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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의 뜻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일주일 중에 제 칠일은 하나님의 큰 날인 안식일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큰 날에 쉬지 않고 일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죽임을 당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출 31:14-15). 그 이유는 하나님이 육일동안 천지를 만드시고 그 가운데 우주 만물의 생명을 온전게 창조하시는 일을 완성하시고 쉬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전통적인 유대인들은 지금도 토요일에는 상점의 문을 닫고 집에서 쉬면서 공식적인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토요일날(안식일) 쉬면서 예배를 드리는 교파는 일요일 날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를 보고 잘못된 신앙이라고 색안경을 쓰고 바라봅니다. 또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교회는 토요일날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판단합니다.
우리는 서로 정죄하기 이전에 먼저 시간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우리나라의 시간에는 6시간이나 차이가 납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가 4월 8일 오전 10시 이면, 이스라엘은 4월 8일 오전(새벽) 4시입니다.
또 유대인들의 안식일의 시작은 초저녁부터 시작하여 다음날 해질때까지입니다. 율법대로 한다면 토요일에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키는 교회나 일요일에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가 서로 올바르게 시간상의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본래 일요일의 근원은 바벨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일요일인 썬데이(태양의 날)의 유래를 살펴보면 바벨론은 해와 달과 5개의 별의 이름을 따서 요일을 만들었는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의 요일입니다.
기독교 초기에 유대교와 기독교는 토요일날 예배를 드리고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부흥하면서 유대교와 많은 갈등이 생겨났습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자 같이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또 유대교에서 안식일이 시작되었지 기독교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로 적자 논쟁의 불씨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에서도 이런 분쟁의 불씨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교도였던 로마 황제(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함에 따라 종교적 분쟁의 불씨를 종식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는 A.D. 321년에 일요일을 쉬게 하는 일요일 휴업령을 내렸습니다. 유대교는 토요일에 안식일을 지키고, 기독교는 일요일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공식적인 선포였습니다.
어느 교파의 말처럼 태양신을 섬기라고 일요일을 안식일로 선포한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생명 사랑을 원해서 그렇게 선포한 것입니다. 따라서 일요일에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여 태양신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일요일이 안식일 또는 주일날로 선포되어 오고 있습니다. 주일날은 ‘주님의 날’이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의 규례는 영원한 규례인가?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에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출 31:16)
성경을 볼 때 단면만 보고 해석하면 많은 오해를 야기 시킬 수 있습니다. 십계명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부모를 버리면 금세에 여러 배를 받는다’고 합니다(눅 18:29-30). 때문에 문자적 해석을 하는 극단적 신앙인들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외면하는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성경을 오해한데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부모를 논하기 전에 사람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한 사람 속에 겉 사람과 속사람이 하나되어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자신을 낳아준 부모로부터 나온 몸입니다.
즉 겉 사람입니다. 부모님은 육신의 몸을 만들 수 있지만 그 내면의 속사람은 낳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부모를 공경하라, 버리라’는 차원은 육신의 부모가 아닌 자신을 속사람을 낳고 기르는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이렇듯 구약의 말씀에서 영원한 규례라 하였으므로 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 들일 수는 없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오셔서 구약의 많은 규례들을 폐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도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5-17)
위에서 “폄론하지 말라”는 것은 ‘논쟁이나 구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을 준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토요일이 진짜다. 일요일이 진짜다’ 하는 논쟁은 종식되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날짜로 정한 안식일은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실체가 오면 사라집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면 그림자는 사라집니다. 마음이 교만한 자들은 이렇게 설교하면 ‘일요일이나 토요일에 교회에 갈 필요가 있겠는가? 집에서 예배드리면 되지’ 하면서 자유적인 신앙으로 변질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종교적인 안식일을 주신 것은 그 날에 모여서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하라고, 연약한 자를 이끌어 주며 서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6일동안 일하면서 말씀을 먹고 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안식일에 모여서 말씀을 통하여 영혼이 그리스도와 하나 되라고 사랑으로 안식일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안식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마치는 쉬는 날입니다.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10-11)
하나님이 정하신 안식일은 인생들이 생각하는 것과 아주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안식일의 시작은 이스라엘 백성이 태어나기 전부터 인류가 태동할 때부터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창조 사역의 관점에서 시작되는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고 쉬셨던 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일이란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의 일의 관점에서 보고 해석해야 합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1-3)
제 칠일은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일을 마무리하시고 쉬신 날입니다. 하나님의 큰 날입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신 후 이것을 마무리 하시고 쉬셨습니다.
이 날이 안식일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고 기억한다는 것은 창조의 완성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행위를 지키는 날짜 속에서 창조의 완성이 나오지 않는 안식일은 하나님과 하등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날짜 속에 우리의 내면의 창조의 사역이 이루어나가는 역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6일동안 창조의 일을 하셨는데 여기서 우주적인 창조의 세계 속에 영성의 눈으로 감춰진 하나님의 세계를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창 1:1-2)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물질계의 세계를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빼고 난 우주의 어떤 피조물에게도 혼돈과 공허하다는 표현을 쓸 수 없고 오직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만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는 것은 어두움으로 인한 혼돈과 공허를 말하며, 사람의 마음에 질서가 없는 혼란한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질서가 없고 어두움의 주인된 세상 속에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3), 어두움을 몰아내는 빛이 있게 합니다. 이때 비로소 갈 길을 몰라 방황하는 사람의 내면속에 생명의 빛이 태동되면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사람의 속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첫째 날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첫째 날이 지나고 나니 궁창이 생기면서 윗물과 아래물이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윗물과 아래물이 갈라지기 전까지 많은 고통과 내적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셋째 날이 도래하니 아래물이 걷히고 비로소 땅이 드러납니다.
생명의 땅이 드러납니다. 그동안 우리 마음에 세상의 지식으로 가득찬 것을 믿고 의지하며 살던 우상들이 다 물러가고 비로소 마음에 생명의 땅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각종 나무가 보이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어두움의 주인들이 물러가고 새 주인이 그 안에서 생명을 키우며 속 사람을 창조하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라기까지 키우는 것을 보기 시작합니다. 매미가 되기 위해서 칠년을 기다리고, 또 나와서 허물을 벗듯이 말씀으로 속사람을 키웁니다. 이것이 완성의 실체요, 안식의 실체인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6일동안 사람의 속을 계속 창조해 나가십니다. 인생의 욕심의 사슬을 끊고 그 분의 신성과 신격에 다다르는 안식에 들어가도록 창조해 나가십니다. 속 사람이 완성이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은 안식을 하셨습니다. 일을 쉬셨습니다. 이것이 안식일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일을 마치시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 5:16-18)
예수님은 아버지의 일과 자신의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새롭게 창조하셨듯이 아들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아버지 안에서 새 창조를 해 나가시는 일을 합니다.
안식일날, 다시 말해 종교적인 하나님의 큰 날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고쳐 하나님의 신성과 신격을 가진 속사람을 창조하시고 자라게 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신 것은 종교적인 날에 영과 생명의 복음으로 속사람을 창조해 가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주님은 당신의 멍에를 메고 배울 때 비로소 안식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멍에는 그분과 함께하는 증표입니다. 유대 종교는 안식일을 기억하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킵니다.
그러나 행위적으로 날짜를 지키면서 종교적인 의식으로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생명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생명의 사랑이 없었습니다. 생명의 거룩이 없었습니다.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 권이 없느냐” 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영광 생명으로 속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이는 율법의 종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참 아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종은 참 쉼이 없습니다. 아들은 일을 해도 언제든지 쉼을 얻습니다.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는 인생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아버지의 생명의 창조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고 주일을 지킨다는 그 하나만으로 평안을 얻고 살아 갑니까? 또 남을 정죄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종교적인 행위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지 않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킨다하여 그 사람이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 안에 영과 생명의 빛으로 하나님의 사람 속 사람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 때문에 종교적인 안식일이 필요한 것입니다. 종교적인 안식일에 말씀으로 속사람을 창조해 가야 합니다.
사람이 안식일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이 사람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괴롭고 힘들면 이것은 신앙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주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주인으로 우리 각자를 창조해 나가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완전히 창조했을 때 비로소 우리 안에서 그 분이 쉬며 우리도 참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자기의 일을 마치는 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 6:1)
예수님도 아버지와 함께 일하신다고 하였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어진 하나님의 자녀들도(고후 5:17)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히브리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9) 하나님이 정하신 안식 안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안식 안에 들어가면 자기의 일을 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히 4:1-3)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은 이미 안식 안에 들어간 자입니다. 복음을 듣고 그 복음과 하나되어 임마누엘이 된 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새 창조의 일을 하는 자입니다. 즉 믿음이 화합지 못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자를 새로운 속 사람으로 만들어 주님과 한 몸 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안식일에 대해서 조명해 본 바 우리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더 넓은 곳을 보았습니다. 종교적인 안식일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에 동참하여 자신 안에 새 사람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자신 뿐 아니라 자녀들과 집안에 있는 모두입니다. 더나아가 교회가 이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안식에 들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사는 것입니다. ‘날짜가 중요하다, 중하지 않다’ 하는 것으로 논하는 것은 서로 힘을 소모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여서 자신 안을 하나님의 영으로 새롭게, 영의 사람으로 빚어져 가야 합니다. 속사람의 모습을 사랑과 거룩과 생명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온전한 속 사람으로 만들어져 참 안식에 들어간 자는 다시 또 하나의 안식에 들어가고자 창조의 일을 다시 시작합니다.-여수큰사랑교회 전승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