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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8:1-8(1012) 나의 기도와 눈물 2022.6.12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다 같이 복음성가 ‘오늘 집을 나서기 전’을 함께 불러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성도의 기도에 대하여 아주 쉽고 간결하면서 은혜로운 복음송입니다.
“1)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오늘 받을 은총 위해 기도했나요.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리.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세요. 2)맘에 분이 가득 찰 때 기도했나요. 나의 앞길 막는 친구 용서했나요.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리.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세요. 3)어려운 시험 닥칠 때 기도 했나요. 주가 함께 당하시면 능히 이기리.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리.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시오. 4)나의 일생 다가도록 기도하리라. 주께 맡긴 나의 생애 영원하리라.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 하리.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세요.”
우리 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에 빠져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지푸라기 하나가 무슨 큰 도움이 되겠어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설령 지푸라기 하나를 움켜 잡는 들 그 지푸라기가 나를 물에서 건져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은 ‘물 위에 힘 없이 떠 있는 지푸라기 하나일지언정 그 지푸라기라도 잡고서 목숨을 건지고 싶은 열망’이 있습니다. 그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은 그 위험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기도원에서 신유 집회를 한다고 하면, 병원에서 이미 손을 떼어 버린 중환자들이 많이 몰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병을 고치고자 모인 사람들 중에는 이전에 예수님을 믿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병을 고쳐보고자 기도원에 올라온 것입니다. 세상 의학에서는 ‘살 수 있는 가망이 없다’고 사망선고를 내렸지만, 하나님을 부여잡고서라도 병을 고쳐 보겠다는 실 날 같은 간절함 때문에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고, 또한 하나님이 나타내고자 하는 섭리와 계획하심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놀라운 이적과 기적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해서‘하나님에게 매 달려 보고 안 되면 그만’이라는 심정이라면 이것은 헛된 일입니다.
본문의 히스기야를 보십시오. 본문에서 히스기야 왕은 난데 없이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너가 곧 죽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만일 히스기야에게 발생하였던 이런 상황이 오늘 나에게 발생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서 ‘너가 곧 죽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그 때 느낌과 감정은 어떠할까요? 아마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서 진찰하였는데, 의사가 ‘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만 하여도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죽음에 대한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공포와 두려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감추어져 있던 인격과 신앙이 드러나게 됩니다. 신앙을 가진 분이라면 더 하나님에게 매달리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신앙을 가졌다고 하지만. 도리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아니하고 더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히스기야 왕은 어떤 모습을 선택한 것인가요? 히스기야는 죽음의 공포 때문에 식음을 전폐하지 않았습니다. 죽지 않으려고 사람을 찾아 다니면서 방법을 모색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말자 바로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즉 죽음 앞에서 히스기야가 선택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였습니다.
3절에 ‘여호와께 구하오니’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원어로 ‘안나 예호와(여호와께 간절히 구하다)’라는 뜻으로 구약성경에서 12회나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히스기야가 ‘간절하게 여호와 하나님에게 기도하였다’는 표현입니다. 자신이 처한 어려움과 위기 상황을 해쳐나가고자 히스기야는 하나님에게 기도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또한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위기 상황이 있습니다. 돈과 물질이 없어서 발생하는 위기 상황이 있습니다. 나빠진 건강이 주는 위기상황이 있습니다. 가정에 찾아 온 위기 상황이 있고, 자녀들에게 찾아온 위기 상황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 신앙이 흔들리는 위기 상황도 있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성도는 오직 하나님에게 기도해야만 합니다.
특히 우리 덕민 교회가 더욱 더 든든하게 설 수 있도록, 여러분 모두의 기도가 더더욱 절실한 때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기도함으로 위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면서 하나님의 복을 바라보도록 합시다.
1. 병들어 죽게 된 히스기야
1절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히스기야가 무슨 병이 걸려서 죽어 가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한글성경에는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어의 의미를 살펴 보면,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을 지경에 도달했다”는 뜻입니다. 즉 히스기야의 목숨이 오늘 내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라는 말입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급박하게 나쁜 상황입니다.
그냥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질병이 생겨서 목숨을 위협하기만 하여도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살아 날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히스기야에게 대못을 박아 버리는 말씀을 합니다.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고 말합니다. 유언은 사람이 죽기전 마지막 하는 말입니다. 왜 사람이 죽을 때 하는 유언을 해야만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충격적인 말씀을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거야 말로 진퇴양난입니다. 병이 들어 서서히 죽어가는 것도 무서운데, 게다가 하나님까지 나서서‘너가 죽을 것이고 병에서 회복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그야말로 히스기야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위기가 찾아 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생의 위기는 누구에게나 갑자기 다가 올 수 있습니다. 인생의 위기가 언제 어느 때에 찾아 갈 것이라 예고하고 온다면, 걱정은 되지만 미리 대비하면서 충격을 죽여 나갈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고 없이 찾아와서 개인을 흔들고, 가정을 흔들고, 교회를 흔드는 위기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멘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 찾아오는 위기가 이렇습니다. 히스기야에게도 이런 위기가 찾아 왔습니다. 몸에 병이 들어서 그것만으로도 죽을 지경인데, 이사야 선지자마저 나서서 히스기야가 죽는다고 말합니다. 이럴 때에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하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고 벗어나는 방법일까요? 어떻게 할 때에 인생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에이즈로 죽음을 앞둔 흑인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있는 10살 어린 딸(바일스)이 교회에 가서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을 목사님에게 말합니다. 목사님은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낡고 허름한 집으로 들어가서 병상에 누워 있는 여인을 만납니다.
하지만 여인은 목사님의 방문을 차갑게 거절합니다. 알고 보니 이 여인은 마약 중독자였고, 이전에 주사기 값을 아껴보고자 여러 명이 사용한 주사기를 돌려쓰다가 그만 에이즈에 감염된 것입니다. 목사님은 옷장에 소중하게 붙어 있는 딸의 사진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딸이 엄마 말 안 듣고 나가 놀다가 몹쓸 병에 걸렸다고 버릴 부모가 없지요. 좋으신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에게 그렇게 매우 소중한 딸입니다.”
그 여인은 하나님을 영접한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10살 흑인 여자 아이를 목사님이 입양을 하고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장성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는데, 미국 여자 체조를 세계 1위로 올리는데 1등 공신이 됩니다. 그리고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도 4관왕을 차지합니다. 올해 25살인 시몬 바일스(Simone Biles)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나 위기의 순간이 찾아 오면 기도부터 먼저 한다는 바일스의 고백입니다. 기도가 그녀를 세운 것입니다.
인생의 위기가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위기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의 손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에서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께 더 매달려야 합니다. 더 기도에 힘을 쓰야 합니다. 그래야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면서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2. 기도하는 히스기야
2-3절 “2)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3)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평상시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면 누구나 쉽게 차분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라면 상황이 다릅니다. 죽음이 코 앞에 있는 상황에서 기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원망의 화살을 날리거나, 또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면서 살려고 발버둥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인간적인 모든 방법을 포기하고 하나님께만 매달립니다. 하나님에게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봅니다. 그것은 생명이 하나님 손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2절 본문에서 히스기야는 자신의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얼굴을 벽으로 행했다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존의 자세를 갖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기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여기저기 기우뚱거리거나, 세상의 헛된 것에 눈을 두지 아니하고, 쳐다 보지 아니하고, 양 다리를 걸치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하겠다는 마음이, 자신의 얼굴을 벽으로 향하게 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본문의 히스기야 왕은 이스라엘 왕 중에서 하나님을 잘 섬긴 4대 성왕 중 한 사람입니다.
제 아무리 하나님을 잘 섬기는 히스기야이지만, 히스기야 역시 연약한 인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까지 나서서 죽을 것이라는 예언한 상태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코 쉽지 않지만, 히스기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매달립니다. 이런 기도의 모습이 바로 기적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 됩니다.
유대인 설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랍비가 길을 지나가다가 큰 소리를 내면서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보게 됩니다. 구경 중에서도 가장 재미 있는 구경이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랍비 역시 건장한 두 사람이 고성을 높여가면서 말싸움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 보게 됩니다.
무엇 때문에 다투고 있는가 보았더니 ‘두 사람이 서 있는 그 땅을 서로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 쪽 사람은 자신이 구입한 땅이기에 그 땅이 자신의 땅이라 말합니다. 다른 사람은 자신이 판매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자신의 땅이라고 말합니다.
싸우는 자신들 곁에 서 있는 사람이 랍비라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 봅니다. 그들의 말을 다 들은 랍비는 무릎을 꿇고 땅에 귀를 댑니다. 마치 땅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모양처럼 한참 귀를 대고 있다가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땅에게 물어 보았는데, 땅이 말하기를 ‘자기가 이 땅의 주인’이라고 합니다.”라는 말을 던지고는 사라져 버립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일까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내 생명도 하나님의 것이고, 내가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내 돈도 하나님 것이며, 나의 자녀와 나의 가정도 모두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당연히 내가 가지고 있는 건강 또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혼자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아둥바둥거리면서 걱정하고 고민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저 기도하면 됩니다. 문제가 발생해서 쉽게 풀리지 않는다고 해도 기도를 멈추지 말고 계속 기도하면 됩니다. 그럴 때에 죽어가는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3. 히스기야의 눈물과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
5-6절 “5)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6)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5절 보십시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하나님께서 히스기야가 기도하면서 흘린 눈물을 보았고, 또한 안타깝게 부르짖으며 드리는 기도를 모두 들었다는 말입니다. 실제적으로 본문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히스기야 왕과 이사야 선지자 뿐입니다.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눈물과 기도를 다 보고 들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눈물과 기도를 귀하게 보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내 눈물을 보시고,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결국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에서 벗어납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아 생명이 15년 연장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에게 드려진 기도와 눈물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어느 날 친하였던 두 명의 친구가 길에서 만납니다. 그리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한 명의 친구가 완전히 옷차림부터 땟깔이 확 바뀐 것을 보게 됩니다. 자초지종을 물어 보니 그 친구가 말합니다. “3주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내게 2억 원을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그러자 친구가 말합니다. “야, 너 참 수지 맞았다. 2억 원이면 어디냐?” 그 친구가 다시 말합니다. “2주 전에는 외삼촌이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내게 3억 원을 유산으로 남겨주셨어.” 다른 친구가 부러워서 말합니다. “아이고, 한 달 사이에 5억 원을 벌었구나. 얼마나 좋으냐?” 그런데 친구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지난 주에는 고모님이 돌아가셔서 10억 원을 나에게 남겨주셨어.” “그럼 15억 원이 됐네. 부럽다.”
3주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2억원, 두주전에 외삼촌이 돌아가셔서 3억원, 한 주전에는 고모님이 돌아가셔서 10억원, 3주 동안 총 15억이라는 엄청난 돈을 물려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15억 원을 받고도 기뻐하거나 감사한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고 오히려 불만이 가득한 얼굴입니다. 이상하게 여긴 친구가 물었습니다. “공돈으로 15억을 받아서 부자가 되었는데 너는 왜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냐?” 그러자 15억 원 유산을 받은 친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야, 임마. 그걸 말이라고 해. 이번 주에는 아무도 안 죽었잖아.” 하더랍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의 욕심이란 아무 것도 없었을 때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뭔가가 나에게 있었을 때를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나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감사란 없습니다.
탈무드에 아주 명언이 있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자를 벌하는 법을 하나님께서 만들지 아니한 것은 감사할 줄 모르는 자를 이미 불행으로 벌하셨기 때문이다.”
2022년 6월입니다. 무더워지는 시간이 다가와도 더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더 기도함으로 문제의 해결을 보는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