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필 시조집, 『三寶頌』, 그루, 2008.
-하영필 : 1926년 5월 5윌 경남 거창 출생/ 포항대신초등학교 교장 정년 퇴임/ 시조문학 천료
서序
태초에 하느님이 귀한 보물 내리시니
천자천손, 홍익인간, 광명이세 삼보라
인류의 사는 길 큰 벼리 명시하여 주시다.
천자천손天子天孫
하느님은 환웅님을 단군님의 탄강은
만물을 사랑으로 낳으시는 계보라
이 겨레 명줄로 받들고 바르게 이어 왔다
때때로 이리 떼들 목숨을 겨누어도
우리는 고귀한 천손 그 긍지 하나 갖고
머리를 하늘로 세우고 꼿꼿하게 살아왔다.
홍익인간弘益人間
땅 위로 보내면서 간곡하신 당부 말씀
중생을 기르는 길은 홍익인간 이념이니
사랑을 도우는 행동으로 베풂이라 하시다.
세상일 덧없어도 긴 세월 한결같이
서로 돕고 나누면서 길흉화복 함께 했네
그 미풍 본보기 되어 평화 세계 이끌리라.
광명이세光明理世
하느님의 맘과 몸은 사랑이고 빛이라고
그 희구 광명 세상 동으로 동으로 와
머문 곳 임금과 물물 이름 밝음으로 짓고 살다
음흉하고 간사한 자 소인이라 비하하고
광명하고 정대한 사람 대인으로 우러르며
사랑과 밝음이 가득한 지상천국 바라시다
한恨
세상을 건너는 길
가시밭 험난한 일
석양 길 들어서니
더욱 절실해지고
그런 길 사시던 임의 생각
뼈와 살이 아파라
풀칠도 어려웠던
암담하던 그 시절
가솔을 기르느라
피 말리신 노심초사
이제는 전미도 안락도
드릴 길이 없구나.
고향
세상에 나갔다가
흙투성이 돌아온 몸
따스하게 거두시고
씻어 주는 두터운 손
고향은 가없는 사랑
어머니 품속이다.
청운을 바라보고
연을 띄우며 오르던 언덕
무지개 꿈을 좇아
달려가던 그 시내도
팔을 펴 안아 주시네
흰머리 남루한 몸.
까치밥
아버지 그 아버지
태초에서 오시면서
천심天心에다 감 하나를
드리며 내려왔는데
그 일을
낳고 기르는 사랑
하늘 일로 알았다.
소요逍遙 ‧ 1
-성경
태초에 땅을 여시고 말씀을 거두면서
그 말이 당신이고 진리니라 이르시고
그 길을 따라가면은 천국이다 하셨던가.
그 말씀 옳으시나 너무 높고 넓고 멀어
가까이, 한 말로 말한다면 사랑이 아니리까
임께서 낳고 기르는 사랑 그 길 따라 가오리다.
소요逍遙 ‧ 2
날씨가 쾌청하니
공자님을 뵈오러 갈까
“내가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마라”
성인이 되는 말씀 아닌가
오는 걸음 무겁다.
욕계를 헤매 도는
속물인 저로서는
그 교훈 그대로는
받들지 못하오나
비탈길 멈추게 하는
경종으로 들으리다.
소요逍遙 ‧ 3
불이문不二門 들어서니
○ 하나 덩그렇고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염불소리 낭랑하네
속인의 지혜로써는
해득이 어렵구려.
대웅전 연대에는
부처님 환화시네
색色과 공空 원융으로
승화하여 불佛이신가
고락을 넘어서 핀 연꽃
그 미소가 여래如來신가.
소요逍遙 ‧ 4
욕심이 과역한 날은
노자老子를 찾아간다
주시는 청정수를
단숨에 마시고 나면
울화는 슬슬 풀리고
안계가 청명하다.
무의와 자연으로
산다면야 좋으련만
목숨의 세계에는
경쟁은 운명이니
머리가 무거운 날은
그 청정수를 찾아간다.
소요逍遙 ‧ 5
웅크리고 있어도
무료하지 않아요
때때로 찾아와 주는
책이라는 벗이 있어
고금과 세속 이야기
나누면서 거닌다오.
소요逍遙 ‧ 6
무얼 하며 지내냐고
시원비경詩苑秘境 거닌다네
청산유수 그윽한 경지
유연히 흐르는 구름
청아한 바람은 와서
호면湖面에서 즐겨 놀고
무리들 사는 길의
희로애락 나눠 보고
화원 꽃송이에서는
하느님도 뵈옵나니
그 행간 완보 감상하며
세월 잊고 산다네.
소요逍遙 ‧ 7
-문방사우文房四友의 손을 잡고
필봉이 가는 길을
잠잠히 따라가다
밋밋하게 뻗는 연맥
호연한 기운 일고
울울한 수림간에는
맑은 향도 그윽해
걸음이 비뚤어지고
모양이 흐트러져도
이제는 그러한 일
어찌할 수 없어라
오로지 사우四友의 손을 잡고
정을 풀며 거닌다오
소요逍遙 ‧ 8
바둑판을 거닐다가
길을 조금 터득하다
과욕은 실각하고
허욕은 낙마를 하고
행마가 살아가는 길은
상생하는 배려임을
<소요逍遙 연작시는 모두 8편임>
쌀
우리 아버지는 쌀은 보배니라 하시고
뜰에 떨어진 벼 한 알도 버리지 않으셨다
그 시절 우리 아버지들은 다 그렇게 사시었다.
삼백육십 일, 아니 평생을 늘 먹어도
물리지 아니하고 보양에도 으뜸인 쌀
그보다 더 진귀한 보배가 쌀 두고 또 있을까.
땅에 매달리고 하늘 보고 빌어도
채우지 못하시고 마르다가 가신 임들
그 쌀밥 원 없없이 먹으니 그 임이 늘 걸린다.
시詩 ‧ 1
어느 날
아들 이鯉가
앞을 지나가니
시詩를 공부하느냐 하고
심중히 물으셨다
사무사思毋邪
글 중의 귀한 글
주고 싶은 아버지 맘
□ 이鯉 : 공자의 아들
시詩 ‧ 2
시 그대는 무지개다
태초에서 영원으로
지상에서 으뜸으로
아름답고 황홀한
저 건너 시냇가에도
내 안에도 서려 있는
아련한 그대 얼굴
애절한 그리움이다
저어 가도 저어 가도
저만치 가서 있고
옥동자 얻지 못하고도
연연한 사랑이다.
새해
새해가 오르시네
밝은 나날 되라시네
밝음으로 사는 길을
어찌 마다하리오마는
지난해
어둔 일 너무 많아
회개부터 하오리다.
기도
당신의 사랑으로
티 없이 나온 몸이
세간을 잘못 건너
얼룩으로 변했습니다
미운 맘 한 점이라도
씻고 가게 하소서
노욕
오늘도 망령되니
병원 문을 두드리다
노육은 추물인데
원 없이 산 수명을
삼신님 낳고 기르는 사랑
끝이 없는 섭리인가.
희수喜壽에 올라서서
봉우리 봉우리를 넘어
기쁜 마루 올라섰네
저승길 문턱을
몇 번이나 가다가 온 몸
아슬한 고비고비에서
건져 주신 임 고마워라.
수복이 상복인데
더 바란다면 과옥이라
미움도 원도 한도
물아래로 훌훌 보내고
여일은 사랑으로만
감사하고 지내야지.
길
옛날에는 버려라 하고
세상은 가지라고 하네
두 갈래 기로에서
가는 길 헷갈린다
그 위에 큰길 또 있으니
환히 트인 사랑의 길
80 고지高地에 올라서
드디어 80고지
힘겨운 길이었다
고개고개 굽이굽이
고락의 점철이었다
이윽고
열리는 하늘
오고 가는 뜬구름
물의 길
속을 다 채운 뒤에 세상으로 나오고
나와서는 화합하고 거스르지 아니하며
만물을 젖 주어 길러주니 그 덕행 가없네
사는 길의 거울인 그와 같이 살면서도
한 면도 보지 못하고 역방향으로만 갔다
인성이 착함을 믿으면서 침침한 내 길이여
나무 그늘에서
시간이 고요하니 안목 조금 열리는가
그 그늘 크신 사랑 무심히 지나쳤더니
오늘은 그 아래 와서 하늘같이 우러르네
손과 발 안 비비고 하늘땅의 섭리로만
한자리 곧은 자세 높고도 푸른 풍도
무시로 찾아오는 생명들 보금자리도 내어주고
뿌리에서 지엽까지 이승에서 저승까지
오로지 베풂으로 전부를 바치는 몸
세상은 이런 어진 임 있어 아름답고 즐겁다
달
누가
추야장천
고운 저 달
홀로 두어
그리움에
겨운 눈빛
한밤 내
흐르게 해
이 밤을
외로운 사람들
서성이게 하는고.
낙강洛江은 영원하다
-축 낙강洛江 40호 출간
심신을 길러 주신
나의 모토 낙강이여
흘러운 굽이굽이
흥겨운 풍류 이루고
우리의 금수강산에
정을 한 폭 더했다.
덧없는 세상이라
인생도 무상한데
끝없이 어어 가는
유려한 이 강에서
목숨이 있는 날까지
유유자적 즐기리라.
사랑한 죄
가장 크게 죄를
염라대황 묻는다면
몸매에도 쉬지 않고
사랑한 죄 지었니다
연옥을 간다고 해도
사랑한 죄 지었니다.
소망
어제는 초원에 앉아
푸른 임과 즐겼더니
오늘은 해변에 와서
소라 껍질 주우면서
거두어 옮기어 가는
물결을 바라보네.
나를 몰고 온 바람
어디엔가 또 옮겨 놓겠지
가는 곳 오직 소망은
사랑만인 화원인데
예비한 씨가 있는가
심은 대로 간다 하는데.
<「소망」은 이 시조집 마지막에 실은 작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