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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코리아둘레길 중 서해랑길 본선에서 충청남도 내륙 깊숙히 숨어 있는 유적지와 명승지를 답사하게될
지선 6코스 중 지선 1코스를 트레킹하였습니다
겨울철 철새들의 낙원이자 도래지로 유명한 천수만에 위치한 서산B지구방조제 옆 창리포구에서
시작되는 서해랑길 지선1코스는 부석버스정류장(차부삼거리)까지 11.9km 트레킹을 마치고~
지선 2코스 구간이 시작되는 부석버스정류장(차부삼거리)에서 유서깊은 도비산이 품고있는 부석사와 동사를
유래의 숨결을 두루 탐방하고 도비산전망대를 거처 인지면 산동리(송림사) 주차장까지
지선2코스 4km 덤으로 더 걷고선~
막독 팀장님의 인솔과 친절하게 안내를 받아, 송곡서원에서 문화해설사님의 해설을 듣는 방문에 이어
고려말, 조선초 천문학자로서 "천상열차분야 지도"를 만드신 금헌 류방택 과학관을 방문하게되었습니다
서산 류방택 천문기상과학관 정경
송곡서원 진입로에서 촬영한 " 금헌 류방택 영정각( 琴軒 影幀閣)" 입니다
송곡서원 진입로에서 촬영한 금헌 영정각( 琴軒 影幀閣)
금헌 영정각 이곳은 우리 고장 서산(인지면 양촌리) 출신인 세계적인 위대한 천문학자
금헌 류방택(1320~1402)선생의 영정을 모신곳이다.
고려말 조선 초의 위대한 천문학자인 선생은 천문역법과 천체운행 추산에 밝아 1395년
(조선 태조4년)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하였다.
선생의 업적을 현창하고 천문학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2018년 12월에 금헌 영정각을 건립하다.
2018년 12월 25일 (서산시장, 사단법인 금헌류방택기념사업회)
금헌 류방택( 琴軒 柳方澤, 1320년 ~ 1402년) 선생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천문도에 적혀 있는 설명문에는 천문도의 제작 경위가 적혀 있다.
그 글에 따르면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였을 때, 어떤 사람이 천문도의 탁본 한 점을 바쳤는데,
그 탁본의 원본 석각은 원래 평양성에 있었던 것이었으나 전쟁으로 인해 강물에 빠졌다고 한다.
이성계가 이 탁본을 귀중하게 여겨서 새로 돌에 새길 것을 명하였다.
이 천문도가 새 왕조가 하늘의 뜻에 의하여 세워졌다는 권위를 부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 석각을 제작하는 작업은 특진보국숭록대부 판문하부사 권중화가 책임자로 있던
서운관의 천문학자들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권근이 설명문을 작성하였고 류방택이 새로 중성기를 계산하여 수정하였으며
설경수가 비문의 글씨를 썼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설명문에 따르면, 성도는 탁본의 내용을 따르고, 중성기를 새로 계산하여 돌에 새겼다고 적혀 있다.
정포은(鄭 圃隱)의 포은( 圃隱)은 정몽주(鄭夢周)의 호이며,
이목은(李 牧隱)의 목은( 牧隱)은 이색(李穡)의 호이다
대한민국 한국은행에서 2007년 1월 22일부터 발행된 만원권 뒷면 배경에 약식으로
묘사한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려져있다.
"10000원 지폐 뒷면 그림에 포함된 별자리"
2007년에 대한민국 한국은행에서 발행된
10000원 지폐 뒷면에는 여러 별자리들과 항상 보이는 별들을 표시한 항원권,
오늘날의 적경(赤經)에 해당되는 28수를 구분하는 선들, 황도와 천구의 적도 일부가 그려져 있어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자리들과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식별할 수 있는 별자리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태미원(우측 상단) - 태미, 상진, 오제, 병, 오제후, 구경, 호분, 삼태, 소미
자미원(중앙 부근) - 북극, 구진, 북두, 문창, 내계, 천상, 자미, 천봉, 오제좌, 팔곡, 전사, 천주, 현과
천시원(우측 하단) - 천시원, 천시좌원, 칠공, 여상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정계를 떠나 충북 화양동에 은거할 때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혼천의(渾天儀)
우암 혼천의의 구조는 십자 받침대 위에 4개의 용주가 목재 지평환을 받치고 있는것이
조선 세종 15년에 정초, 박연, 김진 등에 의하여 최초로 만들어진 혼천의와 차이점이다
조선 세종 15년에 정초, 박연, 김진 등에 의하여 최초로 만들어진 혼천의는
해와 달 5행성(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을
관측하는 천문 관측 기기로서 교육기관 및 천문관청에서 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왜 그럴까요
각 사진들을 클릭하여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사계절 별자리
"봄 하늘의 별자리"
"여름밤 하늘의 별자리"
"가을 하늘의 별자리"
"겨울 하늘의 별자리"
겨울하늘의 별자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
1742년(영조 18)에 관상감의 안국빈(安國賓) 등 6명이 제작한 신법천문도 병풍으로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관상감의 안국빈(安國賓) 등 6명이
북경천문대 대장이었던 선교사 대진현(戴進賢, Kogler, I.)의 별자리표[星表, 기산점 1723년]를
사용하여 한양에서는 볼 수 없는 남쪽 하늘의 별까지 포함하여 제작한 신법천문도가 그려져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조선 초기부터 석각본, 목판본, 필사본 등으로 제작
보급된 한국의 전천천문도(全天天文圖)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태조 석각본으로 가로 122.8 cm, 세로 200.9 cm 크기의 돌에 새겨졌다.
태조 석각본은 국보 228호로 지정되었다.
숙종 때 태조 석각본을 복제한 석각본은 보물 837호로 지정되었다.
2006년에 신한은행에서 일본에서 조선 선조 때의 목각본을 구입하여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조선조 태조 4년(1395)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은
고구려 시대 평양에서 각석한 천문도(‘평양 성도(星圖)’) 비석의 탁본을 바탕으로 돌에 새긴 천문도이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 현존하는 이 천문도의 석본은 가로 122.8cm, 세로 200.9cm의 돌에
새겨진 것인데, 그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성도는 원형(圓形)의 중심에 북극이 있고, 그 북극을 중심으로 하여 관측지의
북극의 고도에 따른 작은 원과 더 큰 적도 및 황도권이 그려져 있다.
원의 주위에는 28수(宿)의 명칭과 적도수도(赤度宿度)가 기록되어 있고,
각 수(宿)의 거성(距星)과 북극을 연결하는 선에 의하여 개개의 별의 입수도(入宿度)가
눈으로도 매우 정밀하게 읽어갈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글에는 28수(宿) 거극분도(去極分度), 24절기의 동틀 무렵과
저물 무렵에 자오선을 지나는 별에 대한 글,
12국 분야(分野) 및 성수분도(星宿分度), 해와 달에 대한 글, 논천설(論天說), 천문도 작성 경과,
작성자들의 관직과 성명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란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형태는 별자리 그림을 중심으로 주변에 해, 달, 사방신에 대한 간략한 설명, 주관하는 각도,
각 절기별 해가 뜨고 질 때 남중하는 별자리가 설명되어 있고,
하단부에는 당시의 우주관, 측정된 28수의 거극도 및 각도, 천문도의 내력, 참여한
서운관 관리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별자리 그림은
큰 원 안에 하늘의 적도와 황도를 나타내는 교차하는 중간 원을 그리고, 그 내부에
계절에 상관 없이 항상 보이는 별들을 표시하는 중앙의 작은 원,
그 위에 각 분야별로 1467개의 별들이 283개의 별자리를 이루어 밝기에 따라
다른 크기로 그려져 있다.
그 위에 은하수가 그 모양대로 그려져 있으며, 큰 원의 가장자리를 따라 365개의 주천도수 눈금,
각 방향을 대표하는 12지, 각 땅을 대표하는 분야(分野), 황도 12궁이 표시되어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성도는 중국 한(漢)의 무제(武帝) 때의 관측에 기반하여 이전의 천문학파들인
무함(巫咸), 감덕(甘德), 석신(石申)의 별자리를 망라한 삼가성경(三家星經) 체계를 따르고 있다.
성도의 중심은 천구의 북극이 되는데 그 위치에 북극오성(北極五星)의 한 별인 천추성(天樞星)을 두고 있다.
천추성은 중국의 한나라 시대에 북극성이었으므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성도는
한나라 때의 천문도 체계를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천문도는 북위 35도 정도를 기준으로 작성되었는데,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적도원과 전몰성원(외규)은 북위 35도 정도를 기준으로 그려졌지만 주극원(내규)은
북위 39도 정도를 기준으로 하여 그려졌다. 그러므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국의 성도를
바탕으로 그 별자리는 수정하지 않고 다만 관측지의 위도를 고려하여 주극원의 반지름을 조정한 것이다.
태조 석각본과 숙종 석각본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설명하는 글의 배치만 다를 뿐 거의 동일하다.
권근 (權近, 1352년~1409년 2월 14일) 의 설명
천상열차분야지도 하단부에 적힌 권근의 설명을 참조하면, 본래의 석본이 평양에
있었으나 전란 중 강에 빠져 잃어버렸다고 하였다.
조선을 건국한 그 해(1392년)에 평양 석각본의 인본을 바치는 사람이 있었고,
태조가 매우 기뻐하여 돌에 새길 것을 지시하였으나,
천문도가 세월이 오래 되어 그 도수가 차이가 나므로 그 값을 새로 측정하여 고쳐 새겼다고 한다
권근을 비롯한 10여명의 학자들이 수년 간의 노력 끝에 태종 석각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완성하였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원본의 제작 시기에 관련하여 칼 루퍼스는 1913년에 이 천문도에 대한 최초의 영어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조선 중기의 학자인 권별(1589-1671)의 해동잡록을 참고하여 이 천문도의
원본이 고구려 시대에 제작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해동잡록의 설명문은 태조본 석각의 설명문을 약간 간략하게 다시 쓰면서 약간의 첨삭을 한 것인데,
여기에는 원래 천문도 설명문에 "전쟁 때문에 강에 빠졌다(因兵亂沈于江)"라고 되어 있는 구절을
"고려시대의 병란 때문에 강에 빠졌다(因麗季兵亂沈于江)“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려계(麗季)"는 예외 없이 "고려시대 말기"를 뜻한다.
칼 루퍼스의 논문에 따르면, 그는 바로 이 "麗季"라는 표현을 근거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본이 "고구려시대 말기"에 제작된 것으로 오해하였다.
반면,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발간된 경성부사(京城府史)에서는, 이 천문도는 "전조(前朝)
고려(高麗)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라고 설명하였다.
거극도와 각도 및 별들의 분포와 세차운동으로 인한 위치의 변화로 그 측정연대를 참조하면,
대략 삼국시대 초기인 기원 전·후가 되는데, 기록상으로 1464개의 별이 그려진 천문도를
중국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3세기에서 2백 년가량 앞서는 시기가 된다.
한편,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같은 천문도의 일부에서 원래 중국 별자리에서 "건성(建星)"으로 표기되어야
할 중국 별자리가 "입성(立星)"으로 표기되어 있음을 근거로
천문도의 원도가 고려시대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제시되기도 한다.
이것은 고려 왕조의 설립자인 고려 태조 왕건의 이름을 피한, 전형적인 피휘(避諱)라는 것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도설에는 남송(南宋) 시대의 책에 나오는 문장이 인용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부터,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본은 고려시대에 제작되었고, 성도의 적도환과 중성기만을
수정하고 성도는 원본 그대로 수록한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국의 한(漢)나라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어서, 그 성도의 내용이 현존하는
동아시아 성도 중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 가운데 하나가 되며,
성도에 수록된 내용이 거의 완전한 정보를 담고 있어서 그 학술적 가치는 더욱 크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일본의 별자리는 7 ~ 8C 무렵의 기토라 고분 벽화에 그려진 것이 최초인데, 그 형태는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중국 별자리의 중간에 해당된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에 중국과 조선의 별자리를 바탕으로 몇 개의 별자리를
추가하여 독자적인 천문도를 제작하기도 하였으나,
사용된 기간은 길지 않다. 조선의 문물이 전해지면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본뜬 천상열차지도와
천문분야지도가 그려지기도 했다.
조선의 옛 별자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삼국시대 이전에 기원하여 조선시대에까지
이어졌던 궁중 천문학의 흐름이 끊겼고,
이후로 서양 천문학이 교육.보급되면서 옛 별자리 체계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며,
전통이 단절되면서 일반인들로부터도 멀어졌다.
현재는 역사에 기록된 천체의 기록을 참조로 하는 천문학 연구에 필요에 따라 사용되고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서산류방택 천문기상과학관 내부 전시실 안내도
서산류방택 천문기상과학관의 전시실
서산 류방택 천문기상과학관과 송곡서원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송곡서원(松谷書院)은 서산에서 배출된 향현들을 제향하는
향현사(鄕賢祠)로서 "금헌 류방택( 琴軒 影幀閣)" 선생의 위패를 송곡서원에 모시고 있습니다
제향 인물의 위차(位次)는 왼쪽부터 정신보, 정인경, 유방택, 윤황, 유백유, 유백순, 유윤, 김적 순입니다
위차(位次) : 자리
금헌 류방택( 琴軒 柳方澤)
류방택(柳方澤, 1329 ~ 1402년)은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대표적 천문학자로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을 제작하는 데 핵심 역할을 수행하였다.
본관은 서산(瑞山), 호는 금헌(琴軒)이다. 충남 서산 출신으로 경서와 천문역법(天文曆法)에 뛰어났다.
1362년(공민왕 11) 밀직부사 겸 판서운관사(지금의 기상청장)에 등용되었으나 고사하고 집으로
돌아와 학문과 천문탐구에 몰두하였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한 뒤에는 서산 도비산에 은둔하였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새 왕조의 권위의 표상으로서 천문도(天文圖)를 만들도록 명하여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
(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이 제작되었는데, 류방택은 여기서 천문 계산을 담당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였다.
태조가 개국일등공신 녹봉과 서령군 한성윤을 제수하였으나 고사하여
고려의 유신으로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켰다.
2000년 국내에서 발견한 소행성에 그의 이름인 "류방택별"로 붙여졌고, 2006년부터
서산시에서 '류방택 별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딴 서산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이 건립되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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