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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모자이크극단
 
 
 
카페 게시글
공연후기 스크랩 <19 그리고 80>-박정자
노란민들레 추천 0 조회 25 09.02.28 13: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조용히 빛을 비추는 등대가 되고자…
카리스마 넘치는 국민 배우 박정자가 귀여운 할머니로 변신했다. 뮤지컬 <19 그리고 80>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모드’ 역으로 출연 중이기 때문이다. 모드는 삶을 아름답게 살아갈 줄 아는 80세의 괴짜 할머니로, 비정상적인 자살 행각을 벌이며 죽음을 동경하는 19세의 청년 해롤드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인물이다. 하나의 역할을 맡으면 온전히 몰입하는 그녀는 이미 ‘모드’의 캐릭터를 체화시켜 고슬고슬한 옅은 갈색 머리를 한 채 천진한 웃음으로 맞아 주었다.


<19 그리고 80>, 그 네 번째 무대
“이 작품은 제가 여든 살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에서 건너야 할 강이고 넘어야 할 산이에요. 구체적인 목표이고 푯대이고 꿈이죠. 여든 살이 될 때까지 적어도 2년에 한 번씩은 이 작품을 공연할 생각이에요.” 박정자는 <19 그리고 80>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초연 당시 이 작품을 발굴한 것도 그녀 자신이었다. <19 그리고 80>은 콜린 하긴스의 소설인 『해롤드와 모드(Herold and Maude)』(1971)를 원작으로 하며, 브로드웨이와 뉴저지에서 각각 동명의 연극과 뮤지컬로 공연된 바 있다. 이번 토월극장에서의 공연은 2005년에 뉴저지에서 초연되었던 뮤지컬의 대본과 넘버를 들여와 기존의 연극 대본을 참고하여 각색한 버전이다.
“이번에 뮤지컬로 공연하는 이유는, 단순히 제가 춤추고 노래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온통 뮤지컬 천지인 공연계의 시류에 합류하려는 의도도 아니에요. 뭔가 더 생동감 있는 무대에 이 작품을 올려서 관객들에게 용기와 활력을 주고 싶어서예요. 제 나이가 올해로 67세에요. 그런 제가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보며 관객들이 ‘나도 이렇게 나이든 티를 내며 살아서는 안되겠구나’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고 싶어요.” 그녀는 <19 그리고 80>을 뮤지컬의 좋은 레퍼토리로 남기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아울러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언급하며 말을 잇는다. “토월극장에서 공연하고 싶었지만 ‘창작극 우선’이라는 원칙 때문에 선택되지 못했어요. 사실 이 작품도 악보와 대본만 가지고 와서 장두이 연출과 박일규 안무 등이 대부분 창작을 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녀는 근래 창작 작품에 대해 지원을 하는 것은 좋지만, 행정이 원활하게 처리되지 않을 정도로 ‘창작’에 대한 강박증을 느끼는 것 같다며 우려의 말을 남겼다.


박정자, 모드를 닮다
“저는 이 세상이 모드처럼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로 가득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이 사회가, 이 세상 전체가 훨씬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봐요. 세상이 아름다워지도록 하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름답게 살면 되는 거예요. 아름다움은 전염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자신이 모드를 닮으면 관객들이 그러한 자신을 닮게 될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모드는 ‘무공해’ 할머니에요. 세상 모든 것을 ‘무소유’의 태도로 대하죠. ‘이 세상에 주인은 없다. 오늘 이 세상이 있다가 내일이면 떠날 텐데 소유한다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해?’라고 이야기해요.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비롯한 모든 물건 중 ‘소유’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가진 것도 다 내어 놓고, 남의 것에 대해서도 특별히 구분을 안 해요. 네 것 내 것이 없는 거예요.”
박정자는 이러한 모드를 사랑한다. 그녀 역시 스스로를 위해 값비싼 물건을 사지 않는 사람이다. 현재 가지고 있는 값 나가는 물건들은 대부분 선물을 받은 것이라 한다. 박정자는 자신이 빚진 것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오늘 아침에도 빚지기 위한 전화를 몇 통화 했었어요. <19 그리고 80>의 티켓을 100장씩 구입해서 보는 소수 인원의 모임을 만들고 있어요. 박정자에게 떡 사달라는 것도 아니고 와인을 사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티켓을 구입해서 공연을 봐 달라는 일종의 연극 후원 운동이에요.” 그녀가 오랜 기간 연극에 전념할 수 있게 해준 꽃봉지회와는 별개의 모임이라고 한다. 그녀는 <19 그리고 80>이 막을 내리면 자신도 직접 표를 많이 구입하여 다른 장르의 좋은 공연들이나 영화를 함께 보며 정서를 나누는 모임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모드와 박정자는 남의 이목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실천한다는 면에서도 닮아 있다. <19 그리고 80>에서 모드는 이야기한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박정자는 이야기한다. “저는 머리를 이렇게 염색해도, 운동화를 신고 대학로를 활보해도, 옷을 어떻게 입어도 신경이 쓰이지 않아요. 시간이 많아서 남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말이에요.” 그녀는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이라는 콘서트에서 애창곡을 부르며 관중들과 자유로운 감성을 나눠 왔을 만큼 새로움과 자유로움에 대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그녀는 문득 ‘집시처럼, 마녀처럼 현재를 살아라’라는 카피가 적혀 있는 코엘료의 소설 『포르토벨로의 마녀』를 꼭 읽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겁이 많아서’ 집시처럼, 마녀처럼 도발을 저지르지는 못한다며 웃음지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
“오늘도 아침부터 너무 바빠서 샤워도 못하고 엉터리 방터리로 하고 나와 차를 운전하면서 생각했어요. ‘어머, 난 왜 이렇게 바빠.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어’라고요. 그러면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준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어요. 그렇게 매번 감사를 드리면서 ‘팔십’을 향해 가고 있어요.” 그녀는 여든 살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참 궁금하다고 혼잣말하듯 나직이 이야기했다. “모드는 저의 이상형이에요.” 즉, 박정자에게 모드는 여든 살이 되었을 때의 롤 모델인 것이다.
모드는 ‘무공해’의 맑고 따뜻한 할머니이지만, 한때 전쟁, 가족의 죽음을 겪으며 자살을 기도했을 정도로 깊은 슬픔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모드는 그러한 삶의 이면을 곱게 승화시킨 채 평온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난다. <19 그리고 80>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죽음에 대해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혹은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모드는 울고 있는 해롤드에게 말해요.‘나는 이미 삶을 살아버렸고, 너는 이제 삶을 시작했어. 너는 내가 심은 나무야. 더 살아야 해. 죽는 게 뭐 그렇게 이상하니. 그냥 다음 단계로 옮겨가는 거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없다’고. 팔십 세라는 나이는 살 만큼 산 나이고, 때문에 그 나이의 노인들은 지혜를 갖게 되죠.” 박정자는 자신이, 그리고 관객들이 죽음이라는 것 자체를 너무 무겁지 않게, 너무 비극적이지 않게 받아들이도록 훈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죽음을 연습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박정자는 이 작품이 남기는 메시지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전 인류적인 것이기도 하고 남녀의 사랑이기도 한…. 그녀는 갑자기 장난끼 어린 말투로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그야말로 십구 세부터 팔십 세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거든. 그래서 젊은 남녀가 앞줄에 쭈욱 앉아 있곤 해요. 그러면 남자 아이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해요.‘젊은 친구들도 좋지만 이런 귀여운 할머니와 연애하는 것도 멋지겠지?’”라고.


온전히 몰입하는 배우
박정자는 어떠한 역할을 맡으면 그 역할에 어울리는 신발을 먼저 사는 버릇이 있다. 이번 작품의 경우는 동명의 연극을 공연할 때 ‘두타’에 가서 구입했던 신발을 그대로 신었다고 한다. “연극은, 무대라는 것은 머리 끝에서부터 발 끝까지가 중요해요.” 그녀는 모드 역에 맞는 머리를 하기 위해 꼬박 여섯 시간 동안 앉아서 탈색과 염색과 파마를 했다. “가발을 써도 되지만, 부자연스러운 것에 대해 스스로 용서가 안 돼거든요.” 과거에 출연했던 작품들에 대한 질문하자 그녀는 “나는 이 순간 모드만 생각해야 돼요.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제 자신을 비워야 해요. 그래야 지금 하고 있는 작품으로 채울 수 있지, 함께 섞여 있으면 혼란스러워서 안 되거든.” 하고 답했다. 후배 배우들에게 해줄 말이 없냐는 질문에도 그녀는 말을 아꼈다. “내가 열심히 하면서 그들이 나를 보고 따라오도록 하면 되는 거지, 굳이 그들에게 연설을 할 이유는 없어요. 그들에게 등대가 되기를 바라요. 목표가 되어 주도록 빛만 비추면 되는 거예요.”


인터뷰를 하고 있는 그녀의 내면은 온통 모드로 꽉 채워져 있는 듯 보였다. 오빠가 신협의 배우였기 때문에 일곱 살 때부터 ‘자연스럽게 연극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박정자. 무대 위에서뿐 아니라 그녀의 삶 자체가 배우로서 존재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작년에 <신의 아그네스>를 공연하다가 크게 다쳤었는데도 그녀는 지금 뮤지컬을 하기 위해 한약을 먹고 침을 맞으며 몸을 움직이고 춤을 춘다. 게다가 무척 행복한 마음으로. 박정자는 그렇게 무대를 사랑하는 방법을, 동시에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



모드는 울고 있는 해롤드에게 말해요.
나는 이미 삶을 살아버렸고,
너는 이제 삶을 시작했어.
너는 내가 심은 나무야.
더 살아야 해.
죽는 게 뭐 그렇게 이상하니.
그냥 다음 단계로 옮겨가는 거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없다’고.
팔십 세라는 나이는 살 만큼 산 나이고,
때문에 그 나이의 노인들은
지혜를 갖게 되죠.

 

 

 

 

연극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널리 사랑받은 ‘19 그리고 80’이 뮤지컬로 변신, 관객을 찾는다. 1987년에 초연된 작품이지만 2003년 이후 박정자 주연으로 3차례에 걸쳐 무대에 올려지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를 위해 박정자는 한국 최고의 연극배우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뮤지컬 신인배우의 자세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19 그리고 80’은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자자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콜린 히긴스의 시나리오로 1971년에 영화로 제작됐다. 영화 ‘해롤드와 모드’는 19세 청년과 80세 할머니의 범상치 않은 러브스토리로 관객들의 감정을 울렸고, 곧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컬트 영화가 됐다. 이 작품은 1973년 각색을 거쳐 연극으로 변모한 후, 프랑스에서 7년간이나 장기공연됐다. 1980년엔 브로드웨이에서도 연극과 뮤지컬로 무대에 올려졌다.

19세의 해롤드는 장례식과 죽음을 병적으로 좋아하며 어머니의 애정과 관심을 끌기 위해 자살 시도를 하는 등 시간을 허비하는 청년이다. 그가 80세 노인인 모드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모드는 해롤드에게 삶의 즐거움에 대해 가르쳐주고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자기 파괴적인 청년의 삶에 지표를 제공한다.

해롤드는 그런 모드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의 믿기 어려운 로맨스는 해롤드로 하여금 인생의 아름다움, 가능성 그리고 의미에 대해 깨우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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