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가 종결된 며칠 후 제보전화가 왔다. 실종된 동생과 같은 회사 동료라고 했다. 수사가 종결된 줄은 알지만, 양심에 꺼림칙해 연락했다고. 실종 당일 동생은 선임 연구원이 시킨 백신 샘플링 작업이 있어 야근이라며 먼저 가라 했다고. 다음 날 자신도 실험할 샘플이 있어 평소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해 품질검사실에 들어갔는데, 동생은 없었단다. 멸균복으로 갈아입고 작업하려는데, 동생의 이름표가 붙은 멸균복이 보였고 옆에 흑갈색 깃털이 여러 개 떨어져 있었다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험이 밀려있어 샘플 작업에 집중했다고 했다. 밤샘 작업 후에는 휴무라 집에서 쉬려니 생각했다고. 그날 오후에 다시 품질검사실에 샘플 확인하러 들렀는데, 멸균복과 깃털은 치워지고 주변이 말끔했다고 전했다.
미란은 다시 제보전화를 떠올렸다.동생이 백신연구소 품질검사실에서 사라졌고, 소장은 뭔가 숨기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백신 연구소, 흑갈색 깃털, 달걀에 주입하던 백신. 미란은 어디서부터 고리를 풀어갈지, 어디를 뚫어야 실체가 드러날지 난감했다. 취약한 쪽을 공략하기로 했다. 방송 송출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소장이라면, 소장이 압박하는 사람은 사실을 아는 직원 아니면 양계장 주인일 거라 짐작했다. 미란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닭으로 변한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혹시 살았다면 어디 있는지를 밝히는 게 급선무였다.
미란은 에이플러스 백신연구소와 거래하는 양계장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이플러스와 단독 수의계약을 따낸 곳이 닥치고 양계장인 걸 알아냈다. 미란은 즉시 동생의 실종사건 재조사를 위해 휴가를 냈다. 혼자는 위험하다 싶었지만, 또다시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리긴 싫었다. 먼저 양계장 주인의 동태를 살펴 사무실에 잠입하기로 했다.
미란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양계장주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행운이 생겼다. 인간 닭과 관련하여 작은 흔적이라도 남아있기를 바랐다. ‘제발 뭐라도 나와라.’를 외치면서 정신없이 뒤졌다. 인기척에 부리나케 나가려는 찰나, 구석에 있던 휴지통 속에 꾸깃꾸깃한 종이 한 장이 보였다. 미란은 얼른 종이를 움켜쥐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차 안에 들어와 실내등을 켜고 종이를 펼쳤다. “A+ 2 1 3 2 1”이라 적혀 있었다. A+는 백신연구소를 말하는 것 같은데 숫자의 의미는 뭔지, 지운 것과 안 지운 숫자는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었다.
숫자와의 싸움이 슬슬 지겨워질 즈음이었다. 마침 잠자리에 들려던 참에 메시지 하나가 들어왔다.
“파란이 살아 있어요, 닥치고 양계장.”
미란은 읽고 또 읽었다. 파란이 살아있다! 닥치고 양계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