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 런웨이》
제21화 ― 두 사람의 옷
다음 날 아침.
의상디자인과 실습실은 평소보다 훨씬 시끄러웠다.
재봉틀 소리.
천을 펼치는 소리.
가위가 작업대 위에 놓이는 소리.
그리고 그보다 더 시끄러운 학생들의 목소리.
"이 원단은 너무 두꺼워."
"아니야. 남성복에는 이 정도가 좋아."
"그러면 여성복이 너무 무거워 보이잖아."
"두 벌이 대화해야 한다고 교수님이 말씀하셨잖아."
"그러니까 지금 대화하고 있잖아!"
실습실 한가운데.
커다란 작업대 하나를 중심으로 일곱 명이 모여 있었다.
강인.
미송.
도윤.
소희.
현우.
세나.
그리고 혜린.
작업대 위에는 스케치와 원단 견본, 색연필과 줄자, 패턴지가 뒤섞여 있었다.
도윤이 두 팔을 벌렸다.
"자, 여러분!"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현우가 물었다.
"뭐가?"
도윤은 강인과 미송을 가리켰다.
"어제부터 1일인 두 사람이 오늘부터 같은 팀이 됐습니다."
강인의 얼굴이 굳었다.
미송의 얼굴이 붉어졌다.
"박도윤!"
도윤은 웃었다.
"왜요, 미송 선배? 틀린 말 아니잖아요."
소희가 바로 끼어들었다.
"정확히는 어제부터 2일째지."
미송이 소희를 노려봤다.
"윤소희."
"왜?"
"너까지 이럴 거야?"
소희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난 늘 네 편이야."
"그런데?"
"네 편이라서 놀리는 거야."
도윤이 감탄했다.
"이야. 논리가 완벽하십니다."
소희가 도윤을 바라봤다.
"너는 조용히 해."
"왜 나한테만 그래요?"
"시끄러우니까."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앞으로 할 것 같아서."
도윤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송강인."
강인이 원단을 보며 대답했다.
"왜."
"나 상처받았다."
"괜찮아."
도윤이 굳었다.
"뭐가 괜찮아?"
강인은 여전히 원단만 바라봤다.
"금방 나을 거야."
소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미송도 결국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혜린의 시선이 잠시 강인에게 머물렀다.
강인은 미송이 웃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혜린의 미소가 아주 조금 사라졌다.
그때 세나가 차갑게 말했다.
"다들 놀러 왔어?"
웃음소리가 멈췄다.
세나는 자신의 스케치북을 작업대 위에 펼쳤다.
"이번 과제, 장난 아니야."
현우가 세나 옆에 섰다.
"맞아."
도윤이 물었다.
"그래서 벌써 다 했어?"
세나가 말했다.
"적어도 떠들고 있지는 않지."
소희가 미송에게 작게 속삭였다.
"쟤는 아침부터 왜 저렇게 힘이 넘치니?"
미송도 작게 대답했다.
"원래 그래."
세나가 두 사람을 바라봤다.
"다 들려."
소희가 웃었다.
"들으라고 한 말이야."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도윤이 강인에게 속삭였다.
"무섭다."
강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자들 싸움은 말리지 말자."
"응."
미송과 소희가 동시에 두 사람을 바라봤다.
"다 들려."
강인과 도윤은 입을 다물었다.
현우가 작업대 위에 스케치를 펼쳤다.
남성복과 여성복.
두 벌 모두 날카롭고 세련된 선을 가지고 있었다.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누군가 감탄했다.
"역시 최현우다."
"벌써 디자인을 완성했어?"
세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는 도시의 밤을 주제로 할 거야."
도윤이 스케치를 바라봤다.
"멋있네."
현우가 강인을 바라봤다.
"너희는?"
강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스케치가 없었다.
세나가 미소 지었다.
"설마 아직 주제도 못 정한 건 아니지?"
미송의 표정이 굳었다.
강인은 조용히 말했다.
"아직입니다."
세나가 웃었다.
"솔직하네."
현우는 강인을 한동안 바라보다 말했다.
"늦게 시작하는 건 상관없어."
강인이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늦게 끝내면 지는 거야."
강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쳤다.
도윤이 작게 중얼거렸다.
"또 시작됐네."
소희가 물었다.
"뭐가?"
"남자들끼리 눈으로 싸우는 거."
"누가 이긴 것 같아?"
도윤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모르겠어요."
"왜?"
"둘 다 눈을 안 깜빡여서."
소희가 웃었다.
그때였다.
짝!
누군가 손뼉을 쳤다.
실습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김태석 교수였다.
그 옆에는 이영숙 교수가 서 있었다.
김태석은 학생들을 둘러봤다.
"내가 과제를 내 준 이유를 잊은 모양이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옷."
김태석이 작업대 위의 스케치들을 바라봤다.
"두 벌을 비슷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그는 현우와 세나의 스케치를 집어 들었다.
"같은 색."
"같은 소재."
"비슷한 장식."
스케치를 내려놓았다.
"그건 대화가 아니라 복사야."
현우의 표정이 굳었다.
세나가 입술을 다물었다.
김태석은 계속 말했다.
"남자와 여자가 똑같은 말을 하면 대화인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도윤이 아주 작게 말했다.
"싸움 아닐까요?"
소희가 급히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
김태석의 시선이 도윤에게 향했다.
"박도윤."
"네, 교수님."
"할 말 있나?"
"없습니다."
"방금 들었는데."
"제 입이 저 몰래 말했습니다."
실습실에서 웃음이 터졌다.
김태석도 잠시 도윤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자네 입부터 재단해야겠군."
이번에는 이영숙 교수까지 웃었다.
도윤이 강인에게 속삭였다.
"교수님이 농담하셨다."
강인이 대답했다.
"그러게."
"오늘 무슨 날이냐?"
이영숙 교수가 앞으로 나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김태석과 달리 부드러웠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해도 괜찮아요."
학생들이 그녀를 바라봤다.
"중요한 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느냐는 거예요."
이영숙의 시선이 미송에게 향했다.
"한 사람은 바람이 될 수도 있고."
그리고 강인을 바라봤다.
"다른 한 사람은 나무가 될 수도 있죠."
잠시 침묵.
"서로 다르지만 함께 있을 때 하나의 풍경이 되는 것."
이영숙이 미소 지었다.
"그게 이번 과제의 핵심이에요."
미송의 눈빛이 달라졌다.
강인도 생각에 잠겼다.
수업이 끝난 뒤.
강인과 미송은 작업대 앞에 마주 앉았다.
소희와 도윤은 옆에 앉아 있었다.
도윤이 물었다.
"그래서 주제가 뭡니까?"
강인이 대답했다.
"생각 중이야."
"언제까지?"
"모르겠어."
도윤이 한숨을 쉬었다.
"현우 선배는 벌써 스케치까지 끝냈는데."
미송은 연필을 들고 빈 종이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옷."
강인이 말했다.
"선배는 어떤 옷을 만들고 싶습니까?"
미송은 잠시 생각했다.
"자유로운 옷."
"자유로운 옷?"
"응."
미송은 창밖을 바라봤다.
"입는 사람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옷."
강인은 미송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강인이는?"
강인은 잠시 생각했다.
"저는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습니다."
"오래?"
"네."
"얼마나?"
강인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평생."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역시 시골 양복점 아들."
강인이 도윤을 바라봤다.
"왜."
"스무 살이 벌써 평생을 생각하잖아."
소희가 말했다.
"좋은데?"
도윤이 소희를 바라봤다.
"뭐가요?"
"한 사람은 자유롭게 떠나고 싶고."
소희는 미송을 가리켰다.
"한 사람은 오래 곁에 있고 싶고."
강인을 가리켰다.
"서로 다르잖아."
미송의 눈빛이 달라졌다.
강인도 소희를 바라봤다.
소희가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잘 어울려."
잠시 침묵.
미송이 연필을 들었다.
종이 위에 선을 그었다.
한쪽은 바람처럼 흐르는 여성복.
다른 한쪽은 단단한 구조의 남성복.
강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선배."
"응."
"그거 좋습니다."
미송이 웃었다.
"정말?"
"네."
강인은 연필을 들었다.
그리고 미송의 선 옆에 자신의 선을 더했다.
두 사람의 연필이 같은 종이 위를 움직였다.
도윤과 소희는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도윤이 말했다.
"우리 이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왜요?"
"눈치 없어?"
"있는데요."
"그럼 가."
두 사람이 일어났다.
바로 그때.
"강인아."
혜린의 목소리였다.
강인이 고개를 들었다.
혜린이 다가왔다.
"모델 정했어?"
"아직입니다."
"그럼 나 어때?"
미송의 연필이 멈췄다.
혜린은 강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입어 줄게."
강인이 당황했다.
"아직 디자인도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좋지."
혜린이 웃었다.
"내 몸에 맞춰서 만들면 되잖아."
미송의 표정이 굳었다.
소희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도윤도 눈치를 챘다.
두 사람이 동시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혜린이 강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나 키도 크고 비율도 좋잖아."
"그렇습니다."
미송의 연필이 다시 멈췄다.
혜린이 물었다.
"그럼 됐네."
강인은 미송을 바라봤다.
미송은 스케치만 보고 있었다.
"선배."
"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송이 대답했다.
"네가 알아서 해."
목소리가 차가웠다.
강인은 굳었다.
도윤이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위험."
소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위험."
하지만 강인은 몰랐다.
"그럼 혜린 선배에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도윤이 눈을 감았다.
소희가 이마를 짚었다.
미송은 천천히 연필을 내려놓았다.
"그래."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인이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집에."
"벌써요?"
"응."
"같이 가겠습니다."
"싫어."
강인의 얼굴이 굳었다.
"왜요?"
미송은 강인을 바라봤다.
"모델이랑 이야기해."
그리고 돌아섰다.
강인은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미송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혜린은 아무 말 없이 미소 지었다.
도윤이 강인에게 다가왔다.
"강인아."
"왜."
"너 죽었다."
강인이 놀랐다.
"왜?"
소희가 한숨을 쉬었다.
"정말 몰라?"
"네."
소희는 도윤을 바라봤다.
"얘 원래 이래?"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미송이 고생하겠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강인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도윤이 강인의 어깨를 잡았다.
"송강인."
"왜."
"지금 당장 따라가."
"누구를?"
도윤과 소희가 동시에 소리쳤다.
"미송 선배!"
강인은 그제야 가방을 들었다.
그리고 뛰었다.
"선배!"
복도를 달려 나가는 강인을 보며 소희가 한숨을 쉬었다.
도윤이 말했다.
"그래도 뛰기는 잘하네요."
소희가 웃었다.
"연애는 못해도 달리기는 잘하네."
복도 끝.
강인은 계단을 내려가는 미송을 발견했다.
"선배!"
미송은 멈추지 않았다.
"미송 선배!"
강인은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녀 앞을 막아섰다.
"왜 화나셨습니까?"
미송은 강인을 바라봤다.
"나 안 화났어."
"화나셨습니다."
"아니야."
"맞습니다."
미송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런 건 어떻게 알아?"
강인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목소리가 다릅니다."
미송은 잠시 말이 없었다.
강인이 물었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미송은 그를 바라봤다.
정말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혜린이 예뻐?"
강인의 눈이 커졌다.
"네?"
"예쁘냐고."
강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미송이 말했다.
"됐어."
그녀가 돌아서려는 순간.
강인이 말했다.
"예쁩니다."
미송이 멈췄다.
강인은 계속 말했다.
"혜린 선배는 모델이니까 예쁩니다."
미송의 표정이 더 차가워졌다.
"그래?"
"하지만."
강인은 미송을 바라봤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선배입니다."
미송의 눈빛이 흔들렸다.
강인은 아주 진지했다.
"예쁜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미송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웃음이 터졌다.
"바보."
"왜 웃으십니까?"
"몰라도 돼."
미송은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강인이 옆을 따라갔다.
"선배."
"응."
"이제 화 안 나셨습니까?"
"조금."
"아직 화나셨습니까?"
"응."
"어떻게 해야 풀립니까?"
미송이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일 아침까지 생각해 봐."
강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어렵습니까?"
미송은 웃었다.
"아주."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멀리서 늦가을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그날 밤.
강인은 하숙방 책상 앞에 앉아 밤새 고민했다.
미송 선배의 화를 풀어 주는 방법.
꽃?
편지?
원단?
강인은 한참 고민하다가 종이에 적었다.
1. 사과한다.
잠시 후.
그 아래에 하나를 더 적었다.
2. 왜 화났는지 알아낸다.
강인은 한참 그 문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게 더 어렵네."
옆에서 자고 있던 도윤이 이불 속에서 말했다.
"그러니까 연애가 재단보다 어려운 거야."
강인이 놀라 돌아봤다.
"안 잤어?"
"네가 한숨을 열두 번 쉬었어."
강인은 다시 종이를 바라봤다.
도윤이 물었다.
"그래서 내일 어떻게 할 건데?"
강인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어."
도윤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미송 선배, 힘내십시오."
강인이 도윤을 바라봤다.
"왜 미송 선배를 응원해?"
이불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너랑 연애하니까."
늦은 밤.
작은 하숙방에 강인의 한숨이 다시 울렸다.
열세 번째였다.
― 제21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