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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대학 CEO 특강을 회상하며
감사의 말씀
내가 특강을 하였던 추억에서 남기고 싶은 것 가운데 하나는 중국청도농업대학교와 한국국립창원대학교가 공동설립한 제2기 한중최고경영자과정 강의를 들 수 있다. 한국국립창원대학교 중국비즈니스인력양성사업단과 중국청도농업대학교 경제무역학원이 의욕적으로 설치한 한중최고경영자과정으로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 특별과정은 청도대에서는 김정희 교수가 주도적으로 설치하여 실질적으로 운영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특강을 위해 2차례 초청을 받았다. 1차는 제2기 특강 방문으로 2008. 8.12(화)~14(목), 그리고 2차는 제3기 특강 방문으로 2009 9.20(일)~9.24(목) 기간이었다. 내가 김정희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김교수가 연변대 교수이었던 때인 것 같다. 나는 김박사가 한국에서 어려운 유학생활을 할 때에도 심적인 격려외에는 별다른 도움을 준적도 없는데 나를 한국의 저명한 전직관료를 비롯한 특급강사급으로, 요즈음 시체말로는 스타강사로 초청하여 융숭한 예우를 해주어서 항상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어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이 자리에 기행문으로 남기고 싶다. 김정희교수 내외분, 그리고 이명권 교수와 김옥란 교수와 함께한 추억들을 회상하면 인생의 맘맛갈을 다시 한번 음미하며 감사드린다.
청도의 바람과 사람, 짙은 기억의 편린
제2기 특강과 바빴던 하루
“GAE시대의 한・중 FTA와 경제협력 방향”, 제2기 한중최고경영자과정 CEO 특강, 한국국립창원대학교 중국비즈니스인력양성사업단과 중국청도농업대학교 경제무역학원 공동프로그램, 2008.8.12(화)-8.14(목)
2008년 8월, 여름의 절정이 지나가던 무렵, 나는 중국 산동성 청도대학 특강이라는 새로운 여정을 앞에 두고 있었다. 8월 12일 화요일, 새벽 4시.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청도의 풍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오전 6시, 분주히 공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학자로서의 긴장감과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이 묘하게 교차했다. 중국 동방항공에 몸을 싣고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청도에 도착했을 때, 창밖으로 펼쳐진 산동지역 풍경이 나를 반겼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중이 조금 늦어진 탓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서둘러 관광 안내를 통해 이명권 교수께 연락을 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김정희 교수와 이명권 교수의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니, 타지에서의 낯섦은 금세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海夢圓貴賓樓에 여장을 풀고 우리는 곧장 ‘안박사 면옥’으로 향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점심은 한식으로 하고 본격적인 일정에 들어갔다.
오후에는 ‘다산악세사리공장(靑島茶山人造首飾有限公司)’을 방문하여 중국 경제의 역동적인 현장을 목격했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생산 현장과 그 속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오후 4시, 청도대학에서의 특강이 시작되었다. ‘GAE/Great Asia Era 시대의 한·중 FTA와 경제협력 방향’라는 주제의특강에 약 30여 명의 학생과 CEO들이 보여준 진지한 눈빛은 이번 여정의 가장 큰 보람이었다.
지식을 나누고 공감하는 소통의 장에서 나는 가르침의 기쁨을 다시금 확인했다. 어느덧 하루가 저물어갈 무렵, ‘수라청’에서의 저녁 식사는 따뜻한 정을 나누기에 충분했다. 식사 후 ‘커피앤브레이크’에서 마신 맥주 한 잔은 청도의 밤바람과 어우러져 달콤한 여운을 남겼다. ‘풀하우스’라는 이름처럼, 오늘 하루는 사람들로, 그리고 가르침과 배움의 열정으로 가득 찼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청도의 푸른 바다만큼이나 깊고 진한 기억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8월 13일 수요일, 호텔에서 조식을 마친 후 오전 7시 30분에 노산공원으로 향했다. 기암괴석이 빚어낸 자연의 조화는 경이로웠고, 해안선을 따라 절벽의 찻집에서 잠시 멈춰 마신 차 한 잔은 일상의 모든 고민을 부드럽게 녹여주었다. 카페 창을 통해 펼쳐지는 건너편 웅장한 산세와 가파른 벼랑과 바위산의 절경에 탄성이 나올 뿐이었다.
길게도 이어지는 산자락 길을 구비 돌아가 해변에 이르렀다. 미리 계획이 있었는지 비치의 백사장에는 절음이 이글거리는 용광로가 보였다. 우연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이명권 교수의 연길 초등학교 친구들이 피서를 온 것이었다. 연변에서 타향으로 흩어졌던 친구들이 청도해변에서 다시 만나 휴가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세월의 두께와 변치 않는 우정의 깊이를 발견했다.
점심은 ‘해몽원’ 호텔 수산센터에서 하였다. 청도농학원 原永兵 부총장과 학원장님께서 직접 자리를 마련해 주신 이 오찬은 단순히 식사를 넘어, 학문적 교류와 사람 사이의 정이 깊어지는 귀한 자리였다. 오후에는 숙소로 돌아와 그간의 기록을 컴퓨터에 정리했다. 기록은 기억을 고착시키는 마법이다. 저녁에는 바닷가 한식집에서 김 교수 내외, 이 교수 내외와 함께하며 청도의 깊어가는 밤을 넉넉한 담소로 채웠다.
8월 14일 목요일,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았다. 오전에는 청양의 세기공원(靑島城陽世紀公園)을 찾아 올림픽의 열기가 일렁이는 현장을 둘러보았다.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감지되는 도시의 활력은 인상 깊었다. 이어 점심은 수라청에서 임원회의에 배석하여 함께 회식을 하고, 조선족이 운영하는 ‘청도문현복장유한공사’를 찾아 박문현 사장의 브리핑을 듣고 현장 시찰을 하였다. 타국에서 당당히 사업체를 일구고 임원들과 함께 수라청에서 식사를 나누는 모습에서 조선족 동포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다.
짧지만 밀도 높았던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향했다. 떠나는 길, 김정희 교수를 비롯한 여러 동료들의 아쉬운 배웅을 받으며 귀국길에 올랐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청도를 보며, 이번 여행이 나의 삶과 글 속에서 어떤 시어와 이야기로 다시 피어날지 생각했다. 2008년의 여름, 청도에서 보낸 이 밀도 높은 시간은 훗날 내 마음속에 짙은 그리움과 성장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따뜻한 온기가 머물렀던 칭따오의 추억은 이제 나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또 다른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귀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청도는 나에게 단순한 방문지가 아니었다. 청도의 푸른 바다만큼이나 넓은 사람들의 환대, 그리고 학문과 사업 현장에서 만난 이들의 열정이 교차했던 기억의 편린들이다.
짜뚜리 관광
국제회의나 학술대회 같은 행사는 어디를 가든지 본 행사와 더불어, 교통편을 조절하고 겸사하여 다른일도 볼 기회를 주면서 부대행사로 시찰이나 관광 같은 행사가 있게 마련이다. 당시 나의 여행도 그와 다를바 없어서 주변 관광을 하였는데 생각나는대로 관광지 몇군데를 회상하여 본다.
칭다오는 중국 산둥성 동부에 자리한 도시로, 1897년 독일의 조차지가 된 이후 급격히 발전하며 독특한 역사적 궤적을 걷게 되었다. 외세의 침략과 점령이라는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독일인들이 남긴 유럽식 건축물과 붉은 지붕의 가옥들이 도시 곳곳에 보존되어 오늘날 '중국 속의 작은 유럽'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점령을 겪는 등 굴곡진 근대사를 통과해 온 청도는, 오늘날 그 이국적인 경관을 바탕으로 중국 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해안 휴양지로 손꼽힌다. 특히 독일 점령기에 도입된 맥주 제조 기술은 칭다오 맥주라는 세계적인 명물을 탄생시켰고, 이는 도시의 상징이자 문화적 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맥주박물관은 중국의 유명한 맥주 브랜드인 칭다오의 고장으로 100년 동안의 칭다오 맥주 역사와 제조 공정을 한눈에 보고 공장에서 제조한 생맥주를 맛볼 수 있었다. 맑고 깨끗한 환경 속에서 근대사의 흔적과 현대의 낭만이 어우러진 칭다오는 단순한 도시를 넘어, 역사와 문화가 조화롭게 숨 쉬는 특별한 지역이다.
청도의 5.4광장은 중국 근대사의 뜨거운 함성이 서린 상징적인 장소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조차지였던 청도가 일본에 의해 다시 점령당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지자, 중국 지식인과 학생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1919년 5월 4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부터 거대한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항일 운동을 전개했다. 이 5.4운동은 중국인의 민족 자각과 근대화 의지를 일깨운 역사적 변곡점이었다. 오늘날 이 광장은 당시의 정신을 기리는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광장 중심에 자리한 붉은색의 거대한 조형물 ‘5월의 바람’은 횃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민족의 열망을 강렬하게 대변한다. 한때 프랑스인들의 거주지였던 이 공간은 이제 역사의 아픔을 극복하고, 현재의 활기찬 청도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광장을 가득 채운 붉은 조형물의 웅장함 앞에서 칭다오를 찾는 이들은 중국 근대사의 숭고한 발자취를 되새기게 된다. 중국 5.4 혁명을 기념하는 5.4광장은 일본 지배에 대응하여 1919년 베이징에서 일어난 반제국주의 민족운동을 기념하는 광장이다. 횃불 모양의 빨간색 구조물이 인상적이었다.
청도 청양구에 있는 세기공원에 갔다. 지금은 이름이 ‘베이징 올림픽기념공원’으로 바뀌었는데 2008년 제29회 하계 올림픽의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곳이다. 베이징 올림픽은 2008년 8월 8일부터 2008년 8월 24일까지 중국 베이징시에서 개최된 제29회 하계올림픽 대회이자, 2008년 당시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에서 개최된 올림픽이었다. 당시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인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개최된 올림픽은 중국의 위상을 세계에 떨친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청양의 이 공원은 그 영광스러운 순간을 기리기 위해 세기공원을 재단장하여 조성되었다.
이 밖에도 몇가지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청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노산(라오산, 崂山) 역시 압도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해발 1132m에 달하는 이 산은 기암괴석과 푸른 바다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중국 해안선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절경을 선사한다. 그리고 과거 청도는 한국 기업들의 활발한 진출로 교민이 20만 명에 달할 정도로 ‘한국인의 도시’라 불리기도 했다. 연변과 동북지방에 흩어져 있던 교민들이 산동성으로 모여들며 형성된 이 거대한 한인 사회는 청도 경제의 큰 축을 담당했다. 비록 지금은 그 수가 수만 명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청도는 여전히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문화적 접점으로서 깊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첫댓글 심의섭 교수님, 2008년 8월 뜨거웠던 청도의 여름날, 새벽 4시부터 시작되었던 그 바쁘고도 열정 가득했던 하루의 기록을 보며 저 또한 그 시절의 설렘과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오는 듯합니다.
‘GAE 시대의 한·중 FTA와 경제협력 방향’이라는 무게감 있는 주제로, 청도대학 특강에서 30여 명의 학생과 CEO들의 진지한 눈빛을 마주하며 학자로서 보람을 느끼셨다는 대목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산악세사리공장과 청도문현복장 같은 역동적인 경제 현장 시찰부터 노산 절벽 찻집에서의 운치 있는 차 한 잔, 그리고 오랜 연변 친구들과의 극적인 해변 재회까지… 그야말로 학문과 온전한 삶의 낭만이 가득 채워진 밀도 높은 여정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