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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길」
출처: 桓國丹田呼吸修煉會(handahn.co.kr)
Ⅰ. 연정화기(煉精化氣)
1. 연정화기(煉精化氣)란
2. 연정화기 과정에서의 아홉 가지 기의 변화
3. 백일 축기(百日築基)
1. 연정화기(煉精化氣)란
선도의 제 1단계 과정으로서 우리의 육신을 완전하게 하고 진아(眞我)를 찾아 신(神)을 완성하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신체를 완전하게 한다는 것은 하단전에 내단을 이루고 전신경락을 유통시켜 질병의 침해를 받지 않는 건강한 몸, 깨끗한 몸을 이루어 육체적인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요, 진아를 찾아 신을 완성하는 터전을 만든다는 것은 방황하는 우리의 마음을 하단전 기혈에 입실시켜 그곳을 떠나지 않게 함으로써 마음이 중(中)에 머물러 사물의 본체를 직시함으로써 모든 정신적 고해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이른바 대각(大覺)을 이루어 열반(涅槃)에 든다는 것이다. 이것이 비록 첫 단계라고는 하나 되돌아보면 가장 지루하고도 어려운 길일 수도 있다. 이러한 험난한 과정을 통하여 우리 수사는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지며 자신을 인내함을 배우고 사물의 실체를 파악하고 진리를 체득하게 된다. 우리는 양화(陽火)라는 등불을 의지하여 이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2. 연정화기 과정에서의 아홉 가지 기의 변화
앞에서 이미 선도란 일기(一氣)의 음양변화(陰陽變化)임을 말하였다. 이 '기'의 길에 구태여 무슨 명칭이나 문파를 구별하는 일은 필요치 않다. 유·불·선(儒佛仙)을 막론하고 우리는 참 행(行)에 드신 분들의 글에서 그 실체를 엿볼 수 있다. 여기 세 편의 시를 참고하였다. 특히 신단구전(神丹九轉)은 불가(佛家)의 시 중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기의 길을 명시한 것이다.
먼저 유가(儒家)의 시(詩) 가운데 강절 소선생의 시(詩) 한 구절을 살펴보자.
耳目聰明男子身을 洪鈞賦與不爲貧이라,
須探月窟方知物이요, 未攝天根豈識人이리요,
乾遇巽時觀月窟이요, 地逢雷處見天根이라.
天根月窟閑往來하니 三十六宮都是春이라.
이목 총명한 남자 몸을
홍균께서 나에게 주시어 궁색하지 않도다.
모름지기 월굴(月窟)을 살펴본 연후에야
만물이 드러나는 이치를 알 것이요,
천근(天根)을 밟지 못한다면
어찌 사람의 근원을 안다 하리오?
하늘이 바람을 만날 때 비로소 월굴을 볼 것이요,
땅이 우레를 만나는 곳이 곧 천근처이다.
천근과 월굴을 한가로이 왕래하니
삼십 육궁이 모두 봄이더라.
우리는 이 시로써 요부(堯夫)께서 선 수련(仙修煉)으로 실제적인 증험을 이루었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실제 체험이 아니고서야 어찌 역(易)의 기적 변화(氣的變化)를 그토록 명확히 꿰뚫어 후학들에게 남길 수 있겠는가?
'수탐월굴방지물(須探月窟方知物)'에서 월굴(月窟)이란 진양화승지정시(進陽火升至頂時), 충만두면지상이정화(充滿頭面之上而停火) 이대일음지생(以待一陰之生)이다. 여건우손위천풍구괘(如乾遇巽爲天風구卦) 상월굴(象月窟)이며 위활오시(爲活午時)이다. 내일음생어오양지하(乃一陰生於五陽之下)하니 하현지상(下弦之象)이다.
천근(天根)은 곤득건지중효양정(坤得乾之中爻陽精)하니 시위감(是爲坎)이라, 곤괘(坤卦)는 삼음(三陰)으로서 하단전(下丹田)이 된다. 건(乾)은 삼양(三陽)이 되며 상단전(上丹田)이 된다. 고로 처음 하단전을 응시할 때에 곤(坤)이 건(乾)의 중효(中爻)를 얻어 양정(陽精)을 이루니 이것이 곧 감괘(坎卦)이다. 이로 인하여 진양(眞陽)이 근원(根源)인 하전(下田)에서 발생되니 이것이 곧 천근(天根)이다. 고로 이곳은 원무소취지지(元无所聚之地)이며 만물지근본(萬物之根本)이며 백체자생지원(百體資生之源)이다. 또한 동지일양(冬至一陽)이 오음(五陰)의 하(下)에서 일어나니 이를 견지(見之)함에는 반드시 때(時)와 장소(處)가 맞아야 한다. 수대약산신지이각야(須待藥産神知而覺也)하라. 지(地)가 뢰(雷)를 만나는 곳이 천근처(天根處)이니, 이를 일러 활자시(活子時)라 한다.
삼십육궁(三十六宮)은 역 64괘(卦)에서 괘(卦) 모양을 거꾸로 해도 바뀌지 않는 부도전괘(不倒轉卦) 8괘(卦)를 빼면 54괘(卦)가 남는다. 이 54괘(卦)는 서로 뒤집어 대칭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28괘(卦)가 도전(倒轉)한 것이다. 따라서 8+28=36괘(卦)가 된다. 이는 우주를 상징하고 우리 몸의 주천도수(周天度數)를 뜻한다.
위 시(詩)에서 천근(天根)은 만물(萬物)의 시(始)와 종(終)이며 또한 소주천과 대주천의 중심(中心)이 된다. 건(乾)이 손(巽)을 만날 때에 월굴(月窟)을 본다 함은 천풍구괘(天風구卦)로써 오양(五陽)의 아래에 일음(一陰)이 있어 마치 굴(窟)의 모양[하현달]과 같음을 비유한 것이며, 지(地)가 우레(雨雷)를 만나는 곳이 천근처(天根處)라 함은 상전(上田)의 원신(元神)과 하전(下田)의 진정(眞精)이 교구(交구)함에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함을 뜻하며 괘(卦)로는 지뢰복괘(地雷復卦)가 된다. 독맥(督脈)과 임맥(任脈)의 관계는 독맥은 인(人)·원인(原因)·무형(無形)·양승(陽昇)이고, 임맥은 물(物)·결과(結果)·유형(有形)·음강(陰降)이다.
'삼십 육궁(三十六宮)이 모두 봄[春]'이라 하는 것은 주천(周天)의 원도(圓圖) 360도를 뜻하며, 내부적으로는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속해 있는 12경락(十二經絡)과 24척골(二十四脊骨)로 36궁(三十六宮)이 된다. 처음 주천을 시작할 때에는 곤정(坤鼎)에서 달여진 약이 등쪽[督脈]으로 뜨겁게 올라간다. 이것이 정수리[乾]에 머물러서 활오시(活午時)를 기다리니, 때가 되어 일음(一陰)이 시생(始生)하면 임맥으로 서서히 내려오는데 이 기운은 시원하고 상쾌하다. 이렇게 하여 일음일양(一陰一陽)의 변화가 전후승강(前後昇降)에 따라 거듭하다가 점차로 주천이 충실해짐에 따라 일원(一圓)이 통째로 일음일양의 변화로 이루게 된다. 즉 원 전체가 뜨겁게 되었다가 시원하게 되는 등의 음양변화를 이루게 되므로, 삼십 육궁(三十六宮)이 모두 봄이라 한 것은 이미 주천(周天)이 무위(無爲)에 들어 몸 전체가 따스하며 한가롭고 정(定)함을 말한 것이다. 이렇게 임독이맥(任督二脈)이 진양화(眞陽火)되기 시작하면 백 맥(百脈)이 저절로 통하게 된다.
불가에 '도각찰간(倒半刹竿)'이란 화두(話頭)가 있다. 이 화두는 부처님께서 연꽃을 들어서 삼계(三界)를 출(出)하시는 법상(法象)을 보이신 것과 같은 실제적 비유이다. 어느 날 아난이 부처님 뒤를 이어 일조(一祖)가 된 가섭존자에게 가서 물었다.
"세존께 전해 받으신 금란가사 외에 또 무엇을 전해 받은 것이 있습니까?"
"아난아!"
"예!"
"문 앞의 찰간을 거꾸로 세워라."
이때부터 아난은 더욱 정진하여 가섭을 이어 제2조(第二祖)가 되었다. 즉 '도각문전찰간착(倒半門前刹竿着)'이라 해서, 도각찰간이란 화두를 수많은 사람들이 세월을 잊고 참구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것이 어찌 머릿속 생각으로 이루어지겠는가? 여기서 찰간(刹竿)이란 절의 산문 옆에 세워 두는 깃대와 같은 것인데 남성의 성기(性器)를 상징한다. 문(門)이란 바로 정(精)을 바깥으로 쏟아내는 출입구로서 후천유형(後天有形)의 탁정(濁精)으로 떨어지는 갈림길로 우리 몸의 치골 부위에 해당하니 성(聖)과 범(凡), 역(逆)과 순행(順行), 영(榮)과 욕(辱)의 분기점인 것이다. 그러므로 문 앞의 찰간을 거꾸로 세운다 함은 다시는 탁정(濁精)을 배출하지 않는 선천경계(先天境界)에 들어 욕계와 색계를 벗어남이며, 누진통(漏盡通)을 이루어 무루(無漏)를 증득함이다. 이러한 도각찰간의 증거로써 불(佛)에서는 마음장상(馬淫藏相), 선(仙)에서는 구축불거(龜縮不擧)를 말한다.
소주천 행공을 할 때 고환이 뜨거워지며 고환 속의 정액이 달아올라 기(氣)로 바뀌어지는 것을 곧잘 느끼고 때로는 성기가 진동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자신이 갖고 있는 기나 마음이 맑지 못하고 산란하면 성기가 진동하는 순간에 바깥으로 누설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이때에는 급히 호흡을 강하게 독맥 쪽으로 끌어올리며 기를 독맥으로 당기어 사정을 방지하고 성기가 팽창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수련 또한 지나친 욕심이나 무리한 수련으로 피곤하지 않도록 조절하며 이른바 '거문고를 너무 팽팽하게 조이지도 말며 너무 느슨하게 하지도 않는다'는 수련의 중(中)을 잡아야 한다. 아무튼 이렇게 정(精)을 기화(氣化)시킴으로써 점차적으로 신(神)과 기(氣)가 충만해지고 중심이 잡히게 되며 결국은 연정화기가 끝나고 견성(見性)하여 다시는 음욕의 세계에 떨어지지 않는다.
마음장상(馬淫藏相)은 부처님의 서른 두 가지 신체 특성의 하나로서, 말이 성기를 뱃속에 넣고 다니듯 어린애의 고추처럼 작아진 것을 비유한 것이고, 선가(仙家)의 구축불거(龜縮不擧)는 거북이나 자라의 머리를 건드리면 목이 움츠러들어 줄어든 모양에 비유한 것으로 서로 동일한 말이다. 그러니 이것을 어찌 생각으로 이룰 수 있겠는가? 오직 현재 의식과 기운이 단전으로 깊이 갈무리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선가에는 나이 육십에도 환단(還丹)하고 칠십에도 환단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남녀 불문하고 먼저 정(精)을 길러서 남성은 다시 남근이 우뚝 서고 여성은 다시 월경이 살아나서 젊음을 되찾은 다음에 계속적인 수련으로 다시 마음장상을 이루어야만 하는 것이지, 늙고 병들어 남근이 줄어든 것을 말함이 아니다.
다음은 한산(寒山)의 시를 살펴보자.
可貴天然物 獨一無伴侶
覓他不可見 出入無門戶
促之在方寸 延之一切處
爾若不信愛 相逢不相遇
가히 귀하게 여길지어라, 천연물이여.
홀로 유일(唯一)하여 짝함이 없네.
이것은 오직 몸 안에 있을 뿐
사해팔방(四海八方)을 찾아다녀도 볼 수 없다네.
그것이 출입함에는 문호(門戶)가 없고
작게는 방촌(方寸)이요, 펼치면 우주에 가득 차네.
네가 만약 이를 믿지 못한다면
매일 쓰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리라.
천연물(天然物)은 곧 정(精)·기(氣)·신(神)이요, 내단(內丹)이요, 단전(丹田)이다.
끝으로 신단구전(神丹九轉)을 살펴보기로 하자.
{종경록(宗鏡錄)}의 저자 영명선사(永明先師)는 불조정전(佛祖正傳)인 대법안(大法眼)의 삼세 적손(三世適孫)이다. 임제정맥(臨濟正脈)인 중봉(中峰)은 "고금(古今)을 통한 천하의 사표(師表)로 영명을 두고 누구를 들겠는가?"라고 극찬하였고, 임제정맥인 황룡파의 개조(開祖) 남선사의 상수제자(上首弟子)로서 천하의 추앙을 받는 회당 역시 항상 수중에서 종경록을 놓지 않으며 "내가 이 책을 늦게 만났음을 한탄한다"고 하였다. 그도 또한 이 길이 마음의 깨달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으리라.
一穢在眼하니 千華亂墜하고
一妄이 在心에 恒沙生滅이라.
穢除華盡하니 妄滅證眞하고
病差藥除하니 氷融水在로다.
神丹이 九轉하니 點鐵成金이요.
至理一言은 轉凡成聖이라.
狂心이 不歇하다가 歇卽菩提요,
鏡淨心明하니 本來是佛이라.
- 宗鏡錄 標宗章 -
한 티끌이 눈을 가리니
만 가지 허상(虛相)이 어지러이 날리고,
한 번 망령됨을 마음에 둠으로
항하의 모래알 같은 수많은 윤회를 거듭한다.
티끌을 제하여 허상이 사라지니
망령됨이 멸하고 참됨을 증득한다.
병과 약이 다 함께 멸하고
빙산이 녹으니 모두가 물일 뿐이다.
신단이 아홉 번 구르니
쇳덩이가 금으로 변함이요,
지극한 이치의 한마디 말은
범인을 성인으로 이끎일세.
분주한 마음이 쉬지 않다가
그친즉 보리요,
거울이 맑고 마음이 밝으니
이 또한 본래 부처이더라.
우리는 욕심의 눈으로 사물을 보기 때문에 천태만상의 사물의 경계에 떨어지게 된다. 또한 우리의 마음도 욕망으로 인하여 잠시도 한가할 틈이 없으니 끊임없는 윤회의 고해에 들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번뇌망상을 삼매진화(三昧眞火)로써 모두 녹이게 되니, 온갖 모양의 빙산이 녹아 모두가 한 가지 물일 뿐이다[萬物本於太極]. 여기서 신단(神丹)이 아홉 번 구른다는 것은 연정화기(煉精化氣) 과정에서의 기(氣)의 아홉 단계 변화를 말한다. 성철 스님은 그의 저서 {선문정로(禪門正路)}에서 신단(神丹)을 신령한 단약(丹藥)이라고 풀이하였다. 선가에서는 기(氣), 화(火), 약(藥), 단(丹)을 모두 기의 질적(質的) 변화 상태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신단구전에 대해서 상세히 살펴보자.
1) 일전위소환단(一轉爲小還丹)
취기(聚氣), 즉 최초로 양기(陽氣)를 모은 것, 축기(築基)를 이룬 것을 말한다.
2) 이전위음양환단(二轉爲陰陽還丹)
기(氣)가 모임에 따라 상단전의 신광(神光)과 하단전의 음정(陰精)이 적극적으로 엉기게 된다. 따라서 점차 탁기가 제거되어 순양(純陽)하게 된다.
양극즉음생(陽極則陰生)이라, 뜨거움이 극에 달해 시원하게 변하고 또다시 뜨거워짐을 반복하여 한 번 양(陽)하고 한 번 음(陰)하여 점차 후천순양지약(後天純陽之藥)을 이루니 곧 음양환단(陰陽還丹)이다. 1차 소주천의 통관은 이 음양환단에서 이루어진다.
3) 삼전위삼원환단(三轉爲三元還丹)
삼원(三元)은 천(天)·지(地)·인(人), 신(神)·기(氣)·정(精), 상단전·중단전·하단전, 불(佛)·법(法)·승(僧), 혜(慧)·정(定)·계(戒), 무색계(無色界)·색계(色界)·욕계(欲界)로 대비된다. 후천(後天)의 정(精)·기(氣)·신(神)이 점차 한곳에 응결되어 마침내 최초의 자연적인 구체(球體)를 형성하여 강력한 집중지력(集中之力)을 갖춘다. 자나깨나 길을 걷거나 식사 도중에도 언제나 느끼고 알 수 있어 마음이 흩어지는 것을 제어하기 시작한다. 우리 한단 수련의 불씨[火珠]에 해당하며 이로부터 서서히 무위법(無爲法)에 진입하게 된다.
이때에는 이미 소주천을 이루어 정·기·신이 합일하여 소약을 달이는 과정이 된다.
4) 사전위옥액환단(四轉爲玉液還丹)
初得丹是名玉液
以其丹始現於內
視之其色如白玉
還者還其本位也
처음으로 단을 얻으니 이름하여 옥액이라.
비로소 몸 속 깊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니
영롱한 빛 속의 본체는 백옥과 같더라.
모습을 드러내는 그곳이 어디인가?
돌아가는 그곳은 마음의 고향이라네.
마자연(馬自然)은 이것을 얻어 무병장수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옥액환단이 본위(本位)에 든다고 지적한 것이다. 달마께서 견성자리가 단전임을 이미 확연히 밝히셨고, 불공(不空) 또한 삼마지를 설명할 때에 "이 구멍(竅)을 알지 못하면 어느 곳에서부터 착수할 수 있는가? 오직 진사(眞師)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본위(本位)란 하단전 기혈(氣穴)을 말한다. 소약이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단전에 진입(進入)할 수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면 세 번째의 화주(火珠)와 소약의 관계를 살펴보자. 나는 소주천(小周天)을 1차·2차·3차의 과정으로 나누었다. 화주의 형성은 1차의 주천 과정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뱃속에 최초의 구체(球體)가 형성되어 강력한 열기에 의해 정(靜)하면 점차 단전으로 가까이 머무르고, 동(動)하면 저절로 아래로 내려가서 관문에 부딪쳐서 임독을 녹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여 불씨가 형성되는 가운데 이미 1차 주천이 이루어지고, 1차 주천이 원만해질 무렵이면 이 불씨가 손상됨이 없이 임독이맥(任督二脈)의 통로를 따라 무난하게 서서히 일주천(一周天)을 마치고 단전본위(丹田本位)에 들어 소약으로 변모하게 된다. 단전본위에 입실해야만 비로소 약탕관[鼎]을 바로 설치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2차 주천은 이러한 소약이 계속 주천의 화(火)로써 달여져 소위 말하는 '두병(斗柄)을 잡고 천강(天강)을 돌린다'는 것을 이루게 된다. 2차의 소약 주천(小藥周天)이 이루어지고 나면 소약이 완전히 무르익어 정(定)하고 또 정(定)한 가운데 천시(天時)가 이르러 곤괘(坤卦)가 형성되면 비로소 대약(大藥)의 싹인 진종자(眞種子)를 채취하게 된다. 이때 주의할 것은 생각으로 기를 뭉치거나 구슬을 상상하여 환단(幻丹)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5) 오전위금액환단(五轉爲金液還丹)
金爲肺, 其液還歸丹田而成金丹, 九轉火候秘在其中, 此以上斷呼吸之氣, 下斷交感之精爲徵驗也.
금은 오행상 폐(肺)의 기를 뜻한다. 금액(金液)이 단전으로 돌아가 금단을 이루니 구전화후의 비밀이 그 가운데에 있다. 이로써 위로는 범인의 호흡지기가 끊어지고 아래로는 교감의 정이 끊어지니, 이것이 금단을 이룬 징후이다.
옥액(玉液)은 소약(小藥)을 이루고 금액(金液)은 대약(大藥)을 이룬다. 구전화후의 비밀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호흡의 기(風息)가 끊어짐이다. 금단을 이룬 징후는 무엇인가? 교감의 정이 끊어져 구축불거를 이루는 것이다.
6) 육전위대환단(六轉爲大還丹)
대약이 무르익어 하단전의 단(丹)이 완성됨을 말한다. 이때의 주천은 무시(無時), 무간(無間), 무후(無候), 무정(無停), 무동(無動)으로 일체 무위(無爲)이며 이미 선천기(先天기)의 세계이다. 이때부터가 대주천이 된다.
7) 칠반환단(七返還丹)
칠(七)은 화(火)의 성수(成數)이며 화(火)는 바깥이 밝고 속이 어두워서 본체(本體)는 음(陰)에 속하고 용(用)은 양(陽)에 속한다. 또한 괘(卦)의 모양으로 살펴보면 바깥이 양효(陽爻)로 둘러싸인 것을 알 수 있다. 가운데 중효(中爻)는 곤괘(坤卦)의 중효(中爻)에서 진음(眞陰)을 취합한 것이다. 따라서 칠반(七返)이라 한 것은 신(神)은 화(火)로써, 정(精)은 수(水)로써, 상단전은 건신(乾神), 하단전은 곤정(坤精)의 비유에 따라 화(火)의 중효(中爻)가 본래의 고향인 곤정(坤精)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이때에 이미 하전에 내단(內丹)이 완성되어 상전의 신(神)이 합일하여 상하의 경계가 사라지고 욕계·색계·무색계의 일대경계(一大境界)가 다 허물어져 정(定)에 들게 된다. 이는 상단전의 원신이 하단전 기혈에 입실한 것을 뜻하니 이것이 곧 견성대각(見性大覺)이다. 이로부터 상단전에도 신단(神丹)이 완성된다. 포박자(抱朴子)는 말하기를 양생(養生)의 도(道)가 천종(千種)이나 있으되 오직 칠반구환(七返九還), 금액대환단(金液大還丹)이 제일이라 하였다.
8) 팔전위상중하환단(八轉爲上中下還丹)
7단계에서 상전의 신(神)이 하전 곤정(坤鼎)에 들어 삼계(三界)의 차별이 사라진다고 하였다. 즉 이것은 모든 경계가 타파되어 대허공계(大虛空界)의 자재(自在)를 이루는 이전 단계이다. 오래도록 정(定)하여 다생(多生)에 걸친 삼계(三界)의 업기(業氣)가 제거되니 드디어 그 증표로써 상·중·하단전에 각기 하나씩 대단(大丹)이 형성되어 처음에는 비록 그 크기의 차이가 조금씩 있으나 곧 동일하게 된다.
9) 구위구전환단(九爲九轉還丹)
구(九)는 금(金)의 성수(成數)이다. 하단전의 진양감괘(眞陽坎卦)는 원래 건금(乾金)의 중효(中爻)에서 취합(取合)한 것이다. 그러므로 칠반(七返)에서 상전의 건신(乾神)이 내려오고 하전의 곤정(坤精)이 올라가니 수화기제(水火旣濟)의 대공(大功)을 이룸이라. 고로 구환(九還)이라 한 것이다. 즉 감수(坎水)가 본향인 건금(乾金)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로써 수화(水火)가 하나되고 정신(精神)이 일도(一道)하여 영육(靈肉)이 일치하니 드디어 성인(聖人)을 이루는 것이다. 그 증험으로 이미 누진통을 이루어 구축불거지상(龜縮不擧之象)을 갖추게 되니 육신통(六神通)이 저절로 나타난다. 그리고 불가의 견성은 이미 칠반(七返)의 경계이며, 그 이후는 성불(成佛)의 과정이며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이루는 것이다. 예로부터 견성성불(見性成佛)은 있었으나 견성즉불(見性卽佛)은 없었다. 이는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달마 조사의 유시인 '한 가지에 다섯 잎이 피게 되면 법을 전하지 말라'는 뜻을 따른 것이다.
달마는 누구인가?
評理云
靑牛西去玄學著
白馬東來佛法興
天人性命原無二
至道歸一德自明
푸른 소가 서쪽으로 가니 현학이 드러나고
백마가 동쪽으로 오니 불법이 흥하도다.
천과 인, 성과 명이 본래 둘이 아니니,
지극한 도리는 모두 하나의 근본으로 돌아가고
사해로 비치는 큰 덕은 스스로를 밝힘이라.
청(靑)이란 목(木)의 색이며, 백마(白馬)의 백(白)은 서방(西方) 금(金)의 색이다. '청우서거(靑牛西去)'는 노자(老子)가 함곡관을 지나 동쪽에서 서역으로 소를 타고 건너간 인(因)을 말함이며, '백마동래(白馬東來)'는 서쪽에서 불교가 동쪽으로 건너온 과(果)를 말함이다. 서역 인도의 초조(初祖) 석가모니불 이래로 이십 칠조 반야다라의 정법안장을 전해 받은 이십 팔조 보리달마가 중국으로 건너와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가 되었다. 일설에는 달마가 그의 유시에서 '한 가지에 다섯 잎이 피면 법을 전하지 말라'고 하였다 하니, 이것이 곧 서역에서 동쪽으로 뻗은 불법의 한 가지가 아니겠는가? 다섯 잎은 두말할 것도 없이 달마 이후의 다섯 전인(傳人)들이다.
오조 홍인(五祖弘忍)에게 유명한 관상가가 대사의 관상을 보고서 당신은 부처의 삼십 이상(三十二相) 가운데 일곱 가지 상호가 모자라 부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다. 또한 돈황에서 출토된 [육조단경]에서 오조는 '不知本性이면 學法無益이라(본성을 알지 못하면 법을 배워도 소용이 없다)'라고 흘려놓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혜능의 시에서 이미 혜능이 마음을 깨쳤음을 알고 한밤중에 정법안장(正法眼藏)의 법을 따로 전해준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어찌해서 깨치면 곧 부처라고 하였는가? 이는 달마 조사의 유시를 따른 것이며 화두를 두어 근기(根器)가 약한 중생의 마음을 닦게 함에 그 목적이 있다. 또한 근기가 되지 않는 중생이 욕심으로 도를 구하니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한 자비심의 발로이기도 하다. 구전환단(九轉還丹)은 선 수련에서는 연정화기의 과정을 마침이며 불가에서는 소위 견성대각인 것이다. 생각해 보라. 진성(眞性)을 깨닫지 못하고 하는 수련이 어찌 참되다고 할 수 있는가? 마음이 완전치 못하므로 항시 외도에 떨어지는 위험이 따르게 된다.
진정한 수련은 진심(眞心)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진심이 되어야 비로소 진아(眞我)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육조 혜능이 이미 금강경의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낸다'는 구절에서 크게 깨쳤다 하나 오조 홍인께 밤중에 은밀히 법[正法眼藏 修煉法]을 전수 받고 남쪽으로 내려가 십 수년을 수련했음을 간과하지 말라.
깨치고 깨치어 또 깨우친다 하며,
공(空)하다, 무(無)이다 하며 끊임없이 공(空)을 찾는다.
있는 것을 보고 없다고 함도 잘못이며
안 보이는 것만 내세우고 보이는 것을 부정함도 잘못이다.
이 모든 것이 경계에 떨어짐이니
부질없이 세월만 보낸다.
본래 색(色)과 공(空)이 둘이 아니라고 했건만
사람들은 어찌 한 쪽만 잡고 가는가?
3. 백일 축기(百日築基)
백일 축기란 우리의 삶에서 손실된 정(精)과 기(氣)를 보강하여 수련인으로서 정만기족(精滿氣足)의 상태를 이루고자 하는 데에 그 뜻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선도에서의 백일 축기는 곧 다른 종교의 백일 기도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우리는 일반 종교 단체에서 행하는 백일 기도를 흔히 볼 수 있는데, 그 기도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지극한 몸가짐과 정성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놓고서도 그처럼 온갖 정성을 다하는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성숙시키기 위해서 그만큼 노력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고서(古書)에서는 열 대여섯 살의 연령층은 아직 태어날 때부터 간직한 근본 양기의 손실이 없으므로 동선(童仙)이라 하여 백일 축기의 과정 없이 곧바로 소약을 채취한다고 하였으나, 이 또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물론 수련에서 어린 연령층이 기적(氣的)으로 유리한 것은 사실이나, 어린아이라고 하여 모두 건강한 것도 아니오, 나이가 많다고 하여 모두 기력이 쇠한 것도 아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두세 달 가량 임상한 결과 기적(氣的)으로는 성인이 수 년 동안 쌓아야만 이룰 수 있는 경지를 단숨에 도달하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몸을 앞뒤로 끄덕끄덕 흔들면서 수련하기에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뜨거운 기운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서 앞뒤로 원을 그리며 돌아가서 몸이 저절로 흔들린다고 하였다. 또 어떤 아이는 뱃속에 뜨거운 불덩어리 같은 것이 있어 온 뱃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이러다가 뱃속에 불이 나서 다 타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을 하는 등 가히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진전을 보였다.
그러나 이런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집중력이 약하고 부모의 강요로 마지못해 하루 10∼20분 정도씩 수련하므로 이렇게 강력하게 발생하는 몸 속의 기운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뿐더러, 또한 그러한 주의도 기울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이 선도 수련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외도적(外道的) 현상이나 신기한 초능력(?)이 나타날 때에 그것을 조절할 만큼 정신수양이 닦이지 못하였으므로, 부득이 모두 수련을 중단시킨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 수련은 어느 정도 철이 들 무렵인 중학교 2, 3학년 때부터가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아마 이러한 나이에 이 수련을 시작한다면 어느 정도의 경지는 손쉽게 도달하리라 본다.
백일이라는 기간은 한정된 것이 아니므로 백일 이전이나 이후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백일 수련으로 정만기족(精滿氣足)의 상태가 되면 곧 속불씨, 즉 소약(小藥)의 채취에 들어갈 수 있다. 빠른 수사는 백일 이전에 벌써 소약을 채취할 것이요, 늦으면 좀더 지속적인 수련을 해야 하고, 기력이 약하거나 일상생활에서 많은 기를 소모하는 사람은 먼저 1차 소주천을 행하여 좀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소약 채취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 수련이 어려운 것이며 성과가 늦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반 사회 생활과 비교해 보라. 직장이나 입시, 운동, 종교적 기도생활 등에 투자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이나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백일 축기란 몸의 질병을 없애야 함은 물론 손실된 정을 회복하여 '힘'을 되찾아야만 한다. 즉 강력한 불(陽火)을 얻으려면 충분한 땔감을 확보해야만 한다. 육조 혜능 대사가 '음욕이 불성'이라 한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고개 숙인 남성'으로 무기력한 신체나 마음으로 그 무엇을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백일 축기의 기간을 통하여 절제된 생활과 좋은 습관을 익혀 앞으로의 수련 생활에 밑받침이 될 만한 몸과 마음가짐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온몸에 정(精)이 충만해야만 이러한 정을 단련하여 충분한 기로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1. 와공
1) 집단법
집단법은 말 그대로 기를 모으는 법식이다. 이것을 선도에서는 외단약(外丹藥)을 모은다고 한다. 이 집단법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호흡으로 외부의 기를 우리 몸에 끌어들이고, 자신의 내부의 기와 영양소를 혼합하여 후천기를 배양하고 단전에 운집하는 방법으로서 단전 개발의 시초가 되는 것이다.
오행 변화의 원칙과 수기(水氣)의 원리에 따라 기(氣)가 모여서 뭉치며, 화(火)의 원리에 따라 기가 모여 점점 더 강력한 열기 즉, 양기(陽氣)가 발생한다. 이렇게 하여 손바닥과 배 표면이 뜨거워져서 차츰 기의 세력이 강화되어 이동이 가능해지면, 두 번째 단계 수련인 용단법(湧丹法)으로 넘어간다. 즉, 외양화(外陽火)의 형성까지가 집단법의 과정이다. 수사(修士)들은 스스로의 뱃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뭉쳐 있는 느낌과 이동을 감지하고 발바닥이 따뜻해지면 이때부터 용단법으로 바꾸어 수련한다.
1. 자세
2. 호흡
3. 문인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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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세
① 가장 편안하게 누워서 다리를 15∼20도 정도로 자연스럽게 벌리며, 베개는 얕은 것을 베거나 아니면 베지 않는다. 혈압이 높은 사람은 베개를 사용해도 무방하다.
② 편안히 누운 뒤에는 심호흡을 몇 차례 하여 온몸을 이완시키고 긴장을 풀어 준다. 마치 무중력 상태에 두둥실 뜬것처럼, 또는 깊은 바다 속에 편안히 떠다니는 것처럼 온몸에 힘을 빼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③ 가운데손가락의 셋째 마디, 즉 손바닥과 손가락이 연결된 마디를 배꼽의 한가운데에 댔을 때 가운데손가락의 끝이 닿는 부분이 그 사람의 관원(關元) 자리이다. 이곳에 직경 4∼5센티미터의 구멍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구멍에서 등 쪽으로 10분의 7 지점을 단전이라고 대강의 위치를 정하고 호흡에 임한다.
④ 손바닥은 자연스럽게 펴서 팔꿈치가 바닥에 닿은 상태로 아랫배에 갖다 댄다.
⑤ 상체도 없고 하체도 없으며 오직 단전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2. 호흡
먼저 모든 호흡에서 다음의 두 가지를 절대 금함을 밝혀 둔다. 첫째는 지식(止息)이다. 기도(氣道)를 막고 숨을 억지로 참는 것을 절대 금한다. 둘째는 강호흡(强呼吸)이다. 이것은 근육에 무리하게 힘을 가하는 것으로서 점점 더 강하게 시행하여야 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이 두 가지는 자연의 섭리에 크게 위배될 뿐만 아니라, 기의 흐름을 차단하는 원인이 된다.
① 의식을 하단전의 표면에 만들어진 가상의 구멍에 집중한다.
② 코로 들이마시고 내쉬되, 그러한 생각을 모두 버리고 오직 단전과 그 출입구인 구멍만을 생각한다.
③ 구멍으로 직접 외부의 무한한 기를 흡입하는데, 이때 주의할 점은 그냥 들이마시지 말고 뱃속 단전에서 바깥의 기를 빨아들이는 상태로 흡입하여야 한다.
④ 호흡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하고 숫자를 세면서 부드럽게 연속적으로 들이마시고, 숨이 가득하여 배가 꽉 찼을 때 2, 3초쯤 더 빨아들인 뒤 - 이때는 더 이상 배는 불러오지 않으나 의식적으로 3초 정도 더 빨아들인다 - 단전에 의식을 집중한 채 온몸의 힘을 빼 주는 기분으로 숨을 편하게 내쉰다. 숨을 토할 때는 꼭 어디로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의식을 단전에 집중한 채 가볍게 어깨를 내리는 기분으로 하면 된다. 의식이 가는 곳에는 기가 따르므로 의식을 바깥으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 또한 숨을 토하는 것은 탁기가 배출되는 현상이니 내쉴 때마다 몸의 힘을 빼서 부드럽고 편안하게 이완시켜 준다. 초심자의 경우에는 아무리 편하게 들이마셔도 웬만큼 숨이 차 오름에 따라 몸이 조금씩 긴장하거나 경직되기 때문에 숨을 토할 때마다 이것을 풀어 주어야 한다. 숨을 토할 때는 자연스럽게 편안할 만큼만 토해야 하며, 억지로 많이 토하면 안 된다.
⑤ 또 한 가지 호흡법은 부드럽게 쭉 연속으로 들이마시지 않고 1초에 1흡(吸)씩 끊어서 들이마시는 것으로, 호흡에 맞춰 숫자를 세면서 들이마신다. 만복(滿腹)이 되면 3초 정도 더 쭉 빨아들인 뒤 토하는 요령은 앞의 경우와 같으며, 토할 때는 숫자를 세지 않는다. 초심자의 경우는 집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이 두 번째 방법을 쓰는 것이 집중력을 높일 수 있으며, 단계적인 수련으로 볼 때 효과가 있다.
⑥ 숨을 들이마시는 양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일곱 번을 들이마시는 것이 기준이라면, 어떤 사람은 두세 번, 어떤 사람은 이삼십 번을 들이마시기도 하는데,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가슴과 어깨가 뻐근해지거나 답답해지는 증상은 호흡량이 지나치게 많아 무리가 온 것이다. 몸이 불편하지 않는 범위로 양을 조절해야 한다.
⑦ 이런 요령으로 되풀이하는데, 호흡 시간은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10∼40분까지가 알맞으며, 무리하게 오래 하는 것보다는 두세 번 정도로 나누어서 5∼10분쯤 쉬었다가 다시 수련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⑧ 기(氣)가 약하거나 초심자인 경우는 대개 호흡 도중 잠이 들게 마련이다. 반쯤 깬 상태에서 잠을 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며, 깜박 잠들어서 호흡을 하다가 깨어났다가는 또 깜박 잠드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호흡을 한다는 의식이 하단전에 걸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기가 많이 보충되는 아주 좋은 현상이다. 매일 잠들기 전에 반듯이 누워서 호흡을 하는 상태로 잠드는 습관을 들이면 수면 시간을 그대로 호흡 시간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그냥 잠만 자는 것보다 몇 배의 피로 회복 효과와 수면 시간의 단축을 가져온다.
⑨ 모든 호흡 수련이 끝날 때는 반드시 봉고(封固)를 해주어야 한다. 가만히 단전에 의식을 집중하고 호흡을 잊어버리며 기가 단전이란 창고에 집중하도록 지켜본다. 그러면 차츰 뜨거웠던 손바닥이나 몸이 천천히 식어 가면서 기는 단전에 모이게 된다. 봉고의 시간은 5∼10분 정도로 각자 알맞게 해준다.
⑩ 이렇게 하여 몸과 마음이 고요해지면 천천히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직이고 팔다리, 어깨를 조금씩 부드럽게 움직여서 몸을 풀어 준 다음 천천히 옆으로 일어난다. 앉아서 수련하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손바닥으로 발바닥이나 다리, 상체 등을 가볍게 쓸어 주고 다리를 풀어서 충분히 몸이 풀린 다음에 일어난다. 무리하게 몸을 풀거나 힘이 들어가는 동작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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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인 문답
문1 : 어찌하여 누워서 하는지요?
답 : 모든 것은 정(靜)에서 동(動)으로, 다시 동에서 정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음이 자연의 이치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에는 누워서 생활하다가 차츰 힘이 생김에 따라 일어나 앉는 것처럼, 시작과 끝에 순서가 있다. 우리의 몸을 움직이면 몸 안의 기가 움직이고 정신도 흔들리기 쉬우므로 처음 기를 모으는 과정에서는 누워서 몸도, 마음도, 기도 고요히 하나의 초점[단전]에 고정하여 수기(水氣)의 형성 과정이 일어나도록 한다. 또한 기의 유통이란 긴장하지 않고 이완된 상태에서 잘 흐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앉아서 수련하면 집중 자체에도 문제가 있으려니와 다리가 마비되고 허리가 아픈 나머지 몸의 자세마저 흐트러져 수련이 되지 않는다. 몸도, 호흡도 고요히 해야 한다.
문2 : 이 집단법으로 양기를 모은다고 하셨는데, 양기는 어떻게 형성되며 수사는 무엇으로 아는지요?
답 : 우리가 흔히 기를 에너지라고 말하는데, 꼭 그러한 것은 아니다. 본디 천기(天氣)와 지기(地氣)는 자연의 기로서 그 자체가 에너지는 아니다. 이러한 자연의 기가 우리 몸에 흡입되어 몸 속의 영양소와 합성되어야 에너지라는 측면의 양기, 즉 열성(熱性)의 기(氣)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자의(字義)로 볼 때에 기(氣)는 땅에서 생성된 지기[精]를 뜻하며, 이것이 천기와 합성되어 발생된 양기를 안에 火가 들어있는 기 자로 표현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양기의 힘으로 우리 몸의 모든 순환 작용과 신진대사 등의 온갖 생명 작용이 유지되니, 양기는 생명현상 그 자체이다. 그래서 양기가 많은 건강한 사람은 몸이 덥고 후끈후끈하여 여름이나 겨울에도 더위나 추위를 잘 견디며, 양기가 모자라는 사람은 체온이 낮고 손발이 차서 여름이나 특히 겨울에 고생을 한다. 그러므로 양기라는 것은 따뜻한 기운임을 인식할 수 있다. 상상해 보라. 우리 몸에서 따뜻함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여러분은 아마 동상에 걸려 죽은 사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겨울에 등산을 하다가 동상에 걸려서 전신이 마비되는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할 때의 체온은 영하가 아니다. 정상 체온에서 불과 몇 도만 떨어져도 우리 몸은 그 기능이 마비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 몸은 양기로써 그 생명현상이 유지되고, 이 양기가 다하면 차가운 음기만 가진 영혼, 즉 귀신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음식물과 수련을 통해 양기를 많이 형성해야 한다. 양기는 곧 뜨거운 화의 성질을 갖고 있음을 스스로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수사들은 이것을 어떻게 스스로 인지하는가? 수련에 임하게 되면 맨 먼저 뜨거워지는 것이 양 손바닥, 배 표면의 순서로 감지된다.
문3 : 그러면 최초의 양기는 손에서 발생합니까?
답 : 손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아랫배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 발생한다. 우리 마음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 눈과 손이다. 그래서 손에 있는 양기를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문4: 손이 뜨거워지고 배 표면이 뜨거워지면서 외양화(外陽火)를 형성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외양화란 무엇 인지요?
답: 양화(陽火)란 양기가 뭉쳐서 뜨거운 불기운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며, 이 뜨거움이 극에 이르면 이것을 순양(純陽)이라 하고, 순양이 극에 이르면 곧 순음(純陰)으로 바뀌니, 순양과 순음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양화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외양화(外陽火)란 배 표면의 양기들이 모여서 하나의 뜨거운 불덩어리를 형성하는데, 이것을 나는 '불씨'라고 부른다. 이 불씨의 형성이야말로 첫 번째의 공(功)을 이루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불씨가 점점 더 깊숙하게 단전을 향해서 몸 속을 정화시키고 단전에 자리잡는다. 이것을 내양화(內陽火)라 하며, 소약(小藥)이라고도 한다. 나는 이것을 '속불씨'라고 한다.
셋째, 진화(眞火)이다. 이것은 속불씨, 즉 소약에 다시 신화(神火)가 내려와서 합일하여 신비스러운 불길이 타오름을 말하는데, 이것은 뜨겁지 않은 불길이요, 대약의 불이다. 나는 이것을 '선천지화(先天之火)'라 한다. 수사는 이 불씨가 마련되면서부터 오직 이 불씨가 약해지지 않도록 늘 마음을 집중할 것이며 - 이를 신(神)의 집중이라고 한다 - 양기라는 장작을 많이 모아서 이 불씨가 더욱 강성하도록 하여 수련이 일취월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5: 호흡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양기를 많이 생성할 수 있는지요?
답: 신(神)에 의하여 영양소와 기의 합성 작용이 일어날 때, 호흡은 이러한 합성작용을 강화 발전시켜 주며 후천기를 이동시키는 동력원이 된다. 다시 한 번 살펴 보라. 우리 몸의 내부 기관 가운데 우리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오직 호흡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혹은 빠르게 혹은 느리게 우리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우리 몸을 조절하고 우리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비밀의 열쇠이다.
그러므로 호흡이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몸의 활동상태, 즉 신체리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리듬을 찾아 나의 의식과 그 리듬을 일치시켜 호흡에 착수한다.
둘째, 기의 흐름이다. 이 기의 흐름이 멈추면 호흡이 멈추며 생명이 멈춘다.
셋째, 기의 운반 수단이다. 호흡에 의해서 기를 운반하는 동력이 생긴다.
넷째, 호흡은 양화를 더욱 세게 타오르게 하는 풀무질, 또는 부채인 셈이다.
다섯째, 호흡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조절하는 비밀의 열쇠이다. 호흡을 고요히 가다듬고 관찰하면 우리의 마음도 고요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양기를 많이 형성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살펴보겠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연식품을 잘 먹고, 수련하며, 잠을 충분히 자고, 마음을 편안히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습관을 들여 상대를 이해하고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것이다. 흔히 주변에서 "나는 기(氣)를 먹고 산다." 라고 하면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며 선식(仙食)이나 채식만 하면서 고기를 먹지 않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또는 단식을 주기적으로 하여 자신의 몸을 정화한다는 사람도 있는데 이러한 경우는 문제가 많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얼굴이 검거나 해쓱하여 빛이 없고 활기가 없는 것이 공통점이다.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채식이나 하는 방법으로 그리 쉽게 된다면 이 세상에 부처나 도사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강력한 양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영양이 부족한 초심자일수록 육식을 권하고 싶다. 물론 채소를 적절히 곁들여야 하지만, 이러한 강력한 양기로써 몸의 음기를 몰아내고 몸을 점점 깨끗하게 만들어 가면 그때부터는 서서히 좀 더 맑고 깨끗한 음식을 스스로 가려서 섭취하게 되고 탁하고 부정한 것은 몸에서 받아 주지 않게 된다. 먹지 않고 무엇으로 양기를 만든다는 말인가? 또한 단식은 극약 처방이나 마찬가지다. 건강한 사람으로써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경우 외에는 권하고 싶지 않다. 우리 단전호흡 수련자들은 근본적으로 단식을 금해야 한다.
여기서 한 번 더 주의를 기울일 것은 처음에 수련을 하면 식욕이 왕성해져서 과식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과식은 절대 금물이다. 차라리 자주 먹는 편이 낫고 너무 배불리 먹지 않도록 한다.
문6: 저는 육식을 하지 못할 뿐더러 입이 까다로워 편식을 합니다. 또 그렇게 자주 먹는다면 살이 찌지 않을까요?
답: 우리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한다 함은 수·화·목·금·토 오행의 기운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편식을 하면 기가 치우치게 되고, 성격 또한 편협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성격이 원만할수록 아무 것이나 잘 먹는다. 또한 살이 찌는 것은 몸의 순환 계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노폐물이 몸 속에 쌓이는 현상이다. 흔히 개소주나 흑염소를 먹고서 살이 찌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그 사람의 순환 계통이 활발하지 못하여 제대로 흡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바깥으로 배출하지도 못하여 그대로 몸에 쌓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련을 통해 뜨거운 양기를 만들면, 몸에 쌓여 있는 노폐물까지 모두 태워서 그것을 기(氣)와 정(精)으로 만들어 우리의 뼛속을 채워준다. 또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며 핏속에 정이 충분히 깃들여 있어 온몸에 활력이 넘치게 된다. 살찐 사람은 몸무게가 줄고 마른 사람은 알맞은 몸무게가 된다. 뼛속에 골수가 가득해지고 온몸에 정기(精氣)가 채워지면 한두 끼를 굶어도 배는 고플지언정 허기는 지지 않는다. 그러나 살찐 사람은 한두 끼를 굶으면 허기가 져서 허리가 꼬부라지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영양소를 양기(陽氣)나 양정(陽精)으로 바꿔주지 못하여 뼛속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뼈가 튼튼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뼛속이 비면 힘을 쓰지 못하고, 심하면 뼈에 구멍이 생기는 골다공증에 걸린다. 그러나 이 병도 수련으로 치유할 수 있다. 「맹자」에도 '비육불포(非肉不胞)'라 하여 나이 많은 사람은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다는 말이 나오듯이, 나이가 들면 신진대사가 약화되어 양기의 생산이 둔화되고 호흡이 가슴이나 목으로 올라와 뼛속의 골수가 마르니, 무릎이나 손발에서 찬바람이 난다. 그러므로 우리 수사들은 불씨를 만들어 언제 어디서나 음식물을 먹는 즉시 아랫배에서 뜨거운 양기가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정기(精氣)가 충만해지면 자연히 음식물의 섭취량이 줄게 되어 소식(小食)을 하며 부정한 음식은 몸에서 거부하게 된다.
문7: 호흡할 때 지식(止息)과 강호흡(强呼吸)을 금하셨는데 무슨 까닭 인지요?
답: 먹지 않는 것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숨쉬지 않는 것으로 무병 장수한다함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한순간의 극약 처방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지식이란 수백 년 전부터 선도에서 금지해 온 법인데, 폭발적인 힘이나 강력한 자극을 일으키기 쉬우므로 끊임없이 전해 내려와서 근절되지 않았다. 하나씩 그 문제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생명이란 숨쉬는 것, 즉 호흡을 통한 순환작용(循環作用)이다. 그러므로 지식(止息)은 스스로 숨을 멈춤으로써 그 근본을 망가뜨리는 행위이다. 어떤 이는 코와 입을 쓰지 않고 세포로 호흡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고서를 잘못 이해한 탓이다. 코와 입을 쓰는 호흡을 풍식(風息)이라 하고, 온몸의 기혈(氣穴)을 쓰는 호흡법을 기식(氣息) 또는 내호흡(內呼吸)이라 하는데, 기식은 소약 이후에나 어느 정도 가능해지기 시작한다. 또한 그 어느 경우이든 기도(氣道)를 꽉 막고 하는 호흡은 아닌 것이다. 흔히 말하는 새의 깃털을 코끝에 갖다 대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식의 억지호흡과는 크게 다르다.
둘째, 지식은 산소 결핍으로 인하여 서서히 내장을 굳어지게 하며 노화를 촉진시킨다. 이 지식을 처음 수련할 때는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고 강력한 신진대사가 이루어져 몸이 무척 건강해지는 것 같으나, 이는 강제 순환에 따라 차츰 몸에 무리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한 상기(上氣) 증상을 일으켜 그 탁기(濁氣)가 머리를 쳐서 뇌에 타격을 주어 두통이나 어지럼증, 또는 수련 도중 기절하여 쓰러지는 경우가 속출한다. 이처럼 지식은 잠재된 양기를 촉발시켜 모두 바깥으로 끌어내려 건강해지는 것 같으나, 그 속부터 골병이 들기 시작한다. 그 옛날 이름난 차력사는 내장이 돌덩어리처럼 굳어서 죽었다. 강호흡 또한 무리한 힘을 주는 호흡으로서 이것도 내장이 굳어지고, 그 굳은 부분을 통과하려니 더 힘을 주게 되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을 보라. 그들의 호흡은 아랫배에서 고요히 이루어지며 그들의 배를 눌러보면 부드럽고 탄력이 있어 만져도 아파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워서 자신의 배를 눌러 보라. 딱딱하게 굳어서 통증을 느끼게 되는데, 어떤 이는 이것을 근육이 생겼다고 하며 또는 내단(內丹)이라고까지 말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기의 순환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음(陰)이 쌓여 이루어진 음기 덩어리, 즉 적(積)이며, 양기 순환으로써 이것들을 모두 얼음을 녹이듯 풀어내야 한다.
셋째, 깊은 물은 소리 없이 고요히 흐르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이 호흡 수련도 그 수련이 깊어질수록 고요하게 몸과 마음이 가라앉아 삼매(三昧)와 정(定)에 들어가야 하는데, 지식을 하거나 강호흡을 하면 속이 답답하고 열기가 치솟아 머리가 어지럽고 몸을 긴장시켜 그 마음도 흔들려서 정(定)과는 거리가 멀어지니, 이 무슨 선도 수련이라 하겠는가? 파도가 일어나면 물의 맑음도 사라지는 법이다.
문8: 저는 집단법을 하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이, 마치 수십 길 낭떠러지나 어두운 동굴 속, 또는 블랙 홀 같은 곳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서, 이렇게 하다가는 무엇이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겨 수련을 중단하곤 합니다. 어찌하면 좋은지요?
답: 먼저 수련 도중 곧잘 일어나는 현상임을 밝혀 둔다. 대개 사람에 따라서 상전, 중전, 하전의 발달 양상이 다른데, 이런 경우는 상전이 발달한 사람에게서 주로 일어난다. 이런 사람은 대체로 머리가 좋고 집중력이 대단히 강하다. 상전이 발달한 사람은 수련 도중 신비한 광경을 보거나 단전의 형상을 신기루처럼 보기도 한다. 또 몸 속, 즉 소우주를 깊숙이 여행하게 되며,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각양각색의 장면을 보게 되니, 이것은 모두 몸 속의 음(陰)이 남아 있기 때문에 양광(陽光)이 부족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실제와 같은 현장감이 따르지만, 양기와 합일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신광(神光)만을 쓰게 되어 정신 세계로만 빠져드니, 진정한 음양합도(陰陽合道)가 아니다. 오직 양기와 합일해야 실제의 오아시스에서 물을 마실 수 있으리라.
위의 경우는 실제로 위험은 없으나, 신비한 체험으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이상세계에 빠져드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뱃속의 따뜻한 양기의 감각을 찾아 그 양기에 의식을 집중하여 일심 동체로 움직이도록 하라. 양기는 앞으로의 수련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최고의 수단이 될 것이다.
문9: 저는 집단(集丹)을 하다 보면 손이나 팔이 마비되는 느낌을 받고, 또 저려오곤 합니다. 왜 그런지요?
답: 그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스스로 양기가 모자라 혈액 순환이 잘 안되는데다가 오래도록 부동자세로 고정한 채 움직이지 않아서이다.
둘째는 위와 같은 이유이지만, 스스로의 집중력이 강하여 하전에서 사방의 기를 강력하게 흡입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손바닥의 기마저 강하게 끌어당기는 경우이니, 이럴 때는 손바닥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한다. 온 몸의 기를 하단전에 모음으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다른 부위의 기가 부족해서 느끼는 현상이다. 이런 때는 별다른 이상이 없으며 기가 강화되면 자연히 사라지게 된다.
문10: 집단법은 누워서만 하는지요?
답: 가능하면 누워서 하고, 때와 곳에 따라서 어떤 자세든 무방하다. 호흡 방법만 똑같으면 된다. 즉 앉은 자세나 걸으면서도 가능하다.
문11: 저는 수련만 하면 잠이 오는데, 어찌 해야 좋은 지요?
답: 그것은 기가 모자라서 오는 현상이다. 피로와 긴장이 쌓여 있다가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함에 따라 몸의 순환이 풀려나가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므로 저절로 잠이 오는 것이다. 초심자로서 좋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 기가 충만해지면 잠은 저절로 사라진다. 잠이 들 때까지 단전에 의식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의식집중이 잘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자신은 호흡을 하고 있으나 몸은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경우도 곧잘 일어난다.
2) 용단법
이제 집단법으로 최초의 축기인 양기를 형성하고, 또한 그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양기가 모여 천천히 이동할 만큼 강력해졌으므로 두 번째 단계 수련인 용단법에 들어가서 하체를 유통하게 된다.
선도 수련이란 유위(有爲)에서 무위(無爲)로, 점법(漸法)에서 돈법(頓法)으로 들어가는 수련인 만큼 점진적인 수련을 통해 교육받아야 한다. 선도에서는 삼성내단(三成內丹)까지가 점법에 해당하며, 삼성내단 이후는 돈법에 해당한다.
1. 자세
2. 호흡
3. 문인 문답
1. 자세
집단법과 같다.
2. 호흡
① 아랫배의 가상으로 만든 구멍을 지워버리고 발바닥에 있는 용천혈(湧泉穴 : 발바닥에 여덟 팔 자로 갈라진 부분에 있는 혈)에 가상의 구멍을 만든다. 발바닥 전체를 의식하며 들이마셔도 괜찮다.
② 용단법에서는 상체는 의식하지 말고, 단전과 하체를 동시에 의식하도록 한다.
③ 발바닥으로 기를 끌어당기면서 들이마시되, 몇 번으로 나누어서 단전까지 끌어들인다. 이때 중간중간 멈추는 부분에 의식을 분명하게 갖는다.
④ 이때 호흡은 집단법보다 조금씩 더 길게 하여 행하며, 이 또한 숫자를 세어 준다(집단법에서 1초씩 행하였다면, 용단법에서는 3초씩 한다).
⑤ 차츰 이렇게 끊어서 하는 방법에 익숙해지고 다리에 어떤 움직임이 느껴지면 그냥 숫자만 세면서 호흡을 끊지 말고 길게 연속적으로 단전까지 기를 끌어들인다.
⑥ 숨을 토할 때에는 단전에 의식을 머물러 두고 발바닥을 향해서 편하게 이완시키며 토한다.
⑦ 숨을 단전에 들이마셔서 배가 꽉 찼을 때 역시 2, 3초 정도 더 끌어 주도록 한다.
⑧ 의식 집중의 비율은 단전에 70∼80%, 용천에 20∼30%로 배분한다.
3. 문인 문답
문1: 용단법은 어떤 효과가 있는지요?
답: 우리 몸을 이루는 2대 기운은 수기(水氣)와 화기(火氣)이다. 화는 상체에 있는 심장에 근본을 두고 수는 아랫배의 콩팥에 근본을 두니, 이 두 기운이 서로 잘 조화되면 수의 기운은 상승하고 화의 기운은 내려가서 건강을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발은 따뜻하게, 머리는 시원하게 해줘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의 생활은 각종 스트레스와 고도의 두뇌 활동으로 인해 머리는 열기가 차 오르고, 하체의 운동부족으로 말미암아 수기는 밑으로 흘러서 서로 만나지 못하니 만병의 근원이 된다. 물은 아래로만 흐르고 불은 위로만 타올라서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함을 해결하는 호흡법이 바로 용단법이다.
문2: 저는 집단법을 할 때에는 기도 잘 모이고 집중도 잘 되었는데 이 용단법을 시행한 다음부터는 양기도 약해지고 느낌도 둔해졌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요?
답: 잘못된 것이 아니다. 처음에 집단법에서는 하복부의 한정된 부분에만 기를 집중하다가 용단법에서는 범위가 넓어져 하체 전체를 대상으로 하게 되니 자연히 기의 농도가 옅어지고, 따라서 뜨거운 느낌도 약해진다. 계속해서 양기가 늘어나면 이 또한 해결된다.
문3: 저는 다리에서 따뜻한 기운을 못 느끼고 서늘한 바람 같은 것이 빠져나가면서 발이 차가워지는데, 이것도 기의 일종인지요?
답: 우리가 호흡법을 통해 느끼는 기의 감각은 참으로 다양하다. 서늘한 바람이 흐르는 것 같거나 발바닥이 차가운 것은 이제 하체에 기의 유통이 이루어져서 양기에 의해 음기가 밀려나가는 현상이다. 이렇게 하여 음기가 바깥으로 많이 배출되고 양기의 비중이 음기보다 높아지기 시작하면 차츰 발바닥이 따끈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문4: 저는 처음에는 다리가 묵직하거나 약간 마비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서 차츰 호흡이 깊어지면 몸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아서 주변의 대기(大氣)와 같아진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는 어떤 현상인지요?
답: 처음에 몸이 무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은 몸의 이완이 잘된 상태이고, 다리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은 기의 유통이 원만해져서 외부의 기와 교류가 잘 이루어진 상태이다. 호흡하는 것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면 각자의 호흡 능력에 따라 주변의 대기가 그 사람의 호흡에 따라 파동 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용단법의 경우는 마치 고무 호스에 물이 통과하듯 의식이 집중된 부분이 부풀어오른 상태로 쭉 빨려 들어왔다가 쭉 내려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스스로는 아직 수련이 약하고 양기의 빛[陽光]이 어두워서 자기 몸도 잘 모르지만 지도하는 사람은 다 알 수 있다.
문5: 용단법에서도 봉고를 해줍니까?
답: 물론이다. 모든 호흡 수련이 끝날 때는 반드시 봉고를 하고 몸을 풀어 준 다음 천천히 여유 있게 움직여야 한다.
문6: 저는 수련을 할 때 때때로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찌릿하며 감전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어떤 경우 인지요?
답: 이때는 외부의 강력한 기운이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기적인 기운은 몸에 축적되지는 않고, 그냥 몸을 통과하여 바깥으로 흘러 나간다. 다만 우리 몸의 순환을 도와주기는 한다. 나도 초심자 시절에 몇 번 이러한 기운을 잡아서 축기를 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으나 축기는 되지 않았다.
3) 사지법
우리 몸을 순환하는 경락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 이러한 맥을 유통할 수 있는 동력원을 얻는 것이 바로 축기(築基)이며,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바로 불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가 약하다면 맥을 아무리 뚫으려고 해도 뚫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고서에서는 흔히 '공차(空車)'를 경계한다. 이는 가기주천(假氣周天)이니 신과 양기의 합일에 따른 진기(眞기)가 아니고 의식의 기와 신기(神氣)만으로 거짓 유통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이제 여러분께서는 용단법을 거쳐 기의 안정 상태를 이루었고 웬만큼 감각도 생겼으며 기의 이동을 유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본 수련의 특징은 이러한 단계적 수련을 통해 1에서 2로, 2에서 4로, 4에서 8로, … 이렇게 기량(氣量)과 맥을 유통시켜 점점 더 강력한 힘을 쌓아서 단주(丹珠)의 형성까지 이루어 나가도록 마련되어 있다.
또한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맥의 경우도 우리 몸을 순환하는 수많은 맥 중에서 어떤 맥의 유통으로써 가장 빨리, 가장 확실하게 정법(正法)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따른다. 이것은 중국이나 티베트, 인도 등 각국 수련의 특색에 따라 임독맥(任督脈), 대맥(帶脈), 충맥(충脈) 등 각기 중요시하는 맥이 다르나, 본 수련에서는 오로지 불씨와 임독맥을 가장 핵심적인 근본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하나만을 선택하라면, 바로 불씨라 하겠다. 결국 모든 맥이란 것은 기의 팽창으로 인하여 나타나게 되고 그 맥을 유지하는 것은 기력(氣力)이 좌우하므로 불씨 하나로 내단까지 가는 도중에 대맥이나 소주천, 충맥, 대주천의 과정이 나타날 뿐이다. 이 소주천과 충맥에 대해서는 다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임과 독, 이 두 맥이 유통되면 백맥(百脈)이 모두 열리게 되어 있으므로 의식을 써서 굳이 다른 맥을 열려고 애쓸 필요도 없을 뿐더러, 억지로 다른 맥을 열었다 하더라도 이내 도로 막히고 만다. 다만 우리는 불씨를 형성하고 임독을 유통하기 위한 의식 집중 훈련과 호흡 훈련을 쌓아 나가면 되는 것이다.
이제 사지법 수련을 통해 여러분은 비로소 몸 전체로 호흡에 임하게 되었다. 비록 아직은 양 발바닥과 손바닥으로 출입구를 한정했으나 기가 수사의 몸 전체를 구름처럼 감싸고 운기(運氣)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이렇게 와공(臥功)에서 유통한 맥들은 좌공(坐功)에서 기가 쌓임에 따라 마치 말랐던 개천에 새로운 물이 넘치듯이 자연스럽게 기의 흐름이 이어질 것이다.
1. 자세
2. 호흡
3. 문인 문답
1. 자세
팔을 45도로 자연스럽게 벌려서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한다. 왼쪽 손바닥은 하늘, 오른쪽 손바닥은 땅을 향하기도 하지만 양 손바닥이 모두 하늘로 향하여도 무방하다. 나머지는 앞의 경우와 같다.
2. 호흡
① 손바닥의 중심과 발바닥에 구멍이 있다고 생각한다.
② 몸 전체로 의식을 확대하고, 단전에 80∼90%의 집중을 두며 나머지는 손바닥과 발바닥에 집중한다.
③ 배가 부풀어오르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배가 부풀어오르는 것은 집단법이나 용단법에서 정신을 더 집중하게 하고 호흡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배가 부풀어오르는 것과 기적(氣的) 호흡의 양이 꼭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④ 역시 숫자를 세면서 들이마시되, 집단법처럼 1흡(吸)에 1센티미터씩 배를 높이지는 않는다. 다만 숨만 하나, 둘 셋 하며 마디가 있게 하면서 끊어지지 않게 연결하여 사지에서 동시에 빨아들인다.
⑤ 집단법처럼 숨을 많이 들이마시려 하지 말고 지극히 편할 만큼 들이마시고서는 계속하여 들어오는 것처럼 숫자를 세어나간다. 즉 '하나, 둘, ...' 하며 다섯을 셀 때까지 숨을 들이마셔 배가 꽉 차서 더 이상 호흡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계속하여 '여섯, 일곱, 여덟, ...' 하며 기도를 열어놓은 상태로 최대한 부드럽게 연장하고서는 몸을 이완시키며 뱃속의 숨을 토한다. 마찬가지로 숨을 토할 때에도 단전에서 집중이 흩어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⑥ 끝날 때는 손을 배에 얹어 놓고 봉고(封固)한다.
3. 문인 문답
문1: 저는 어느 순간 갑자기 몸이 떨리며 진동이 오기 시작했는데 급기야는 저절로 온몸이 격렬하게 움직이고 호흡이 저절로 들어왔다 나가며 온몸에 힘이 뻗치고 기가 팽창되는 등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 이후에 몸이 훨씬 가벼워지고 몸의 순환도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요?
답: 몸이 떨리는 현상은 진동(振動), 또는 영동(靈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쓰여 온 방법인데, 선도에 관한 고서에는 어디에도 진동법이 나와 있지 않다. 요즘에 이르러 이 진동법이 크게 유행하고 있으니 그 허(虛)와 실(實)을 살펴보기로 하자.
현재 대만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는 진동법은 인위적인 진동법으로서 몸의 떨림이나 손이 교차하는 각도 등을 계산하여 이루어지고 있는데, 외단공(外丹功)이라고 한다. 진동은 우리 몸의 굳은 부분을 풀어주고 긴장을 이완시키는 등 건강 증진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며 좁은 공간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배우지 않고도 스스로 몸의 떨림을 유도하여 진동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 영동도 진동의 일종인데 물건에도 전기가 잘 통하는 전도체와 잘 통하지 않는 부도체가 있는 것처럼 우리 사람의 몸도 이와 같이 신기(神氣)가 잘 흐르는 체질로서 영감이 뛰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각이 늦고 확실한 것만을 추구하는 체질도 있다. 전도체의 체질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쉽게 영동에 깊이 들어간다.
그러면 여기서 세 가지 예를 들어 검토해 보기로 하자.
먼저 ㄱ씨의 경우이다. ㄱ씨는 어느 수련원에서 옆에 있는 동료들과 이야기하다가 진동법을 처음 들었다. 그래서 그날 밤 집에서 혼자 이 진동법을 시험해 보았다. 먼저 합장을 하고 정신을 모아 '손이 떨린다, 떨린다' 하는 자기 암시를 주면서, 처음에는 조금씩 인위적으로 손을 떨어 주었다. 이렇게 시작하여 급기야는 온몸이 저절로 떨리더니 양손이 저절로 움직여 자신의 몸을 두들기고 문지르며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몸 전체를 주무르고 찌르고 두들기며 움직여 가는데 그 손이 닿는 곳마다 말할 수 없는 통증이 왔다고 한다. 그 아픈 곳이 풀리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나중에는 몸이 전체적으로 풀리면서 손바닥으로 공간을 띄워놓고 부드럽게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는 모양이 나타나면서 동작이 멈추었다고 한다. 이렇게 횟수를 거듭할 때마다 일차, 이차 몸의 정비가 끝난 다음부터는 이런 자가치료 행위는 사라지고 저절로 무슨 무술 동작 같은 것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손 모양이나 다리가 벌어지는 등의 이상한 무술 동작과 그 동작에 따른 숨결이 혹은 강하게 혹은 약하게 숨을 토하며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또 이때부터는 누구를 생각하면 그 사람의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사람의 모양을 그려놓고 손에 볼펜을 쥐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 손이 저절로 움직여 이상이 있는 부위들을 새까맣게 표시해 나가는 것이었다. 또한 서예를 익히지 않았는데도 붓을 쥐면 저절로 붓이 움직여 이상한 글자를 단숨에 써 내려가기도 하였다. 또한 지도를 보면 그 산의 모양에 따라 저절로 손가락이 움직여 기의 흐름을 나타내기도 했으며, 물이 나오는 곳과 수심, 수량, 수질을 알아맞히었다. 언젠가 지도를 보고 온천이 나올 수 있다고 한 대전지역의 어느 곳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돼지를 키우고 있었다. 그 마을의 옛 이름을 물으니 온수리(溫水里), 즉 따뜻한 물이 나온다는 뜻이었다. 물론 시험삼아 한 번 가 본 것이었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그 곳의 수량이 유성온천보다 더 많다고 하였다. 이러한 신공의 능력이 나타나면서 처음에는 자기 가족의 아픈 데를 손수 치료했는데, 친척이나 친구들이 부탁하여 찾는 사람이 자꾸 늘고, 그의 능력도 상상 이상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은 재미 반, 호기심 반으로 시작했다가 사태가 차츰 심각해지자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모든 것을 끊어버렸다. 그는 이미 그 당시에 충맥을 통해 기를 머리 위로 방출하여 어느 산 전체를 기의 막으로 덮거나 기를 하늘 높이 솟구치게 하여 여러 하늘세계를 알아보기도 하였는데, 이런 모든 행위가 진실된 자아발견과는 무관한 것이라며 그 모든 것을 다 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두 번째는 ㅂ씨의 경우로 그는 신경통과 약간의 마비 증세마저 있었다. 어느 날 ㅂ씨는 처음으로 영동을 했다. ㄱ씨의 경우는 자기 의지대로 멈출 수 있었으나 ㅂ씨는 일단 발동이 걸리면 자기 몸이 뜻대로 조절되지 않았다. 그의 몸동작은 몹시 격렬했는데 발바닥이 불덩어리처럼 뜨겁다고 펄펄 뛰는가 하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냅다 쫓아가서 불문곡절 몸을 두들기며 치료해주기도 했고, 힘이 빠지면 완만해졌다가 다시 시작하곤 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멈추는 것이었다. 그런데 ㅂ씨의 경우는 이렇게 영동을 하는 도중에 앞에서 한복 차림의 초립동이가 새파란 빛을 띠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고 하며, 옆사람에게 달려갈 때도 자신은 멈추려고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 ㅂ씨는 영동을 두려워하고 감히 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세 번째는 ㅊ씨의 경우이다. ㅊ씨는 본원에서 사지법을 익히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흡을 격렬히 하기 시작하여 아랫배와 가슴이 번갈아 솟았다 가라앉았다 하였다. 때로는 숨이 막히는 듯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누운 채로 양다리를 흔들어 몸이 위로 붕붕 뜨는 등 격렬하기 이를 데 없는 흔들림을 보였다. 그는 그 당시 가슴이 꽉 막혀서 중역회의 같은 때에 심한 고통을 느꼈는데, 이 진동이 있은 뒤로는 가슴이 트이고 등어리의 독맥이 열렸다. 이러한 경우를 우리는 '호흡진동'이라고 한다. 즉 격렬한 호흡으로 몸이 움직이고 맥이 열리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그런 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그 동안 기가 모자라 잠재되어 있다가 새로운 기의 수련으로 마치 둑이 터지듯 한꺼번에 옛날의 맥 상태를 회복하는 경우이다.
그러면 이제 이런 진동을 왜 금지하는가를 살펴보자.
첫째, 선도 수련이란 삼매, 즉 정(定)에 들어가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서 나중에는 자신의 숨결의 진동마저도 방해가 되기 때문에 일체의 풍식(風息)없는 진식(眞息)에 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진동으로써 어떻게 삼매에 들어가겠는가?
둘째, 이렇게 진동을 하는 버릇이 생기면 조그만 자극에도 곧 진동을 일으키는 진동 체질로 바뀌어서 더욱 정에 들기가 어렵다. 어떤 이는 몸을 떨면서 정신이 무아지경에 들어간다고 말하지만 망각과 삼매는 거리가 멀다. 이는 마치 우리가 재미있는 놀이에 정신이 팔려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또한 우리는 주변에서 다리를 덜덜 떠는 버릇이 있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런 습관도 고치기가 쉽지 않다. 우리 몸이 진동체로 변하지 않도록 늘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닦아야 한다.
셋째, 이렇게 진동을 하면 그 사람의 주변에 진동, 즉 떨림 파장이 형성되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정신통일에까지 영향을 준다. 마치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동그라미의 파장이 자꾸 번져나가는 것처럼 대기의 기파가 흔들린다.
넷째, 가장 중요한 점인데 영성(靈性)이 강한 사람은 높은 차원이면 신공(神功) 세계에 들고 낮은 차원이면 접신(接神)이 되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름까지도 영동법인 것이다.
문2: 사지법에서 어떤 상태가 되면 다음 수련으로 넘어가는지요?
답: 용단법에서는 발바닥이 따끈해지며 발바닥으로 호흡이 바람결처럼 쑥쑥 들어오게 되면 사지법으로 공법을 바꾸게 된다. 사지법 또한 양손과 발바닥에서 자유자재로 숨결을 느낄 때가 되면 전단법으로 넘어가게 된다. 내가 살펴본 바로는 대개 25∼30% 정도 팔다리의 맥이 유통하게 되면 본인들이 확연히 기가 드나드는 느낌을 알게 되므로 대략 30∼40% 정도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무방하다.
4) 전단법
이것은 우리 선법에서 행하는 가장 중요한 호흡법이다. 맥박법(脈搏法)이라고도 하는데, 이 전단법의 상태는 참으로 다양하다. 또한 이것은 미묘하기 이를 데 없는 호흡법으로서 내호흡인 진식(眞息)과 태식(胎息)에 들어가는 방법이며, 불씨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와공에서 이 전단법을 웬만큼 알지 못하면 좌공에서는 더욱 알 수 없게 되므로 확실히 알고 넘어가기로 하자.
1. 자세
2. 호흡
① 이 전단법은 어느 몇 개의 혈(穴)에 출입구를 한정하는 것이 아니고, 온 몸의 기혈과 세포로 기를 빨아들인다.
② 이것은 가장 고요하면서도 실상은 가장 강력한 호흡이다.
③ 먼저 수사는 몸과 마음을 편안히 가라앉힌 후 호흡을 잊고 아랫배 어딘가에서 쿵쿵 뛰는 맥박의 파동을 느끼도록 한다. 이것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며칠이고 되풀이해서 연습한다. 몸에 힘이 들어가거나 긴장하면 느끼기 어렵다. 좀더 맥박의 감각을 쉽게 찾으려면 숨을 몇 번 쭉 들이 마셨다가 토한 다음 기도를 열어 놓은 채로 가만히 숨을 멈추고 아랫배를 관찰하면 쿵쿵 맥박의 고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④ 이렇게 하여 맥박의 울림을 감지할 수 있게 되면 이때부터 호흡에 들어가는데, 맥박이 쿵 하고 한 번 뛸 때마다 그 맥박의 파동에 의해 온몸에서 단전을 향해 기가 조금씩 빨려 들어가고 그때마다 온몸이 1㎝씩 팽창한다고 생각한다.
⑤ 숨을 토할 때는 몸을 이완하며 자연스럽게 토하는데, 편안한 만큼만 조금 토하고 곧바로 다시 들이마신다. 물론 토할 때에도 맥박의 고동을 잊지 않도록 노력한다.
⑥ 맥박에 맞추어 숨을 들이마시면서 숫자를 세는데, 이 전단법에서는 숨을 토할 때도 계속 맥박에 맞춰 백까지 숫자를 세어주고 백이 되면 다시 시작한다. 즉 맥박, 호흡, 의식이 삼위일체로 한 곳에 집중하여 조금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집중에 의해 그 동안 쌓아왔던 양기들이 모여서 불씨를 형성하는 것이다.
⑦ 인위적으로 단전을 정하지 말고 따뜻한 양기가 느껴지는 곳, 맥박의 느낌이 있는 곳을 그날 집중할 곳, 즉 그날의 단전으로 삼는다. 이렇게 하여 아랫배가 차츰 밝아지고 불씨, 즉 따뜻한 양기의 덩어리가 형체를 드러내면 그 다음부터는 그 불씨 자체에서 맥박과 호흡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하나의 초점, 그곳에 맥박과 호흡이 다 들어 있으므로 바깥에서 볼 때는 지극히 고요하여 호흡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는 내호흡이 시작되는 것이다.
⑧ 봉고는 단전의 위치에서 행한다.
3. 문인 문답
문:저는 이 전단법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맥박을 따라 호흡을 하다가 어느 틈에 무아(無我)에 들게 되고, 어느 때에는 몸이 두세 배 정도 부풀어오른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어떤 현상인지요?
답:몸이 두세 배로 확장되는 느낌은 의식이 깊숙하게 집중되어 기와 합일되었을 때이며 외부의 기를 흡입하여 몸의 기 상태가 활성화되고, 또 불어나는 현상으로서 기의 양이 많이 증가하게 된다. 좋은 현상이며 이런 때일수록 봉고를 잘해야 한다.
문:저는 한참 맥박을 따라 집중해 나가다 보면 숫자를 자꾸 잊어버리고 희미하게 반(半)의식, 반수면 상태에 들어가서 다시 정신을 차려 숫자를 세곤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답:우리가 숫자를 세는 것은 잡념을 제거하고 뱃속의 어느 한곳에 좀더 강력하게 집중하려는 의도이다. 즉 유위법(有爲法)의 목적인 정신일도 함으로써 무아에 들어가는 방법이기 때문에 깊이 들어가는 의식을 일부러 일깨워서 숫자에 집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대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 좋다.
문:저는 어느 때에는 숨이 나오는 것이 없고 한없이 들어가기만 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요?
답:그것은 '흡정(吸定)'이라는 것이다. 우리 몸은 숨을 들이마시면 반드시 토하게 되어 있지만 특수한 경우에는 강력하게 몸이 열리고 정신이 깊숙하게 몰입되어 날숨 없이 한없이 숨이 빨려 들어가기도 한다. 나도 처음 소주천을 유통하고 나서 정진할 때에 임·독맥을 따라 수십 바퀴를 회전하면서 한 번도 토하지 않고 계속 들이마셨던 적이 있는데, 그때 걸린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나도 모른다. 이런 흡정 현상은 전단법이나 임·독맥을 돌릴 때 몇 번씩은 경험하는 경우로서 좋은 현상이다.
우리가 공기(空氣)의 개념을 놓고 볼 때, 공(空)은 대기 중의 산소나 기타 가스체를 뜻하며, 기(氣)는 무형의 흐르는 기운으로서 산소나 수소 등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깊은 산 속이라고 해서 기가 많고, 복잡한 도시라고 해서 기가 적은 것은 아니다. 이러한 분리 측면에서 볼 때 흡정은 정신 통일에 의해 공(空)이 아닌 기(氣)를 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목욕탕에 갔을 때 사우나에 들어가서 호흡을 해 보면 - 실제로는 목욕탕에서는 탁한 기운이 많아 호흡하지 않는 것이 좋다 - 평소에 비해 훨씬 많은 양의 흡입이 이루어지고 토하는 숨은 훨씬 적게 나옴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맥이 많이 열려 있고 우리 피부의 모공 또한 열려 있는 탓이다. 아무튼 공(空)은 폐에 머무르고 기(氣)는 깊숙하게 우리의 몸 속에 내려오게 된다. 아랫배나 등쪽의 독맥으로 숨을 끌어들일 때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도 부정할 수 없는 기적(氣的)인 현상이다.
문:저는 평소에 가슴이 답답하여 가슴에 손을 얹고 전단법을 했는데, 이때 가슴이 시원해지면서 꾸르륵꾸르륵 하고 가슴속에서 무엇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처럼 밑으로 풀려나갔습니다. 그러고 나니 가슴이 시원하고 상쾌하기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답:물론 전단법에서 손은 아랫배에 붙이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집중을 높이고 손에서 나오는 기를 다시 불씨로 회수하여 더 깊이 단전을 개발하게 된다. 그러나 전단법은 아주 강력한 호흡법인 만큼 손바닥에 흐르는 기도 강력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뜨거운 손바닥을 답답한 부분이나 통증이 있는 부분에 얹어놓고 호흡을 하면 그곳에 막혀 있던 음기들이 모두 얼음 녹듯 풀려 내려가서 다시 기혈이 통하게 되니 시원할 수밖에 없다. 가슴 부위는 특히 명치 주변을 잘 풀어줘야 한다. 가만히 누워서 명치를 눌러 통증이 있으면 그 주변의 기가 막힌 것이다. 이곳은 간과 쓸개가 있어 신경을 많이 쓰거나 화를 내거나 과식을 하면 즉시 막혀서 상하의 유통을 차단하는 곳이니 늘 막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저는 전단법을 시행하고 나서는 집중력이 더욱 강해졌으며, 때때로 몸 안에서 뜨거운 불덩어리 같은 것이 감각으로 잡히곤 합니다. 또한 이것이 때로는 나타나고 때로는 나타나지 않으며, 때로는 뜨겁고 때로는 아주 상쾌하여 시원한 물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뜨겁게 달구어질 때는 배의 주변이 부글부글 끓으며 풀려나가고, 이것이 박하나 파스 기운처럼 서늘하게 변할 때는 그 주변이 얼음 녹듯 줄줄 녹아서 흘러내리면서 몸이 시원하게 풀리는데, 너무 기분이 좋고 뱃속이 편안하며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또한 뜨겁게 변하여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에는 방귀가 수십 번씩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방귀를 뀌면 속이 시원하여 답답한 것이 다 없어지고 뱃속이 텅 빈 것 같으나, 호흡을 계속하면 이내 새로운 기운이 단전에서 피어 나와서 몸을 채워준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거나 책을 보면 방귀를 뀌지 말라고 한결같이 경계하니 이것이 걱정입니다.
답:우선 그 동안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강력한 불씨를 이루었음을 축하하는 바이다. 불씨는 조금 빠르면 좌공과 전단법에서 이루고, 대개는 1차 소주천에서 이루는데 이처럼 빨리 이루었음은 남 모르는 노력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선도의 기 수련은 단순히 음기나 양기의 단적 측면으로만 생각하기보다는 청탁(淸濁)으로써 음과 양을 삼아야 한다. 즉 청하면 양이요, 탁하면 음인 것이다. 예로부터 선천일기가 동(動)하여 맑고 가벼운 것은 양으로서 위로 떠올라 하늘이 되며, 무겁고 탁한 것은 음으로서 아래로 가라앉아 땅이 되었다는 말처럼 우리의 기의 관념이나 수련의 발전 또한 이 청탁의 관념으로 생각함이 정당하다고 본다. 만사가 그러하듯이 맑고 탁한 것이 음양이요, 맑은 것은 맑은 것대로 탁한 것은 탁한 것대로 음양을 또 가지니, 이것은 무한대로 펼쳐 나가는 것이다.
또한 음이 극에 이르면 양으로 변하고 양이 극에 이르면 이 또한 음으로 변하니, 쇠를 달구어 두드리고 또 달구어 단련함이 곧 순양에서 순음으로, 순음에서 순양으로 계속 변화하여 본바탕인 선천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현재 가지고 있는 양기가 한 번 더 맑게 변하여 양화(陽火)가 되고 이러한 양화가 모여서 다시 불씨를 이루니, 이 불씨는 아직 순양한 것이 아니다. 이 불씨가 다시 연단(煉鍛)되어서 다시 한 번 맑게 변하여 비로소 뜨거운 불덩어리로 변하니 이것이 바로 순양화(純陽火)이다. 이것이 다시 한번 극에 이르러 상쾌하기 이를 데 없는 순음이 되는데 이때에 비로소 진기(眞기)의 차원에 들어가는 것이며, 이것을 옥액(玉液)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점점 더 맑고 밝게 변하여 떠돌이 신세를 면하고 봉고를 할 때면 언제나 일정한 곳으로 돌아가 고요히 머무르니, 그곳이 곧 불씨의 본가(本家)요 심(心)이 머무르는 거처로서 곧 단전이다. 이 불씨는 곧 소주천의 화(火)에 의하여 소약이 된다.
그러므로 이제 당신은 이 강력한 불씨에 일심전력(一心專力)하여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상쾌하게 소우주를 광명세계로 만들고 고요히 단전에 머물러 소약을 이루어야 한다. 이 1차 주천 없이 곧바로 2차 주천에 들어갈 때에는 선(先)은 유위법을, 후(後)는 무위법을 섞어서 씀이 좋다.
방귀에 대해서 말하겠다. 이 문제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실은 좀 심각한 문제이다. 고서를 번역한 한글판에서는 흔히 이 방귀에 대해 아주 엄중한 경고를 하고 있다. 방귀나 몽정(夢精)에 대해 한번의 실수로 인해 수십 년에 걸친 수행이 다 무너졌다고 스승이 엄히 꾸짖는다든지, 그 제자는 목놓아 통곡하는 등 참으로 웃을 수 없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몽정을 방지하는 무슨무슨 비법이나 약을 쓰기도 하며, 또 책에서는 방귀를 막기 위하여 목편(木片) - 나무를 조약돌처럼 둥글 납작하게 깎아서 솜으로 싼 것 - 을 항문 밑에 깔고, 콧구멍도 헝겊을 뭉쳐서 막고 수련을 한다는 기록이 독자들로 하여금 갈등에 빠져들게 한다. 이런 연유로 대개의 수사들이 그 나름대로의 소견으로 스스로 조심할 뿐, 누구 하나 드러내 놓고 과감히 의견을 피력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러한 오늘의 사태를 두 가지 이유로 생각한다. 첫째는 이름난 책에서 이처럼 방귀나 몽정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수사들이 아직 자기 몸 속에서 일어나고 유통되는 기운을 세밀히 분별하지 못하여 탁기가 방출되는지 진기가 방출되는지를 알지 못한 까닭이다. 이 두 가지 이유가 복합된 현상으로서 감히 드러내 놓고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일반 사람들은 이 방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자.
첫째, 절대 방귀를 뀌면 안 된다. 꾹 참고 독맥으로 끌어올리면 입으로 나온다,
둘째, 꾹 참으면 트림으로 나온다.
셋째, 수련을 시작하여 곧 나오는 방귀는 뀌고, 나중에 나오는 방귀는 뀌지 않는다.
넷째, 무조건 뀐다.
그러면 이에 대한 문제점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입으로 배출한다는 것은 참으로 웃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당대의 실력자라고 손꼽았던 사람들마저 이렇게 제자를 가르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서, 그 제자들은 이러한 금기 때문에 방귀를 참는 고통 아닌 고통을 인내해야만 했다. 그러나 결국은 항문으로 배출하지 않고 입으로 배출하면 괜찮다는 말인데 기운이 달라질 리도 없고, 아래로 뽑으면 위험하고 위로 뽑으면 안전하다는 이치도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세 번째의 처음은 뀌고 나중은 뀌지 않는다는 것은 좀더 진보한 생각이다. 수련 초기에는 몸 안의 탁기가 많이 나올 것이며, 몸 속이 정화됨에 따라 탁기배출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귀라는 것은 처음에는 탁기만 나오고 나중에는 진기만 나온다는 이치가 없으니 이 또한 온당치 못하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방기(放氣:방귀)에 대해 확실히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첫째, 호흡은 강력한 신진대사를 일으키는데, 이때에 발생하는 가스들을 가장 많이 확실하게 배출하는 것이 방기이다. 또한 무겁고 탁한 것은 아래로 가라앉으며 모든 배설물도 밑으로 내려가서 자연스럽게 배출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둘째, 옛날 궁중(宮中)에서는 임금께서 방기하시는 것을 '통기(通氣) 놓으셨다'고 말했다. 탁기로 인해 막혀 있던 것을 방기, 즉 탁기를 배출함으로써 기를 통하게 한다는 뜻이다. 방기가 첫째 가는 탁기의 배출이요, 두 번째는 트림으로 배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트림은 기를 관통시키지 못하므로 윗부분의 것만 입으로 뽑아 내는 미완성의 배출로 별로 시원하지 못하다.
셋째, 방기 자체가 근본적으로 위험한 것이라면 화장실 출입은 어떻게 하는가? 물론 수련할 때에는 기의 유통이 강력하고, 평소에는 고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는 늘 우리 몸을 순환하고 있다. 그러므로 방기가 근본적으로 위험하다면 화장실에서도 지극히 조심해야 할 것이지만 아마도 별다른 대책이 없을 것이다.
중국의 정통 선도파인 용문파(龍門派)의 선도서인 {천선정리(天仙正理)}와 {선불합종(仙彿合宗)}에는 임·독맥을 유통하는 비법으로 항문과 코에서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 심법(心法)이 나온다. 이것이 오룡봉성(五龍捧聖)의 비법인데, 한마디로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써 기를 이끌어 간다는 뜻이다. 물론 이것은 소주천에서 상세히 설명하겠지만, 마음이 가는 곳에는 기가 따르고 기가 따르는 곳에는 마음이 따른다는 이치이다. 설사 백 번 양보하여 방기로 진기가 나간다고 해도 마음이 몸 안에 있으면 진기는 방귀를 뀌어도 나가지 않는다. 마음이 흩어져 바깥으로 달아나면 비록 방귀를 뀌지 않아도 진기는 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일부러 방기를 할 필요는 없겠으나 억지로 참는 수고도 할 필요가 없다. 탁기가 배출되면 몸 속이 훨씬 맑아질 것이며 아울러 시원해질 것이다.
2. 좌공(坐功)
이제는 정과 기가 만족해져서 충분히 좌공에 들어 본격적인 호흡과 기의 유통, 그리고 불씨의 형성과 강화에 들어가야 한다.
간략히 정좌(靜坐)에 대하여 논하기로 한다.
정좌는 심신을 가장 안정되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또한 정을 유지하기에 적합하여야 한다. 만일 계속하여 누워 있는다면 정신집중이나 기의 운기가 강력하지 못할 것이며 계속 서 있는 자세 또한 너무 동적이어서 안정을 저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은 특수한 목적 외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좌법이 발달하게 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에 따라 각양 각색의 좌법이 전해져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나무의 형태를 빌려서 정좌의 자세를 이해해 보기로 하자. 먼저 나무의 생명활동은 뿌리에서부터 몸체를 통하여 가지와 잎으로 기운이 번져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정좌에 있어 나무의 뿌리와 같이 생명의 기운을 공급하는 곳이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우리의 머리 부분이다. 즉 머리는 나무의 뿌리에 해당되며, 목은 땅의 표면에 나와 있는 나무의 밑둥치에 해당되고, 팔과 다리는 나무 줄기에 해당되며, 손가락, 발가락은 끝가지에 해당되므로 머리에 있는 통천문(通天門)을 통하여 흡입된 우주의 기운이 손끝, 발끝까지 퍼져나가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안정되고 완벽한 자세는 결가부좌(結跏趺坐)이다. 한쪽 발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다시 다른 쪽 다리를 그 위로 올려놓아 양쪽 발이 모두 하늘을 향하게 하는 것인데, 왼발을 먼저 올리는 것을 여의좌(如意坐), 오른발을 먼저 올리는 것을 금강좌(金剛坐)라 한다. 이러한 자세가 되면 곧 우리의 인체는 꼬리뼈와 양쪽 발 그리고 머리에 의해 피라미드 형상이 이루어지고 우주의 무한한 기를 끌어들이며 한없는 삼매에 들게 되는 것이다. 이제 「대학(大學)」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좌정(坐定)의 논리를 대신하고자 한다.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廬
廬而后能得이니라.
그침을 안 이후에야 정할 수 있고,
정한 후에야 고요할 수 있으며,
고요한 후에야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한 후에야 능히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후에야 능히 얻을 수 있게 된다.
< 토호흡(吐呼吸) >
1. 자세
① 반가부좌나 결가부좌를 하고 방석을 두텁게 하여 앉는다. 이 때 방석 뒤쪽을 겹쳐서 두텁게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것은 기의 안정과 흡입력을 저해한다.
② 이 때 다리는 왼쪽이나 오른쪽, 어느 쪽을 먼저 올려놓아도 무방하며 가끔씩 서로 바꿔 주는 것도 괜찮다.
③ 손은 가장 편안한 형태로 가볍게 아랫배에 갖다 붙인다. 이 때의 손 모양은 결인(結印)이라고 하여 여러 가지가 있으나 어떤 모양도 무난하며, 또한 양손을 겹치거나, 깍지를 끼거나, 오른손을 가볍게 쥐고 왼쪽 손바닥으로 감싸거나 상관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손가락이나 손바닥이 아랫배에 닿아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여 모든 기가 단전으로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
④ 척추는 곧게 세우되 무리하게 힘을 주면서까지 세울 필요는 없다. 가슴 또한 자연스럽게 펴면 되고, 고개는 약간만 살짝 숙여서 두 눈을 반개(半開)하고 하단에 의식을 집중한다.
⑤ 처음에는 몸과 마음을 텅 비게 하고 온몸의 힘을 뺀 다음 고요하게 의식으로 자신의 몸 전체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다.
⑥ 천천히 단전에 기의 발생이 느껴지면서부터 그에 맞추어 의식을 집중하고 토호흡에 들어간다.
2. 호흡
① 충분하게 숨을 들이마신다.
② 그림과 같이 몸의 중심부를 파이프가 관통하여 구멍이 난 것처럼 생각하며 위에서 아래를 향하여 "하나―"하고 길게 소리를 토하면서 의식을 밑으로 내려보낸다.
③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하나에서 열까지 두세 번 되풀이하면서 토호흡을 실시한다.
④ 이 때 소리를 일부러 크게 하거나 몸에 힘을 주거나 지나치게 길게 하지 않는다.
⑤ 너무 힘들게 해서 중간 중간에 숨을 헐떡이며 호흡을 고른 다음 다시 시작한다든지 하는 간격이 생겨서는 안 된다. 열 번이든 서른 번이든 계속해서 하고 난 다음에는 곧바로 전단법[좌공]에 들어가야 한다.
⑥ 소리를 낼 때에는 마치 몸 속에서 종이 울려 퍼지듯 몸 속이 은은히 울리는 것(공명현상)처럼 하면서 무한히 의식을 밑으로 내린다.
3. 문인 문답
문1 : 토호흡의 작용을 설명해 주십시오.
답 : 토호흡은 몸을 이완시키고 몸 속의 탁기를 배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호흡이 잘 되면 몸의 중심부, 즉 충맥을 따라 아득하게 한없이 내려가 무아지경에 이르러 몸과 마음이 다같이 편해진다. 이로써 내전단법(內全丹法)에 들어갈 준비가 갖춰지는 것이다.
문2 : 저는 길게 토하는 가운데 소리와 호흡이 자꾸 끊어지며 속이 답답해지곤 합니다. 무슨 연유인지요?
답 : 호흡이 길지 못하고 자꾸 끊어지는 것은 맥이 많이 막혀서 중간 중간이 끊어져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속이 답답한 것은 지나치게 자신의 몸 상태보다 길게 토한 탓이다. 다시 말하지만 힘을 주거나 무리하지 말라.
문3 : 저는 토호흡을 하면 처음에는 목소리가 목이나 가슴에서 울리는 것 같으나, 나중에는 저 밑 아랫배 깊숙한 곳이나 땅속에서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또한 소리의 울림과 진동 현상이 온몸에 퍼져 몸밖의 세계까지 하나를 이루어서, 소리를 내는지 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어렵도록 정신과 육체가 한없이 가라앉곤 합니다.
답 : 토호흡이 무척 잘 되는 경우이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은 집중과 이완은 잘 되었으나 아직 기가 부족하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앞으로 수련에 따라 더욱 편안해질 것이다.
문4 : 저는 토호흡을 할 때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하는데도 몸에서 땀이 많이 나고 훈훈해집니다. 어떤 상태인지요?
답 : 좋은 현상이다. 몸이 훈훈한 것은 몸의 탁기가 배출되어 양기가 활성화되는 현상이며, 땀이 나는 것은 불순물이 강하게 배출되는 것이다. 호흡이 강력하게 이루어질 때 눈물과 콧물, 땀 등이 분비되는데, 이런 눈물과 콧물은 오장 육부의 탁기가 녹아 나오는 것으로 아주 좋은 현상이다. 또한 호흡할 때 흘리는 땀은 운동할 때 흘리는 것과 달라서, 몸 속의 깊숙한 곳에서 불순물이 배출되는 것으로 염분, 즉 끈끈한 소금기가 없다. 그러므로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한 여름날 호흡으로 인해 속옷이 흠뻑 젖었다가 말라도 피부가 끈끈하지 않다.
문5 : 저는 토호흡이 20∼30회가 끝나면 아랫배에서 숨이 차 올라서 급하게 들이쉬곤 합니다. 어찌해야 하는지요?
답 : 그때가 중요하다.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흡인력을 이용하여 그대로 전단법을 시행하라.
문6 : 꼭 소리를 내야 하는지요?
답 : 입 밖으로 소리를 낼 필요도 없으며 길게 토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문7 : 본 호흡에 들어가기 전에 꼭 실시해야 하는지요?
답 : 토호흡이 몸과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인 만큼 두세 차례 가볍게 실시해도 무방하며 바로 본 호흡에 들어가도 괜찮다.
<좌 전단법)
앞서 와공에서의 전단법이 외전단법(外全丹法)이었다면, 좌공에서의 전단법은 내전단법(內全丹法)이다. 또한 이 전단법은 불씨가 이루어졌을 때와 소약이 이루어졌을 때 그 적용 방법이 다르다. 여기서는 불씨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 최우선이므로 먼저 내전단법 중에서 무식(武式) 전단법을 설명하고, 소약 발생 이후에 쓰는 문식(文式) 전단법은 소주천 이후에 설명하기로 한다.
1.자세
좌공 일반과 같다.
2. 호흡
① 토 호흡이 끝나면 그대로 고요히 끝난 그 지점에 의식을 머물러 둔 채 고요히 정지한다.
이 때 기도는 열어 두어야 한다.
② 고요히 호흡을 멈추고 있노라면 그 곳에서부터 맥박의 파동이 쿵쿵거리며 차츰 강하게 느껴지면서 호흡을 강력하게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발생한다.
③ 그 숨을 들이마시고자 하는 몸의 흡인력과 맥박이 하나가 되어 서서히 호흡이 출발한다.
④ 이렇게 하여 고요히 호흡이 출발하면서 몸 안의 양화(陽火)가 피어올라 점점 더 따뜻한 느낌이 강해지기 시작한다.
⑤ 그 강해지는 느낌이 가장 강한 곳에 맥박의 초점을 맞추고, 그 불길에 알맞는 정도의 호흡의 강약을 스스로 조절한다.
⑥ 역시 들숨과 날숨에 관계없이 맥박에 맞추어 일에서 백까지 세면서 맥박을 따라 숨을 조금씩 들이마시며 100까지 되면 계속 반복하여 행한다. 이것이 불씨를 형성하는 비법이다.
⑦ 만약 불씨가 형성된 사람은 토 호흡 없이 곧바로 행공하여도 무방하다.
3. 문인 문답
문1 : 아까 뱃속이 뜨거운 정도에 따라 호흡의 강도를 조절한다 하셨는데, 무엇을 말씀하심인지요?
답 :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숨을 많이 들이마시고 적게 들이마시는 것이 호흡의 능력이 아니다. 부채질을 알맞게 잘 하는 것이 곧 호흡 능력인 것이다.
그 옛날 도자기를 굽는 도공과 대장간의 대장장이에게는 모두 불길의 강약을 잘 조절하는 것이 그 생명이요, 비법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적당한 양의 땔감과 풀무(부채)로써 화력을 조절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라. 약한 불에 큰 땔감이나 강한 부채질은 오히려 불을 꺼뜨리는 것이요, 강한 불에 너무 땔감이 적거나 약하게 부채질하는 것 또한 불길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화력 조절, 이것은 앞으로 여러분이 끊임없이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문2 : 저는 토호흡이 끝나서 가만히 멈추고 있으면, 차츰 뱃속에서 더운 열기나 구름 기운 같은 것이 뭉클거리며, 때로는 상당히 뜨거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참 그 곳에 맥박을 집중하여 호흡을 하다 보면 그런 느낌이 사라지곤 합니다.
답 : 위의 첫 번째 질문의 답과 비슷한데, 처음에는 불씨가 잡힐 듯하다가 이내 그런 느낌이 사라지는 것은 불씨의 화력이 약하기 때문이며 또한 불씨의 화력에 비해 너무 강한 바람을 불어넣은 탓이다. 서두르지 말고 차츰 천천히 불길을 강화시켜야 한다.
또한 땔나무(양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설사 불씨에 알맞는 부채질을 했다고 하더라도 땔나무가 부족하면 이내 불이 약화되고 마는 법이다. 즉 이러한 땔나무를 계속 공급하기 위해서는 몸 속에서 기와 융합할 수 있는 충분한 영양분이 필요하다. 아무리 호흡 도중이라도 영양분이 모자라면 양기는 잘 발생되지 않으며, 불씨는 더 이상의 화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러한 불씨로 강력하게 몸 속의 음기와 불순물을 제거해야 하므로 계속적인 기의 소모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불씨가 약해지는 이유로는 신(神)이 불씨에 집중하지 않고 딴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즉 불을 지피는 사람이 땔나무와 부채를 옆에 놔두고도 딴 생각을 하느라 불을 돌보지 않는다면 이 또한 불을 꺼트리는 원인이 된다.
대개 이러한 원인에 의하여 화력이 더욱 강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불씨가 만들어지면 특별한 외부의 원인 - 특수한 약물 복용, 기를 지나치게 많이 소모하거나 남에게 빼앗김, 기를 막히게 하는 탁한 음식물의 섭취 등 - 이 없는 한 불씨는 최소한의 자기보존은 한다.
문3 : 저는 호흡을 하다 보면, 자꾸 졸립거나 딴 생각을 하여 호흡을 잊어버립니다.
답 : 졸음이 오는 것은 어느 호흡을 막론하고 기가 모자라기 때문이며, 딴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딴 생각을 한다고 하여 호흡마저 잊어버림은 반성해야 한다. 단전에 불씨가 잡히고 나면 딴 생각을 해도 그 생각의 끈이 불씨에 연결되어 있어 최소의 땔나무는 늘 공급되게 마련이다. 꿈속에서조차 단전을 잃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문4 : 저는 처음에는 불씨가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았으나, 이제는 상당히 뚜렷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끌고 1차 소주천을 행하려고 이동을 해보면 이내 흩어지고 맙니다.
답 : 나는 처음 본 선원을 열었을 때, 어찌하면 좀더 빠르게 수련생들에게 소주천을 열어 줄 수 있을까 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해 보았었다. 기력(氣力)이 채 붙지도 않은 수련생에게 강제로 혈을 뚫어 주기도 했으며, 그래도 뚫지 못할 때는 강풍을 부쳐서 수련생의 풍력(風力)과 나의 기를 합하여 혈을 뚫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일단 1차 소주천을 뚫는 데는 성공하는 편이었지만, 스스로의 기 부족으로 인하여 애써 뚫은 임·독맥이 다시 막히고, 대개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 버리거나 도중에 포기를 하였다. 그리하여 그 이후에 연구된 것이, 기가 조금 부족하여 스스로의 힘으로는 혈맥을 유통할 수 없으나 옆에서 기를 넣어 주고 뚫어 주면 이삼 일, 늦으면 일 주일 이내에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 만한 수련생을 선택하여 뚫어 주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제자의 성품과 그릇의 됨됨이를 먼저 시험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자력으로써 어느 정도의 이동이 가능해야만 1차 소주천에 도전할 수 있다. 고요히 불씨에 집중하고 호흡함으로써 내가 이 불씨를 일부러 이동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동할 만큼 불씨의 화력이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문5 : 저는 이제 불씨에 집중하고 있으면 불씨가 저절로 배의 주변을 움직이는데, 오늘은 앞쪽, 내일은 뒤쪽 하는 식으로 일정치 않습니다. 소주천에 도전해도 괜찮은지요?
답 : 그것은 어린아이에 비유하면,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이다. 어찌 소주천의 먼길을 갈 수 있겠는가? 먼저 집안에서 충분히 기력을 쌓고 웬만큼 단전에 가까워져서 단전이란 창고에서 좀더 확실한 보급로를 확보한 다음에 저절로 아래(치골 쪽)로 내려가서 임맥의 경도에 들 때에야 비로소 1차 소주천의 길에 접어드는 것이다. 그 때까지는 계속 아랫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충분히 힘을 길러야 한다.
문6 : 제 뱃속에는 언제 어디서나 의식만 집중하면, 뜨겁고 또 때로는 아주 상쾌한 기운으로 변하기도 하는 구슬 같은 덩어리가 있습니다. 남들은 이런 것을 단(丹)이 생겼다고 하는데, 어떠한지요?
답 : 그것은 단이 아니다. 불씨인 것이다. 그러므로 수만 권의 책을 읽어 청산 유수 같은 강의를 하는 사람일지라도 실제 수련으로써 그 단계를 체득하지 못한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이 기의 세계이다. 또한 수련이 높은 사람은 그 사람의 이름을 듣거나 사진이나 책만 보아도 그 진위를 단번에 알 수 있다. 흔히 단을 이루었다는 자는 수없이 많으나 소약 하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지극히 드문 형편이며, 실제 단을 이룬 사람은 더더욱 만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3. 소주천
소주천, 이것이야말로 선도에의 입문(入門)이요, 완성에의 길이다. 일찍이 중국의 유화양은 "도는 소주천만한 것이 없고 맥은 임과 독만한 것이 없다." 라고 하였으며, 「능엄경」에도 "부처님께서 새어나감이 다한 아라한들과 함께 한없는 법륜을 굴리셨다." 라는 구절이 있으니, 소주천에의 정확한 입문이야말로 선도의 정문에 드는 것이다.
이 소주천을 일명 법륜(法輪)이라고 하는데 그 원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1. 법륜의 원리
2. 임독 두 맥
3. 소주천의 효능
4. 소주천의 분류
1. 법륜(法輪)의 원리 법륜이라 함은 천지의 운행, 더 나아가서 대우주 운행의 원리를 형상화한 것을 일컫는다. 즉 우리가 유통하고자 하는 이 소주천에는 우주 운행의 원리와 지구 자전의 원리가 함께 깃들여 있으며, 이는 곧 선천 복희 팔괘(先天伏羲八卦)와 후천 문왕 팔괘(後天文王八卦)의 원리가 함께 깃들여 있으므로 이를 법륜이라 한다.
이것은 태초에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으로, 태극에서 사상 팔괘(四象八卦)로 변화하며 대우주 운행의 형상이 갖추어지듯이, 애초부터 막힘도 없으며 뚫어야 할 것도 없는 유이불유(有而不有)하며 무이불무(無而不無)한 고로 자전(自轉)이 되는 것이다. 다만 우리 스스로 본성 광명(本性光明)을 망각하고, 욕심의 탁기(濁氣)로 인해 스스로 막히게 하고 스스로 뚫고 있는 과정을 답습할 뿐이다. 유위법인 소주천의 완성이 곧 대주천이다. 이 대주천은 무위법이니, 이것이 바로 법륜 자전이다. 그러므로 법륜이란 모양 없음으로 모양을 이루고, 천지의 형상으로 상하의 정위(定位)를 이루게 되며, 대우주의 은하가 흐르듯 산과 못이 서로 그 기운을 통하고 임독 두 맥이 흘러 백 맥이 다 열린다. 우레와 바람이 몰아쳐 만물이 번성함에도 법도가 있듯이, 또한 움직이고 고요함에도 상도(常道)가 있는 것이다.
2. 임·독(任督) 두 맥
1) 임과 독 두 맥
앞서의 법륜도와 임독이맥도는 자세히 살펴야 한다. 자오선(子午線)이 현재 지구의 남·북극의 23.5도로 기울어진 것과 항문과 두정(頭頂)의 숨구멍이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충맥을 형성하는 것의 관계, 각 혈(穴)의 위치와 십이 지(十二支)에 따른 동지(冬至)부터의 절기와의 관계, 임독 유통 과정에서 기의 움직이고 머무는 운행 법칙이나 기의 성질 변화를 보면서 스스로 천리(天理)와 자연의 섭리에 대해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2) 임과 독 두 맥의 개요
① 임과 독 두 맥의 개통의 선후
1차 소주천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임과 독 두 맥의 구조와 통관(通關)에 따른 개요를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두 맥 유통의 선후는 수련의 양상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대개 신공(神功)이나 음공(陰功)의 종류는 자아에 의하기보다는 외탁(外託 : 나를 버리고 바깥에 의지하는 것)이므로 임맥이 위주가 되며 또한 임맥이 먼저 열린다. 이것은 그 근본이 음공이기 때문에 그 스스로를 텅 비게하고 외부의 것이 안으로 밀려들어오게 하는 수련이며 임맥이 음맥(陰脈)이기 때문에 음기나 신기(神氣)는 주로 임맥을 통하여 들어오게 된다.
양공(陽功), 이것은 자아를 명지(明知)하는 것으로 시작하니, 즉 하단전을 근본으로 하여 안에서 밖으로 뻗어 올라가므로 화(火)의 기운을 주로 쓴다. 몸 속에 진기(眞氣)를 쌓음으로써 그 힘의 축적으로 치고 올라가는 화력(火力)이 운행되므로 진양화(進陽火)를 형성하여 독맥을 먼저 개통하는 것이다. 또한 독맥은 양맥(陽脈)으로서 안에서 바깥으로 뻗는 힘인 양력(陽力)에 의해 열린다.
② 두 맥의 구성과 통관(通關)의 개요
독맥(督脈)은 척추를 따라 올라가는 것, 임맥(任脈)은 앞가슴 사이로 내려오는 것이다. 이것을 한의학에서 말하는 경락에 따르면 독맥은 회음을 첫 관문으로 시작하여 꼬리뼈의 미려를 개통하고, 척추의 중간 지점인 협척을 지나 머리 뒷부분의 옥침을 지나 두정에 올라갔다가 다시 양미간으로 내려와서 윗입술까지를 말하며, 임맥은 아랫입술에서 목(12 중루)을 타고 아래로 계속 내려와 가슴을 지나 하단전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선가에서 쓰는 임·독맥은 기의 음양적 변화에 따라 분류하기 때문에 이러한 한의학의 분류와는 조금 다르다. 한의학에서 규정하는 혈의 분포와 척추 바깥이라고 하는 맥의 깊이에서도 서로 다르다.
고법(古法)에서 독맥은 미려(尾閭), 협척(夾脊), 옥침(玉枕)을 지나 상단전의 기혈인 니환궁(泥丸宮)까지로 구분하며, 임맥은 백회(百會)에서 내려와 인당(印堂)을 지나고 앞가슴의 전중(전中)을 지나 단전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고법에서는 척추의 삼관(三關)을 개통한다 하여 이것을 우주의 은하가 흐르는 것으로 비유하며, 미려, 협척, 옥침을 3대 관문으로 일컫는다. 그러므로 삼관 구규(三關九竅)를 개통한다는 것이다.
원래 임·독 두 맥은 앞에 삼관, 뒤에 삼관으로 전후 육관, 약 여든 한 개의 혈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본 선원의 수련법은 단전 다음으로 회음(會陰)과 백회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임독맥을 개통함에 있어 자연한 온양법을 사용함으로써 결국은 모든 혈을 다 열게 된다. 고서에서 언급하는 일반적인 개통법을 살펴보면 독맥의 삼대 관문으로서 미려, 협척, 옥침을 삼관 구규(三關九竅)라 하고, 상하 두 개의 오작교를 무사히 건너야 하는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였으며, 이것을 건너는 방법으로서 오룡 봉성(五龍捧聖)의 법을 전하였다.
먼저 삼관 구규라 함은 불가에서는 이것을 구곡 황하(九曲黃河), 조계(曹溪), 서강 동수(西江洞水)라는 것으로 비유하기도 하는데 미려, 협척, 옥침의 전·중· 후 세 줄기의 통로가 있어 3×3=9가 되는 고로 삼관 구규가 되는 것이다.
또한 두 개의 오작교란 것은, 하나는 하작교(下鵲橋)로서 회음과 맨 밑에 있는 미려의 중간지점인 항문을 말한다. 이 통로와 연결되어 네 개의 기로(岐路)가 있으니 위로는 심(心)에 통하고, 뒤로는 미려, 앞으로는 곡도(谷道), 아래로는 항문으로 연결되어 밖으로 새어 나가기 쉬워서, 자칫하면 기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상작교(上鵲橋)로 인당 밑의 양미간을 지나 콧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위험한 통로를 일컫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쓰는 도구가 바로 목편이란 것으로 이것은 헝겊으로 싼 나무 조각인데, 이런 것을 깔고 앉거나 콧구멍을 막아서 그 기가 새어 나가는 위험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이 이치에 맞지 않음을 여러분은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호흡할 때에 기의 순환을 편안히 하기 위하여 허리띠나 고무줄을 아주 느슨하게 하는데, 이런 것들 깔고 앉으면 기의 유통에 방해가 될 것은 당연하며 콧구멍을 막아 놓으면 숨은 어디로 쉰단 말인가? 이리하여 또 한 가지 등장한 방법이 등 쪽의 혈을 개통할 때에 그 관문을 쉽게 개통하기 위하여 옆에서 친구가 그 통과하는 부분을 손바닥으로 비벼서 마찰을 하여 따뜻하게 만들어 쉽게 통과하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혈이 개통할 때는 온갖 정신과 힘을 그 곳에 집중하여 밀어붙이게 되어 있는데, 옆에서 문지르고 몸이 흔들리면 정신이 흩어질 것이며, 정신이 흩어지면 기 또한 흩어지고 말 것이다.
이 때에는 오직 일념(一念)뿐이다. 그 스승이 고요히 옆에서 지켜보며 기를 보강해 주거나 직접 통로를 뚫어서 돕는 방법도 있으나 고서에서 권하는 방법 중에 오룡 봉성(五龍捧聖)의 방법이 있다. 오(五)라 함은 5·10 토의 숫자로서 진의(眞義)를 뜻하며, 성(聖)이라 함은 대약을 뜻한다. 즉 잡념이 제거된 진의로써 일체의 바깥 소리나 풍경, 생각을 떨쳐 버리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써 기를 이끌고 오작교를 건너가야 한다는 뜻으로, 이것이 진법(眞法)이다. 오직 일념, 이것만이 통관의 열쇠가 되며 심법(心法)이 된다.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이 첫째이며, 섣불리 옆에 누가 있어 돕는다는 것은 오히려 화가 될 수 있다.
3. 소주천의 효능
이제까지의 수련으로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불씨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불씨, 이것이 바로 진양화(眞陽火)이며 최초의 음양 합일에 따라 형성된 순양화(純陽火)이다.
이 불씨가 가야 할 길이 곧 소주천이요, 이 불씨가 머무르는 집이 곧 단전 기혈이다. 한편으로 소주천의 길을 열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처음 태어났던 곳인 단전 기혈로 돌아가서 소약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성장하여 마침내 신과의 합일을 이루어 새로운 진종자로서 영원한 생명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영원한 생명의 고향을 찾아서 어린 시절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소주천의 효능을 들어보기로 한다.
① 소주천을 이루면 강력한 순환의 힘에 의해 음기나 탁기가 몸 밖으로 강하게 배출되며, 외부의 청기(淸氣)도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어오게 된다. 따라서 기의 능력이 뚜렷하게 향상된다.
② 소주천을 유통함으로써 백맥(百脈)이 스스로 열리고 몸과 마음이 안정되며 기의 세계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③ 신(神)·기(氣)·정(精)이 다같이 강화되므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 육체적 능력이 향상된다.
④ 잠재 의식이나 영성(靈性)이 개발되어 꿈속에서도 가위에 눌리거나 그 무엇에 지는 법이 없다. 또한 예지 능력이 서서히 나타난다.
⑤ 기로써 먼저 상대와 마음의 화합을 시도함으로써 원만한 인간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⑥ 강력한 기의 입출(入出) 능력에 의해 자신은 물론이고 자기 주변까지도 정화된다. 따라서 그가 수련하는 곳이 맑아지며 그 집 전체의 기운마저 깨끗하게 바뀐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이르기를 성인(聖人)이 앉으면 그 앉은 자리가 명당이 된다고 한 것이다.
⑦ 위급한 환자가 생기거나 한밤중에 발생한 급성 질환의 경우에 생명력 자체인 기를 투여함으로써 그 위험한 순간을 넘길 수 있다.
⑧ 상대방의 기 상태를 진단해 줄 수 있다. 흔히 소주천을 이루기 전에는 상대방의 몸과 내 몸의 파장을 맞추어 기의 교류에 의하여 감지하는 방법을 쓰는데 이때에는 기의 소모도 많을 뿐 아니라 무척 번거롭다. 그러나 소주천을 이룬 후에는 상대편 몸 속에 있는 기의 종류, 맥의 상태를 직접 눈으로 보듯 알 수 있으며 수련을 지도할 수 있는 사범이 될 수 있다.
⑨ 소주천을 돌리면 삼매에 들 수 있다. 실제적인 성명쌍수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생각해 보라. 우리의 식심을 떨쳐내고 나의 육신과 천지만물이 다같이 공하여 텅빈 것을 보며 한없는 광명 속에 자신의 마음이 또렷하게 맑고 밝아서 모든 것이 맑은 거울에 투영되듯 드러나며 그 비추임마저 번거로와 오직 하나의 각성으로 존재하는 삼매, 나를 잊어버리는 무아(無我)나 망아(忘我)가 아닌 일체가 하나되어 피아(彼我)가 없는 세계, 진아에서 나오는 혜명(慧明)의 빛, 그 빛이 곧 명(命)이요, 기(氣)이며 각성의 존재, 그것이 곧 진심(眞心)이요, 신(神)이다. 이러한 정신일도, 성명쌍수, 영육일치의 상태에 들어야 어째서 선수련이 성명을 함께 닦는 것이라고 하는지를 비로서 알 수 있게 된다. 이 때가 되면 모든 경전의 뜻이 자득되며, 책을 읽기 전에 벌써 그 책을 쓴 자의 마음기운을 알게 되며, 사진을 통하여서도 그 사람의 몸 속에서 흐르는 기의 종류와 통로, 공부법 등을 알 수 있게 된다. 기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이러한 삼매는 다른 어떠한 인위적인 생각이나 수단, 화두로 들어가는 것과는 사뭇 달라서 몸 속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소약에 의하여 일어나는 자연한 삼매이다. 그러므로 진삼매(眞三昧)라 할 수 있다.
4. 소주천의 분류
본디 소주천은 구분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처음 길을 닦을 때에 먼저 길을 내고 자갈을 깔고 포장을 하는 순서가 있듯이 완성으로 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생활은 각종 공해, 대기 오염, 가공 식품의 독소, 복잡한 사회 생활에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 치밀한 전문 분야에서의 과도한 신력(神力)의 소모 등으로 인해 고래(古來)의 한가하고 근본적인 방법으로는 특별한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실패하거나 도중에 포기하게 마련이다. 또한 설사 소주천을 개통했다고 하더라도 풀섶에 발자국 한번 날 만큼 실날같은 기가 통과하는데도 어떤 이는 "나는 소주천을 돌리는데 왜 빨리 몸에 변화가 없느냐?"고 조급해 하거나, 반대로 "나는 이제 소주천을 이루었으니 이만하면 됐다." 하면서 그에 따라 나타난 조그만 능력들을 쓰기에 급급하여, 결국은 전도를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언제까지고 스승의 지시에 따라 앉아서 한없이 수련만 하던 옛날의 관습에서 벗어나, 이 소주천의 과정을 세 단계로 구분하여 시행하게 되었다.
1차 주천 ~ 유위법 주천, 후천기 주천, 양화 주천, 불씨 주천
2차 주천 ~ 반무위법 주천, 진양화 주천, 소약 주천
3차 주천 ~ 무위법 주천, 옥액 주천, 대약 주천
1) 1차 주천
1차 소주천의 유통 방법은 의식으로써 불씨를 이끌어 독맥을 개통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신이 기를 이끌어 간다고 하며, 이러한 유위법을 지나서 무위에 들어가면 그 때에는 기가 신을 돕는다고 말한다. 그러면 먼저 통관 방법을 설명하기로 한다.
1. 개통 방법
① 먼저 고요히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모습 전체를 의식한다.
② 토호흡을 20∼30회 실시하고, 숨을 멈춘 채 단전을 고요히 응시한다.
③ 몸의 느낌이 천천히 잡히며 하전에서 기의 변화가 감지된다.
④ 그 기의 느낌에 따라 의식이 천천히 그 곳에 집중되며, 불씨를 키워서 차츰 강력하고 확실한 느낌이 들 때까지 일에서 백을 세면서 전단법을 행한다.
⑤ 불씨가 평소와 같거나 그 이상 강렬해지면 와공에서의 전단법처럼 무식(武式) 전단법을 써서 호흡을 가하면서 천천히 회음으로 내려간다.
⑥ 이렇게 하여 이동을 할 때는 무식으로 바람을 부치면서(風式) 불씨를 몰고 가고, 기력이 약해졌을 때는 멈춰서 고요한 문식(文式) 전단법을 행한다.
⑦ 이렇게 하여 양기의 느낌이 남아 있을 때까지 계속하여 이동을 하고, 느낌이 약해지면 그 곳에 멈춰 문식으로써 기를 보강한 다음 다시 출발한다.
⑧ 끝날 때는 불씨를 다시 단전으로 회수한 다음 오래도록 봉고한다.
이렇게 하여 대강의 기본 요령을 충분히 인식한 뒤에 직접 개통에 들어간다. 또한 독맥의 개통을 살펴보면 수사 개개인의 단전의 강약과 불씨의 강약에 따라, 극히 드문 예이지만 어떤 사람은 하루만에 독맥을 모두 개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하나의 혈을 뚫고 나서 다음 혈을 뚫을 때까지 기력을 보충하는 데 이삼 일이 걸리며, 양기가 빨리 생성되지 못하여 새로 뚫은 맥을 충분히 채워 주지 못하는 경우는 일 주일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책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단숨에 임과 독 두 맥을 개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음기나 정신적인 의식의 기로써는 순식간에 임과 독을 수십 바퀴 돌기도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생각으로써 달나라에 갔다 오는 식이 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허상이고 공허한 생각일 뿐이며 실지로 임독은 열리지 않는 것이다.
그 동안 여러분도 수련을 통해 경험했겠지만, 한 방울의 진양(眞陽)의 기운을 생성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새로운 혈맥의 개통에 따른 면적의 확대로 인해 일어나는 양기의 부족 현상은 당연한 것이다. 때문에 이렇게 노맥(路脈)을 개통할 때에는 양기를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음식을 집중적으로 섭취해야 한다.
비록 1차 소주천이 미약하고 첫 단계라 하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불가능할 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에게 실제 통관에 대한 상황을 실제 수련을 통하여 상세히 말함으로써 그 이해를 돕기로 한다.
2. 개통의 실제
<원명의 수련>
◎ 원명이 편안하게 앉아 몸과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호흡을 잊어버린다. 온몸의 윤곽이 느껴지면서 차츰 안정감이 들었다. 더욱 몸의 힘을 빼고 의식도 더 깊숙이 가라앉혔다. 두 세 차례 가벼운 토호흡이 끝나면서 호흡이 끝난 그대로 기도를 열어 놓은 채 고요히 몸의 상태를 지켜보면서 숨을 멈췄다. 차츰 몸의 맥박이 강하게 잡히고 흡인력이 단전에서 발생하면서 호흡이 천천히 단전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불씨가 점점 더 열을 내면서 뜨거워지기 시작하므로 원명은 자연스럽게 불씨에 의식을 집중했다.
설명) 일에서 백까지 숫자를 세는 것은 정신 집중이 확실하게 불씨에 맞춰지지 않을 때나 잡생각이 들어올 때에 이것을 물리치는 데 쓰며, 지극히 고요하고 맑아져 있을 때는 숫자를 센다는 의식 자체도 번거로운 것이다. 잘 될 때에는 그냥 무심(無心)으로 불씨와 정신이 하나가 되면 되는 것이다.
◎ 이렇게 하여 불씨가 평소만큼 강력해지자 원명은 천천히 불씨에 약간씩 풍(風)을 가하면서 의식으로써 치골이 있는 쪽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설명) 이때에도 의식이 너무 강하면 고요함이 깨지기 때문에 마음만 살짝 가지는 정도로 충분하며, 호흡 또한 뱃속에서 이루어지는 내호흡을 써야 하고 코를 의식하는 본격적인 풍식은 안 된다. 이렇게 하여 치골(恥骨) 쪽으로 이동하여 내려가면 차츰 불씨의 느낌이나 맥박의 느낌에 변화가 생긴다.
불씨가 강한 사람은 정신, 불씨, 맥박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부드럽고 천천히 자연스럽게 내려 갈 수 있지만, 불씨가 약하고 몸이 덜 정화되어 아직 음기가 많이 남아 있는 사람은 불씨의 따뜻한 열기는 느끼지만 맥박의 느낌은 약하다. 하지만 따뜻한 느낌이 잡히는 한 계속하여 의식적인 맥박 호흡으로써 아래로 내려가게 되는데, 서두르지 말고 충분한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기를 보강해 가면서 이동시켜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 따뜻한 느낌마저 내려가는 도중에 음기와의 상쇄 작용으로 소모되어 느낌이 희미해져 집중력이 떨어지면 일단 그 곳에 멈춰 고요한 문식(文息)으로써 기력을 보충하면서 불이 다시 타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계속 정신력이 흩어지거나 피곤하여 그만 하고 싶을 때는 단전에 봉고를 한 뒤에 수련을 마치고 잠깐 쉬었다가 다음날 다시 행한다.
이렇게 하여 가장 먼저 부딪치는 곳이 치골인데, 이 치골에서부터 미려까지가 우리 몸에서 음기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따라서 이 치골이나 음낭 등은 음정(陰精)이 모여 늘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이러한 연유로 치골에 다다르면 일단 이곳에서 멈추고 잠깐 기를 보강한 뒤에 출발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기를 보강한 뒤에 다시 이동을 계속하면 성기와 음낭을 지나 더욱더 아래로 내려가는데, 이 때 음낭과 항문 사이의 손끝으로 누르면 쏙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 이곳이 바로 회음(會陰), 즉 음이 모이는 곳이다. 이 회음이란 곳은 우리 몸 중에서 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으로서 단전 다음으로 중요한 곳이다. 이 회음은 임독 두 맥이 만나는 교차점으로 충맥(충脈), 즉 백회와 회음을 연결하는 직통 노선이 형성되는 곳이며, 또한 하체로 통하는 근원지이니 그야말로 교통의 요충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 회음은 음이 극성(極盛)하여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하는 곳이니 자(子)에 해당하고, 방위로는 정북(正北)이며, 시간으로는 자정(子正)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곳은 인류의 역사로 보면 전생 인류와 현생 인류의 암흑기이며, 인간적으로는 전생과 현생 사이의 중간 과도기이고, 계절적으로는 가을과 봄의 과도기인 한겨울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곳은 극심한 음기가 차 있는 곳이요, 어두운 암흑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이제 우리는 이곳을 개통하여 천 년의 암흑 세계를 광명 세계로 바꾸어야만 하는 것이며, 개통 후에도 이곳은 온몸의 음기가 늘 몰려 있으므로 온양(溫養)을 중점적으로 해줘야 하는 곳이다.
◎ 이윽고 기가 회음 근처에 이르자 느낌이 흐려지면서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그 곳에서 멈춘 다음 기력을 다시 보강한 후 서서히 항문을 꼬리뼈 쪽으로 부드럽게 수축해 주면서 방향 감각을 잡아 다시 회음 쪽으로 밀고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신을 집중하면 할수록 암흑 천지에 있는 것처럼 확실한 느낌이 잡히지 않고 답답한 느낌과 더불어 무엇에 막혀 압력이 증가하는 것 같은 느낌이 가중되었다. 그래서 맥박에 맞추어 항문을 수축하며 호흡을 좀더 강하게 밀어부쳤다. 이렇게 호흡에 온 정신을 집중하다 보니, 어느 순간인가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탁 터져 나오고 안개 같은 싸늘한 냉기가 항문 쪽으로 쑤욱 밀려 나가면서 압이 증가되어 답다하던 호흡이 쑥쑥 밀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하수(下手)하고 있던 손과 아랫배 주변에는 어떤 서늘한 바람 혹은 안개 같은 기운이 덮여 시원한 감각이 느껴졌으며, 회음 주변과 항문 쪽의 느낌이 좀더 선명하게 잡혀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또다시 이곳에 머물러서 온양을 하면서 기를 보강하기로 했다.
설명) 이 회음은 그야말로 천 년 동굴에 차 있던 얼음 같이 차가운 냉기기 서려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이 처음 개통될 때나 내가 이곳을 뚫어 줄 때를 살펴보면, 심한 사람은 내 손이 다 시리고 주변이 마치 한여름에 서리가 깔리는 것처럼 서늘한 음기로 뒤덮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기운은 여름철에 냉장고 문을 열면 서늘한 기운이 쏟아져 나올 때와 거의 같은 느낌이다.
또한 이 회음이 처음 개통되는 순간 그 사람의 백회가 열리면서 백회 위로도 음기가 솟구쳐 나오니, 이것은 자오(子午)가 서로 정반대편의 한 쌍의 음양으로서 충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혈은 서로 반대편 혈과 상관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회음이 개통되는 순간부터 이미 몸 중심부를 관통하는 충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말 당시 도장을 개원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그당시 나는 수련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외부 사람들과의 접촉도 별로 없었다. 때문에 바깥 세상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이 단의 세계가 형성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때에 일명 부채도사라는 사람을 우리 회원의 소개로 만났는데 그 당시 그 사람은 이미 13년째 수련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다. 그 사람은 당시 우리 나라에서 개원하고 있는 각 수련단체마다 1번 내지는 1기생으로 등록되어 있는, 그야말로 수련단체라면 안 다녀본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 회원이 그 사람의 맥 상태를 점검해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내가 슬쩍 바라보니 회음부터가 막혀 있었다. 나로서는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닌가? 그렇게 수련을 오래 하였다는데…' 하는 갈등의 순간이었고 어떻게 말해 줘야할지 곤란한 상황이었다. 본인의 말로는 소주천을 돌린지는 이미 오래된 옛날이고 손바닥으로 기를 쏘면 엄청난 기운이 뻗친다고 하며 기에 대한 표현 또한 굉장히 강력하였다. 그러나 몇번을 보아도 회음이 막혀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재차 묻기에 나는 할 수 없이 사실대로 말하였다. 그리고 내가 이 자리에서 혈을 개통시켜 줄 수 있다고 하였다. 해서 바로 가부좌를 틀고 호흡을 하게 되었는데 과연 그는 오랜 경력만큼이나 호흡을 잘 하였다. 그의 강력한 호흡에 나의 기를 실어서 회음을 뚫어주었다. 회음을 뚫자 차갑고 시원한 기운이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반경 4∼5m를 순식간에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내친김에 그의 독맥에다가 나의 진기를 주입시켰다. 이윽고 수련이 끝난 후 그는 나의 기운이 자신의 등줄기를 타고 들어오는데 뜨겁고도 시원한 물줄기가 마치 온도계의 수은주가 뻗쳐오르듯 자신의 등줄기를 타고 치솟아 올랐왔는데 이런 물같은 기운은 처음 받아본다고 하였다.
◎ 또다시 기력을 회복하여 불씨가 뜨겁게 끓어오르자 서서히 항문을 향해 밀려가기 시작했다. 이때 항문의 감각은 참으로 묘하여 무언가 따뜻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화장실에 가고 싶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좀더 강도를 높여 무식(武息)으로 바꿔 주면서 항문을 꼬리뼈 쪽으로 조금씩 당겨서 맥박을 실시하였다. 그러자 다시 항문에서 꼬리뼈 쪽으로의 느낌이 좀더 선명해지면서 기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설명) 치질이나 변비 등이 있는 사람이나 화장실에서 시원스레 볼일을 못 보는 사람은 이 항문 개통 시간이 좀더 많이 걸리며, 그 느낌 또한 다양하다. 어느 회원은 치질이 심했는데 이곳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워지면서 녹아서 쑥 빠져 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며, 그 이후부터는 통변이 시원해졌다고 한다.
◎ 이렇게 하여 꼬리뼈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곳에 이르러서는 기운이 빠지고 피곤해지며 집중도가 떨어져 일단 단전에 봉고를 하고 잠깐 쉬기로 했다.
다시 행공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처음과 마찬가지로 치골과 회음에서 걸려 계속 온양을 하여 기를 보강한 뒤에야 서서히 통로가 열려 나갔다. 통로가 열리기 시작하니 답답한 느낌이 사라지고 열기나 호흡이 순조롭게 빨려 들어갔다. 마치 바람결이 직접 그 곳으로 몰아치는 것 같았다. 회음을 통과할 때도 어제처럼 차가운 기운은 별로 나오지 않았다. 호흡과 자세가 한결 편안해졌으며 기의 이동 또한 어제보다는 순조로웠다. 그러나 역시 항문의 통과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마 어렸을 때 탈홍이 있었던 관계로 통과에 지장을 주는 것 같았다. 항문을 지나서 꼬리뼈 쪽으로 지그시 항문을 당겨 주면서 기를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미려, 곧 장강에 다다르니 꽉 막혀서 도무지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이곳에서 꼬리뼈가 뜨거워지도록 충분히 달구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온양에 들어갔다. 이렇게 하여 차츰 꼬리뼈 주변에 뜨끈뜨끈하게 양기가 모여들자, 허리가 천천히 곧게 펴지기 시작하며, 엉덩이가 마치 새의 날개가 펴지듯이 양쪽으로 쫙 펴지는 것 같은 안정감이 느껴지고 그 사이로 틈새가 벌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기가 조금씩 위로 밀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때 원명은 다시 무식(武息) 맥박을 행하여 호흡을 조금씩 부치면서 기의 이동을 도우니, 마치 얼었던 땅이 녹아 내리듯, 꼬리뼈에서 허리까지의 선골이나 요추가 조금씩 녹으면서 그 통로가 천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때 엉덩이는 쫙 펴져서 뒤로 빠지는 것 같았으며, 배는 나오고 허리는 저절로 쭈욱 펴지는 것이 자세가 곧게 되면서도 몸이 편했다.
이렇게 하여 다시 이동이 계속되니, 이윽고 배꼽 뒤에 있는 명문(命門)에 이르렀다. 이곳에 이르니 무슨 큰 바위가 흐르는 개천을 막아 놓은 듯 더이상 나아갈 수가 없어서 다시 온양에 들어갔다. 의식을 둘로 나누어 한쪽은 단전, 한쪽은 명문에 두고, 동시에 양쪽을 온양하기 시작했다.
설명) 미려는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하작교에 연결되는 곳으로서 본디 길이 나타나지 않는 곳이다. 독맥을 개통할 때에 어려운 곳을 들라면, 회음과 미려, 경추가 시작되는 대추, 이 세 곳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세 곳은 늘 충분히 달구어 양기가 충만하도록 해야 한다.
◎ 다시 명문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니, 허리와 하복부 전체가 편안해지면서 기의 일부는 배꼽으로, 일부는 단전으로 직접 연결이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에 따라 돌덩어리가 꽉 막혀 있는 것처럼 굳어져 있던 명문이 풀리면서 허리를 통과하여 등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조금씩, 그러나 쉬지 않고 척추를 타고 올라가서 협척을 별 어려움 없이 통과하게 되었는데, 이 협척을 통과할 때는 등줄기가 솟구쳐 오르는 것 같은 긴장감이 들었으며 어깻죽지가 굳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이곳을 통과하여 드디어 경추가 시작되는 목줄기의 툭 튀어나온 뼈에 있는 대추에 부딪혔다. 그러나 이 대추에서는 아무리 시도하여도 통로가 열리지 않아서 다시 단전에 봉고를 하고 다음에 재도전하기로 했다. 등줄기는 비교적 그 진행 속도나 개통이 빨리 된 셈이다.
설명) 실제로 가장 어려운 통과지점이 이 대추와 회음이다. 나는 이 대추에서 막혀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또한 머리나 앞가슴이 많이 막힌 사람은 이곳 대추에까지 그 막혀 있는 압력이 밀려오기 때문에 무척 어려운 곳이며, 또다른 이유는 목의 각도를 잘 조절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목을 약간 숙여서 기가 쉽게 통과하도록 그 각도를 조절해야만 한다.
◎ 이튿날 다시 대추에 도전하였다. 목을 숙였다 폈다 하면서 약간 움직여서 기가 쉽게 올라올 수 있도록 각도를 조절하고 본격적으로 호흡을 몰아부쳤다. 이렇게 한참 집중하다 보니 목 뒷줄기가 약간 경직되는 것 같더니, 기가 천천히 뒷줄기를 타고 머리 뒷 부분으로 흘러들어 갔다.
이렇게 하여 무난히 옥침을 통과하고 백회에 이르렀는데, 머리 속으로 기가 유통할 때는 척추를 타고 올라올 때처럼 기의 이동이 뚜렷한 직선 형태가 아니고, 무슨 구름이나 안개가 퍼지듯이 불분명한 느낌이었으며, 머리 속이 화끈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 멍한 것 같기도 했다. 머리에 끈을 둘러맨 것 같기도 한 좀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이 마치 구름장이 머리 속을 떠다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독맥의 개통이 성공한 후 상단전에 기를 머루르게 하여 단전과 백회를 동시에 의식하며 계속하여 기를 보강하였다.
설명) 여기까지가 독맥의 개통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표현은 간단하나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계속적인 수련으로써 애써 열어 놓은 맥을 각 혈마다 - 즉 회음, 미려, 명문, 영대, 대추, 옥침, 백회 - 온양을 하여 충분히 그 혈을 개발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혈 속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백회는 충분히 온양하여 이곳에 기가 충만해도록 하여야 한다. 그 후 음양의 변화가 나타나거나 묵직하게 기가 채워진 느낌이 들면 바로 임맥의 개통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것을 활오시(活午時)라고 한다.
그러나 일단 백회에 올라가면 그 곳에서 온양을 해 준 다음 아래의 임맥 순서에 따라 독맥처럼 확실치는 않더라도 기를 순서대로 끌어내려서 단전에 봉고해야 한다. 앞에서 말한 백회에서의 음양 변화는 기가 차츰 강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우리가 한의학과는 달리 독맥을 양맥, 임맥을 음맥으로 하여 백회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양화(陽火)가 이 백회에 이르러 임맥으로 흘러내릴 때쯤이면 음(陰)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음은 그냥 차가운 음이 아니고, 양에서 음으로 변한 시원하며 맑고 깨끗한 진수(眞水)이다. 그러므로 임맥을 따라 흘러내린다고 말하며, 양기가 차츰 강해져 진수로 변하여 임독맥을 돌기 때문에 고서에서는 임독을 돌리는 것을 '수차(水車)를 돌린다' 라고 하였다.
◎ 백회에 웬만큼 기가 모이자 다시 임맥으로 기를 이동하시켰다. 천천히 호흡을 단전에서 빨아들이는 것처럼 하면서 백회의 기를 앞이마 쪽으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흔히 책에서는 임맥은 토호흡을 주로 쓰라고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빨아들이는 맥박으로서 끌어내려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인당을 지나 양미간 사이에 모이게 되자, 그 곳이 불룩하게 솟구쳐 나오는 것 같았다. 이곳이 바로 상작교가 시작되는 곳이므로 혀끝을 입천장 안쪽의 말랑말랑한 부분에 대고 부드럽게 기를 끌어내렸다. 혀끝의 감촉이 묵직해지면서 약간 얼얼한 것 같기도 하고 힘이 들어갔다. 계속하여 혀를 타고 혀뿌리로 하여 십이중루, 즉 목을 타고 내려오니 입속에 맑은 침이 저절로 가득 고였다. 혀끝을 천장에 붙인 채 침을 삼키니 꿀꺽하고 요란한 소리가 나며 저 아래의 단전으로 내려가는 것 같았고 목이 차츰 상쾌해져 갔다.
목을 통과하여 가슴 가운데에 있는 중단전에 이르러 한참 온양을 하니 긴장되었던 어깨와 가슴이 좌악 펴지며 시원하게 열리었고, 양쪽 갈비뼈 있는 데가 편안해지며 꾸룩꾸룩하면서 뭔가가 풀려 내려가는 것 같았다.
이윽고 다시 이동을 하여 명치와 배꼽에서 각각 온양을 한번씩 해준 다음, 드디어 단전으로 입실시켰다. 이리하여 무사히 1차 주천을 이루게 되었다.
1차 주천에 성공하면, 매 수련마다 두세 번의 주천을 실시하여 혈을 충분히 열어 주도록 할 것이며, 주천이 끝난 다음에는 문식(文息) 전단법으로 고요히 단전에 봉고를 하여 본격적인 소약의 형성에 들어가야 한다. 주천을 몇 차례 하면 임독맥이 청소되어 몸이 한결 편해짐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으며, 이렇게 맥이 열리면 단전에 소약을 달이는 도중에도 자연히 임과 독 두 맥에 기가 흘러 소주천이 도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의식은 단전에 집중하여 불씨가 계속 달구어지도록 잠시도 떠나서는 아니되며 또한 이렇게 하여 기가 강화되고 소주천이 원활해지면 어느 틈엔가 정신은 단전에 고정되어 있고, 임독 두 맥은 하나의 원을 형성하여 실제로는 돌고 있지만 고요히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된다. 이것을 일러 '소주천의 화로써 소약을 달인다' 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약이 형성되며, 몸과 마음은 정(定)에 들어가 한없는 광명 속에 삼매의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이러한 1차 소주천에서 곧바로 진종자가 형성되어 대약이 만들어지기도 하나 이것은 오직 정신과 육체가 얼마나 정에 깊이 들어 하나를 이루느냐에 달린 것이다.
3. 문인 문답
문1 : 독맥을 타고 뜨겁게 오르던 기가 백회를 지나면서 상쾌하고 시원하게 변한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그리 되는지요?
답 : 앞에서도 잠깐 말하였듯이, 독맥은 양에 속하고 임맥은 음에 속한다. 우리가 몸을 동그랗게 구부리면 등은 바깥이며 양이 되고, 앞가슴이나 배는 속에 해당하여 음이 된다. 양이란 것은 태양의 성리(性理)를 닮아서 뜨겁고 강렬하며 빛이 나는 성질을 가지니 독맥은 뜨거운 양화가 치고 올라가는 것으로 그 느낌이 뚜렷하고 선명하다. 인체에서 양에 해당하는 등은 복잡하지 않고 간단하며 쭉 곧은 기상을 갖게 된다. 등이 간단하고 강건한 느낌을 주는 것과는 달리 앞쪽은 부드러우며 복잡한 기관이 많다. 음은 달의 기상과 흡사하여 부드럽고 서늘하여 순한 것을 근본으로 한다. 달이 한 달에 네 번 변화를 거치듯이 음은 고요한 가운데 복잡하고 또한 뚜렷하지가 않다. 때문에 똑같은 강도의 기라고 할지라도 독맥에서는 뚜렷한 느낌이 임맥에서는 명확하지 않으며 훨씬 더 많은 기운과 통로가 완성되어야만이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달도 차면 기울기 마련이고 해도 중천에 높이 솟았다가 서쪽으로 지는 것이니 기의 음양 변화도 극에 이르면 저절로 이루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가 백회에 이르면, 이곳이 오(午), 즉 정오(正午)에 해당된다. 이는 양의 극에 해당하므로, 이윽고 변화하여 음으로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자연은 순환과 변화로써 그 발전과 흐름을 이어 가니, 우리 몸의 기의 현상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문2 : 그러면 독맥을 타고 뜨겁게 올라가던 기가 백회를 지나서 시원하게 변화하여 음으로 된다고 하셨는데, 처음에 말씀하신 음공의 음기와 어떻게 다른지요?
답 : 물론 큰 차이가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본디 음과 양은 일기(一氣)로서 나쁘고 좋음이 없다. 다만 청탁, 즉 맑고 깨끗함과 탁하고 부정한 기운으로 구별함이 마땅하다. 오랜 옛날부터의 관념적인 측면에서 부정하고 탁하여 도의 수행에 방해가 되는 것을 음이라 지칭한 데에서 오는 표현일 뿐이다. 그래서 이런 의미의 음과 구별하기 위해서 순음이니 진수니 옥액(玉液)이니 하는 말이 등장한 것이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탁한 음기가 쌓이면 음수(陰水)라 하여 생명의 변화를 갖지 못하는 얼음물과 같고, 진수는 시원하면서도 상쾌한 것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청량감을 주며 그 속에 화(火)를 간직하고 있어 생명의 변화를 갖게 한다. 또한 탁한 음기는 뜨겁고 차가워지는 생명의 변화를 갖지 못하고 한없이 혼탁한 세계로 빠져들게 되니 결국에는 인간성의 상실마저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일기(一氣)의 변화이다. 이러한 음과 양의 변화를 갖춘 기운을 생성지기(生成之氣), 즉 만물을 생성시키는 기운이라고 한다.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로써 만물은 끊임없이 그 생명을 이어간다. 그러므로 백회에서 이루어지는 수(水)는 1·6 수(一六水)의 수가 아니라, 2·7 화(二七火)의 뜨거운 양기가 3·8 목(三八木)의 상쾌한 3단계 변화로 발전된 기운이며, 이것이 곧 진수(眞水)가 된다. 이러한 생성이 차츰 많아지면 독맥 자체도 모두 2·7 화의 변화를 마치고 3·8 목의 기운으로 가득해져서 온몸이 상쾌하고 시원해지며, 마음과 눈이 가을 호수처럼 맑고 고요하게 깊어지는 단계로 발전하게 되니, 이런 진수의 소주천을 하차(河車), 수차(水車)라 한다.
이것은 곧 화(火)가 동(動)의 상징인 데 반해, 금(金)은 정(定)에 드는 고요함의 기운이므로 여기에서 진종자(眞種子)를 캘 수 있는 삼매의 바탕이 마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하지 아니하면 진종자를 캘 수 없다.
문3 : 하차나 진수가 3·8 목의 단계라면, 처음 집단법에서 기를 모으는 것이 1·6 수의 단계, 여기서 뜨거운 열기를 피어올려서 불씨를 만들고 임독 두 맥을 열어 가는 것이 2·7 화의 단계가 되는 셈인데, 4·9 금(四九金)과 5·10 토(五十土)의 단계는 어떤 것인지요?
답 : 3·8 목의 단계에서 목의 성질이 초목지성(草木之性)이라 하여 싱그럽고 상쾌하며 맛은 상큼하니, 기의 성질도 이와 같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행법적인 측면에서 진수가 임독을 가득 채우고 돌게 되면 온몸은 시원하게 변하며 심(心)도 이에 따라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또한 임독이 완전한 하나의 원으로서 2분의 1씩의 음양 변화가 아니라 원 전체로서의 음양 변화가 나타난다. 정(定)이 차츰 깊어져 몸과 마음이 지극히 고요하고 맑아져서 곧 진종자가 발생할 수 있는 터전이 된다. 이 진종자야말로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 대지에 잉태되는 장생불사의 참씨앗이요, 우리의 육신에 잉태되는 진정한 생명의 씨앗이며 목(木)의 결정체이다. 진종자가 성장하여 드디어 결실을 맺으니 이것이 곧 내단(內丹)이다. 앞서의 진종자가 목기(木氣)의 결정체인 것처럼 내단은 우리 몸속의 금강석(金剛石)인 것이며 곧 금기(金氣)의 결정체가 된다. 내단, 이것은 곧 우리의 산란한 마음이 다하여 금강부동심(金剛不動心)이 되는 것이며 육체의 만병이 소멸되어 금강부동체(金剛不動體)를 이룸이다. 이로서 우리는 후천의 탁한 심신을 여의고 선천정(先天定)의 순양한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진종자를 얻어 다시 4·9 금의 단계로 발전하면 온몸이 환한 백색 광명으로 변한다. 금의 색은 은백색이며 그 성질은 굳어지는 성질로서 결실을 가져오니 몸은 광명으로 바뀌고 그 결실에 의하여 드디어 여의(如意)의 보배 구슬을 얻게 된다.
5·10 토의 색은 황금색이며 그 숫자는 완전을 상징하니, 이 단계에 들어서면 드디어 양신(陽神)을 이루어 선천 세계로 들어갈 수 있으며, 온몸은 황금빛 광휘에 휩싸인다. 그러므로 화(火)의 단계까지가 동적 단계로 임독맥이 절반은 뜨겁고 절반은 시원하며, 더욱 발전하면 앞뒤가 다 뜨겁게 변하여 양(陽)이 지극히 정화된다.
문4 : 책에서는 흔히 독맥을 올릴 때는 들이마시고, 임맥을 내릴 때는 내쉬라 합니다.
답 : 일흡 일호(一吸一呼)에 올리고 내리라는 것은 한번 들이마실 때에 독맥을 올리고 한번 내쉴 때에 임맥을 내리라는 말이기는 하지만, 들이마시면 천기(天기)는 내려오고 지기(地氣)는 올라가며 내쉬면 천기는 올라가고 지기는 내려온다고 말하는 것은 숨을 흡(吸)하면 임맥은 내려오고 독맥은 올라가는 데서 비롯된 표현이다. 또한 일흡일호란 것도 한번 들이쉬고 한번 토함만이 아니고, 흡을 위주로 독맥을 개통하되 짧게 짧게 토하면서 들숨을 위주로 하라는 뜻이 된다. 임맥을 내릴 때는 토를 위주로 쓰고 짧게 짧게 흡한다는 뜻도 포함한다. 그러나 처음 임독을 개통할 때는 강력한 추진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흡의 맥박을 위주로 해야 하며, 나중에 순환이 원만하여 주천이 쉽게 될 때는 토흡(吐吸)에 관계 없이 주천한다.
문5 : 저는 독맥을 개통한 뒤에 약 보름 가량 머리 속이 아른거리며 약간 멍한 것 같기도 하고 모자를 쓴 것 같기도 하여 상당히 애매한 상태로 인하여 곤란을 겪었습니다.
답 : 그것은 우리가 아랫배에 처음 기를 모을 때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하전에 양기가 모이면 아랫배 이곳저곳을 떠돌며 음기를 몰아내고 나쁜 곳을 정화시켜 준다. 머리도 이와 같아서 처음 대추를 지나 옥침으로 올라가면 이러한 정화 작업으로 인해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 이후에는 두통이나 머리의 나쁜 질병 상태는 모두 해소되며 약 1∼2 주일 뒤면 맑아진다.
문6 : 어떤 수련원에서는 기가 머리로 올라가면 두뇌 세포가 파괴되어 큰일난다고 하며, 기를 머리로 돌리지 않고 대추에서 양쪽 목으로 돌아서 임맥으로 내리게 합니다. 또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기가 독맥을 타고 머리를 때려서 만성 두통으로 고생하기도 합니다.
답 :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기가 인체에서 어떻게 흐르는지 보지도 못할 뿐더러 자신의 몸 속에서 기가 어떻게 흐르는지도 알지 못하고 그저 생각으로만 수련하는 자들이다. 옛말에 고인 물은 썩는다 하였으니 기가 흐르지 않는 곳은 만병의 근원이 되는 곳이다. '정혈(精血)'이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의 정은 핏속에 녹아서 피와 같이 흐른다.
여러분은 그 동안 수련을 통하여 손발이 따뜻해지고 혈액 순환이 원활해지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즉 기의 순환은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고 신진 대사를 원활하게 하여 피를 맑게 하고 정(精)을 충만하게 해준다. 그런데 몸 속에서는 기와 피가 잘 돌아야 하는데, 머리 속에는 기가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니 이해할 수 없는 논리이다. 또한 기가 머리를 쳐서 만성 두통 현상이 생겼다고 하는데, 이런 현상은 지식(止息)에 의해 주로 나타나는 피해현상으로서 지식이나 지나친 강호흡으로 발생된 탁기가 불시에 폭발적으로 상기(上氣)되어 두뇌에 몰려 뭉쳐 있음으로 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당사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독맥이 개통된 것도 결코 아니요, 뇌세포가 파괴된 것도 아니다. 즉 이것은 임독 두맥이 막힌 상태에서 상기(上氣)로 인하여 머리속에 탁기가 엉켜서 순환되지 못하므로 그곳에 압력감과 기의 불통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또한 백약이 소용 없으며 병원에 가도 이상이 없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러한 기운을 기계로 잡아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양기 수련으로써 정상적인 독맥을 열어 머리를 정화시켜 주어야 한다. 한번 숨을 머리로 끌어들일 때마다 시원한 천기가 머리를 지나 아랫배로 흘러들어오게 되며 소주천이 도는 한 두통이나 질병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즉 더러운 얼룩은 깨끗한 물로 씻어내야 한다.
문7 : 저는 독맥이 개통되던 날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우리 등에 있는 영대혈에 우리의 수호신이 있으며, 소주천을 개통함으로써 온몸의 기행(氣行)이 강력해지므로 그 전까지의 수호신은 붙어 있지 못하고 새로운 강력한 수호신이 다시 온다고 하는데 사실인지요?
답 : 물론 꿈이란 것은 대부분이 허망한 것이다. 그러나 간혹 세월이 지나도 선명하게 잊혀지지 않는 예지의 꿈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로부터 '대인(大人)은 꿈이 없다' 라고 하였다. 어찌 수련하는 사람이 그런 수호신이니 보호신이니 하는 따위에 잡념을 일으키겠는가? '영대무일물(靈臺無一物)'이란 말이 있듯이 일체의 잡물이 붙지 않아야 한다. 오직 스스로의 신(神)의 밝음으로 광명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문8 : 기치료를 하여도 괜찮은지요?
답 : 원칙적으로 기치료는 충맥이 열려 전신 주천(全身周天)이 되기 전에는 금한다. 더군다나 갈길이 구만 리 같고 단전의 뿌리도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기가 방출되는 양도 정확히 통제하지 못할 뿐더러, 혹 상대방이 강력하게 끌어당겨 뿌리채 뽑히는 날에는 임독맥의 주천도 불가능해진다. 또한 호흡마저 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 이것을 회복하려면 처음보다 몇 배의 고통이 따르니 대개는 회복하지 못하고 그냥 주저않는다. 기 치료는 금지해야 한다.
문9 : 저는 임독이 원활해져서 한 바퀴, 두 바퀴 세면서 수십 바퀴를 순식간에 돌리게 되며 나중에는 너무 빨리 돌아서 숫자를 셀 수가 없어 그냥 돌고 있다는 느낌만 갖게 되는데, 이때 온몸이 환하게 빛으로 변합니다.
답 : 물론 가끔씩 그렇게 집중적인 회전을 시켜보는 것도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으나, 더욱 중요한 것은 단전에 뿌리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즉 불씨를 단전 기혈에 놓고 끝없이 고요하게 깊이 들어가서 소약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며, 임독 두 맥은 처음 몇 번만 돌려 놓아 편안해지면 단전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저절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단전에 집중을 소홀히 하고 주천에만 몰두한다면 임독 두 맥이 굵지 못하여 가늘게 흘러가며 소약도 생성되지 못하고 단전의 뿌리도 깊어지지 않는다. 즉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일차주천이 이루어지면 금강부동심으로 무한히 단전에 집중하여 소약을 키우는 일이다.
문10 : 가능하면 일정한 시각에, 일정한 장소에서 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제 방보다는 베란다나 마루가 훨씬 수련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답 : 일정한 장소라고 해서 아무 데서나 끝까지 하라는 것은 아니다. 집 안에서도 각기 그 장소에 따라 기의 상태가 다르며, 수사도 그 수련의 정도에 따라 선호하는 기운이 달라진다. 맘에 드는 곳, 수련이 잘 되는 곳에 앉아서 고정적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며, 정신이 안정되지 않는 곳이나 괜히 공기가 탁하게 느껴지는 곳,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무겁고 상쾌하지 못한 곳 등은 모두 기가 나쁜 장소이니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또한 손바닥으로 공간에 두고 바닥을 살펴보면, 솟아 올라오는 기혈이 있는 곳을 느낄 수 있다. 그 곳에 항문을 맞추고 앉아서 하면 더욱 효과가 있다.
문11 : 고서에서는 목욕법을 아주 중요하게 다루었는데, 어떠한지요?
답 : 물론 중요하다. 자(子)·오(午)·묘(卯)·유(酉), 즉 동서남북의 정방위에 해당하는 회음, 영대, 백회, 전중 부위에 온양을 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곧 상·중·하 삼단전의 온양에 이어지는 것인데, 한단선법에서는 각 혈마다의 온양으로써 1차 주천에서 목욕법이 시행되고, 2차 주천에서 자연 목욕, 즉 소약에 의한 무위 목욕법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으므로 따로 분류하지 않았다.
문12 : 목욕은 한마디로 무엇을 뜻하는지요?
답 : 이것은 정동(靜動)의 음양법으로서 네 개의 혈에다 고요한 문식 전단법으로 온양하여 그 혈을 충분히 개발하고 혈과 혈 사이의 맥의 유통을 유도한다는 뜻이다.
문13 : 어떤 곳에서는 독맥을 36회 올리고 임맥을 24회 내린다고 하며 법도(法度)에 맞게 주천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떠한 것인지요?
답 : 이것은 서른 여섯번 끌어올리고 스물 네번 임맥으로 내린다는 뜻이 아니다. 본디 역에서 양(陽)의 수는 9로, 음의 수는 6으로 표현하는데, 자(子)에서 해(亥)까지의 12지 중 자(子)·오(午)·묘(卯)·유(酉)의 네 정방위는 목욕의 위(位)로서 정(靜)해야 하므로, 이것을 뺀 나머지 여덟 개의 위(位)에서 독맥에 속하는 축(丑)·인(寅)·진(辰)·사(巳), 임맥에 속하는 미(未)·신(申)·술(戌)·해(亥)의 네 개씩이 배당되는데 이 네 개 혈의 그 음양의 수리에 대한 의미를 합한 것이니, 4×9=36으로써 독맥의 기족(氣足)을 나타내고, 4×6=24로써 임맥의 원족(圓足)을 나타낸 것으로 주천이 원만(圓滿)해짐을 상징하는 것이다.
2) 2차 주천
1. 2차 주천의 정의
2차 주천은 진기 주천(眞기周天), 소약 주천(小藥周天)이라고도 하며, 행공의 대부분은 무위법을 쓴다. 이제까지의 수련을 통하여 모든 내외적인 기의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쌓였으리라 믿는다. 이제 무위법 수련에 들어가는만큼 호흡이나 정신 세계 또한 정(定)을 잃지 않도록 각별히 힘써야 한다.
대개는 이 2차 주천 과정에서 충맥이 열려 전신 주천(全身周天)에 들어가며, 소약 또한 깊은 정에 들어감에 따라 2차 주천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진종자로 변해 바로 대약, 대주천 과정으로 들어가기도 하니, 주천보다는 봉고에 각별히 신(神)을 집중해야 한다.
2. 2차 주천 방법
① 자세 ~ 좌공과 같다.
② 호흡 - 진식(眞息)
토호흡을 쓰지 않아도 좋다. 진식이란 입과 코를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저한 내호흡을 이루어야 하며, 또한 무의식적인 호흡으로써 몸 깊숙한 곳에서 스스로 호흡과 맥박이 이루어짐을 자연스럽게 지켜보아야 한다. 진식은 소약이 없으면 이루기 어려운 호흡이다. 예로부터 소약은 화(火)와 후(候)를 함께 갖추고 있다 하였으니, 소약 스스로 뜨거운 진양(眞陽)의 화와 맥박을 갖추어 스스로 호흡을 당긴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을 고요하고 편하게 가져 소약이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도록 긴장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맥박도 피상적인 몸 전체의 느낌이나 국부적인 느낌이 아니고 소약 그 자체, 즉 한 지점에 일치되어야 한다. 그래서 소약은 화와 후를 함께 갖추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곧 진식이며, 의식이 배제된 무위에 듦이며, 정(定)에 깊이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므로 진종(眞種)을 캘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소주천을 열심히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이도 아직 소약을 얻지 못한 자는 - 그 소주천이 의식의 가기(假氣)가 아닌 경우 - 미처 단전에 불씨가 들어가지 못한 동적(動的) 상태에서 주천만 열심히 한 결과이니 이것은 마치 약이 없는 빈 약탕관에 열심히 소주천의 화를 행한 결과로서 소약을 이룰 수 없다. 이 불씨가 단전 기혈에 들어가지 못함은 첫째는 불씨가 아직 약한 탓이며, 둘째는 몸에 아직 음기가 많아 단전이 밝게 드러나지 못함이며, 셋째는 의식이 고요하지 못하여 늘 잡념이 있거나 들떠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신이 불씨를 제대로 이끌어 주지 못함이다. 불씨가 단전 기혈에 제대로 들어가면 때로는 나타나고 때로는 깊이 숨으며, 봉고를 할 때는 늘 일정한 곳에 들어가니, 그 곳에 단전 기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이 2차 주천에 들 수 없으므로 좀더 수전(守田 : 의수단전)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3) 3차 주천
1. 소약의 형성(小藥形成)
1) 소약 형성
임독의 순환이 원활해짐에 따라 뚜렷한 원이 형성됨을 스스로 알 수 있다. 이 때쯤이면 불씨가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 빛으로 변하기도 하며 때때로 뜨겁거나 상쾌한 음양변화를 거듭한다. 고요히 정(定)에 들어 온몸에서 기를 빨아들인다. 이때의 호흡은 풍식을 완전히 배제하고, 1, 2, 3, … 하고 세는 숫자의 의식도 배제하여 맑은 거울 속에 모든 것이 환히 비치듯이 단전을 응시하면 된다. 이렇게 하여 양화가 충만하여 뜨겁고 서늘한 음양의 변화를 거듭하여 힘이 강성해지면, 저절로 움직여 임독을 일주천하게 된다. 이렇게 일주천한 것을 솥 안에 넣고 소주천의 화로써 달이면 이윽고 소약이 이루어진다.
2) 소약형성심법(小藥形成心法) - 금계포란지법(金鷄抱卵之法)
이것은 비단 소약(小藥)뿐만이 아니고 대약(大藥)과 내단(內丹) 등 앞으로도 모든 인위적(人爲的)인 호흡방법을 다 버리고 오직 일념으로써 이 법을 행하여야 한다.
금계포란지법이란 말 그대로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강부동의 심신(心身)을 뜻하는 것이다. 소약이나 대약, 내단 등이 모두 음양상합(陰陽相合), 즉 신과 기가 고요히 오래도록 엉기어 그 생성변화를 이루는 것인만큼 절대적으로 부동의 심신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닭이 알을 품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킴을 보라. 어미닭은 죽은듯이 미동도 하지 않은체 오직 온몸의 기운과 마음을 다하여 알 속에 있는 생명의 변화에 집중하여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고 나면 그 암탉은 온몸의 양기를 모두 알 속의 생명에게 쏟아부었기 때문에 몰라볼만큼 여위게 되는 것이다. 진실로 우리 수사들은 닭이 알을 품을 때의 그 지극한 정성과 인내력을 본받아야만 한다. 우리 수사들이 닭이 알을 품는 정도의 지극한 정성을 가질 수 있다면 반드시 단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다.
2. 소약 자전(小藥自轉)
<원명의 수련>
◎ 원명은 오늘도 다시 고요한 마음으로 수련에 임한다. 자리에 앉아 몸 전체를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정(定)하게 가지면 소약에 의식이 집중된다. 어느덧 호흡에 인위적인 통제도 가하지 않고 무심히 응시만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거울이 무심히 사물을 비추듯 일체의 상(想)과 염(念)을 버리고 신(神)으로써 고요히 비추고만 있는 것이다. 금정 불비(金精不飛)라, 즉 소약이 약하면 날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역」의 건괘초구(乾卦初九)에서는 "물속에 잠긴 용이니 아직 쓰지 말라." 라고 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단전 부근에서 소약이 출현하였는데 그 본체는 콩알만하고 맑고 투명한 수정과 같다. 그것은 천천히, 그러나 명확하게 스스로 움직여 이동하기 시작했다. 원명은 몸과 마음을 더욱 편안하게 하여 소약의 이동이 편하도록 하면서 강하지도 않고 해이하지도 않은 편안한 상태로 의식을 소약에 집중하면서 호흡과 신(神)이 소약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였다.
설명) 소약이나 단이 냉단(冷丹), 즉 차갑게 식는 경우는 호흡이나 신이 망상을 따라 흩어지거나 주천이 약하여 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경우이다.
◎ 이윽고 소약은 치골에 가서 걸렸다. 그 곳에 가만히 멈추어서 별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 있으려니 소약이 강렬하고 뜨거운 양기를 발산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원명은 그 곳에 더욱 정신과 맥박을 집중하며 지켜 보았다. 그러자 치골 전체가 시원하게 화끈거리며 양쪽 서해부가 마치 얼음이 녹아 내리듯 부글부글 녹아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이 때 소약은 다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설명) 우리 몸의 축기 상태도 그렇지만, 화(火)의 단계 이상인 목(木)의 단계에 오르면 수련할 때의 뜨거운 느낌은 오히려 사라진다. 소약도 이와 같아서 충만한 상태가 되면 오히려 중화(中和)되어 안정되므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런 상태에서 동적인 기의 소모가 있으면 다시 뜨거운 양기가 풀어져 나온다.
◎ 이렇게 하여 회음에 잠시 머물렀다가 항문을 가볍게 통과하고 미려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미려에서는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머물기만 하였다. 이번에는 소약이 극도로 차가와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시원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목 뒤로 상쾌한 느낌이 뻗쳐 오르며 소약은 마치 얼음덩어리가 회전을 하며 녹듯이 꼬리뼈 아래에서 맴돌이를 일으키고 차츰 작아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원명은 일단 소약을 그 곳에서 잠시 보강한 뒤에 단전으로 회수하고 그 날 수련을 마쳤다.
한동안 단전에 집중이 계속되었다. 때로는 소약이 어느 깊숙한 곳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으며, 몸의 상태가 매우 안 좋아서 호흡이 안 되고 맥이 막힐 때에는 마치 깊은 연못 속에서 용이 출현하듯 단전에서부터 강력한 기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스스로 몸 중심부의 충맥을 열어 기를 끌어당기니 때로는 뱃속에 무슨 괴물이 들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신비하기도 하고 거짓말 같기도 하였다. 홀연히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지고, 또 어느 때는 한동안 잠잠하며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타고난 기력이 선천적으로 부족하여 양기를 충분히 공급해 주지 못해 그 성장이 늦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소약이 나타났다. 소약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회음과 항문을 거쳐 미려에 머무르니, 꼬리뼈 전체가 시원하게 물이 가득 차는 것 같이 풀어지며, 그 서늘한 기운이 선골을 타고 오르는 것이었다. 회음에서 미려까지, 아니 엉덩이 전체가 시원한 물로 차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소약은 천천히 위로 올라가며 명문 근방에 이르니, 하대맥이 강화되고 아랫배 전체가 부글부글 끓으며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배꼽도 시원하게 열려서 배꼽에서 단전까지 새로운 통로가 형성되어 기가 들어왔다. 계속하여 소약은 영대를 향해 올라가니 양쪽 젖꼭지며 앞가슴 역시 시원하게 열리고, 간과 쓸개가 있는 양쪽 갈비뼈 속에서 부글부글 물이 끓는듯이 밑으로 풀어져 내렸다. 대추 근방에까지 이르러 먼저 뒷머리 부분이 시원해지며 12 중루가 한 가닥씩 녹아내리니, 목으로 연결되어 있는 가슴 부위의 낙맥들이 같이 풀어져 내리고, 바깥의 천기가 통째로 빨려들어오는 것 같았으며, 온몸이 시원하게 열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날도 더이상 계속하지 못하고 여기서 중단해야만 했다.
설명) 이 2차 주천 과정에서 극히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가공식품 같은 부정하거나 탁한 음식물을 섭취하거나, 음기가 많은 사람과 만나기만 하여도 몸의 변화가 한동안 중지된다는 사실이다. 나 또한 중도에 기의 소모와 음식물을 잘못 섭취하여 몇 번인가 변화가 끊어지기도 하였고, 불행하게도 끝까지 2차 주천을 마치지 못하고 진종자를 얻었으니 그대로 대주천에 들게 된 것이다. 비록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후학을 지도하는 입장으로서 좀더 끝까지 가 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아 있다.
나는 진실로 기라성 같은 인재가 많이 나타나서 이러한 선도(仙道)를 스스로 입증하고 널리 보급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예로부터 제자는 스승을 만나기 어렵고, 스승은 합당한 제자를 구하느라 세상을 전전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장진인은 하늘에 비치는 광명을 따라 머나먼 서촉 땅까지 걸어갔으며, 유화양은 하늘에 기도하여 오충허를 만났고, 오충허는 그 스승에게 스무 해 동안이나 도를 간구한 끝에 드디어 진법(眞法)을 받을 수 있었다. 진실로 선도란 타고난 선근(善根)과 근골이 뛰어난 사람이 닦으면 그 성취가 눈부신 바 있다. 이것만큼 우리 사람의 몸과 마음을 강력하게 바꿔 줄 수 있는 수행법은 없다고 본다. 이 모두가 기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바쁜 사업 때문에 도중에 수련을 중단한 몇몇 뛰어난 인재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이 만약 나의 절반만큼이라도 노력을 했다면 그들은 나보다 훨씬 높은 경지로 아마 대성(大成)했으리라. 그 중 한 사람이 언젠가 내게 와서 말하기를 "정말 기의 세계란 불가능이 없는 것 같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생각한다. '불가능을 가능한 일로 바꾸려는 인위적 행위, 그런 가운데 당신은 병이 차츰 깊어지고 있다.' 라고.
4. 대주천공
1. 대약론(大藥論)
먼저 대약의 명칭에 대하여 알아보자. 대약이 단전에 처음 발생한 것을 진종자(眞種子), 또는 사리자(舍利子)라고 하며, 이 대약이 복식(腹食)의 과정을 거쳐 대주천에 의해 연단되어 완성된 것을 내단(內丹), 금단(金丹), 단주(丹珠), 화주(火珠), 금액 환단(今液還丹), 모니주(牟尼珠), 여의보주(如意寶珠), 대단(大丹) 등이라 하여 그 이름이 수없이 많으니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다.
그러면 왜 이처럼 대약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인가? 소주천의 화후에 의해 하단전에서 연단된 불씨, 즉 진양화(眞陽火)를 소약이라 하며, 이것을 외단(外丹)이 완성되었다고 하고, 단전에 완전한 뿌리를 내렸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소약을 후천지단(後天之丹)이라 하며, 이 소약에 의해 수사는 소정(小定)을 이루는 심처(心處)를 마련한 셈이 된다. 이에 반해 대주천의 화후에 의하여 완성된 내단, 즉 여의보주는 선천지단(先天之丹)이라 말하며, 이는 곧 중정(中定)을 얻는 것이며, 또한 누진통(漏盡通)를 이루는 것이다. 누진통, 즉 새어 나감이 다함은 심(心)의 정(定)을 지켰다는 뜻이다. 신동즉기동(神動則氣動)이므로 심이 정(靜)하지 않으면 기 또한 정(定)할 수 없다. 대정(大定)에 든다는 것, 다시 말해서 대정에 들고 멸진정(滅盡定)에 드는 것이 곧 천선(天仙)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늘 변하고, 우리의 마음 또한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동(動)하여 파도가 일면 망념이요, 정(定)하여 고요하면 광명 지혜라 하지만, 과연 그 무엇으로 우리의 이 마음을 묶어 둘 수 있겠는가? 구름도 모이면 곧 흩어지고, 바람도 한바탕 불고 나면 곧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말도 허망하며, 생각 또한 허망하다. 일체가 다 무상한 것이니, 변하고 또 변하는 그 어떠한 것으로써 우리 마음을 묶어 대정에 들 수 있겠는가? 후천의 탁정(濁精)과 탁심(濁心)으로는 정(定)에 들지 못하며, 신통 변화(神通變化) 또한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오직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곧 신(神)이요, 모든 것의 본질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이 신으로 귀일하여 하나로 융화될 때 비로소 대정에 들게 되며 선천 세계에 들게 된다. 정·기·신을 삼위 일체로 하는 것이 곧 연정 화기, 연기 화신, 연신 환허의 과정이며, 이것이 또한 대정에서 멸진정에 드는 정법 수행이다.
2. 진종자론(眞種子論)
1) 진종자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소약에서 한번 더 변모한 것이 진종자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왜 참된 씨앗, 즉 진종자라 했는가? 이는 진종자를 얻어야만 내단을 이루어 양신(陽神)을 잉태하는 도태(道胎)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소약은 무정란(無精卵)이고 진종자는 유정란(有精卵)이다. 한마디로 소약은 생명이 없는 것이며, 진종은 그 자체에 잉태의 생명력을 갖춘 것으로 비교할 수 있다. 소약의 화가 진양화로서 뜨거운 불에 해당한다면, 진종자의 불은 곧 신화(神火)로서 뜨겁지 않은 불,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의 불길이다.
고서에서는 이 진종자를 얻어야만이 장생불사가 가능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2) 고서를 통해서 본 진종자 형성 이론(古眞種子形成理論)
① 교구이후생(交구而後生)
심중(心中)의 원신(元神)은 무형지화(無形之火)에 속하며, 신중(腎中)의 원기(元氣)는 무형지수(無形之水)에 속한다. 심장 속에 감추어진 무형의 화신(火神)이 두 눈동자의 빛을 한 곳에 모아 상단전인 니환궁(泥丸宮)에 응집시킴에 따라 상단전에 응신(凝神)되고, 신장 가운데의 무형의 수기(水氣)가 자연히 발동하여 뜨겁게 끓어올라 위로 솟아오르게 되어서 원신과 더불어 남녀처럼 음양 교합을 이루니, 서로의 기운이 하나를 이루게 된다.
이렇게 하여 오래도록 상전에 순양의 기가 쌓여감에 따라 자연히 대약을 이루며, 차츰 그 모양이 화주(火珠)와 같이 둥글고 빛나게 되며, 그 형태는 아래의 하단전에 나타나게 된다. 즉 천지 만물이 시생하는 것이 다 이러한 연유로 인함이니, 고서에 이르기를 "無形能生有形 陽從坎下飛(형태 없음이 능히 형태 있음을 생하므로 형태 없는 양이 감을 쫓아서 아래로 날아든다)"라 하였다.
문제점) 1. 두 눈동자의 빛을 상단전 니환궁에 응집시킨다.
2. 신장의 수기가 위로 솟아 올라 원신과 교합한다는 것
3. 상전에 순양의 기가 쌓여서 대약을 이룬다는 것
결론) 이상은 모두 상단전을 중심으로 대약을 채취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끝 구절의 양이 감을 따라 날아내린다는 것은 신이 하단전으로 내려옴을 뜻하고 있다. 따라서 앞뒤가 상반된다. 대약은 상단전이 하단전에 응신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② 구인이후생(勾引而後生)
이것은 두 눈동자로써 이끈 뒤에 생긴다는 뜻이니, 두 눈동자의 빛은 신중(神中)의 진의(眞意)가 나타나는 곳이다. 그러므로 눈빛이 이르는 곳에는 진의가 이르니, 진의는 토(土)에 속하고, 토의 위치는 중궁(中宮)이 되며 중궁은 곧 황파(黃婆)의 역할을 한다. 황파란 곧 남녀를 서로 만나게 하여 중매를 서는 사람이니, 이 황파가 상전으로 이끌어감에 따라 대약이 하단전에서 출현하여 상전에 오르는 것이다. 고서에 이르기를 "中宮胎息 號黃婆(중궁에서 태식이 이루어지니 이를 황파라 부른다)"라 하였다.
문제점) 1. 토를 진의라 풀이하며 기 위치는 중궁이라 하고 황파라 하였다.
2. 황파가 중매를 서서 대약이 하단에서 출하여 상전에 오르는 것
결론) 물론 토를 진의로 풀이한 것은 타당하나 대약 채취에 있어 중을 이룬다는 것은 중궁이란 한 부분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몸 전체가 중, 즉 곤괘가 되어야 한다. 차라리 중궁을 통하여 신(神)이 하전에 내려온다 함이 옳다고 본다.
③ 정정이후생(靜定而後生)
원신이 두 눈동자가 니환을 비침에 따라서 그 또한 상지본위(上之本位 : 니환궁)에 결집하여 고요히 안정하며, 천신(天神)의 안정에 따라 원기 또한 하지본위(下之本位)에서 고요히 정(定)을 이루니, 원신과 원기가 다같이 정에 든다. 오래도록 정을 이룸에 따라 원기가 형(形)을 이루게 되니, 이는 오래도록 정함으로 인해 동(動)이 생(生)함이다. 다만 내(內)에서만 생하고 내에서만 동한다. 고서에 이르기를 "採眞鉛於 不動之中 不定而陽不生(움직이지 않는 가운데 진연을 채취하니 정하지 못하면 양이 생겨나지 아니한다)"이라 하였다.
④ 식정이후생(息定而後生)
선천 원신과 원기가 두 눈동자의 인도로 상하 본위에서 각기 안정함에 따라 후천지화(後天之火) 또한 그 본원(本源)으로 돌아가니, 자연히 기근(氣根)으로 돌아가 상하의 운행이 없게 된즉 진식(眞息)을 이루어 대약이 생한다. 만약 진식 부정(眞息不定)이면 반드시 대약 또한 생하지 않을 것이다. 고서에 이르기를 '息定採鉛(호흡이 정하여져야 연을 채취할 수 있다)'이라 하였다.
결론)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식정(息定)이란 지화(止火)를 말한다. 지화하여야 진종자를 채취할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네 가지 형태로 진종자의 형성 원리를 논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위의 네 가지 형태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였으리라 믿는다. 그 첫째는 눈동자의 상전 집중, 둘째는 원신과 원기의 상하 정위(正位), 셋째는 정(定)으로 인한 진식(眞息), 넷째는 가장 중요한 음양 상합(陰陽相合)으로 그 중요성이 대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옛말에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라 하였다. 즉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최선을 기울여 노력한 뒤에 그 성사는 하늘에 맡긴다는 뜻이다. 대약의 발생도 이와 같아서 그 어떤 방법을 통하여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선각자들의 경험을 통하여 대약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만들고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며, 또한 그 때가 왔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등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위의 이론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보기로 하자.
3) 고진종자론(古眞種子論)의 분석과 정론(正論)
① 기의 이동 현상
먼저 기의 이동 현상부터 분석해 보자. 앞에서 말했듯이 신(神)은 화성(火性)으로서 남자의 본기(本氣)이다. 남자는 화를 그 주기(主氣)로 하기 때문에 강렬하고, 급하게 타오르며, 능동적이고, 외향적이다. 따라서 바깥 일에 밝고, 내면 세계는 여자보다 어둡다. 정[精氣一物]은 수성(水性)을 근본으로 삼는데, 수는 또한 여자의 주기(主氣)인지라, 조용하고 부드럽고 뭉치는 수기(水氣)의 성질 때문에 여자는 독점력과 집착력이 강하고, 내향적이며, 남자보다 마음 속 기운이 맑아서 세세한 일도 잘 기억한다. 그러므로 이런 수와 화의 본질적 성질로 볼 때, 남자가 여자를 능동적으로 찾음은 자연한 이치이며, 대약 발생의 경우 상단의 신화(神火)가 내려와 하단전의 기수(氣水)와 합일함도 정리(正理)라 하겠다.
수는 정(靜)이 근본이요, 화는 동적 기운이므로 예로부터 이런 화의 동적 성질로 인하여 우리의 심(心)은 끊임없이 떠돌게 되니, 불이란 끝없이 타고나면 아무것도 남음이 없이 재를 이루어 소진되고 만다. 우리 선인들은 신화(神火)를 보전하기 위하여 불을 물 속에 넣어 불이 퍼져 나가는 기운을 수의 뭉치는 기운으로써 제어해야 정(定)을 이룰 수 있다고 설파하였다. 그러므로 「역」에서는 화수기제(火水旣濟)의 공(功)을 이룬다 하여 "火入水中謂之旣濟 神氣相合謂之交配 還丹數足 方得交合 火水旣濟眞鉛汞(불이 물속에 들어 조화를 이루는 것을 기재라 하나니 이러한 신과 기의 상합이 곧 교배가 되느니라. 바야흐로 환단이 족하게 되면 비로서 교합을 이룰 것이니, 화수기재가 곧 진연홍이니라)" 라 하였으니, 당연히 상단전의 신화남(神火男)이 기녀(氣女)를 찾아 내려옴이 정리임을 알 수 있다.
② 진활자시론(眞活子時論)
또한 대약 발생의 시기에 대하여 옛 사람들은 활자시(活子時)가 아니면 약을 캘 수 없다고 단언하였으니, 때를 얻지 못하면 약을 캘 수 없으며 때를 놓치면 부재래(不再來)한다고 하였다.
그러면 먼저 자시론이 등장하게 된 근본 원인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처음에 진인(眞人)께서 수많은 수행자들이 대약(大藥)을 채취해야만 하는 시기를 놓쳐서 도를 이루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시어 역(易)의 이(理)를 빌려서 "양이 처음 나타나는 때를 알아야만 비로소 약을 얻을 수 있느니라." 하고 이세상에 비결을 내놓으니 이것이 이른바 자시론(子時論)이 된 것이다. 이러한 자시론의 진의를 알지 못한 대중들은 저마다 밤 11부터 새벽 1시가 자시(子時)이며 이때가 양이 처음 동하는 시각이므로 자시수련을 하여야 약을 얻는다고 하여 저마다 잠도 자지않고 야단들이었다.
그리하여 자시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게 되자 진인께서는 "그러한 시간적 자시가 아니라 활자시(活子時), 즉 진실로 양기가 발동하는 자시를 알아야 한다." 라고 하니 이번에는 이것을 해석하기를 각 사람마다 이러한 양기가 동하는 때가 다르므로 각자의 활자시를 알아서 그때에 곧바로 수련을 해야 그 약을 채취할 수 있다고 하여 저마다 무엇이 조금만 이상이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벌떡 일어나 수련을 하느라 야단들이었으며 또한 양물(陽物)이 발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을 발동시키느라 온갖 방법을 다 강구하였고 고서에서는 그런 것들을 그럴듯한 문구로 표현하여 무슨 큰 비법이나 되는 것처럼 전해왔다. 현대의 무슨 비디오를 보면서 소위 활자시 수련을 한다는 사람들이 이러한 부류에 속하니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하겠다.
이러한 세태를 보다 못하여 진인께서 다시 진활자시(眞活子時)를 내놓으니 이것은 진실로 역(易)의 곤괘에서 지뢰복괘로 변하는 일양시생(一陽始生)의 이치를 스스로의 몸속에서 느끼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천지창조이며 참된 생명의 씨앗인 것이다.
자시로부터 축시, 인시, 묘시, … 등 하루 12시가 순환하여 만상(萬象)이 변화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12시는 6음(六陰)과 6양(六陽)으로 그 음양의 성쇠를 나타내고 있으니, 달도 차면 기울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며, 정오가 되면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등의 모든 현상이 이러한 음양의 성쇠로 인한 것이다. 한낮에는 태양이 비치며 양이 강하고, 밤에는 달이 비치며 음이 강해짐은 독자 여러분께서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한밤중(오후 11시∼오전 1시)이 되면 음이 극도로 강해져 천지가 음으로 뒤덮이는데 음은 고요하고 암흑이므로 극(極)한 가운데 천천히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니, 이곳이 곧 일양(一陽)의 시생(始生)이 된다. 「역」에서는 이를 지뢰 복괘(地雷腹卦)라 표현하였다.
곤괘는 1에서 6까지의 효가 모두 음이다. 즉 하단전에서 상단전까지가 모두 텅 비어서 일체의 움직임과 형체가 없다. 아무것도 없는 음의 극한 상태, 정(靜)이 극한 상태를 나타낸다.
지뢰복괘는 초효에 일양이 처음 나타나 곤괘의 음극에서 양이 생한 것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대약을 채취할 때는 반드시 곤괘와 같은 천지무물 무일동(天地無物無一動)의 진무(眞無)의 상태가 되어야만 비로서 천기(天機)의 도래라 하는 일양시생(一陽始生)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을 일러 진활자시라 한다. 이 때에는 의식도 없고, 기도 없으며 호흡도 없다. 이와 같은 상태가 되어야만 일양초동의 진활자시가 일어난다.
③ 응신(凝神)
고론(古論)에서는 한결같이 눈의 집중 현상으로 인한 신기 합일(神氣合一)을 주장하였다. 마음이 가는 곳에는 눈길이 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을 살펴볼 경우에 그 사람의 생각에 따라 끊임없이 눈꺼풀 속에서 눈동자가 굴러 다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는 꿈을 꿀 때도 예외가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수련할 때 시선을 고정시키며, 또한 몸 속의 기의 이동에 따라 눈동자가 이동하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 집중의 중요성으로 인하여 인위적으로 눈동자를 왼쪽으로 몇 번, 오른쪽으로 몇 번 굴리고, 또는 상단전에 집중함으로써 심화(心火)로 광(光)을 일으키는 등 다양한 수련법이 파생되었는데, 한마디로 말해서 이러한 유심적(有心的) 수련으로는 대약을 캘 수 없다.
무심(無心), 즉 마음이 없어 지극히 허(虛)한 가운데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신남(神男)이 움직여 여정(女精)를 찾으니, 움직인 뒤에야 알게 되며,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보임이 나타나는데, 이렇게 유심으로 눈동자를 굴려서 어찌 천기의 도래를 이끌 수 있겠는가? 괜스레 심화만 끌어올려 탁하게 만들어 머리만 어지러울 뿐이다.
④ 양광 삼현(陽光三現)
양광삼현이란 대약을 캐는 시기를 말한다. 허실생백(虛實生白)이라 하여 양미간에 뚜렷하게 흰빛이 나타남을 말한다. 이 빛은 마치 뿌연 백열전등과 같은데 단전에서 약이 무르익어 그 빛이 인당에 투영되는 것이다. 이것이 한번 두번 나타날 때는 아직 약이 어려서 캐지 말아야 한다고 하며, 네번째는 약이 늙었다고 하여 캐는 시기를 놓쳤다고 한다. 곧 세번째 나타날 때가 적기(適期)라는 것이다.
대약을 캐기 전에 지화(止火)와 지후(止候)를 하고 물망물조(勿忘勿照)하라고 한다. 즉 약이 무르익었으므로 양광이 두번 일어나면 이미 충분히 약이 익은 증거가 되니 양화를 더 강하게 하거나 호흡을 쓰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화력이 충분함에도 호흡을 가하면 화가 지나쳐 오히려 단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무심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으라는 것인데 이른바 물망물조 하라는 것이다. 이윽고 세번째 양광삼현이 일어날 때 기를 채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대약을 캐는 것을 천기(天機)라 하는 만큼 이것은 어떠한 용법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자연하게 저절로 되는 것이며 어떠한 의식이나 행위가 배제된 상태에서 저절로 캐어진다. 무슨 캐는 방법이 따로 있겠는가? 하다보면 허실생백이 일어나고, 그러다보면 양화의 감각도 호흡도 맥도 없는 이른바 지화지후(止火止候)가 저절로 되고, 그러다 어느때 깜빡 천지전후(天地前後)가 다 끊어지면 어느 순간 대약이 저절로 발생되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수사 여러분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저 자연한 흐름을 따라 가라는 것이다. 양광이현이 어떻고 삼현이 어떻고 하며 자신의 생각을 일깨운다면 이것이 곧 자연한 일을 망치는 큰 사고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나는 네번째에 너무 늙어서 쓰지 못한다는 설을 믿지 않을 뿐더러 이론적으로도 그렇게 될 수 없다고 본다.
4) 대약 육경(大藥六景)
대약 육경이란 진종자가 형성되고 난 뒤에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이 정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때부터 육신통(六神通)이 생겨난다.
① 단전 화치(丹田火熾)
이것은 따뜻한 봄이라야 만물이 새로운 생명의 태동을 이루고, 남녀가 교합할 때 몸이 뜨거워져서 잉태의 조건을 갖취지듯이, 신화(神火)가 아무런 느낌이 없이 홀연히 내려와 하단전의 기녀(氣女)와 합하니, 비로소 새로운 광화(光火)가 단전에 타오르게 된다. 이것이 곧 일양 시생이요, 선천 진양화의 불길이 하전에서 타오르는 것이다.
② 양신 탕전(兩腎湯煎)
양쪽 신장이 끓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단전에 선천 진양화가 타올라 온몸의 후천기를 선천기로 변화시키는 첫 단계로서 양쪽 콩팥의 원정을 기화(氣化)시키는 현상으로, 시원하게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순음화(純陰火)로서 신장이 재생된다.
③ 안토 금광(眼吐金光)
눈에서 금빛을 토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정·기·신이 족하여 안정되어 있으며 진기(眞기)의 빛이 눈에 나타나는 것이다. 삼성 내단(三成內丹)이 이루어지면 온몸에서 금광(金光)이 나온다. 이를 도광(道光)이라고도 한다. 안근(眼根)을 진동시켜 정화됨이다.
④ 이후 풍생(耳後風生)
'귀 뒤의 바람 소리'를 뜻하는데, '龍從雲 虎從風', 즉 용은 구름을 쫓고 범은 바람을 따른다는 옛말이 있다. 범(虎)은 오행으로 금에 속하니 금생수의 이치로써 신장의 원정(元精)을 생하니 이(耳)는 신장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腎開竅於耳] 이근(耳根)이 진동, 정화됨이다.
⑤ 뇌후 취명(腦後鷲鳴)
'머리 뒤의 독수리 울음소리'로 이것은 선천 진화력(先天眞火力)이 상단전까지 청정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즉 의근(意根)을 정화하는 것이다.
⑥ 신용 비축지류(身湧鼻縮之類)
'몸속에 물이 흘러다니며, 코가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으로 이것은 정·기·신이 족하고 온몸에 충만하여 전신을 정화하고 있는 현상이다. '肺開竅於鼻(폐와 대장의 기운이 코로 통하여 있음)'이니 이때쯤이면 진양화의 뜨겁게 끓는 현상은 모두 사라지고, 그저 물처럼 온 몸속이 줄줄 녹아내리며 정신과 육체가 상쾌하기 그지없다. 이것은 신근(身根)과 비근(鼻根)이 동시에 진동 정화되는 것이다.
이상을 대약 육경이라 하는데, 어떤 이는 음근구축(淫根龜縮)이라 하여 음근이 자라의 목처럼 움츠러들어서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이 줄어드는 것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 몸 가운데, 특히 음낭(고환)의 음정(陰精)이 다 기화(氣化)되고 양관[정액이 나가는 통로]이 폐쇄됨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때에는 아직 진종자가 내단으로 완성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완전한 음근구축이라고 볼 수는 없다.
3. 복식(腹食)
진종자의 발생에서 수중(守中)을 거듭하여 마침내 대약을 채취하기에 이르렀다. 소약이 후천순양진기라면 대약은 선천순양진기이다. 이것을 일주천하여 12중루를 통과하여 하전 기혈에 입실시킴을 복식이라 한다. 즉 약을 복용하는 데서 인용한 말이다.
이런 대약일주천의 화후는 진식법(眞息法)을 쓴다. 이는 2차 주천(中周天)에서 이미 몸 안에서부터 고요히 이루어지는 맥박의 집중과 소약의 움직임에 따라 신(神)이 뒤따라가며 수동적인 통관이 이루어짐을 몸소 증득하여서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책에서 경고하는 상·하 두 개의 오작교, 즉 미려에서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항문으로 새어 나간다든지, 앞이마의 인당에서 콧구멍으로 빠져 나간다든지 하는 위험이란 것이 모두 신의 집중이 흐트러져 바깥으로 달아나는 경고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오룡 봉성의 방법으로 무사히 통관 복식(通關腹食)을 이룸은 신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소약이나 진종 대약에 합일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소주천이 신이 기를 이끌어가는 능동적 주천인데 반해, 중·대주천은 이미 진양의 화력을 스스로 갖추고 있는 소약과 대약이 그 화력에 의하여 기가 능동적으로 행하고 신은 단지 올바른 행로를 갈 수 있도록, 또한 단이 식지 않도록 집중만 하게 되는 무위법의 수동적 태도를 취한다.
다만 여기서 한두 가지를 더 강조한다면 통관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하여 소약과 대약이 머물러 적체되고 있는 부분에 무리하게 의식적인 풍식이나 힘을 가하여서는 안 되고 고요히 참을성 있게 기다릴 것이며, 만약 이것 또한 잡념으로 인하여 신이 자꾸 흩어진다면 부득이한 방법으로 숫자를 백까지 세면서 신을 고정시켜야 한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무난히 통관 복식의 대업을 성사시키리라 믿는다.
4. 구수 진종 천기(口授眞種天機)
直守下田 小藥自轉
天地混沌 江山寂寞
無光無暗無風
一星流墜 長下見
水中潛龍 深居處
陰陽相合 神火發
是謂世稱 眞種子
하단전을 고요히 지키노라면 소약이 스스로 굴러가리라.
때가 오매 천지는 혼돈스럽고 강산 또한 적막한데,
빛도 어둠도 사라져 바람 또한 고요하더라.
홀연히 흐르듯 떨어져 내리는 한 빛이 있어
바닷속 깊은 곳의 용의 처소를 찾으니
음양 상합에 생명의 불이 타오르더라.
이것을 일러 세상에서는 진종자라 하더라.
<원명의 수련>
원명의 수련은 나날이 깊어 갔다. 중전이 열리고 난 뒤부터는 오직 정(定)을 유지하는 데 힘썼으며, 신(神)으로써 기를 이끌어 가는 유위법을 금하고 몸 속의 변화를 가만히 지켜 보는 것으로 일관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定)에 들고자 소약을 찾아 집중하였으나 소약은 어디에 숨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임독맥도 사라져 흔적이 없었으며, 몸 속에서 다른 어떤 움직임도 감지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정신이 분명히 몸 밖에 나와 있음도 아닌데 그저 몸 속이 막막한 것이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상태로 일체의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어제만 하여도 소약이 출현하여 온몸을 정화시키고 환한 빛 속에서 몸과 마음이 다 고요한 삼매에 들 수 있었는데, 이 날은 왠지 다른 세계에 든 것 같았다. 원명은 몇 번이나 애를 써보았으나 허사였다. 그래서 그냥 일어나려다가 하단전에 집중이나 하고 있자는 생각이 들어 대충 하단전의 위치를 어림하여 호흡도 놓아 버리고 그냥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깜박 의식이 끊어졌던 것 같았다. 잠든 것은 분명히 아니었는데 전후가 완전히 끊어진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던 순간, 가슴께부터 홀연히 황금빛도 흰빛도 아닌 빛이 길게 포물선을 그리며 저 아래로 한없이 내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때 원명은 깜박 의식을 잃고 있었던 터라 잠에서 막 깨어나 사물은 눈에 보이되 그 어떤 지각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 때처럼 그저 고요히 그 광경이 비춰 보일 뿐이었다. 그 빛은 길게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니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상체와 하체의 연결 부위인 서혜부가 마치 어둠 속의 산등성이처럼 솟아오르는 것 같이 보였다. 이때 끝없이 내려가던 그 빛은 그렇게 찾을래야 찾을 수조차 없었던 단전 기혈로 정확히 찾아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갑자기 그 곳에서 화르르르 하고 신화가 피어오르는데 그 때의 광경은 마치 보일러의 점화 스위치를 누르면 기름이 쭈욱 주입되며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것과 비슷하였다. 그런데 그 때 타오르는 불은 소약에서의 뜨거움과는 전혀 달라서 정말 뜨겁지 않은 불이었으며, 오직 신비스러운 불길이었다. 이로부터 원명은 양쪽 콩팥, 즉 왼쪽이 먼저 끓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대약 육경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후 원명의 수련은 간결하여졌다. 진종자를 대약으로 완성하기 위한 백일 축기였는데 이때의 수련은 일체의 양기의 느낌이나 호흡도 없었으며 임독맥이나 충맥도 없었다. 오직 온몸에 물이 그득하여 단에 집중만 하면 되는 그러한 상태로 변하였다.
5. 문인 문답
문1 : 어찌하여 대약 육경을 육근진동(六根振動)이라 하는지요?
답 : 앞서 말한 것은 모두 안·이·비·설·신·의의 육근이 청정해지는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육근 진동으로 인해 누진통을 선취(先取)하게 된다.
문2 : 아까 말씀하신 '음근 구축'까지 넣는다면 칠경(七景)이 되는데, 왜 육경이라 하는지요?
답 : 대약육경이 일어날 때에는 단전화치를 필두로 하여 육근이 진동하는데 시간적 차이가 있다. 또한 이때에는 몸이 기적(기的)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에 육체적 감각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때문에 음근이라는 물적(物的) 존재를 따로 인식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문3 : 이 육경은 동시에 발생하는지요?
답 : 그렇지는 않다. 단전화치의 경우를 시작으로 하여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가 서로 다르며, 신장의 경우만 하여도 양쪽이 따로따로 끓는 경우가 있다.
문4 : 몸에 물이 흘러다니는 경우는 어떠한지요?
답 : 물론 하단전 부위부터 중, 상으로 차츰 확대되는데, 정말 물줄기가 꾸루룩 거리며 돌아다니고 내장이 다 녹아내리는것 같아 시원하기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문5 : 음근구축은 불가에서는 마음장상(馬淫藏相)이라고도 하는데, 이렇게 하여 양관(陽管)이 폐쇄되면 다시는 열 수 없는지요?
답 : 이 음근구축 현상은 수련 도중 여러 차례 일어난다. 이 또한 대·중·소의 경우가 있으니 성단(成丹)이 완전히 되어야 양관이 폐쇄되며, 이것은 후천 탁정을 일으키면 다시 열린다.
문6 : 저도 수련 도중 위의 경우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진종의 형성으로 보아야 하는지요?
답 : 앞에서 주천에도 대·중·소가 있다고 말했듯이 이러한 증상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소약 이후에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실제 진종자를 얻으면 본인 스스로 신남과 기녀가 합하는 것을 직접 보게 되므로, 이러한 글은 스스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다.
문7 : 이렇게 진종자를 캐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하는지요?
답 : 흔히 '캔다(採)' 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우리는 이 말을 좀더 상세히 인지해야 한다. 감자나 고구마를 보기로 들어 설명해 보자. 처음 감자를 심으면 그 곳에서 뿌리가 내리고 싹이 터서 자란다. 즉 이는 기의 씨앗을 심고 가꿈이니, 이 때는 아직 캐서 거둘 수가 없다. 차츰 때가 되어 감자의 씨알이 굵게 자라면, 비로소 이것을 캘 수가 있다. 진종자도 이와 같아서 처음 하단전에 소약을 심으면 웬만큼 자라야 진종자가 형성되니, 이렇게 처음 소약을 하전에 심은 사람은 약물의 복용을 일절 금하고, 오직 수련의 청정한 진기로써 진종이 잘 자라도록 거름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감자를 캐서 지지고 볶는 등 조리를 해야 비로소 우리가 먹는 음식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캔 진종을 일주천하여 복식한 다음 대주천의 화후로써 삶고 찌고 해야 비로소 성단(成丹)을 이룬다.
문8 : 그러면 이 진종자를 캘 때는 무엇으로 하는지요?
답 : 우리 수사들이 이 정도의 수련 과정에 들면 이미 자신의 몸 안에서 미묘하게 변화하는 그 어떠한 기의 움직임도 스스로 다 감지할 수 있다. 정(定)만 잃지 않고 늘 단전을 주시하면 모든 것이 자연법에 의하여 진행되나 외현(外現)으로는 양광 출현(陽光出現)이라 하여 그 시기를 논하고 있다.
문9 : 고서에서는 진종자를 얻어야만 장생불사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까닭은 어디에 있습니까?
답 : 첫째, 원신과 원정의 합일이기 때문이며, 둘째, 이러한 진종자를 얻어야만 도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문10 : 내단은 어떻게 완성되는 것입니까?
답 : 진종자가 단전 기혈 안에서 대주천을 통하여 기를 공급받아 성단(成丹)한다.
문11 : 진종자가 단전기혈 안에 있다면 어찌하여 현재의식이 기혈에 입실하지 못하는지요?
답 : 진종자의 힘이 약한 탓이다.
문12 : 성철 스님은 신단구전의 풀이에서 부처가 불성을 보는 것은 대낮에 물건을 보듯 선명하고, 십지보살이 불성을 보는 것은 어둠 속에서 물건을 보듯 희미한데 그 까닭은 불성을 감싸고 있는 초기무명(初期無明)을 제거하지 못한 탓이라고 하였습니다. 한데 선생님께서는 이 초기무명이 단전기혈을 감싸고 있는 최초음기라 하셨는데 어떻게 하여야 이 음기를 녹일 수 있는지요?
답 : 역시 이치는 동일하다. 많은 사람들이 기가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맥도 바깥에서 뚫고 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항상 말하듯 타오르는 불은 그 스스로 산소를 끌어당긴다. 바깥에서 기가 들어오는 것도 사실이나 그 기가 들어오는 분량은 몸 속에서 타오르는 양화(陽火)의 화력에 정비례한다. 때문에 결국 기는 몸 속에서 끌어당기는 것이며 맥 또한 몸 속에서 뜨거운 불길에 의하여 녹은만큼만 열린다. 같은 맥락에서 단전에 비록 진종자가 있다고는 하나 아직 그 힘이 약하여 두터운 초기무명을 녹이지 못하며 다만 스스로의 생존과 성숙을 위하여 기혈 바깥에서 가능한 기를 끌어갈 뿐이다. 때문에 초기음기 또한 기혈 속에서부터 내단의 힘에 의해 녹아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상대의 불성을 꿰뚫어 볼 수 있다.
<대주천>
1. 대주천과 삼성 내단(三成內丹)
소주천이 유시(有時), 유간(有間), 유후(有候)인데 반하여 대주천은 무시(無時), 무간(無間), 무후(無候)이다. 소주천은 소약의 힘이 약하여 임독맥이 돌 때도 있고 돌지 않을 때도 있으며, 맥에 진수(眞水)가 차 있는 곳도 있고 비어 있는 곳도 있다. 또한 주천시에 호흡도 병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대주천에서는 강력한 내단의 힘에 의하여 임독맥이 언제나 돌고 있으며 맥은 금액(金液)으로 가득 차서 비어 있는 곳이 없다. 일체의 외호흡이 없이 진식으로만 이루어진다. 점차로 온 몸에 물이 가득하여지며 삼매가 깊어져 내단을 완성하게 된다. 하단전에 내단이 완성됨에 따라 어느덧 중·상단전에도 동시에 내단이 생겨난다. 정·기·신이 합일되어 누진통을 이루며 현재의식은 단전기혈에 입실(入室)하여 견성대각(見性大覺)을 이룬다. 법륜이 자전함에 따라 전신의 모든 맥이 개통되어 완전한 건강을 이룬다. 눈은 지극히 맑고 깊어 모든 사물의 본질을 꿰뚫으며 육신이 완전해짐에 따라 신선의 풍모를 갖추게 된다. 육신통을 이루어 일체의 의심이 끊어지고 천지간에 알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이것이 비록 첫 번째 단계인 연정화기의 결실이라고는 하나 과연 이러한 경지에 오른 사람이 현세에 몇이나 될 것인가? 예로부터 이러한 경지에 오른 사람을 성인이라 하였으며 선도에서는 지선(地仙)의 위(位)에 올랐다고 한다. 내단이 훼손되지 아니하고 맥이 돌아가는 한 일체의 질병에서 벗어나 건강한 삶을 누리게 된다. 이미 자신의 불성을 확인하였기에 중생의 불성도 꿰뚫어 볼 수 있다. 육신통을 이루어 삼세(三世)의 인연을 꿰뚫어 보므로 가히 인류의 스승이라 할 수 있다.
Ⅱ. 연기화신(煉氣化神)
연정화기의 과정에서는 몸 속의 탁한 정을 전부 기로 변화시켰다. 이것은 몸 속의 정이 전부 기로 변하였다는 뜻보다는 정적(精的)인 차원의 정·기·신이 기적(氣的)인 차원의 좀더 미묘하고 섬세한 정·기·신으로 변하였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리라 본다. 연기화신 과정은 앞에서와 같이 몸 속의 정·기·신을 전부 신적(神的)인 단계로 승화시키는 과정이다.
이제부터는 선천세계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천기(天機)라 말할 수 있다. 앞으로 논할 도태(道胎), 양신(養神), 출태(出胎), 수신(收神), 양신(陽神), 허공합도(虛空合道)를 통한 천선(天仙)의 길은 사실상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무리이다. 옛 사람들 또한 이러한 천기를 세상에 드러내는데 대하여 고민하였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 사실을 비유로써 드러내게 되었다. 오늘날은 극도로 발달한 대중매체에 의하여 수많은 선도이론들을 일반인들이 검증없이 접하게 되므로 저마다 기의 환상세계 속에서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하여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선도의 길은 일기의 음양변화를 타고 궁극에 다다르는 지극히 간단한 것이지만 사실상 그 공을 이룬다는 것은 몇 생애의 노력을 통하여 얻어지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요사이 순식간에 대주천을 이루며 양신을 성취했다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고서에 근거하여 적정한 선을 찾아 그 흐름을 밝히고자 한다. 나는 내가 이루지 못한 경지를 스승의 수련과정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증험하기는 하였으나 일일이 그 세밀한 것을 밝히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한 마리 용이 천년수도를 통하여 여의주 한 개를 얻어 비로소 하늘로 승천할 수 있을진대 삼성내단을 이루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이상의 세계에 드는 것은 더욱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경지에 오른 사람은 지극히 평범하여 조금도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때문에 사람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그 속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러한 진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다면 그야말로 수련자들에게는 삼생의 영광이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 동안 짧지 않은 수련기간을 통하여 점법수행을 정성껏 닦았다. 이러한 사람은 백가지 어려움이 어느덧 다 사라지고 모든 생활이 수련에 적합한 환경으로 서서히 변모해진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어느덧 환경이 악화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바른 이치와 바른 법을 닦는 사람이 바른 결과를 얻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래서 「역」에 이르기를 "積德之家 必有餘慶 積惡之家 必有餘殃(덕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고, 악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남아 있다)" 라고 하였다.
1. 역(易) 건괘(乾卦)에 나타난 순양(純陽)의 길(道)
기(음양)의 이치는 「역」에 나타나 있다. 건괘는 순양의 흐름을 나타낸 비전(秘傳)이다. 여기에는 대약과 도태, 양신(養神), 이로환정(移爐還鼎), 오기조원(五기朝元), 삼화취정(三花聚頂)까지의 기의 흐름이 잘 나타나 있다. 물론 역 괘의 풀이를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하고 있으나 진실로 괘란 음양, 즉 기의 조화와 흐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역」에서 괘라 함은 내외의 상하 두 개의 소성괘(小成卦)를 합한 것으로 이것을 대성괘(大成卦)라 하며, 64개의 대성괘가 있다. 각 대성괘(大成卦) - 앞으로는 그냥 '괘'라 지칭한다 - 의 아래에 있는 소성괘(小成卦)를 내괘(內卦), 위의 것을 외괘(外卦)라 한다. 따라서 내외로서 상응하여 음(陰)·양(陽), 시(始)·종(終), 본(本)·말(末)을 나타낸다.
각 소성괘는 각기 세 개의 효(爻)로 이루어진다. 효라는 것은 양은 │, 음은 ┃로 나타낸다. 따라서 건괘는 6효가 모두 양(│)으로 표시되어 있으므로 일체의 음이 없는 순양을 상징함을 알 수 있다. 괘에서 위의 두 효는 천적(天的) 위치에 해당하며 인체에서는 상단전에 해당하고, 밑의 두 효는 지(地)의 위치에 해당하며 인체의 하단전을 상징한다. 가운데 두 효는 인적(人的) 위치이며 중단전에 해당한다. 따라서 수련시 하단전에서부터 상단전에 이르는 순양의 기적(氣的) 변화가 여기에 나타나 있다. 이것이 양기의 변화를 나타낸 것인만큼 군자와 소인, 충신과 간신, 기타 여러 가지 세상사에 비유하여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괘라는 것은 문자가 형성되기 이전에 이미 천지간의 이치를 부호로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순연한 기의 흐름으로서 파악하는 것 또한 당연한 해법이라 하겠다.
건괘는 순양 진기(純陽眞氣)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건괘의 양효(陽爻)는 용(龍)으로써 그 비유를 삼는데, 용이란 동물은 오색지물(五色之物)로서 소의 머리(牛頭)에 사슴뿔(鹿角), 봉의 눈(鳳眼), 뱀의 몸(巳體), 호랑이 발톱(虎足)의 형상으로 이루어져서 입으로 불을 토하며 여의주를 얻어 하늘로 날아오르니, 이 또한 지극히 순양한 동물이다.
먼저 역에서 말하는 건의 뜻을 살펴보기로 하자.
건(乾)은 원형이정(元亨利貞)하니라
상고의 성인께서 처음으로 팔괘를 그어 삼재(三才)의 도를 갖추었다. 그것을 음양으로 중첩하여 천하의 변화를 다 하게 하였다. 중건(重乾)괘는 건(乾)이 되니 건(乾)은 천야(天也)라. 천자(天者)는 천지형체(天之形體)이며 건자(乾者)는 천지성정(天之性情)이다. 건(乾)은 건야(健也)라. 건이무식지위건(乾而无息之謂乾)이라. 부천(夫天)을 전언지칙도야(專言之則道也)라. 건자(乾者)는 만물지시(萬物之始)라. 고로 위천(爲天)하고 위양(爲陽)하며 위부위군(爲父爲君)이라.
그러면 이제 효를 하나하나 풀이하여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易> 初九는 潛龍이니 勿用이니라
(초구는 물속에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
주) 乾은 以龍爲象이라. 龍之爲物은 靈變不測하니 고로 以象乾道變化하고 陽氣消息하며 聖人進退하니라.
初九는 在一卦之下로서 爲始物之端이며 陽氣方萌이며 聖人側微이다.
若龍之潛隱인댄 未可自用이니 當晦養以俟時니라.
乾之初九는 初陽在下하니 未可施用이라.
其象爲潛龍이며 其占曰勿用이라.
건은 용으로써 상을 삼으니 용이란 동물은 영변불측하여 변화무쌍한 천도를 상징하고 양기의 소식을 대표하니 성인이 이로써 진퇴를 삼는다.
초구는 괘의 맨 아래에 위치하므로 만물의 첫 시작을 뜻하며 양기가 바야흐로 싹트는 것을 뜻한다.
초구의 용은 깊이 숨어서 함부로 씀이 불가하니 마땅히 그윽한 곳에 숨어서 수신수양하여 때를 기다린다.
초구는 초양이 아래에 있으므로 함부로 씀이 불가하다.
그 상은 물 속에 잠긴 용이 되며 그 점사는 '함부로 쓰지 말라' 이다.
해) 초구(初九)는 잠룡(潛龍)이니, 물용(勿用)이니라. 맨 아래에 있는 순양지물(純陽之物)은 아직 깊은 바다 속에 숨어 천 년 수도를 하는 물 속에 잠긴 용이다. 아직 성숙되지 못하였으므로 그 능력을 함부로 쓰지 아니한다. 만일 어린 용으로써 기를 쓸 경우에는 상(傷)함을 면하기 어렵다. 용의 덕은 성인의 덕과 같아서 군자(君子)로 상징되니, 군자는 세상이 어지럽고 간신[陰氣]이 많아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을 때는 그 몸을 숨기고 이름을 감추어 오직 수신 수도에 전념한다.
초구의 순양은 불씨와 소약, 대약에서 미완성 내단까지의 순양 진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내단을 완성하지 못하였으므로 아직 몸 속에 음기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함부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심처(深處 : 하단전 기혈)에 깊이 몸을 숨기고 나타나지 아니한다.
易> 九二는 見龍在田이니 利見大人이니라
(구이는 단전에 용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니 대인을 보아야 이롭다)
주) 田은 地上也라.
出見於地上하니 其德已著라.
乾坤은 純體로서 不分剛柔而以同德으로 相應이라.
九二는 剛健中正의 爻位이니 出潛離隱하여 澤及於物이라.
九二는 在下之大人이니 九五在上之大人으로 더불어 相爲主賓이라.
九二는 有甚마形影이니 如何이 敎할 것인가?
見龍在田은 德施普也라.
전은 땅 위를 말한다.
물 속에 숨었던 용이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니 성숙된 용으로서 그 덕이 이미 드러난 것이다.
건곤은 순음순양지체로서 강과 유를 분별하지 아니하고 동덕으로 서로 응한다.
구이는 강건중정의 효위이니 깊이 숨은 곳에서 나와 만물에 그 덕을 미치게 한다.
구이는 하괘의 대인으로서 구오 상괘의 대인과 더불어 서로 손님과 주인이 된다.
해) 전(田)이란 무엇인가? 지상야(地上也)라 하였다. 내가 학문적으로 역을 공부할 때에 이 전에 대하여 의심을 풀 길이 없었다. 그 후 수련을 통하여 건괘가 순양의 흐름을 표시한 것임을 깨닫고는 비로서 건괘에 대한 속 뜻이 확연해졌다. 여기서 전이란 그대로 단전으로 보아야 한다. 천(天)은 둥근 모양으로서 머리를 뜻하고 오효는 중정의 위치로서 상단전이 된다. 땅은 네모로써 표현하며 우리의 몸체(방=□ : 나라국의 古字)를 뜻하고 이효는 중정의 위치로서 하단전이 된다. 삼, 사효는 인적 위치(각=△)로서 중단전이 된다. 그러나 도태를 이루면 중, 하가 하나의 대허공 경계라 하였으니 중단전은 상전과 하전을 연결하는 중간교량 역할을 한다.
용이 지상에 있는 밭에 나타나서 이미 그 덕을 펼쳤다 하는 것은 내단을 이루어 강력한 힘으로써 소주천을 대주천으로 변화시켜 백맥을 다 뚫으니 그 덕이 이미 전신에 골고루 미침이 된다. 소주천은 힘이 미약하여 몸 속의 음기를 다 제거할 수 없으나 대주천은 전신의 음기를 소멸하여 순양지체를 이루게 된다. 순양과 순음은 일물동덕(一物同德)으로 변화상응한다. 이미 내단으로써 전신의 음기를 제거하였기 때문에 언제나 단(용)의 모습이 뚜렷이 밝게 나타나 있다. 때문에 현룡(見龍)이다.
구오의 대인을 봄이 이롭다 함은 연정화기 과정을 마쳐 내단을 이루었으므로 다음 단계인 연기화신에 들어가야 하는데 남녀가 교합하여야 아이를 잉태할 수 있듯이 반드시 상단전의 원신과 하단전의 원기가 음양교합을 하여야만이 기의 몸(도태)이 잉태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易> 九三은 君子 終日乾乾하야 夕척若하면 려하나 无咎이리라
(구삼은 군자 종일 건건하여 저녁에 슬픈 것 같으나 근심하니 허물이 없으리라)
주) 三雖人位로 已在下體之上이나 未離於下而尊顯者라.
九는 陽爻이며 三 또한 陽位이다. 그러므로 重剛不中하여 居下之上이니 乃危地也라.
終日乾乾은 反復道也니 進退動息에 必以道也라.
삼효의 위치가 비록 인위로서 하괘의 가장 위에 있는 것이기는 하나 하괘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는 못한 것이다.
구는 양효이며 삼효의 위치 또한 양효이니 지나치게 강하여 하괘의 위에 있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종일건건함은 반복한다는 뜻이니 오르고 내리며 움직이고 멈춤에 반드시 도법에 맞게 하여야 할 것이다.
해) 이효에서 대인을 만남으로써 이미 도태를 이루었다. 도태가 대주천의 기를 받아 점차 성장하니[養神] 그 힘이 강성하여 스스로 움직인다. 도태를 이룬 후의 대주천은 내단을 이루었을 때의 대주천보다 한차원 승화되어 용천에서부터 진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라 임독 이맥을 돌아 영아(영兒)에게 공급되니 영아의 힘이 더욱 강해진다. 때문에 중강(重强)이라 하였다. 이때의 대주천을 대하차라 한다. 때문에 어린 태아가 아랫배에서만 머무는 것을 답답히 여겨 상하좌우로 몸의 움직임을 넓혀 나간다.
군자 종일 건건하다 함은 이러한 대하차의 기운이 끊임없이 전신을 돌아 몸을 보호하고 영아에게 기를 공급함을 말한다.
삼위가 인적인 위치로서 비록 하괘의 상에 위치하고 있으나 바깥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함은 하단전은 깊은 바닷속이며 중단전은 바다에서 뭍으로 연결된 연못인데 이 연못으로 나가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함을 뜻한다.
중강부중하여 거하지상이나 위지라 함은 어린 양신에게 힘이 생겨 하단전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여 함부로 위(사효)로 올라가려 하는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다.
저녁에는 근심스러우나 허물이 없다 함에서 저녁이란 어린 양신이 이미 하단전에 머무를 시기가 다하였음을 뜻한다. 근심스러우나 허물이 없다 함은 어린 양신이 힘이 강성해짐에 따라 억지로 중단전(사효)으로 올라가지 아니하여도 때가 되면 저절로 올라가게 될 것이니 큰 위험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에서 1, 2, 5, 6 효는 용(龍)으로 비유하고 3, 4 효는 군자라 비유한 것은 1, 2, 5, 6 효는 천지의 위치이고 3, 4 효는 인적 위치이기 때문이다.
易> 九四는 或躍在淵이나 无咎니라
(구사는 혹 뛰어올라 연못에 있으나 허물이 없다)
주) 或者는 疑而未定之辭이다.
躍者는 无所緣而絶於地이니 特未飛爾라.
淵者는 上空下洞으로 深昧不測之所니 龍之在是라.
若下於田하야 或躍而起則向乎天矣라.
或躍在淵은 進无咎也라.
혹은 의심스럽고 정하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약이란 땅에서 뛰어올라 공중에 떠 있되 날지 못하는 것,
연이란 위는 비어있고 아래는 바다에 통하여 심히 깊어 헤아리지 못하는 곳으로 용의 처소이다.
단전에서 혹 뛰어오르면 하늘로 향하게 된다.
혹 뛰어 올라 연못에 있게 되면 하늘로 올라감에 허물이 없으리라.
해) 여기서 혹(或)의 뜻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심스럽고 정(定)하지 못하다' 라고 되어 있다. 어정쩡하여 어느 한 곳에 거처를 정하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원문에 '연못에 뛰어올라도 허물이 없다'고 하였다. 고서에서는 모두 중단전이나 황정(黃庭)에서 도태를 이룬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역에서는 도태가 뛰놀 때에 연못(중단전)에 올라도 허물이 없다고 하며 그 처소가 하전이나 중전 어느 곳에도 고정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躍(뛸 약)' 자의 풀이에서는 '지(地)에서 뛰어올라 공중에 떠있으나 아직 날지는 못한다' 라고 되어 있다. 이는 이미 도태가 자라서 상단전으로 올라갈 때가 된 것이나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연못이란 위로는 하늘(상단전)에 닿아있고 아래로는 깊은 바다(하단전)에 통하니 심히 깊고 어두워 헤아리지 못하는 곳으로서 용이 이곳에 거주한다 하였다. '전(田)에 거하여 한 번 일어난즉 하늘을 향하리라' 하였으니 바로 때가 오매 이로환정하여 상단전으로 올라가는 것을 뜻한다.
易> 九五는 飛龍在天이니 利見大人이니라
(구오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
주) 進位乎天位也라.
聖人旣得天位則 利見在下大德之人이라.
飛龍在天은 大人造也라.
천위로 나아감이라.
성인이 이미 천위를 얻은즉 하괘 이효, 대덕지인을 봄이 이롭다.
비룡재천은 대인이 지음이라.
해) 여기서 천위란 오효를 말한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 함은 양신이 중·하단전에서 상단전으로 올라왔음을 뜻한다. 이를 일러 이로환정(移爐還鼎)이라 한다. 상단전에 양신이 천문을 열고 출신을 하려면 반드시 때가 와야 한다. 그 때를 천화란추(天花亂墜)라 한다. 천화란추가 되려면 오기조원, 삼화취정하여야만 한다.
여기서 아래의 대인을 봄이 이롭다 함은 바로 오장육부의 정기가 다시 한 번 상단전의 신과 합일하여 정·기·신 삼위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기조원, 삼화취정이다. 천화란추는 이렇게 정·기·신이 합일하여 삼단전의 기운이 뻗쳐올라 양미간에 투영되어 하늘에 눈꽃이 어지럽게 날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으로 이 때가 되면 천문을 열고 대허공으로 출신한다.
易> 上九는 亢龍이니 有悔리라
(상구는 항한 룡이니 후회가 있으리라)
주) 九五者는 位之極中正者로 得時之極이니 過此則亢矣라.
上九는 至於亢極 故로 有悔라.
亢龍有悔는 盈不可久也라.
用九는 見塋龍하되 无首하면 吉하리라
구오는 위치가 중정의 극에 이른 것으로 때가 무르익은 것을 얻음이다.
이를 놓치면 지나침이 된다. 그러므로 상구는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후회가 있게 된다.
항룡유회는 그 높음이 오래가지 못한다.
용구는 뭇 용들을 보되 앞서지 아니하고 함께 함이 길하리라.
해) 여기서 항룡이라 함은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여 스스로 가장 높고 귀한 줄로만 착각하여 그 위에 하늘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하여 언제까지나 그 곳에 머물러 있으려고만 하기 때문에 후회가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상단전에 오른 양신이 다시 한 번 하단전의 정과 결합하여 오기조원, 삼화취정으로 그 힘을 얻어 천문을 열고 대허공계로 나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높고 귀하다고만 하여 군용(塋龍)들과 합하지 않음으로써 후회를 하게 된다는 경고이다.
1. 도태(道胎)도태가 성장하는 과정을 태아가 모태에서 키워지는 10개월의 기간에 비유하여 일명 시월 양태라 한다. 이 10개월이라는 개념은 단지 비유이며 상징적인 기간일 뿐이다. 태아를 기르는 것을 양신(養神)이라고도 하며 양신의 기간동안 원신이 잠시도 태아에서 떠나지 아니하면서 대주천으로써 기를 공급해주기 때문에 일년목욕이라고도 한다.
2. 시월양태
도태가 성장하는 과정을 태아가 모태에서 키워지는 10개월의 기간에 비유하여 일명 시월 양태라 한다. 이 10개월이라는 개념은 단지 비유이며 상징적인 기간일 뿐이다. 태아를 기르는 것을 양신(養神)이라고도 하며 양신의 기간동안 원신이 잠시도 태아에서 떠나지 아니하면서 대주천으로써 기를 공급해주기 때문에 일년목욕이라고도 한다.
Ⅲ. 연신환허(煉神還虛)
욕계·색계·무색계인 하단전·중단전·상단전까지의 과정이 모두 끝나 천문을 열고 대허공과 하나가 되는 과정이 연신환허이다. 이제는 원신과 원기가 하나가 되어 진신(眞身)을 이루었기 때문에 일체무애(一切無碍)의 자유인이 된 것이다. 진실로 더 나아갈 수 없는 최상승인(最上昇人)으로서 모든 세계의 스승이 된다. 선도에서는 이때에서야 비로서 구세제민(救世濟民)의 뜻을 펼 수 있다고 한다. 세상을 구제할 뜻이 있다면 자유자재한 능력으로 중생의 어려움을 구하며, 고요하면 무극과 합하여 진공에 든다고 한다
1. 출신 및 수신
양신이 상단전에 머물러 때가 되면 천문을 열고 허공으로 나가는 것이다. 고서에서는 이 때에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첫째, 멀리 나가지 말라. 즉 하루, 이틀, … 시간을 두고서 점차로 이동거리를 넓혀 나아가야 한다.
둘째, 신기한 것을 보거나 신기한 세계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한다. 가급적이면 출신을 작게 하고 몸속에 머물러 정을 유지하도록 애쓴다.
2. 삼년유포(三年乳哺)
어린 양신이 완전한 양신으로 성숙될 때까지의 과정을 삼년유포라 한다.
즉 함부로 출신하거나 능력을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법신이 완전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3. 구년면벽
양신이 태극이라면 진공에 합하는 것은 무극이다. 구년면벽은 구세제민의 번거로움마저 버리고 멸진정(滅盡定)에 들어 최후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위(位)에 도달한 지인(至人)을 천선(天仙)이라 한다.
1) 결태(結胎)의 위치는 하전과 중궁 중 어느 곳입니까?
2) 대약이 원만해지면 복식과관(服食過關)하여 중단전에 머물러 묘유주천을 해야 도태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중궁에 머무는 도중 백맥이 충화(?和)하고 사지가 창달(暢達)하면 급히 눈을 좌에서 우로 36회, 우에서 좌로 24회 굴려서 성명의 기운을 취합하여야 결태가 된다고 합니다.
3) 태아의 모습이 왜 자신과 동일하게 형성됩니까?
4) 호흡(태식)은 어떻게 합니까?
5) 이로환정에 대하여 묻겠습니다. 도태를 이룬후 진양지기(眞陽之?)가 앉은 자리에서 오궁(午宮)을 향하여 뻗쳐오른 후 그 빛이 곳곳으로 뻗어나간다 합니다. 이 때 마음을 자식(子息 : 태아)에게 집중하여 정(定)하고 있으면 홀연히 일점의 진음(眞陰)이 그 속에서 생겨나고 감로(甘露)가 흘러나오며 심지(心地)가 청량해지는 경상이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 경상이 한두번 오게 되면 그 때야 비로서 이로환정할 수 있다고 하는데 위치를 바꿀 때도 단에서 기운에 솟아올라 저절로 이루어져야 된다고 합니다.
6) 양신이 성숙하여 천문을 열고 대허공계로 나아간다고 합니다. 이때 출신할 시기를 알려주는 경상(景象)으로서 천화란추가 일어난다고 하는데 천화란추는 하, 중 이전으로부터 양미간으로 진기가 뻗쳐올라 그 빛이 마치 백설(白雪)이 만공(滿空)한 것 같다고 합니다. 이 때는 어떠한지요?
7) 출신 후 수레바퀴와 같은 일륜금광(一輪金光)이 홀연히 허공중에 나타나는데 정념(正念)으로 양신을 그 광중(光中)에 앉히고 진의(眞意)로써 그 금륜(金輪)을 축소시켜 원신 속으로 끌어들인 다음 중궁에 안치하여야만이 금단을 마무리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일륜금광을 양신 속에 안치하여야만 기로써 성형(成形)할 수 있다고 합니다.
8) 일월합벽(日月合壁)에 대하여 묻겠습니다. 양신이 정에 들어있을 때에 홀연히 일륜호월(一輪浩月)이 허공 중에 나타나면 이를 마음으로 새겨두고 다시 정(定)하면 어느 때에 홍일(紅日)이 월중(月中)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때에 이것을 진의(眞意)로 끌어들여 갈무리한다고 합니다.
선 수련은 흔히 무위법보다는 유위법에 치중하여 연정화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 중요성을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면 언젠가는 끝단추도 바르게 끼울 수 있다는 말로써 비유하고 있다. 그 까닭은 세상의 많은 공부법들이 성(性)에 치우치거나 바르지 못한 기운(음기, 신기)을 닦음으로써 결국은 음신(陰神)에 떨어져 한낱 신령한 귀신을 이루는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최초의 진양화를 얻지 못하면 구전환단의 공을 이룰 수 없고, 이 음양일도(陰陽一道)의 길을 가지 못한다면 끝내는 신선을 이룰 수 없다. 따라서 선수련의 승패는 일점의 진양을 얻는 것이고 이 진양이 진음으로 변화하는 이치을 얻는 것이며 그 진음진양이 소약으로, 대약으로, 내단으로 변화하는 것을 얻는데 있다. 따라서 연정화기의 과정이 가장 어렵고도 험난하다고 할 것이다. 만약 무사히 연정화기의 과정을 마쳐 삼성내단을 이룬다면 그 경지가 이미 육신통이요, 견성대각인만큼 나머지 연기화신과 연신환허의 공을 이루지 못함을 어찌 근심하겠는가?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 쓸 수 없다' 라는 속담이 있듯이 차근차근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작업에 충실한다면 언제가는 최후의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위에 제시한 몇 가지 질문들은 고서에서 기술하고 있는 연기화신, 연신환허에 대한 내용과 해결하지 못한 의문점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고서에 대하여 몇 가지 형태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본인이 직접 쓴 것인가? 만약 직접 쓴 것이 아니라면 스승의 말을 잘못 이해하거나 자신의 이해의 폭에 따라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둘째, 과연 그 스승이나 제자의 수련은 올바른 것인가?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기의 세계는 꿈속에서의 실체감처럼 본인에게는 확실하게 느껴지지만 그 또한 환(幻)이요, 자기착각인 경우가 많다. 혹자는 자신의 소주천이 엄청나게 굵게 돌아간다고 느끼며 또는 뜨거운 물줄기가 올라간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실낱같이 가늘게 형성되어 있으며 온 몸이 뜨겁다는 사람의 몸에서 냉기가 흘러나와 불편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셋째, 과연 그 스승은 직접 이룬 것인가? 아니면 그 또한 그의 스승이나 책에서 전해들은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측면을 간과할 수가 없다. 요즈음 양신을 이루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또 그 스승이 제자에게 능력을 주고 소약이나 대약, 심지어는 양신의 종자도 넣어주며 또 그 종자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몸속에 자기와 똑같은 모습의 양신을 본다고 한다. 누가 누구를 성불케 할 수 있으며 무슨 양신의 종자를 넣어준다는 말인가? 기는 넣어줄 수 있고 귀신은 붙혀줄 수가 있을지언정 대약이나 양신의 공(功)을 남이 이루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설사 소약을 넣어 줄 수 있다고 하여도 그 소약은 이내 흩어져버리고 만다. 마음의 그릇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물을 담아 둘 수가 있겠는가?
구도(求道)란 자기 자신의 길이다. 고서나 스승의 가르침은 하나의 이정표에 불과하다. 그 길은 스스로 걸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자기 몸속의 길을 가는데, 진리의 길을 가는데 무슨 시대적 차이에서 오는 비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오직 바른 방법과 정성이 있을 뿐이다. 나는 소약이 내 척추 속을 관통할 때에도 그것이 소약인 줄을 알지 못하였으며 양광삼현이 일어나 인당에 백열등 같이 뚜렷한 허실생백이 생겨날 때에도 양광삼현이란 말조차 알지 못한 상태였다. 그 후에 비로서 고서를 통하여 단전에서 치솟은 불길이 단전화치임을 알았고 양쪽 신장이 끓는 것이 양신탕전임을 알았다.
이러한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무위법이란 말 그대로 어떠한 관념이나 방법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으며 그 현상은 자연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연기화신과 연신환허는 무위자연인 것이다.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싣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위에 실린 내용들이 틀린 것도 있고 맡는 것도 있다. 무위로 행하는 것인데 어찌 의식을 가지고 눈알을 돌릴 것이며 내가 여기 앉아 있는데 어찌 몸 속의 양신이 멀리 달아나겠는가? 과연 여기 있는 나와 달아나는 양신의 관계는 무엇이며 앉아 있는 자신의 의식과 나가 있는 양신의 의식은 어떠한 관계에 놓여 있는가? 그렇다면 화신불(化神佛)의 의식은 저마다 다른 것인가? 이것은 이미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 부증불감이란 말로써 답해주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것의 대답은 필요치 않다. 무의미할뿐더러 새로운 망상을 더해줄 뿐이다.
나는 끝으로 몇 가지를 당부하고자 한다.
첫째, 수사는 자신의 몸속에 타오르고 있는 진양의 힘을 믿어야 한다.
둘째, 성인(聖人)은 절대 평범하다.
셋째, 모든 수련단체나 스승들을 바른 현실생활의 잣대로써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신기한 말을 일삼거나 무슨 비법을 운운하며 신계(神界)를 들먹인다면 이는 외도방문(外道傍門)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은 도사이기 때문에 저런 기이한 행동과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잘못이다. 실제로 그러한 신의 세계가 존재할 수도 있다 하겠으나 진정한 법의 차원에서 본다면 삼십삼천의 세계가 모두 허상이다. 오직 허공합도하여 진공묘유을 체득함이 정법공부의 종착역이다. 수사는 이러한 사실을 깊이 참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자기 수행의 길을 정진하여야 할 것이다.
<선도(仙道)란?>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심신을 구성하는 생명물질을 정기신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정기신을 단계적으로 수련함으로써 생명의 실상과 그에 깃들어 있는 宇宙의 攝理 곧 眞理를 꿰뚫어 一切의 의혹이 없는 完全함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에 이르는 行法으로서
연정화기, 연기화신, 연신환허의 3단계 수련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정기신의 단계적 변화는 精을 단련하여 기로, 기를 단련하여 神으로, 神마저 고요해져 虛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든 물질은 有形이든 無形이든 태워서 더욱 미세한 구성단위로 분리변화 시킬 수 있는 것이다. 有形의 物質은 有形의 불로, 無形의 物質은 無形의 불로써...
우리의 마음 또한 그 마음을 이루는 神은 三昧眞火로 태움으로써 本性 회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이 法을 行할 때의 마음은(心法) 안으로 파고들면 하나의 작은 極處에 이르고 밖으로 펼치면 地球 위에 앉아 있으되 地球를 뱃속에 품으며 宇宙 속에 있되 우주와 한 몸을 이루게 된다. 흔히 이러한 仙수련의 體係가 明淸代에 구체화된 것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仙이란 글자가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듯이 仙의 기원 또한 아득히 上古時代 또는 그 이전의 전생인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仙이란...
우리 인류가 아득한 과거에서 現在에 이르기까지 또 앞으로 아득한 未來世까지로 통틀어 인류가 발견해낸 가장 完全한 唯一無二한 眞理의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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