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世子)에게 명하여 구전(舊殿)에 나가 거처하게 하였다.
세자가 임금을 알현(謁見)한 뒤로 임금이 세자에게 명하여 혹은 조계(朝啓)에 참여하게 하고, 혹은 교외(郊外)로 어가(御駕)를 수종(隨從)하게 하고, 또 매일 임금을 모시고 활을 쏘았다.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세자가 어리(於里)를 도로 받아들이고 또 아이를 가지게 하였다는 소식에 노하여, 세자로 하여금 구전(舊殿)에 거처하게 하고, 나와서 알현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인하여 그 전(殿)의 내관(內官) 신덕해(辛德海)·정징(鄭澄)을 의금부(義禁府)에 가두었다.
이날 신루(新樓)에 나아가서 정사를 보고, 일이 끝나자 대간(臺諫)과 반열(班列)의 제경(諸卿)이 차례로 나가는데, 박은(朴訔)이 나갈 때를 당하여 임금이 말하였다.
“너희 대언(代言)들은 모두 나가라.
내가 좌의정(左議政)과 일을 의논하고자 한다.”
여러 대언이 모두 나갔다. 한참 뒤에 임금이 명하여 세자전(世子殿)의 소환(小宦) 이전기(李全奇)를 의금부에 가두고, 신덕해·정징을 석방하고, 좌대언(左代言) 이명덕(李明德)을 불러 말하였다.
“지난번에 세자(世子)가 곽선(郭璇)의 첩(妾) 어리(於里)를 빼앗아 궁중(宮中)에 들이었으나, 내가 즉시 쫓아 버렸다.
이제 들으니, 김한로(金漢老)의 어미가 들어가 숙빈(淑嬪)을 볼 때 어리를 데리고 몰래 들어가서 아이를 가지게 하였다.
또 세자전에 들어가 데리고 바깥으로 나와서 아이를 낳게 하고, 도로 세자전 안으로 들이었다.
김한로 등이 나에게 충성하고 사직(社稷)을 위하는 계책인가? 아니면 세자를 사랑하여 하는 것인가?
또 들으니, 세자가 성녕(誠寧)이 죽었을 때에 궁중(宮中)에서 활쏘는 놀이를 하였다니, 동모제(同母弟)의 죽음을 당하여 부모가 애통하는 때에 하는 짓이 이와 같다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내가 변중량(卞仲良)의 심행(心行)이 부정(不正)하다고 하였으나, 아우 변계량(卞季良)의 마음가짐은 바르다고 하여, 세자 빈사(世子賓師)의 자리에 거(居)하게 하였다.
아비가 능히 자식을 가르칠 수 없으니, 스승이 어찌 능히 가르치겠는가마는, 그러나 세자로 하여금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책임이 없을 수 없다.”
이어서 변계량을 불러서 전지(傳旨)하였다. “형(兄)이 용렬하고 경(卿)이 훌륭함은 내가 익히 알고 있다.
세자를 가르치는 데 사람을 고르지 않을 수 없으므로, 경(卿)으로 하여금 세자 빈객(世子賓客)으로 삼아 선(善)하게 인도하도록 하였다.
이제 이처럼 불선(不善)하니, 이것이 비록 경(卿)의 알지 못하는 바이라 하나, 빈사(賓師)가 된 자로서 부끄럽지 아니한가?”
찬성(贊成) 이원(李原)을 불러서 말하였다.
“옛날 이무(李茂)를 결죄(決罪)할 때 구종수(具宗秀)가 그때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가 되어 공사(公事)를 누설하고, 그 후 궁(宮)의 담장을 뛰어 넘어가서 세자전(世子殿)에 출입하였다.
일이 발각되자 내가 이를 싫어하여 경(卿)과 황희(黃喜)에게 물으니, 경(卿)은 그 죄를 묻자고 청하였으나, 황희는 말하기를, ‘매[鷹]와 개[犬]의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고 하고 다시 죄를 청하지 아니하였다.
경(卿)은 그 일을 잊어버렸는가?” 이원이, “신(臣)은 잊지 않았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세자(世子)에게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종사(宗社) 만세(萬世)를 위한 계책이다. 세자의 동모제(同母弟)가 세 사람이었는데, 이제 한 아들은 죽었다.
장자(長子)·장손(長孫)에게 나라를 전하는 것은 고금의 상전(常典)이니, 다시 다른 마음이 없으며, 여기에 의심이 있다면 천감(天鑑)에 합(合)하지 않는 것이다.
마땅히 이 말을 의정(議政)에게 고(告)하라.” 박은이 이원과 더불어 청(請)하였다. “황희가 하문(下問)에 대답하는 날을 당하여, ‘매[鷹]와 개[犬]의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고 하였으니, 그 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청컨대, 그 까닭을 국문(鞫問)하소서.”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승선(承宣) 출신(出身)인 자를 우대하기를 공신(功臣) 대접하는 것과 같이 하기 때문에, 황희로 하여금 지위가 2품에 이르게 하여 후하게 대접하는 은의(恩誼)를 온 나라가 아는 바이다.
그러나, 이 말은 심히 간사하고 왜곡되었으므로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로 내쳤다가 지금 또한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로 삼아 좌천하였는데, 어찌 다시 그 죄를 추문(推問)하겠느냐?” 박은 등이 다시 청하였다.
“황희가 주상의 은혜를 받고도 올바르게 대답하지 않고, 그 간사하기가 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상이 자비하여 죄를 주지 않는다면 그 밖의 간신(奸臣)을 어찌 징계하겠습니까?” 임금이, “마땅히 나오게 하여 물어보아야 하겠다.
그러나, 항쇄(項鏁) 따위의 일은 없애라.” 하고, 이에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김상녕(金尙寧)을 한경(漢京)에 보내어 잡아 왔다.
또 말하였다. “부인(婦人)은 지아비의 부모(父母)를 중하게 여겨야 한다.
숙빈(淑嬪)은 비록 지아비의 뜻을 따랐으나 나의 뜻을 어찌 알지 못하였는가? 어리(於里)를 몰래 들인 것을 내가 심히 미워한다.”
이에 내관(內官) 정징(鄭澄)·사알(司謁) 차윤부(車允富)에게 명하였다. “한경(漢京)에 가서 숙빈(淑嬪)을 아비집으로 내보내라. 다만 노비(奴婢)를 주어서 보내라.
그 맏딸과 맏아들은 은혜를 베풀어 전(殿)에 머물게 하여 옛날대로 공급(供給)하라. 막내딸은 그 어미를 따라가 거주하게 하고, 또 그 첩(妾)의 딸들로 하여금 숙빈(淑嬪)을 따라가 같이 거주하게 하라.
또 평양군(平壤君)이 준 비자(婢子)를 빼앗아 전(殿)에 머물게 하라.
정상을 알고 모의에 참여한 시녀(侍女) 한두 명에게 물어보고 오라.” 이어서 숙빈(淑嬪)에게 전교(傳敎)하도록 하였다.
“부인(婦人)은 지아비의 집을 내조(內助)하는데, 네가 지난해의 사건 때에도 나에게 고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책망하니 네가 대답하기를, ‘분명히 죄가 있습니다.
뒤에는 마땅히 고쳐 행동하겠습니다.’고 하였다. 이제 너는 이 사건에서도 또 나에게 고(告)하지 않았으니, 이미 나를 속이고, 또 너의 지아비의 부덕(不德)한 것을 드러낸 까닭으로 내보낸다.”
또 김한로가 전날에 말미[由]를 받고 한경(漢京)에 갔는데, 이제 소환(召還)하여 오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심히 미워하여 말하기를, “주홍 두꺼비이다.” 하고, 말을 재촉하여 급히 오게 하고, 최한(崔閑)·이명덕(李明德)·하연(河演)·원숙(元肅)·성엄(成揜) 등에게 명하여 묻게 하였다. “세자(世子)가 어리(於里)를 또 들이어서 아이를 가진 사실을 경(卿)은 알았는가?” 김한로가 대답하였다 “신은 실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이를 쫓아낼 때를 당하여 세자(世子)가 근심하고 괴로와하여 침식(寢食)을 편히 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그녀의 인생이 가엾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이 말을 듣고 세자(世子)의 정(情)을 가련하게 여겨 그녀로 하여금 연지동(蓮池洞) 집에 와서 거의 1개월 가량 살게 하였습니다.
그녀가 집을 사서 나가서 거처하게 되자, 신(臣)이 구량(口糧)을 주었습니다.
또 날짜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만, 구종지(具宗之) 등이 복주(伏誅)된 뒤 거의 한 달 만에 한 소환(小宦)이 신의 향교동(鄕校洞) 집에 와서 말하기를, ‘세자가 말하기를, 「그녀를 만나보고자 하니, 경이 주상(主上)에게 상달(上達)하여 도로 들이게 하라.」고 하였다.’고 하였으나, 신이 틈을 얻지 못하여 여러 날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소환(小宦)이 또 와서 이미 아뢰었는지의 여부를 묻기에 대답하기를, ‘아뢰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안 되어 소환(小宦)이 신을 길에서 보고 말하기를, ‘세자가 말하기를, 「주상이 허락한다면 가(可)하지만 동념(動念)한다면 불가(不可)하니, 마땅히 아뢰지 말라.」고 하였다.’하였으므로, 신이 이를 듣고 그만두었습니다.
그녀가 전내(殿內)에 도로 들어갔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이명덕 등이 이에 의거하여 아뢰니, 임금이, “경이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그만이지만, 국론(國論)이나 나의 마음으로서는 경이 실로 알지 못하였다고 하겠는가?” 하니, 김한로가 대답하기를, “사세(事勢)로 본다면 주상의 마음이나 국론(國論)에서는 반드시 신이 알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세자(世子)에게 마치 새끼를 키우는 호랑이와 같이 엄하게 하고자 하였다.
경은 사위[壻]를 사랑하여 그녀를 살도록 허락하고, 그 양식과 간장을 주었으니, 경은 과연 덕(德)이 있다.
지난번에 경에게 명하여, 숙빈(淑嬪)에게 세자(世子)의 잘못을 고(告)하지 않은 허물을 가르치게 하니, 대답하기를, ‘과연 잘못이 있습니다.’고 하고, 이제 다시 전과 같이 나의 명(命)을 따르지 않은 것이 시아비[夫父]를 중(重)하게 여기는 짓이냐? 이제 이미 사람을 보내어 경의 집으로 내쫓았다. 내가 용렬한 자질로서 나라의 임금이 되어 외척(外戚)에게 변고(變故)가 있었고, 골육(骨肉)을 상(傷)하게 하여 부왕(父王)에게 죄를 지은 것을 나는 심히 부끄러워 한다.
그러나, 모두 나의 소치(所致)가 아니었다.
이제 또 아들의 처가(妻家) 친척들에게 감히 불선(不善)한 일을 행하고자 하겠는가? 나와 경은 어릴 때부터 교제가 두터웠고, 또 한 집안을 이루었다.
경의 나이가 61세이니, 나와 경이 사생(死生)의 선후(先後)를 대개 알지 못하는데, 세자(世子)로 하여금 어질도록 만들어야 경이 그 부귀(富貴)를 평안히 누릴 것이다.
이제 경은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고, 그로 하여금 불의(不義)한 짓을 하게 하였으니, 이씨(李氏)의 사직(社稷)은 어찌 되겠느냐?
경의 한 일을 만약 바른대로 진술(陳述)하면 죄의 경중(輕重)을 내가 마땅히 처리할 것이며, 어찌 반드시 유사(有司)에 내려서 이를 묻겠는가?”
김한로가 마음으로 의심하여, 여러 번 그 말을 바꾸어서 오히려 알지 못한다고 하니, 그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였다.
김한로가 물러가자, 이명덕 등이 아뢰기를, “신 등이 이미 그 말을 듣고 그 안색을 보니, 김한로의 거짓이 드러났습니다.
청컨대, 의금부(義禁府)에 내려 그 정상을 국문(鞫問)하소서.” 하니, 임금이, “어찌 반드시 유사(攸司)에 내리겠는가? 너희 4대언(代言)은 이미 같이 묻고 들었고, 나도 또한 그 곡직(曲直)을 아니, 다시 청하지 말라.” 하고, 또 김한로를 불러서, 여러 대언(代言)에게 명하여 정상을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를 다시 물으니, 김한로가 말하였다.
“오늘 집에 돌아가서 계집종[婢]에게 물으니, 불비(佛婢)가 말하기를, ‘지난해의 세자(世子)의 생일(生日)에 택주(宅主)가 전(殿)에 들어갔다가 도로 나올 때 한 시녀(侍女)가 택주(宅主)의 일행에 감싸여 나왔습니다.’고 하였으므로 그제서야 그 여자가 전(殿)에 들어갔다가 도로 나온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윽고 또 말하였다. “지난해의 세자의 생일 뒤에도 시녀(侍女) 한 사람이 모친(母親)을 감싸고 나왔다고 들었으므로 불비(佛婢)에게 어떤 여자이었는지를 물으니, 불비가 말하기를, ‘뒤에 들어간 여자는, 어리(於里)인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대언(代言) 등이 김한로의 말의 실마리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힐문하니, 김한로가 반박하기를, “그 사실은 오늘 비로소 알았으니, 이에 의거하여 갖추 아뢰어 주시오.”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옛날 초궁장(楚宮粧)이 쫓겨날 때에도 경은 머물러 두기를 청하였으니, 경이 세자(世子)를 위하여 악(惡)을 꺼리는 마음을 내가 이미 알고 있다.
경이 바른 대로 말하면 경의 죄는 내가 바로 상량(商量)하여 처리하겠다.” 김한로가, “발명(發明)할 바가 없습니다.
마땅히 정상을 알았던 것으로써 죄를 받겠습니다.” 하니, 그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였다.
【원전】 2 집 221 면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주D-001]숙빈(淑嬪) : 세자빈 김씨(金氏).
[주D-002]항쇄(項鏁) : 목에 씌우는 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