼 때 세계적인 경제대국, 군사대국, 기술대국, K-POP 문화대국이고, 전 세계에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실 때 지금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는 겉모습만 화려한 예루살렘 성과 같습니다. 지금 이 땅에 하나님의 진노가 가까이 왔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위기상황을 알고 불안해 하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끔찍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그 날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리 올지 모릅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만든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행2:36) 우는 자는 웃게 될 것입니다.(눅6:21, 마5:4) 삼일운동 당시 교회와 성도들이 일어난 것처럼 지금 우리도 일어나야 합니다. 울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조국이여 안심하라
가나안 농군학교를 창설한 故 김용기 장로님은 날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기도실 안에는 이런 문구가 씌어져 있습니다. “조국이여 안심하라” 그 이유는 나 자신이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위기와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 믿음으로 하나님의 희망을 선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배를 타고 로마를 향하다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습니다. 배 안에 있는 선장과 선주, 사공들, 군인들이 있었지만 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모두 기진맥진하여 낙심하고 있을 때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외친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제105주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와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를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그리고 슬픔과 절망에 빠진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시다. 우리도 외칩시다. “대한민국이여 안심하라 우리가 기도하고 있다” 우리의 기도로 축복받은 대한민국을 우리 자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