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손(曾祖孫)
음력 정월 초이튿날 밤입니다.
오늘 하루는 늘어지게 쉬며 보냈습니다.
어제 아침에는 조상님들 차례를 지냈고
저녁에는 딸 사위, 시댁 형제들과 조카들이 와서
아래 위층 온 집안이 북적북적 하였습니다.
별 먹을 것도 없는 간단한 상차림이었지만
명절을 앞두고 며칠동안 종종걸음을 쳤고
부엌에서 계속 서있느라 발뒤꿈치가 많이 아팠습니다.
음력설을 쉬어야 비로소 한 살을 먹는다 생각하시는
시어머님께서는 어제로 95세가 되셨습니다.
이제 27개월 된 손자 녀석 재환이가 우리 식으로 벌써 4살입니다.
재작년 대퇴골 골절로 대 수술을 하시고
넙적 다리에 핀을 박고 계시며 무릎 관절염이 있으신
어머님께서는 바깥출입이 어려우십니다.
외출을 못하시는 대신 어머님은 거실에 나와 앉으시어
하루 종일 증손자를 바라보는 재미로 사시지요.
재환이의 밥 먹는 것, 뛰어노는 것, 재롱떠는 것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보고 계십니다.
증손자인 재환이도 배경처럼 늘 저와 함께 있어주는
증조할머니를 무척 좋아하고 따릅니다.
보행이 불안전하고 위태위태하시어
어머님께서는 실내에서도 노인용 보행기를 밀고 다니십니다.
재환이에게는 장난감 쇼핑카트가 있는데
증조할머니가 보행기를 밀며 집안을 거니시면
얼른 쇼핑카트를 가지고 증조할머니 뒤를 따릅니다.
증손자가 따라다니며 즐거워하는 바람에
움직이기 귀찮고 다리가 아파도 운동을 하시게 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EE253A5A9BD85032)
(증조모님이 보행기를 밀고 주방으로 가고 계신다. 요한이 그 뒤를 바짝 따르고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41363A5A9BD8513C)
(증조할머니가 설거지 하시는 것을 발꿈치를 들면서 보고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79933A5A9BD8512C)
(증조할머께서 보행 보조차를 이용해 걸어 가시면 요한은 쇼핑카트를 밀고 따라 다닌다.
증조모님 얼굴이 잘린 것이 아쉽지만 서로 마주 보며 웃는 모습이 좋다.)
손주와 함께 사는 노인에게는 뇌세포가 죽지 않거나
그 속도가 더뎌진다는 내용의 기사를 며칠 전 보았습니다.
우리 어머님을 뵈면 100세를 앞두신 분 같지 않게 젊고 기운차십니다.
가끔 어떻게 잘 해드렸기에 그리도 정정하시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증손자가 보약입니다.”라고 말을 해 줍니다.
4대가 함께 사는 집안의 안 주인으로서
매일 매일의 가사 노동에다 잦은 집안 행사에
때로는 체력에 한계를 느끼기도 하지만
4대가 함께 어울려 오순도순 사는 즐거움과
형제친척들이 찾아와 웃고 이야기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것이 사람 사는 재미요 기쁨이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이래서 결혼한 아들네 식구를 끼고 살며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명절이 돌아오면
또 다시 음식을 장만하고 형제들을 불러
왁자지껄 집안이 떠나가도록 하게 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