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신의 4인조 록 그룹 '비틀즈'의 1965년 작품으로 팝 발라드의 고전. 빌보드 싱글 차트 4주 동안 No.1에 올랐던 이 곡은
20세기 팝의 명곡으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팝송으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Yesterday / Beatles(어제 / 비틀즈)
Yesterday all my trouble seemed so far away.
Now it looks as though they're here to stay.
Oh I believe in yesterday.
어제는 나의 모든 괴로움이 아주 멀리 있는 듯 하였는데
지금은 그 괴로움들이 여기에 머물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보여요.
오, 나는 행복했던 어제가 그리워요.
Suddenly I'm not half the man I used to be.
There's a shadow hanging over me.
Oh yesterday came suddenly.
Why she had to go, I don't know,
she wouldn't say. I said something wrong,
Now I long for yesterday.
갑자기 나는 지금까지의 나와 달라져 버렸고.
내 위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네.
아, 갑자기 어제가 되어버렸어요.
왜 그녀는 가지 않으면 안되었었는지 나는 몰라요,
그녀도 말하지 않을 거구요. 내가 무엇을 잘못 말했나봐요,
지금은 즐거웠던 어제가 그리워요.
Yesterday love was such an easy game to play.
Now I need a place to hide away.
Oh I believe in yesterday.
어제는 사랑 같은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놀이처럼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나는 숨어버릴 곳이라도 있으면 해요.
오 행복했던 어제가 그리워요.
숱한 클래식 명곡들과 함께 교과서에 실려있는 곡. 신의 선물이라고 불러도 좋은 듯한 'Yesterday'는 잃어버린 사랑을 생각하는 발라드 형식의 곡으로 그 서정적인 곡 분위기와 가사, 그리고 폴 매카트니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이 곡은 McCartney에 의해 작곡되었으며, 어느 날 밤 그의 여자친구 Jane Asher를 꿈에서 만나 영감을 얻어 잠에서 깨자마자 잊어버리기 전에 녹음기를 틀어놓고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였다고 매카트니는 말한
다. 여러 번 수정을 했지만 1965년 5월 Asher와 함께 리스본으로 휴가를 떠나 그곳에서 친구의 통기타를 빌려 연주하면서 완성되었다는 곡. 영국의 4인조
록그룹 비틀즈의 1965년 작품으로 같은 해 싱글 차트 4주간 정상을 기록했던 스탠더드 팝의 고전. 앨범 HELP에 수록된 이 노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고 있는 비틀즈의 최고의 작품 중 하나.1965년에 처음 불려져 20세기에만도 전 세계의 방송에 700만 번이 넘게 울려 퍼졌다는 그 명곡! 대영 박물관의 왕립도서관에 악보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는 곡. Beatles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곡. https://t1.daumcdn.net/cfile/cafe/1105C30F4991539C9D" bo
rder="0" vspace="1" hspace="1" actualwidth="331" id="A_1105C30F4991539C9D3675">광적인 팬에 의해 총격을 당해 사망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80년
도 겨울 마크 채프먼의 총을 9발 쯤 맞고 사망. 오노 요코, 일본 출신의 유명한 예술가이자, 백남준과 함께 플렉서스라는 예술집단 소속이기도 한 분이죠. 오노 요코가 등장한 이후 좀 더 정치적이고 아방가르드적으로 변해버린 존 레논의 행동이 멤버들 사이에 불화가 싹트게 된 원인 중의 하나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고사항 정도는 되겠네요. background-color: rgb(248, 246, 250); font-family: Gulim, 굴림, AppleGothic, sans-serif; color: rgb(0, 0, 0);">했던 간
에 그 둘의 곡은 공동 소유로 하기로 정해두었습니다. 이게 가능했던건 이들의 작곡방식이 공동작업이기 때문이었어요. 모든 곡 중 27곡만이 두명이 1:1 비율로 작곡했고요, 나머지 곡들은 한명이 곡을 작곡한 뒤, 다른 한명이 이걸 완성시키거나 추가 아이디어를 내는 식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Yesterday도 매카트니가 꾼 꿈에서 들었던 멜로디가 원곡이라더군요. Hey Jude는 폴 매카트니가 존 레논의 첫째 아들인 줄리앙을 위한 곡으로 작곡했구요.
조지 해리슨.
이 분이 존 레논 이후에 두 번째로 돌아가셨지요. 이 분은 사실 초반엔 비중이 크지 않았습니다. 매 앨범에 한두 곡은 작곡했지만, 이 분의 진가가 들어난건 후반기 들어서였습니다. 인도 음악과 힌두 사상에 심취했던 그는, 영감의 원천을 인도에서 찾으려 했죠. 이 분이 작곡한 노래 중 제가 좋아하는 곡은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와 "Something"인데요, 앞 곡은 정말 블루지하고 락의 본연에 충실한 곡입니다. 이 분은 참 대인배스러운 기질을 타고난 분입니다. 66년에 패티 보이드라는 분과 결혼을 했는데, 이 패티 보이드라는 분이 꽤나 마성의 여자랄까요... 60년대 말에 그 유명한 에릭 클랩튼과 사랑에 빠지죠. 이 분은 아내를 에릭 클랩튼에게 떠나보내고도 그와 막역한 친구로 지냈습니다.
링고 스타. 링고 스타(Ringo Starr)는 예명이고요, 본명은 리처드 스타키입니다. 가장 뒤늦게 비틀즈의 멤버가 된 분이죠. 이 분도 나름 솔로 활동을 해왔습니다. 위에서 조지 해리슨도 해왔는데 빼먹었네요. 근데 딱히 유명세를 타진 않았습니다. 꾸준히 했다는 점에선 폴 매카트니와 비슷합니다만... 링고 스타는 1965년 모린 콕스와 결혼해 세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1975년, 이혼을 합니다. 이후 1981
년에 영화 <007 : 나를 사랑한 스파이>로 유명한 배우 바바라 버치랑 재혼하죠. 그런데 링고 스타의 아들이 똑같이 드럼을 친다는거 알고 계신가요? 아드님의 성함이 잭 스타키인데, 현재 오아시스의 드러머 링고 스타의 아들이 제 2의 비틀즈라 불리는 그룹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죠.
영국의 4인조 록그룹 Beatles의 1965년 작품으로 같은 해 싱글
차트 4주간 정상을 기록했던 스탠더드 팝의 고전. 앨범 HELP에 수록된 이 노래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고 있는 Beatles의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다. 1960년에 조직된 영국의 리버풀 출신의 4명의 젊은이들이
세계 팝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우리들 사이에 아직도 떠돌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들이 활동한 기간이 불과 10
년 남짓한 시간동안이었고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시기는 1964년부터인
불과 6년여의 기간이라고 생각한다면 해체된지 40여년이 훌쩍지났으면서도 전세계적으로
끊임없이 앨범이 판매되고 있으며 신세대와 구세대의 구분없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단순한 글이나 말로써 설명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음악의 힘이라
하지않을 수 없다.
또한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인기의 기반은 이들의 능력이 단순한 연주와 노래를 반복하는 쇼 밴드가 아니라 직접 작사, 작곡 그리고 대중들의 코드를 읽어낼 수 있는 코드 생성기로서의 탁월한 감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까지도 가장 표현력이 풍부한 싱어로 평가받고 있는 John Lennon(존 레논)과 Paul McCarteney의 목소리는 이들의 명곡들이 그 당시 보수 성향이 짙게 베어있던 영국의 팝시장을 뛰어넘어 미국과 전세계로 퍼지는데 커다
란 공헌을 했다고 사람들은 얘기한다. 이들의 시작은 50년대 중반 기타리스트인 John Lennon이 Quarrymen(쿼리맨)이라는 밴드를 만들면서 출발한다. 1957년 중반에 Paul McCartney가 여기에 가담하고 그의 친구인 다른 기타리스트 George Harrison(조지 해리슨)이 함께하면서 틀이 잡혀가기 시작한다. 이들이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무렵인 60년대에 들어서면서 팀의 이름을 Silver Beatles로 바꾸고 얼마되지않아 Beatles로 활동하게 된다.
1961년 리버풀을 기반으로 음악활동을
하던중 여러번 드러머를 교체한 끝에 1962년 9월 그들의 첫 싱글 Love Me Do를 녹음하면서
Ringo Starr(링고 스타)를 정식으로 영입을 하면서 본격적인 4명의 라인업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이들이 만든 음악의 축은 Paul McCartney와 John Lennon으로 이루어졌으며이들이 녹음한 싱글이 영국 차트에서 20위권에 들면서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
하고 1963년 Please Please Me로 영국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영국
내에서 확고한
인기를 얻는데 성공한다. 나중에 앨범으로도 발매되는 이 곡은 영국에서 무려
30주 동안이나 1위를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우며 이후에 이들
이 미국의 팝 시장으로 진출하는데 발판이 되는 명곡으로 기록이 된다. 이들이 당시에 가진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면 블루스와 가스펠, 스탠다드, 포크 등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장르의 장점과 특색을 받아들여 나름대로의 음악적인 토대를 만드는데 사용한 폭넓은 수용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할 수 있겠다. 1963년발표된 두번째 앨범인 With The Beatles는 이러한 이들의 다양성과 포용성이 가장 잘보여진 앨범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초 장르적 음악과 더불어 감성이 풍부한 연주, 또한 세련된 곡들로 이들이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들의 인기는 당시 영국 음악 비지니스의 역사를 다시쓰게할 만큼 거대했었고 TV에 출연한 이후에는 Beatlemania(비틀마니아) 그룹이 형성될 정도의 사회적인 현상을 초래하기도 했다.
또한 팬들이 흥분하고 열광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영국전역에 퍼지게 되면서 보수적인 영국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1963년 12월 26일 발표된 I Want To Hold Your Hand는 미국을 강타하는 이들의 신호탄 격이 되었는데 그 당시로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규모의 음반사인 Capitol 레코드와 싱글 계약을 맺은 다음 미국시장에 진출했다. 그 이유는 몇몇 메이저 음반사들이 이들의 음악을 녹음하고 배포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소위 British Invasion(영국의 침략)이라는 신호탄을 쏘아 올리게된 처음 방송은 당시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던 The Ed Sullivan Show(에드 설리반 쇼)를 통해서 이다. 인기 가수들의 등용문이기도 했던 이 프로그램에서 미국에서의 싱글을 발표한 이들 964년 2월에 등장했을때 관중들이 보여주던 열광적인 반응은 영국에서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않을 만큼 거대하였었다. 이로인해 단 두달만인 1964년 4월에는 이들의 싱글이 미국에서 가장많이 팔리는 다섯장의 싱글 중 하나로 꼽히고 앨범순위의 상위에 기록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다.
이러한 현상은 그 전까지에 있었던 모든 음악계에서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놀라운 성공이었다. 이후 1965년 발표한 Revolver는 이들의 음악을 전세계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은 단순한 영국 또는 미국 취향의 음악들이 아닌 인류공통의 언어라 할 수 있는 음악 자체에 보다 초점을 맞추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의 뒷면에는 많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John Lennon이 자신들의 존재와 인기를 단적으로 표현하기위해 스스로를 Bigger Than Jesus Christ(예수보다 위대한) 존재들이라고 표현한 것이 발단이 되어서 1966년 여름 필리핀 공연에서는 국민의 90%가 카톨릭
과크리스트교를 믿는 성난 군중들의 비난과 실제적인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후에 이들은 보다많은 시간을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만드는데 보내기위해 1966년 8월 2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대규모 관중들 앞에서 하는 연주활동을 그만두게 된다. 이후에 멤버들 개개인의 개인적인 음악적 취향과 예술성을 위해 다양한 노력과 실험을 하는 기간을 갖게 되고 이러한 결과로 이들의 음악에 사이키델릭한 요소가 가미되기도 하는데 1967년 6월 발표된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에서 이러한 이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이는 당시에 유행하던 히피문화와 무관하지 않는데 이들의 All You Need is Love와 같은 곡은 히피문화를 대표하는 곡으로도 종종 언급되기도 한다. 1968년 초에는 인도에서 초월명상에 심취하기도 했으며 그해 말에 발표한 The White Album에서는 이러한 이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개인적인 노력들이 음악적으로는 보다 진보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지만 밴드로서는 각자의 개성이 지나치게 표현되는 결과로인해 팀으로서의 활동을 위태롭게하는 계
기가 되기도 한다. 즉, 이전까지의 앨범작업의 주축은 감성적이고 멜로디칼한 Paul McCartney와 즉흥적이고 중독성이 강할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추구했던 John Lennon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The White Album을 녹음할때는 이전과는 달리 Ringo Starr와 George Harrison의 색깔이 두드러지게 강조되어서 자칫 음악적인 방향이 없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여지기도 하였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John Lennon이 자신의 여자친구(후에 부인이 되는) Ono Yoko(오노 요코)에게 보다많은 관심을 쏟게되면서 음악적인 활동이 소홀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 하기위해 1969년 1월에 Paul McCartney는 멤버들에게 다시 대중들 앞에서 연주하는 기회를 갖자고 제안 지만 멤버들로부터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게 되고 대신 다음에 발표할 앨범에 보다 생동감이 있고 예전의 취향을 느낄 수 있는 곡들로 채워넣기에 동의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발표된 Let It Be, Get Back등의 싱글에서는 이러한 이들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되고 역시 이 곡 들은 대중들의 커다란 사랑을 받는 명곡으로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1969년말 이들은 또다시 각자의 개성에 맞는 활동들을 펼치게 되면서 밴드로서의 휴지기를 가지게 되고 1970년 4월 10일 솔로로 활동을 하던 Paul McCartney가 밴드를 탈퇴할 것을 공식 선언하면서 세계의 팝 음악사에커다란 획을 그었던 이들은 해체되고 만다.
첫댓글 음악 고맙습니다
등산(산행) 자료를 올리고 싶어도 마땅한 카테고리도 없고 가로 폭 해제도 해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참고 하시고 재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보시는 분은 있는데 댓글은 무척 야박(?) 하시군요. ㅎ...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