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 기행/강혁보
#1. 가련봉을 오르며
흐르는 물은 바위나 절벽을 만나야 아름다운 폭포가 되고, 석양은 구름을 만나야 붉은 노을을 그리듯 환희와 즐거움도 역경과 고난을 이긴 뒤라야 비로소 느끼게 되는 게 아닐까.
기면서 쓰러지고 매달리면서 헉헉대며 기를 쓰고 오른 703고지 가련봉. 이제야 숨 가쁘게 달려온 의미를 가늠하게 된다. 동서남북, 하늘과 땅이 서로 맞닿아 꽉 찬 것 같으면서 탁 트였다. 빈 가슴 위로 슬픔 같은 진한 감동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코발트빛 하늘, 옥빛 바다, 점점이 박힌 섬 섬 섬, 소매 밑을 파고드는 한가한 바람, 귓가에 출렁이는 자연의 교향악. 땅끝에서만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산에 가면 누구도 산이 되고 싶다고 했던가.
옥화 한잔 기울이니 겨드랑에 바람 일어 / 몸 가벼워 하마 벌써 맑은 곳에 올랐네. / 밝은 달은 촛불 되어 또 나의 벗이 되고 / 흰 구름은 자리 펴고 병풍을 치는구나. - 초의선사의 “동다송” 중에서
두륜봉, 가련봉 오르는 길에 대흥사, 표충사, 일지암, 천년수.
앞선 바람이 밤사이 내린 이슬을 흩뿌리는 건지 몸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다. 오르막길에서 숨 가빠 헐떡거리다 쓰러질까할 즈음 불쑥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힌다. 널따란 운동장이 나서는가 싶더니 두륜봉과 가련봉을 호위무사로 양쪽에 도열시키고 사열을 준비한다. 후, 여기가 만일재. 친구를 만난 듯 흰머리 펄럭이며 환영하는 억새들의 군무 위로 살짝 바람 길이 보인다. 출렁이는 은빛 억새밭, 그 너머로 조용히 잠든 남해바다. 시간이 멈춘 듯 바람이 쉬는 듯 천년을 두고 그 자리에 서 있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진도 완도 그리고 그의 수하들, 섬들은 점점이 떠있고 화창한 날이면 저 멀리로 제주도의 그 고운 자태까지 어른거릴 것 같다. 해발 650고지쯤 두륜봉 아래로 갈바람이 소슬했다. 일지암에서 건저올린 석간수 한 모금이 오르막길의 갈증을 한방에 날려버린다. 배 군이 마련한 쑥떡이 허기를 채우고, 최 여사가 준비한 냉장한 오이 한토막이 여름날 팥빙수마냥 달콤하고 시원하다. 보온병에서 커피 한잔을 따른다. 시커멓고 근본도 모르는 낯선 숭늉을 보면서 그 옛날 초의는 뭐라고 할까. 웃을까 아니면 손사래를 칠까. 추사 김정희가 오면 이리로 안내했을까. 소치 하련은 예서 삼절의 밑그림을 그렸을까. 절인들의 교유가 눈앞에 그려진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강진으로 다산을 찾아갔을까. 예전의 선비들은 스승 따라 벗 따라 한양에서 땅끝 마을, 바다 건너 제주로, 해남에서 강진으로, 강진에서 안동으로, 안동에서 한양 건너 수종사로 천릿길을 멀다 안했다지.
그 길에 벗 둘, 縠酒 한 병과 茶 한 잔이라. 나 오늘 艸衣(초의선사)를 생각하며 만일재에서 커피를 마시고, 추사를 생각하며 두고 온 벗들을 그리워한다. 누가 그랬더라. 여행자의 유일한 열망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과 또 다른 어디론가 계속 떠나는 것일 뿐이라고. 오늘 따라 나 나그네 되어 여행자가 되고픈 것은 두륜산 길에 일렁이는 갈바람 덕이리라.
존재는 말없이 말을 건네고, 바람은 소리 없이 사연을 들려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화로웠고,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 공간은 내 가슴을 가득 채워주고 있었다.
서두르지 말자. 삶은 그냥 한 번이지 않은가. 길을 즐기고 길을 음미해 보자. 걷다 보면 서늘한 아침도, 따가운 한낮도 만나게 될 것이다. 아프면 잠시 쉬고 힘이 솟으면 다시 일어서 걷자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내일 산을 오르게 되면 또 다시 쫓기듯, 뒤처지는가 두려워, 내려오면서 보면 되겠지하며 허겁자겁 앞만 보고 내달릴 것이다. 미친 놈!
#2. 대흥사
두륜산 가는 길에 대흥사.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정신이 아직도 고고히 살아 숨 쉬는 도량, 그리고 차 문화의 성지.
새벽녘에 내린 이슬이 길가의 풀섶과 나뭇잎 위로 가을을 흩뿌리고 있었다.
이슬이 깔린 산사의 아침은 맑고 상쾌했다.
부지런한 동자승이 쓸고 간 절 마당의 고요, 그 마당을 스쳐 지나가는 이른 바람이 내는 풍경소리, 그리고 귀여운 다람쥐의 발 빠른 재주가 절간의 아침을 꽉 채우고 있다.
절에 오면 사람들은 짊어진 것을 내려놓고 간다.
어떤 이는 고민을, 어떤 사람은 상처받은 마음을, 또 누구는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는다.
그 빈자리에 위안을 담고, 상처를 보듬고, 새로운 꿈을 그려 넣는다. 그래서 산사에선 시간이 멈춘 듯 쫒기는 것도 없고, 불안하지도 않으며 허둥대지도 않는다. 그냥 하루를 1년 같이 살 아 간다.
대웅보전 앞 늙은 연리근에 매달린 낙엽 위로 시간이 붉게 내려앉고 있었다.
단풍의 한숨이 바람을 불러 모으는가 세파에 찌든 마음은 어느새 씻겨 내려가고 조용한 내 안의 나와 마주하게 된다. 삶이 고달픈 사람들이 찾아와 고단한 현실을 넘어 더 좋은 세상을 기원하며 미륵의 세상에 이르는 꿈을 꾸는 곳. 그 중심에 대둔사가 있었다.
'추녀 끝 풍경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울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서로 스치는 것들이 소리를 만드는 거라면
좋은 일이 생겨서 웃는다기보다
웃으니까 좋은 일이 생기는 게 아닐까.
예뻐서 사랑한다기보다
사랑하니까 예뻐 보이는 건 아닌지.
세상사가 내 눈 안에 있었다.
대웅보전 지붕 너머로 곱게 누워있는 두륜산을 본다. 화려하고 사치스럽지 않지만 아름답고 우아했다. 그녀는 비싼 옷을 입지도 않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않으면서도 기품은 넘쳐났다. 그 흔한 스파에서 몸을 씻지 않고서도 피부는 우윳빛으로 매끄러웠고, 탄력은 풍선처럼 튕겨 나오며, 풍기는 향기는 뭇 사내의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그런데도 두륜은 언제나 다소곳했다. 보석은 눈이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 내 어찌 눈 뜬 장님의 손길을 인도하랴 하는 것 같다.
#3. 호남 벌을 달리면서
목포로 가는 길에 호남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가 호남평야의 가을을 가로지르고 있다.
차갑게 부서지는 서리와
매섭게 몰아치는 갈바람에 갇힌
가을 곡창지대에서
나는 본다.
유형지의 안전을
여물자마자 이어지는 쇠락을
성장 직후의 안식을
호남 벌에 들어서면서 느끼는 또 다른 감흥이다.
#4. 목포
두륜산행의 전야제로 목포는 항구였다.
바다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다. 항구는 모든 것을 안아주고 모두를 받아준다.
항구는 머물러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이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처럼 나의 마음도 묶어두고 잠시 길 멈추어 휴식을 취해본다. 여행을 즉흥시라 했든가. 바람이 데려다준 어느 곳에서 스스로의 흥에 취해보라. 항구와 도시, 들판과 하늘, 바람은 여행자에게 뜨거운 피를 흐르게 한다. 아침에 어선들이 발동기 소리를 내면서 포구를 벗어날 때는 아주 큰 욕망과 희망을 가ᆢ지고 나간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천천히 지쳐 돌아오곤 한다. 그게 인생이고 여행이고 시 아니던가.
100여 년의 기억을 오롯이 담고 있는 옛 골목길을 걸으면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축음기를 타고 들리는 듯하다. 곳곳에 둥지를 튼 개화기 건물, 수많은 문화 예술인들의 향기가 묻어나는 문화 공간, 음식점 곳곳 문틈서 새나오는 냄새는 침샘을 자극한다. 거기엔 곰삭은 젓갈의 깊음, 펄떡거리는 생선의 난장, 해풍을 머금은 짭조름함이 스며들어 있다. 삼합은 그 하나요, 민어가 그 둘이요, 갈치조림백반이 그 셋이다.
나의 목포의 밤은 갈치조림에 배부르고, 삼합에 얼큰하고, 막걸리에 취했다.
그렇다. 목포는 ‘멋’과 ‘맛’이 넘친다. ‘오감만족의 도시, 목포’, 바로 그것이다. 목포는 이런 밑천을 바탕으로 지금 ‘관광’이라는 또 하나의 옷을 입으려하고 있다.
밤이면 더 밝아지는 도시. ‘恨의 도시’서 ‘빛의 도시’로 탈바꿈하는 곳에 불 밝힌 목포대교의 야경이 있고, 해가 떨어지면 고하도에 설치된 오방색 조명등(LED)이 선명히 들어오면서 항구를 비춘다. 유달산 일등바위에 설치된 경관조명은 한 폭의 동양화를 빚어낸다. 젊은 감성을 자극하는 목포연안의 “춤추는 음악분수”는 그 백미다. 나이트클럽의 화끈한 미녀들의 관능미 넘치는 춤만큼이나 섹시한 분수의 요염에 “삼성생명 산악회 목포방문 환영”이라는 레이저 쇼는 여행지의 밤을 황홀하게 만드는데 화룡정점이다. 깊은 밤 목포 시내를 달려보면 아직도 어둠에 잠든 한적의 도시 같지만, 이제 곧 “빛의 도시”로 거듭나려 몸부림치고 있었다. 어느 날 다시 찾아 오감을 즐겨보리라!
공기 소슬한 가을날 저녁 어둠이 내린 밤섬 위로 목포의 빛이 어른거리고, 두륜산의 실루엣이 찬란하다. 햇빛 부서지던 송호리해변의 그 뜨거웠던 여름을 생각한다. 떠나온 자리의 향기가 그리운 건 떠나간 자의 특권일까. 그리움의 계절에 창가에 불 밝히고 어데 론가 보낼 편지를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