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후섭은 '전천후'라 불릴만하다. 시쳇말로 멀티플레이어다. 그의 명함에는 큰 글씨로 대구시교육청 교육과정정책과장이,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아동문학가라고 적혀 있다. 그는 지금까지 57권의 책을 냈다.
그의 이력서를 보면, 하는 일이 네 개 더 늘어난다. 각 1천400여명(http://cafe.daum.net/naamuu)과 130여명(http://cafe.daum.net/weupo)의 회원을 보유한 카페 주인장이요, 후배 선생을 올곧게 양성하는 교수다. 또 그의 동시(童詩)가 초등 교과서에 실린 까닭에 초등생에게는 인기인이요, 100여곡의 동요를 만든 작사가다. 게다가 우리나라 최대규모 어린이 잡지 '어린이동산'을 비롯한 각종 매체의 칼럼니스트다.
이 모든 경력이 38년4개월간 교육공무원으로 있으면서 쌓인 결과물이다. 이 경력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이야기(Story)'다. 그는 1972년 교육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78년 겨울,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6개월간 병원신세를 졌다. 몸이 호전되자 병상에 누워 '좋은 선생이 되는 법'을 생각했다. '이야기를 통한 교육'이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나이 25세 때.
그 뒤로 그는 누가 뭐라던 주구장창 '이야기를 통한 교육'을 실천해 왔다. 그리고, 작년 9월 대구의 초·중·고생 41만여명의 창의력 교육을 선도하는 교육과정정책과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이제 그는 '학생 저자 10만 양성 운동'을 주창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율곡 이이가 왜의 침략을 예상하고 주상(主上)에게 '십만양병설'을 간청하던 절박한 심정으로, 그는 우리 아이들 교육에 이야기만큼 절실한 것도 없다고 열변을 토한다.(십만양병설은 정파적 목적으로 날조된 것이라는 역사학자의 견해도 있다.) 후배 선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선 반드시 "(학생보다) 선생이 먼저 책을 한 권 쓰라"고 당부한다.
어린시절 아버지는 시간만 나면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죠
그때마다 그 이야기들이 귀에 쏙쏙 들어왔어요
문득 그때를 생각해보니 교육에도 이야기를 적용하면 더없이 좋을 거라 생각했죠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이야기를 통한 교육은 요즘말로 하면 스토리텔링 교육인가.
"맞다."
-요즘은 가히 스토리텔링 붐이다. 선견지명이 있으셨던건가.
그는 왼쪽 다리를 오른쪽 허벅지 위에 꼬고 앉아 소파에 기댄 채 팔을 벌려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선생님은 시대를 잘 타고 나신 것 같다고 하자, 또 한번 "맞다"고 했다.
-왜 스토리텔링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어린 시절 경험 때문이다. 나는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 산골짜기 가난한 농부의 일곱째로 태어나 맏아들이 됐다. 내 위로 형 셋, 누이 셋이 돌림병으로 모두 죽었다.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자 애지중지 보살폈다. 옆에 꼭 붙들고 있어서 내 별명이 '붙들이'였다. 아버지는 시간만 나면 마을에서 전해내려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추억을 한참 동안 잊고 있다가 스물다섯 살에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병상에서 6개월간 지내면서 다시 떠올리게 됐다. 어떤 교사로 살아갈 것인지,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귀에 속속 박혔다. 아버지의 교육방식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스토리텔링 교육이 일선 학교에 적용 가능한 일인가.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들면 자연시간에 풍력(風力), 풍속(風速), 풍향(風向)을 배운다. 그냥 풍력, 풍속, 풍향이라고 지나가면 이해를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걸 이렇게 이야기해 줄 수 있다. '우리는 힘 센 사람을 강자라 하고, 힘이 약한 사람을 약자라고 하지. 그처럼 바람도 세기에 따라 강하면 강풍, 약하면 약풍이라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바람의 세기 정도를 풍력이라고 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하면 전 과목을 이야기로 풀어 전달할 수 있다."
-그동안 어떤 성과가 있나.
"우선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통한 교육에 관심을 가지면서 아동문학가의 길로 들어섰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만들려고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했고, 그것들을 글로 풀어내면서 84년에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다. 학교에서는 당장 기억나는 것은 88년부터 이년동안 반야월초등에 있으면서 '슬기로운 독서 생활'과 '여보세요, 거기 이야기 나라입니까'를 4학년생 300명에 무료보급해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아이들과는 편지와 전화를 주고 받는다."
-스토리텔링 교육이란 게 결국은 독서교육이란 말인가.
"이야기는 다섯가지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는 교육수단이고, 정서순화의 도구다. 또 오락의 수단이고, 모든 예술의 기초다. 좀 더 확장하면 산업의 수단이고, 직업의 수단이다. 그런데 훌륭한 스토리텔러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많이 읽어야 한다. 여기다 우스갯소리를 좀 보태 이야기하자면 다윈은 강한 종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에서 적자생존을 이야기했지만, 오늘날은 기록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시대다. 그래서 읽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써 봐야 한다."
-무슨 말인가.
"선생과 학생 모두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는 프로슈머(prosumer)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일단 책을 한권 출판하면 훌륭한 스토리텔러가 될 확률은 급상승한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창의력, 분석력, 통찰력이 고루 향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중에서 대구시교육청이 제일 먼저 '학생 저자 10만 양성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학생 저자 10만 양성 운동이란 게 뭔가.
"말 그대로 학생 작가 10만명을 양성하자는 운동이다. 대구시내 초·중·고 427개 학교 가운데 100여개 학교에 10명가량의 회원으로 구성된 책 쓰기 동아리가 있다. 지난해 대구학생문화센터에서 열린 제1회 책 쓰기 대회에 출품된 우수작품을 선별해 130~270페이지 분량의 책을 11권 출판했다."
-개인적으로 스토리텔링 교육을 위해 준비 중인 것이 따로 있나.
"앞으로 정년이 4년쯤 남았다. 이야기를 통한 교육의 결과물을 한 권의 책으로 남겨 후배 교사들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 '책쓰기 프로젝트'라는 소제목으로 출간된 학생 저자 10만 양성 운동의 첫 번째 작품 '13+1(만인사)'을 들춰봤다. '13+1'은 경명여고 13명의 학생과 지도교사 1명의 작품이란 의미로, 옴니버스식 소책자를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꿈. 소설가, 경찰, 선생, 파티 플래너 등 13명 소녀의 꿈이야기는 자못 기발하고, 당돌하다.
어떤 학생은 그림 실력이 제법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성장만화 같은 글을 선보였고, 어떤 학생은 자신의 꿈을 몽환적인 소설형식으로 드러냈다. 또 어떤 학생은 한편의 다큐멘터리로 자신의 꿈을 풀어갔다. 이 책을 12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지지고 볶아 만들어냈다는 대목에선 눈이 휘둥그레진다. 자고로 교육은 먼 앞날까지 내다보고 세우고 계획할 것이라 해서 백년지계(百年之計)라 했던가. 요즘 교육계는 '성(性)폭탄'으로 얼룩져있지만, 심 선생 같은 분이 있어 희망의 끈을 놓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시교육청발(發) 스토리텔링 교육이 들불처럼 번져나가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듯 싶다.
'이야기 수업'전제조건은 훌륭한 스토리텔러입니다
이 때문에 교사들이 직접 책을 써봐야합니다
학생도 마찬가지고요
교사와 학생이 모두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되는
프로슈머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학생 저자 10만 양성 운동'을
대구에서 제일 먼저 벌이고 있는 거고요
심후섭은
1953년 청송에서 태어났다. 72년 대구교대를 졸업했다. 현재 대구시교육청 교육과정정책과장으로 있다. 아동문학가이기도 한 그는 지금까지 동화집, 예화집 등 아동도서 57권을 펴내 독서교육에 이바지 한 공로로 각종 표창을 34회나 탔다. 그의 동시 '비 오는 날'에는 초등 4학년 국어 말하기·듣기 교과서에, '가위 바위 보'는 3학년 국어과 교사용 지도서에 수록돼 있다. 2004년 노거수에 푹빠진 그는 최근 '대구의 인물과 나무'라는 책을 펴내, 이야기를 통한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영남일보 심지훈 기자
2010.7.30. 입력
첫댓글 다분야를 넘나드는 선생님의 그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