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설악산.묵호항 가족 여행
일시:2003년 5월 3일 토요일∼5월 4일 일요일
장소:정동진.설악산.묵호항.가족여행
*정동진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이 있는 기차역이라 하여 기네스북에 오른 곳이다. 역시 바다와 기차는 하나였다. 놀랄 정도로 아주 가까이 해변으로 기차가 달리고 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진풍경이다. 철길 건널목이 인파로 북적인다. 간수는 쉼없이 호루라기로 바다에서 건너 오는 자와 역쪽 뒤에 건너가는 발걸음을 안내한다.
마을은 등 뒤로 산이 병풍처럼 둘러진 채 있다. 안온하다. 뾰족한 산 위에 큰 함선이 올라앉아 있다. 물론 모형배지만 신기롭다.
정동진 역에서 10분 정도 해변을 따라 걸으면 「모래시계」드라마 촬영지인 모래시계 공원이 있다. 커다란 시계가 모래를 짐지고 1년 동안 제 살점 떨구어내며 시간을 사르고 있다.
무엇보다도 유명한 것은 해돋이 풍경.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해변 모래밭에 까치발로 동녘 태양의 떠오름을 기다린다. 설레임과 기대, 가슴벅찬 호흡, 그러나 뜨거운 일출은 1년에 손꼽을 정도의 횟수밖에 안 된단다. 그 날도 해가 바다에서 잉태되는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고 구름을 쪼개고 위로 솟은 모습만 나왔다. 그래도 눈부신 풍경이 청학의 깃울음이다.
*삼팔선 표석
정동진에서 해변국도를 따라 달리다 보면 해안초소가 보이고, 휴게소가 있다. 입구에 장승처럼 묵묵히 서 있는 「삼팔선 표석」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차량 행렬이 끌끌이 밀려 들어오고 의미깊은 그 돌비 앞에서 사진을 찍어간다. 누구와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지, 왜 삼팔선이 생겼는지. 잠시 외세의 약속으로 그어진 선이 이렇게 슬픈 비극의 선이 될 줄이야. 기가 막힌 역사의 현장이다.
바닷가에 바짝 지어진 휴게소가 관광명소가 되었다. 사람들은 가게에서 내어놓은 의자에 앉아 북녘과 남녘의 경계선의 삼팔선 표석에 대하여 심오한 눈빛으로 바다를 바라다보고 있다. 정동진 만큼이나 짙푸른 동해바다. 바다 가까이에서 출렁이는. 하늘과 하늘, 땅과 땅, 바다와 바다가 경계선인 만큼 총과 군복으로 무장한 군인의 모습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시름없이 평화롭게 살아갈 날이 속히 오길 빌어본다.
*설악산
워낙이 우람하고 넓은 산이라 오르내리는 길이 많다. 우리 가족이 택한 길은 한계령 고개에서 내설악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하였다. 약 4km 정도의 하산길을 걸으며 내설악과 외설악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좋은 코스다. 깊어지는 산 숲에는 나무 하나 돌 하나에도 순진함과 정직함이 서려 있다. 인위적으로 가꾸지도 않은 저 풍경들이 어찌 저리도 잘 다듬어져 있을까. 한 폭의 동양 수채화다. 계절은 5월 초순. 나오는 잎사귀의 색깔도 조금씩은 달라 가을단풍만은 못해도 고운 물감을 풀어놓은 듯 하다.
가끔씩 만나는 외진 길목엔 다리를 놓아 한 사람씩 건너야 하고, 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물은 천상에서 내려언 수정빛이다.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서린 곳이라는 팻말도 보고, 깊은 곳에서 주전을 만들었다는 주전골의 안내문도 보고 그림같은 설악산을 가슴에 새기고 왔다.
해송처럼 물가 바위에 뿌리내린 절묘한 아기 소나무. 그와 대비되는 하늘을 온통 휘덮은 낙엽송의 짙푸른 잎사귀의 속삭임. 색깔마저 고운 한 기암 절벽의 바위. 풀잎 하나도 영롱하여라.
*오색약수
하산길 끝자락 쯤에 성국사라는 절을 만난다. 입구에 길손들 목 축이라는 약수물이 있고, 웅장함은 아니어도 불심깊은 불도자들의 행렬로 숙연해진다. 그 곳에서 조금 내려가니 오색 약수터가 있었다. 오색약수에 대하여 안내문은 두 가지로 정의해 놓았다.
그 하나는 다섯 가지의 맛이 난다는 설과, 또 하나는 다섯 가지 꽃색이라는 설이다. 사람들은 조롱박 하나씩 들고 줄서있다. 앝으막한 바위터에 손 하나 들어갈 만한 구멍에서 가녀린 호흡으로 솟는 약수, 겨우 한 모금 긁듯이 떠서 입에 넣었을 때의 그 맛은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기막힌 맛이었다.
그야말로 다섯가지 물맛이다. 짜고, 시고, 달고, 쓰고, 떫고… 모두 섞이어 알게 모르게 혀 끝에 닿는 그 맛의 조화. 그 어떤 약수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맛이었다. 다시 긴 줄 뒤에 한 번 더 서서 겨우 두 모금을 떠 먹었다. 이 물을 마음껏 마시려면 그 근처 호텔에서 유숙하고 새벽에 나와야 한다고 했다. 낮에는 관광객이 많아 물이 새어나오기가 무섭게 다 소모되기 때문이다. 이 한 모금의 물로 몸에 효험이 있길 소망하며 아쉬운 걸음으로 돌아섰다.
*묵호항
아득한 해변가 포구. 비릿한 시장 바닥엔 갯여인들의 좌판에 수산물이 벌여 있고, 건어물 등 풍성한 해물이 늘어선 항구어촌이다. 수산시장을 잘금거리는 바닷물 향기를 맡으며, 밟으며,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신선함으로 한 바퀴 빙돌았다. 바로 앞에는 동해 바다가 출렁거리고, 항구에는 배가 정박해 있다.
해물집에 들어가 해물탕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건어물을 사고 묵호를 떠났다.
*태백산맥 풍경
강릉으로 이동하여 중앙선 기차를 탔다. 청량리행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그 깊은 태백산맥을 넘어오는 동안 절경의 감탄이 연신 터져 나왔다. 서부 영화에 나오는 아니, 로맨틱한 정경의 영화 같은 한 장면, 한 장면들이 스쳐지나갈 때마다 장관이었다.
산을 돌고, 터널로 들어가고, 나오고, 산이 너무 높아 잠시 기차가 후진했다가 그 탄력으로 가파른 산곡을 기어오르고. 협제열차의 숨가쁜 행진이다. 차창으로 지나가 나무를 잡고 싶다. 싱그러운 5월의 녹음이 각각의 고운 색상의 싹으로 피어오르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또 어느 곳 쯤에는 폐광의 현장도 보였다. 한때는 저 곳이 부유한 삶의 터전이었을 텐데, 산업 발달로 인해 사장된 폐물의 현장. 산 역사를 증언하듯 검게 장비들이 서 있고, 산비탈에 석탄의 흔적이 흘러 있다. 몇 시간을 거쳐 넘어온 긴 산맥. 가을단풍이 들면 꼭 다시 와 보고 싶은 곳이다.
이것으로 강원도 문학기행은 아름답게 매듭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