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에) 남기로 했습니다. 여기 가족이 있고, 중국인 아내가 있습니다. 여러 곳에서 물어 왔지만, 귀국을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그는 과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도 했다. 베이징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교민 A씨와 전화 통화가 성사된 것은 2020년 2월2일이다. 중국 정부는 앞서 1월23일 인구 1100만 대도시 우한을 전격 봉쇄했다. 원인 불명 폐렴 환자가 급증하자 내놓은 극단적인 조치였다. 우한은 말 그대로 유령도시를 방불케 했다. 도시 내 시민들이 올리는 동영상으로 내부 상황을 짐작할 뿐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아일랜드가 됐다. 감염된 부모를 자식들이 간호하다 함께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잇따라 전해졌다. “열이 나고 피를 토하는 남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지만 더는 방이 없어 몇몇 병원에서 치료를 거절당했다”며 비를 맞고 길에서 하염없이 울었다는 한 중국인 여성이 올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에 한없이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선명하다. 수용 병원이 없어 감염자들이 길거리에서 쓰러지고 있다는 출처 불명의 영상이 떠돌기도 했다. 기자로 20년을 보냈지만, 그때만큼 국민에게 국가는 무엇이고 언론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절실하게 고민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우승 사회부장© 제공: 세계일보
유령도시 우한 탈출을 위해 많은 사람이 전력을 쏟을 때 그는 가족을 위해 한국 전세기를 통한 귀국을 거부하고 우한에 남기로 했다. 그날 인터뷰 기사 댓글에는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용기 있는 선택에 지지를 보냅니다” 등의 격려와 응원이 이어졌다. 기억 속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3월이면 끝나겠지, 6월이면 마무리되겠지, 설마 1년을 넘기겠어’ 하는 희망 섞인 인류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고 전 세계로 퍼져 3년을 넘게 이어온 코로나19 사태가 이제 그 끝을 향해 다가가는 듯하다.
지난 30일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다. 마스크 착용 조치는 2020년 10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도입됐다. 이번 1단계 완화 조치로 실질적인 ‘위드 코로나’를 위해 일상생활을 되찾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으로는 6억7000만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했고, 사망자만 670만명에 달한다. 우리의 피해도 컸다. 확진자만 3000만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3만3000명을 웃돈다. 마스크 해제 첫날 지하철역이나 공항 등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는 대체로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이 많았다.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얼굴을 볼 수 있어 좋다는 반응과 아직은 우려스럽다는 반응이 교차했다.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곳과 자율에 맡긴 곳을 두고 혼선이 일면서 시민들 사이에서는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위드 코로나가 본격화하면 점점 마스크를 벗는 사람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억을 돌이켜 보면 창궐 초기 코로나19는 현대의학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대응이 매우 어려운 새로운 종류의 감염병이었다. 전파력이 강하고, 감기 증상이 폐렴으로 전이되는 시간이 짧아 치명률이 높았다. 국가 간 이동을 안이하게 생각했던 많은 나라가 속수무책으로 대형 참사를 겪었다. 한때 관리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중국의 방역정책도 사실상 실패로 귀결되고 있다. 2019년 12월 처음 지역 매체가 ‘괴질’ 발생을 전하며 경고하려 했지만, 중국 보건당국이 정확한 상황 판단보다는 정보 통제와 입단속에만 집중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이후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면서 또 많은 부작용과 혼란을 낳았다. 감염병 전파와 예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피해가 돌이킬 수 없고 고스란히 일반 시민들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언론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에 투명한 상황 공개를 압박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한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7차례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었다. 이제 코로나19 8차 대유행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언론은 항상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