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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해웅천초등학교총동창회 원문보기 글쓴이: 44/이정근(아홉내)
삼포(제포,부산,울산)왜관: 왜관 설치 목적은 각지에 흩어져있는 일본인, 일본 사절, 상인을 통제하기 위함.
조선은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국가기밀이 누설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음.
왜관은 일본선박이 도착하는 포구이자 일본사절을 접대하는 곳이며, 무역이이루어 지던 곳.
그래서 왜관에 관사와 창고를 세우고 취사시설 등등.
점차 체재기간을 연장하면서 삼포(제포,부산,울산)에 집을 짓고 거주하는 일본인이 늘어났다.
지금 (괴정 매립지)유체꽃 축제현장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소나무 군락지 골짜기 근처 일대가
왜관 터(일명 관터) 거주했던 곳.....이들을 恒居倭人이라함.
도표를 비교하면 부산포와 제포의 규모를 상상하리라 사료됨.
이런점으로 미루어 웅천현과 제포(괴정)가 동아시아의 거점 한일교린 국제적 위상에 상응하는
옛 명성의 성전 웅천현 동헌 문화제 멸실및 방치된 전근대사의 유물 훼손 방치 방관 일탈!!
전근대한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후예로서 긍지와 자부심.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수치심!!!
반성하고 뒤돌아보면서 재조명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래 배권일 지기님이 정리한 도표 참조 게다가 항거왜인에게는 有田有租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지만 특권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갔음.
삼포왜관은 조선속의 이국적인 국제적 도시로 면모를 보이면서 1510년(중종5) 삼포왜란이
일어나기전 까지 지속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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