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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손 안의 우주, 김석환의 세계 스크랩 선자령을 다녀와서-사선을 넘어
김석환 추천 0 조회 35 07.01.02 13:19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분당에서 또 이사를 했다.

마침 산하고 가까운 곳이기에 아침에는 산을 올라보기로 하고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감고 산을 타기로 하고 차를 분당골 골짜기로 몰았다.

지팡이를 친구삼아 산을 타기 시작하는데 오르는 길을 잘 몰라 대충 잡아서 오르니 발길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이 약간 밟힌 정도의 자국이라서 길인지 아닌지도 분간이 안 가고 나무 넝쿨이 계속 발을 잡아당기는 그런 코스다.

그런대로 능선을 잡아채니 거기는 의외로 발자국으로 길이 꽤 넓고 깊게 패여 있다.

여기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분당 뒷산을 종주하는 코스도 꽤 그런 사람들에게 애용 되는 모양이다.


대충 제일 높은 곳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고 다시 내려오는데 갑자기 산속에 멋있는 집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잖아도 찾기가 힘들 것 같아서 오를 때의 길 진입로에 나뭇가지를 받쳐 놨지만 워낙이 표시가 잘 안 나는 길인지라 놓쳤다.

다시 돌아서 겨우 그 막대기 표시를 찾아 내려갔다.

산은 아무리 낮은 산이고 만만한 산이라도 이처럼 만만한 구석이 없다.


내려와 차를 몰고 집에 오니 두고 간 핸드폰에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는 문자가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 당장 선자령 고개를 타자는 것이다.

이미 아침 산행을 한 후고 오후에는 오랜만에 테니스 모임 약속이 있는 터라 무리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랜 만의 친구의 청이기도 하지만 요즈음 ‘산행끗발’이 ‘만땅’인 나로서는 앞 뒤 잴 거 없이 ‘오우케이!’


테니스 모임을 마치고 이천터미널 근처서 두 사람을 만나 저녁을 대충 때우고 횡계로 향했다. 길은 평일이라 특별히 막힘이 없어 예상보다 일찍 민박집을 찾아 짐을 푸니 내 생애 그처럼 큰 방에 잠을 자기는 처음인 것 같다. 꼭 무슨 임시피난소 같다.

셋이 눕고도 공간이 ‘널널해서’ 일 행 중 한명은 여자지만 행여나 딴 맘을 먹으려도 도대체가 멀어서 힘들고 귀찮아서도 포기할 만하다.


나는 마침 집에서 가지고 온 담근 포도주를 한 병 꺼내 둘러앉아 주억거리며 마시니 금방 내 주량을 넘어서 버린다. 그러잖아도 피곤한 몸 앞 뒤 잴 거 없이 자리 속으로 쏙 들어가 잠을 청하니 그냥 직방으로 안개가 자욱한 아침이다.

대충 친구가 어제 시장을 봐온 국거리에 햇반을 풀어먹고 난 후 차를 몰아 대관령 옛길 휴게소 근처에 차를 대고 선자령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올 여름에 오른 코스하고 일부 겹치지만 그 때의 느낌과는 아주 딴판이다.

산이고 고개지만 탁 트인 모습이 그러잖아도 시원한데 며칠 전에 온 눈으로 두껍게 덮여있으니 그 시원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고갯마루를 때리는 찬바람은 우리도 같이 묶어서 휘몰아치는 통에 손과 뺨의 시린 정도가 말로 표현키 어렵다.

등산 내내 그 준비 부족은 내 몸을 계속 괴롭혔다.


등산로는 풍력발전소 관리를 위해 뚫어 놓은 길을 따라 약간은 지루하리만큼 계속 이어진다. 커다랗고 바람을 가르는 괴기한 소리를 내는 그 거대한 풍력 발전기도 계속 우리의 발걸음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온다. 이 센 바람에 안 넘어지고 용케 그 큰 바람개비를 돌리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드디어 그 풍력 발전기도 끝나고 길도 좁아 질 즈음 우리를 이끌던 친구가 내리막길로 잡아 내려가는데 한참을 내려가더니 길이 갑자기 끊기는 것이 아닌가?

종주 길을 놓치고 또 다른 올라오는 길을 잡아 내려온 것이다. 겨우 친구가 산장에 전화를 걸어 산속에 있는 이북의 선전용 아파트 같은 곳을 기점으로 다시 산을 오르는데 거기는 길은 아니고 그냥 눈만 푹푹 빠지는 그런 곳이다.


눈은 무릎 이상까지 빠지는 깊이인데 매번 빠지는 것이 아니고 어디는 그런대로 괜찮다가 갑자가 발을 귀신이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듯이 빠지기를 여러 번 하니 ‘발덮개’가 없는 내 발목은 금방 눈으로 척척해지는 것이 아닌가? 기온은 장갑을 여러 겹으로 꼈어도 금방 손이 시려서 움직임이 불편한 정도인데 이러다가 큰일 치루겠다 싶어 나중에는 그냥 기어 올라갔다.

 

다행히 선두에 선 친구가 등산로를 찾아 겨우 다시 종주코스로 접어들었다.

마침 적당히 허기도 진터라 우리는 인부들이 휴식터로 사용했음 직한 조그만 시멘트 움막을 찾아 들어 겨우 바람을 피해 라면을 끓여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어느 정도 큰 길을 가다가 소로로 접어드니 말이 등산로지 맨 처음에 누군가 간 길을 여러 사람이 좇아가서 생긴, 그냥 나무 사이 수북이 쌓인 눈에 패인 발자국을 좇아가는 것뿐이고 눈이 녹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말하자면 공중에 뜬 길인 셈이다. 발자국을 조금만 벗어나면 역시 그냥 ‘눈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이다. 어느 중이 눈길을 걸을 때도 뒤에 올 사람을 생각하라던 말이 저절로 생각이 났다.


그렇게 한참을 가는데 서서히 날이 어두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도대체 우리가 찾는 대피소는 어디쯤 있는지 가름이 안 되었다. 한 참을 가는데 저 앞에 높은 산봉우리가 있고 그것만 넘으면 그 밑에 대피소가 있겠거니 하는 희망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하지만 그 봉우리를 넘으니 저 앞에 군부대인지 불이 환하지만 길은 그쪽으로 이어져 있지 않고 다시 우측으로 잡아 돌아 내려가게 되어 있고 거기는 여전히 어둠과 바람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발자국 길은 이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서도 그 맥이 여전히 생생한지라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한참을 가도 여전히 길만 있을 뿐 산장의 흔적은 오리무중일 뿐이다.

드디어 여자 분이 어려움을 호소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길을 낚아채서 앞으로 질러갔다. 이상하게도 그 상황에 나는 평소에는 부르지 못하는 노래가 다 튀어나왔다. 어차피 올가을에 산타기를 시작하던 때 그저 마음을 누그러트리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보니 오히려 이런 위기감이 더 마음을 가라앉히는 가보다.


  


하지만 여자 분이 구역질이 난다고 하고 언제나 먹는 것에 나보다 훨씬 초연하고 짐도 내 두어 배는 질만큼 건강하기만 한 친구조차도 탈진을 호소하면서 어디서 자리를 펴고 취사를 해서 허기를 때우고 가자는 데는 그런 마음이 싹 가셨다.


사방 군데 ‘눈투성이’ 이고 바람 하나 제대로 피할 공간이 없는 한 밤중에 어디서 쉬고 요리를 한단 말인가?  비상식량이라도 있으면 서서 그거라도 먹으면 좋으련만 이미 그런 것은 바닥 난 지가 오래다.

나는 그 산장지기한테 다시 전화를 하라고 하니 다행히 전화가 터지는 곳이라 통화가 되고 뭐라고 한참을 듣기만 하던 친구가 앞으로 계속 가잔다. 앞에 무인 대피소가 나올 거란다.


하긴 길 같지 않은 길이지만 사람이 계속적으로 다닌 곳이니 분명 그 것은 산장을 비껴가진 않을 것이고 설령 최악의 경우 계속가면 진고개가 나오고 거기는 큰 길이니 거기까지 못 갈까 싶었다. 최소한 나 혼자라도 갈 거 같아 계속 앞으로 향했다.

그렇게 또 얼마를 가니 앞에 지붕 같은 보여 소리를 지르고 가보니 커다란 바위에 눈이 덮인 거였다.


사막도 아닌데 신기루라도 보였단 말인가?

기가 막힌 노릇이지만 그저 발을 앞으로 떼어 놓을 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널따란 안내판 같은 것이 어둠 속에 몇 개 보이고 거무칙칙한 속에 확실한 지붕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건 분명 신기루가 아니었다.

우리는 합창으로 “살았다!”를 외쳤다.


문은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가니 워낙 바깥이 추워서인지 안이 따뜻함을 느낄 정도였다.

안에는 빈 공간이 하나 있고 옆으로 또 다른 공간이 있고 그 곳에는 이부자리도 있었다.

세상에 천국이 따로 있을까?

모든 것은 대비다. 어둠이 있어서 밝음은 더욱 빛나고 아픔이 있어서 기쁨도 더욱 빛나는 것이고 고난이 있어서 행복이 더 빛나고 삭풍이 있어서 바람막이 공간이 불이 없어도 오히려 따뜻해 보이는 것이리라.


처음부터  밝음만 있다면 밝음을 모를 것이고 처음부터 기쁜 삶만 있었다면 작은 고난에도 불평을 갖게 될 것이고 삭풍이 없다면 무풍의 따뜻함을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것 나는 옷을 벗었다가 금방 다시 입었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작은 물통 한 개 반의 물을 넣고 불을 지펴 라면과 햇반의 꿀꿀이죽을 만들었다. 꿀꿀이죽도 역시 어려움이 있었기에 맛이 기막혔다.

다들 나보다는 술이 ‘쎄지만’ 술 깰 때 추위가 감당이 안 될 거라면서 한사코 술을 기피하고 심지어는 나한테도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친구한테 뺐다시피 해서 양주를 두어 모금 반주 삼아 마셨다.

아무리 술을 좋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럴 때 안 마시고 언제 마신단 말인가?

그건 맨 처음 술을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밥을 먹고 작은 침실 방에 들어가 쥐똥을 치우고 잠자리를 폈다.

다른 두 명은 눈을 녹여서 커피를 마시느니 어쩌니 하면서 부산을 떨었지만 역시 술이 약한 나는 얼굴이 따뜻한 채로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잠자리에 폭 박혀 버렸다.

한참을 자다 오히려 답답해서 양말과 조끼를 벗어 내 던지고 계속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깜박 잊어버리고 귀마개를 차에서 안 가지고 온 아쉬움은 있었지만 맨 안쪽에 자리를 잡은 나는 별 아쉬움이 없이 피곤한 몸을 잠 속에 밀어 넣어 아침을 맞을 수가 있었다.


나만 빼고 다들 추위에 떨었던 모양이다.

다들 지방층은 나보다 두꺼울 텐데도 창문 쪽에서 불어 새 나오는 위풍을 감당하기엔 부족했던 모양이다.

친구가 건네는 어제 밤에 커피 물로 쓰고 남은 냉수를 한 모금 들이켜니 그런 물치고는 시원하다.

마지막 남은 식량인 인스턴트 미역국 한 개를 눈 녹인 물을 잔뜩 넣고 끓여 셋이서 정확히 삼등분을 해서 들이키니 살아 있는 맛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이제 산을 내려 가야한다. 진고개 방향은 4킬로미터고 청학동 방향은 그 두 배의 길이가 넘었다. 빠른 길로 가고 싶었지만 그 길은 어제의 그 능선 바람을 다 맞고 가야한다는 친구의 말에 기가 죽어 그냥 골짜기 길을 택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기온이 더 내려가 아침 공기는 밤공기와 또 달랐다.

장갑을 세 개나 끼어 신은 손가락은 물론이고 올 가을 큰 맘 먹고 산 비싼 등산화로 무장된 발까지 시려웠다.


그 때 친구 말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 괜찮다는 것이다.

“아!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50년을 넘게 살았단 말인가?”

열심히 꼼지락거려 보지만 머리가 나쁘다 보니 자꾸 그것도 잊어버리게 되고 급한 마음에 별 효험이 없어 보였다. 어릴 적에 뼈가 보일 정도로 동상에 고생하던 악몽이 되살아  나는 기분이다.


열심히 주머니에도 넣어 보고 비벼도 보면서 시린 손가락을 신경 쓰느라 몇 번인가 발을 헛디뎌 덜거덕 거리는 바람에 마음이 물먹은 문풍지 종이보다도 약한 정시인만 화들짝 놀라게 만들곤 했다.

그렇게 산을 내려오는데 아무리 하산 길이라지만 9키로가 그리 낙낙한 거리는 아니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없는데 얼마 쯤 가다 보니 계곡이 나오고 역시 대부분의 산처럼 그 계곡을 쭉 따라 내려가게 길은 나 있었고 한 겨울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계곡의 풍경은 단풍진 가을과는 또 다른 색다름이 있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을 백색으로 감싸고 있는 부드러움과 나무 등걸의 칙칙한 선이 만들어 내는 어울림이의 아름다움은 고생 뒤에 우연찮게 얻어진 기쁨이다보니 더욱 빛났다.


그렇게 계곡을 내려와 버스시간도 기다릴 겸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에 앉아 지난 시간들을 꿈인 양 반추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동동주와 산채비빔밥을 먹어 치웠다.

세상의 술과 밥이 그 보다 더 맛이 있을 수가 있을까?

짧은 입맛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도록, 배가 불러서 혁대를 늘릴 만큼이 되도록 마시고 먹었다.


햇볕이 따뜻한 창가에 몸을 앉히자마자 한 시간이 지나버려 내리란다.

강릉시내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된 세상을 오로지 곧기로만 사는 분을 만나 맛 나는 이야기와 차를 한잔 대접받고 그 분의 차를 타고 대관령에 올라 차를 갈아타고 우리는 분당으로 향했다. 아니 둘은 이천 터미널에서 분당으로 향한 것이고 나는 이천서 내쳐 다시 지리산을 향했다.

이번의 산행은 죽을 때까지 잊으려 발버둥을 쳐도 발바닥 뒤꿈치의 각질만큼이나 나를 따라 다닐 것이다.

 

 선자령 입구.

 

 

 

 

 

 

 

 

 거의 산악인 폼의 친구.

 

 

 

 

 

 

 

 

 

 

 

 우릴 살려 준 산장앞에선 친구.

 소금강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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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1.02 19:02

    첫댓글 청년시절 곽악산에 교회 성가대원들과 함께 산행 갔다가 리더가 길을 조금 변화 준다고 예정에 없던 길로 접어 들었다가 산봉우리를 세개 더 넘었던 생각이 나네요~! 그 뒤로 한동안 산에 가길 꺼려했었죠~! 산을 내려와 해 먹은 삼층밥도 잊혀지지 않고~! 고생하신게 눈에 선해요~!

  • 07.04.05 10:34

    언제보아도 설경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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