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당시 사법부도 ‘통합진보당 죽이기’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이 확인됐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원한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청와대가 각별한 관심을 보였던 ‘통합진보당 재건 억제’ 방안을 검토한 것이다.
행정처는 2015년 통합진보당 인사들의 재결집을 주시하며 ‘통합진보당 지방의원들의 의원직 박탈을 통해 재건 움직임을 억제할 수 있다’는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행정처는 지방의원들의 의원직 박탈을 위해 해당 자치단체장에게 행정소송을 제소하게 하면 의원직을 박탈할 수 있다고 보고 구체적인 대상 지역까지 검토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법원이 행정기관을 움직여 소송을 제기하도록 유도하고 주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의원직 박탈 판결을 하겠다고 계획을 세운 것인데,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삼권분립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중대 범죄다.
이외에도 행정처는 통합진보당 사건 관련 판결을 미리 파악해 대책을 세우거나 상고심을 전원합의체로 할 것인지 소부에서 담당하게 할 것인지도 사전에 검토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25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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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결과에 따르면 2015년 2월, 당시 법원행정처 임종헌 기조실장과 이진만 상임위원 등은 실무자에게 ‘통합진보당 지역구 지방의원 대책 검토’, ‘통합진보당 지역구 지방의회의원 상대 제소’ 등의 검토 문건을 작성토록 했다.
당시는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한 이후 선관위가 진보당 소속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지방의원에 대해서 퇴직을 통보하고 이에 반발한 의원들의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다만 진보당 소속 지역구 지방의원들은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문건에 따르면 행정처는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진보당 지방의원들의 의원직을 상실시키는 행정소송을 법원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제소하도록 종용하고 종용할 후보 지역까지 검토했다. 문건에는 ‘지방자치단체와 지역구 지방의원 사이에 세비 지급, 사무실 제공 등 많은 권리 관계가 있으므로 단체장이 지역구 지방의원을 상대로 의원 직위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하게끔 하여 의원직이 상실되었음을 소송으로 확인하는 방안’이 담겼다.
행정처는 ‘보수적 색채가 강하고 여당이 단체장인 지역을 우선 검토’해 경기, 충북 광주전남은 배제하고 울산과 경남, 부산의 진보당 의원 16명을 1차 대상으로 선정했다. 그러면서 ‘울산의 경우 의원 수가 많은 점에서도 알 수 있듯 노동조합 등 진보진영의 영향력이 상당하므로 부적절할 수 있다’고 보고 ‘경남 지역 중 한 곳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문건 작성자는 이같은 계획이 매우 불법적이며 치명적이라는 사실도 함께 적시했다. 문건엔 “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제소를 하게 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을 수 있고, 법원이 개입한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감당하기 힘든 파장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함께 담겼다.
행정처는 문건과 함께 지방자치단체가 활용할 수 있는 ‘설명자료’도 따로 만들었다. 지자체가 제소시 구체적인 청구 취지 및 이유 등이 설명자료에 담겼다. 설명자료는 “지방의회의원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의원직 상실결정을 하지 않았지만 의원직 상실은 소속정당 해산의 본질적 효과로서 헌법재판소의 상실결정이 없더라도 정당해산의 당연한 결과”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지역구 지방의원이 의원직을 유지하면서지방자치단체로부터 수당 등을 지급받고, 지방의회 사무실 등 각종 편의를 제공 받고 있어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적극적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의정 활동을 중단시키고 각종 지원을 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는 소송 논리를 폈다.
설명자료는 여기에 덧붙여 소송의 종류(공법상 당사자 소송)와 원고(해당 지방자치단체_예 경상남도 000시) 피고(해당 지역구 지방의원)는 물론 청구취지(경상남도 000시의회 의원의 지위에 있지 아니함을 확인한다)까지 구체적으로 안내했다.
법원행정처는 2015년 6월, 이전 문건들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놨다. 2015년 상반기, 통합진보당 소속이었던 인사들이 각종 단체를 설립하자 ‘진보당 재창당’을 억제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문건은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주축이 된 정치조직이 잇따라 결성되고, 해산에 반대한 진보진영 원로들이 ‘민주주의 국민행동’을 발족했다”며 “해당 자치단체는 적극적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지역구 지방의원의 의정활동을 중단시키고 각종 지원을 하지 않음으로써 재창당 움직임 사전 억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사단은 “소송이 실제로 제기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고 문건들이 청와대에 전달되었다는 사실 역시 확인되지 않았으나 외부로 알려질 경우 감당하기 힘든 파장이 있을 수 있는 행위로 삼권분립의 원칙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사법행정권의 남용이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사단은 행정처가 이같은 문건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상고법원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중요 상황에서 청와대가 관심을 가지는 통진당의 재창당 움직임을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을 청와대 측에 제시함으로써 청와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준비를 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지방의원이 제기한 행정소송에 법원행정처가 관여한 정황도 드러났다. 행정처는 2015년 9월 ‘통진당 비레대표지방의원 행정소송 에상 및 파장 분석’ 문건을 작성했다.
당시 통합진보당 소속이었던 이모 전북도의회 의원은 전북도와 전북도의회 의장을 상대로 ‘비례대표 지방의회 의원 퇴직처분 취소 등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중이었다.
문건에 따르면 행정처 사법지원총괄심의관 심모 부장판사는 자신과 연수원 동기인 전주지법 담당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전에 판결 결과 예상 의중을 확인했다. 조사단에 따르면 심모 부장판사는 “국회에서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으니 선고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는데 요청을 받은 방모 부장판사는 심 판사의 요청에 응하기로 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판결 취지를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사건 재판부였던 방 부장판사는 심 판사아게 의원직 처분 취소 소송을 인용하겠다는 취지로 이야기 했고 의중을 파악한 심 판사는 이를 보고서 형태로 작성해 상부에 보고하며 “대응방안의 하나로 지방 언론의 오보를 방지하기 위해 공보관을 통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조사단은 “담당재판장에게 판결에 어떠한 취지의 판단이 들어가야 한다는 요청을 하거나 정무적 판단에 기초하여 판결 선고기일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재판장에게 연락하고 그 과정에서 재판의 결론에 대한 심증을 파악한 것은 사법행정에 의한 재판 개입사례로서 심각한 사법행정권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는 통합진보당 소속이었던 국회의원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의 상고심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행정처는 2016년 6월 8일 ‘통진당 사건 전합 회부에 관한 의견(대외비)’라는 제목의 문건을 통해 “기념비적인 법리를 선언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전합 판결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의견”이라며 “헌법재판소 계속 중인 전합 판결 관련 사건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문건은 “위헌정당해산결정에 따른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여부에 관한 판단 권한은 사법부에 귀속된다는 점을 선언하는 데는 소부 판결로도 충분할 것임”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4명의 대법관이 모두 참석해 심리하고 소부는 일반적으로 4명의 대법관이 심리를 맡게 된다.
조사단은 “사법행정담당자가 전원합의체 회부 적절성을 검토하게 한 것은 부적절하다”며 “행정처의 행정작용과 대법원의 재판작용은 엄격하게 분리되어야만 재판작용이 독립적으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고 행정처의 위와 같은 관여는 전원합의체 회부 권한을 가지는 담당 소부 소속 대법관의 재판에 관한 권한을 침해하거나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