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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체 지형은 이른바 동고서저로 동쪽에는 큰 산 높은 산들이 많지만 서쪽은 크고 높은 산이 별로 없다. 그러나 아미산 일대는 서해 근처임에도 높은 산들이 많아 내륙 못지 않은 산중이다.
‘아미(嵋)산’은 이름 자체가 높고 험한 산을 뜻한다. 이 산이 있는 지역의 이름도 미산(嵋山)면이다. 그러나 같은 산을 두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전혀 뜻이 다른 두 개의 이름이 나와 있다. 남포현편에는 제대로 ‘높고 험한 산’이라는 뜻의 아미산으로 되어 있지만 홍산현(부여)편에는 불교의 ‘아미타불’을 뜻하는 ‘아미(阿彌)’산으로 되어 있다. 원래 아미산은 중국의 불교 성지인 아미산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아미산에는 옛 절 중대사와 상대사가 있으며 요즘에 지은 아미사, 광덕사, 산암사도 있다. 도화담에서 가까운 산암사는 제법 규모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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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원암으로 이어진 바위 계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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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은 험한 산이다. 복주개봉(상봉-638.5m)과 장군봉(598m)을 중심으로 남북 약 6.5km쯤에 걸쳐 뻗쳐 있는 아미산 줄기는 북쪽으로 가까이에 만수산·성주산이 있고 서쪽으로 양각산·옥마산 등 높은 산들이 있다. 그러나 서쪽의 산들은 반교천과 보령호가 갈라 놓아 아미산에 이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북, 서, 동쪽 비탈은 벼랑처럼 가파르고 골짜기가 깊다.
아미산에는 기이한 바위들이 많다. 특히 아미산이 반교천에 의해서 잘라진 북면은 그야말로 천길 바위벼랑으로 되어 있다. 그 바위벼랑을 수리바위라 한다. 그 밖에도 전설이 얽힌 턱거리바위 등이 있고 이름 없는 괴상한 바위들이 많다. 특히 상봉(복주개봉)에서 도화담으로 내려가는 등성이와 수리바위로 내려가는 등성이는 바위벼랑이 많은 등성이어서 험하다. 중대사와 상대사 일대도 바위 골짜기로 경관이 좋다.
아미산이 산행하기에 좋은 점의 하나는 장군봉에서 복주개봉에 이르는 긴 주릉이 거의 숲 속으로 난 평지여서 천천히 걸으며 동행자와 정담을 나누기에 좋다는 것이다. 복주개봉은 나무가 없는 바위 봉우리여서 조망이 시원하다. 아미산이 푸른 보령호와 어울리는 것도 아미산의 값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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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미산의 명소 수리바위. 아미산은 특이한 바위가 많아 산행이 지루할 새가 없다..
- 중대암·상대암, 그리고 황팔도의 이야기
<신증동국여지승람> 남포현편에 영흥사가 아미산에 있다고 했으며 <남포읍지> <여지도서> 등에도 그리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영흥사가 현재의 중대암 자리에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산행 들머리 또는 끝머리로 많이 이용하는 절골에 중대암과 상대암 두 암자가 있다. 중대암에 있는 안내판에는 신라 헌강왕 4년(879년) 도선국사가 개창했으며 상대암(보현선원)과 하대암도 있었으나 임진란에 모두 불탔다고 씌어 있다. 사실 중대암 골짜기는 절터로는 매우 좋은 곳이다.
상대암에는 높은 바위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또한 이 암자엔 영천(靈泉)이라는 약수가 있다. 한말 미산의 한학자 송암 송익순 선생이 가뭄에 물을 찾다가 바위 벽 아래에서 물줄기를 찾고 ‘영천’이라는 비까지 세웠다. 물맛이 좋고 시원하다는 소문이 났었으나 지금은 물이 나지 않는다. 지금은 남쪽 영흥에서 이 상대암까지 임도가 올라와 승용차가 다닐 수 있다.
도화담에 전해지는 황팔도의 이야기는 흔히 있는 민담이다. 효자인 황팔도는 어머니의 중병을 고치려고 산신령께 기도를 했다. 황구 백 마리를 먹으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과 개를 잡는 호랑이로 둔갑하는 방법을 적은 책을 산신령에게서 받고 밤마다 호랑이로 둔갑하여 개 사냥에 나섰다. 남편이 무서운 호랑이로 둔갑하는 것이 싫었던 황팔도의 아내는 남편이 호랑이로 둔갑하여 개 사냥에 나선 사이 둔갑법이 적혀 있는 책을 태워 버렸다.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 황팔도는 아내를 죽이고 어머니마저 죽자 세상을 원망하여 사람들을 해치기 시작했다.
호랑이 황팔도를 잡으려 온 나라의 사냥꾼들이 나섰으나 신출귀몰하는 호랑이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호랑이가 턱거리바위에서 자주 턱걸이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포수들이 바위에 숨어 기다리다 턱걸이를 하는 호랑이를 쏘아 죽였다는 이야기다.
턱거리바위가 어디 있는지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없으나 도화담 사람들은 도화담에서 복주개봉으로 오르는 등성이에 큰 절벽과 바위가 있는 조망바위 근처가 턱거리바위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풍수지리상으로 <옥룡자결(玉龍子訣)>이나 <만산도(萬山圖)>에 의하면 아미산 남쪽 끝 평라리 근처에 금반하엽형(金盤荷葉形:금 쟁반의 연 잎형)의 명당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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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하산 지점인 도화담(보령시 미산면)에서 본 아미산의 모습.(우)상대암의 높은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얼굴부분이 유난히 희다.
- 절골로 올라 도화담에서 끝낸 산행
대전의 한별산악회(회장 이재선) 회원들이 아미산 산행에 동참을 했다. 미산면사무소가 있는 도화담에서 보령호를 오른 편으로 보며 617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중대암 표지판을 보고 절골로 들어섰다. 절골에 들어서면 바로 쇠줄을 가로질러 차의 출입을 막고 있는 곳에 이른다. 차의 출입은 막지만 사람들의 출입은 막지 않는 것 같았다.찻길을 따라 골짜기를 올라가면 중암사 아래에 오석으로 된 두 개의 비가 있다. 그 오른편 위쪽에 큰 기와집이 보였다. 단청까지 잘된 큰 법당이 석축 위에 당당했고 그 아래 요사채도 번듯했다. 아직 중창불사가 끝나지 않은 듯했다.
중대암부터는 제대로 된 산길로 바위 골짜기의 가파른 너덜길이다. 길에 납작돌이 깔려 있는 곳도 있었다. 중대암에서 상대암까지 15분 남짓에 오를 수 있었다.
상대암은 들머리에 영천이 있으나 물이 없었고 법당은 석축 위에 있으나 초라한 건물이었다. 그 뒤 바위 위에 얹혀 있는 칠성각이 오히려 멋이 있었다. 거기서 오른편으로 돌면 높은 바위 위에 마애불이 보인다. 고개를 젖혀 올려다 보아야 하기 때문에 마애불을 지나치기 쉽다. 얼굴 부분만 하얀 것이 신비스러운 현상이라 알려져 있는 마애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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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중대암. 신라 헌강왕 4년(879년) 도선국사가 개창했다.(우)아미산의 억새. 장군봉에서 복주개봉으로 이어진 능선은 평지여서 대화를 나누며 걷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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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암에서 조금만 오르면 주릉의 잘록이다. 꽤 넓은 평지에 묘 세 자리 있고 그 뒤 바위무더기 앞에 어느 스님의 큰 비와 아담한 석탑이 있다. 여기서부터 주릉을 타게 된다.
억새가 차지하고 있는 헬기장을 지나면 숲 속으로 길이 이어진다. 등성이로 이어지는 숲속의 길은 바위 무더기를 한두 차례 지나고 바윗길을 서너 번 지나는 것 말고는 별다른 것이 없다. 숲 속 길이어서 조망은 할 수 없다.
산불감시막이 있는 장군봉을 지나 1시간쯤이면 주봉인 복주개봉에 오른다. 주봉에 오르면 주릉을 걸으며 보지 못했던 조망을 보상이라도 하듯 사방이 활짝 트여 아름다운 산하가 펼쳐진다. 여기 고스락에서의 조망도 그리 먼 산은 조망되지 않는다. 성주산 등 또래 높이의 산들이 아미산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보령호와 양각산의 조망이 특히 좋다.
아미산 고스락의 표석에는 아미산의 높이가 581m로 되어 있다. 국립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635m로 되어 있고 영진5만 지도 등에는 581m로 되어 있다.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이 표석은 부여군 외산면에서 세운 것으로 하산 길을 외산 땅인 수리바위 쪽으로만 표시해 놓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교통이 좋고 암릉이 좋은 미산 쪽 도화담 길을 이용하고 있다. 우리도 도화담 쪽으로 하산했다. 뒤에 알고 보니 뒤처진 일행 중 세 사람이 안내표지를 보고 수리바위 쪽으로 하산했다.
도화담 쪽 하산 길은 매우 가파르고 바위벼랑을 지나는 곳이 많다. 특히 전설 속의 황팔도가 호랑이로 둔갑하여 턱걸이를 했다는 바위로 여겨지는 조망바위 일대는 날카롭게 깎아지른 벼랑이어서 조심스럽다. 곳곳의 경관이 좋은 곳에는 쉴 수 있는 의자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후 거의 평지에 가까운 산길이었고 산암사로 내려가는 갈림길도 보였으나 필자는 곧장 미산초등학교가 있는 마을 고샅으로 내려서서 산을 벗어났다.
고스락에서 미산초등학교까지 1시간쯤 걸렸다. 중대암 들머리에서 상대암까지 약 1시간, 상대암에서 고스락까지도 약 1시간 해서 총 산행시간은 3시간30분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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