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문학제 문학의 밤(제목 미정) - 부제 <시로 읽는 신동엽의 생애>
때: 2010. 4. 17(토) 저녁 7시-9시 곳: 부여 청소년수련원 소강당
출연진(미확정) 도종환, 김 근 시인 외 낭송문인들 바이올렛 씨어터 제비꽃 김윤진 무용단 무빙이미지그룹 반달 그림자놀이 꿈 휴 김은희
연출: 최창근(극작가 겸 연출가)
공연 차례
* 전체 내레이션 - 양말복 배우
[오프닝-시]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중 <서화(序話)> - 배우 낭독 및 구음
당신의 입술에선 쓰디쓴 풀 맛 샘 솟더군요. 잊지 못하겠어요. 몸냥은 단 먹뱀처럼 애절하구, 참 즐거웠어요. 여름날이었죠. 꽃이 핀 高原(고원)을 난 지나고 있었어요. 무성한 풀섶에서 소와 노닐다가, 당신은 가슴으로 날 불렀죠 바다 언덕으로 나가고 싶어요. 밤 하늘은 참 좋네요. 지금 地球(지구)는 旅行(여행)을 한다나요? 冠座星雲(관좌성운) 좀 보세요. 얼마나 먼 세상일까요……. 기중 넓은 세상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그럼 그의 밖곁엔 다시 또 딴 마당이 없는 것일까요?
자, 손을 주세요. 밤이 깊었어요. 먼저 쉬이세요. 못 잊으려나 봐요. 우리가 抱擁(포옹)턴 하늘에 솟은 바위, 그 밑에 깔린 구름, 불 달은 바위 위에서 웃으며 잠들던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던 당신의 붉은 몸.
언제여든 필요되거든 조용히 시작되는 그 序舞曲(서무곡)으로 白鶴(백학)의 大圓(대원) 휘파람 하세요. 돌아가 묻히겠어요, 陽(양)달진 당신의 꽃 가슴으로. 아마 운명인가 봐요. 그럼 안녕히.
[내레이션] 소년 신동엽과 식민지시대
1930년(1세) : 8월 18일 오전 5시. 충남 부여읍 동남리 294번지에서 아버지 신연순과 어머니 김영희 사이에서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시인이 태어난 1930년은 만주사변 발발 1년 전이며, 무기를 만들기 위해 조선에 일본의 수탈이 본격화되던 때다.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누이 동생 4명이 목숨을 잃었고 어린 시절 내내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해 병약했다.
1937년(8세): 4월1일 부여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학업성적은 매우 우수했다. 6학년 되던 해 내지(일본) 성지참배(聖地參拜) 학생으로 선발되어 15일 동안 일본을 여행할 정도로 모범생이었다. 소년 신동엽은 창씨 개명한 “히라야마 야키치(平山八吉)”로서 단지 일본의 국민이었다.
1943년(14세) :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 가난하여 공주중학(公州中學)을 못 가고 모두 관비로 운영되었던 전주사범학교를 지원하게 되었다. 전주사범시절 시인의 별명은 ‘재래종’이었다. 그 별명에는, 시골 출신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외진 시골에서 자란 시골뜨기가 어려운 전주사범에 당당하게 들어왔다는 뜻도 있었다. 공부보다는 근로 봉사라 하여 들로 산으로 동원되는 때였다. 그는 독서에 빠졌을 뿐 지나칠 정도로 말이 없었다. 일제말기 태평양전쟁은 점점 일본에 불리해졌다.
[시 & 그림자극] 주린 땅의 지도원리 - 낭독 및 대금연주(충남)
내 고향은 바닷가에 있었다. 고기도 없는 바다 열 구비 돌아들면 물 쑤신 할머니.
그것은 山(산)이었다. 노루 없는 山(산) 벌거벗은 내 고향 마을엔 봄, 갈, 여름, 가난과 학대만이 나부끼고 있었다.
한강 백사장 東學戰爭(동학전쟁) 삼베 구름떼 電信柱(전신주) 밑 파헤쳐 보아도
하와이에도 萬里長城(만리장성) 城(성)돌 밑에도 南洋群島(南洋群島) 밀짚帽子(모자) 아래에도, 없었다. 二百萬(이백만)을 生埋葬(생매장)해 보아도 사랑과 에미의 가슴 銃(총)알 속 쓸어넣어 보아도 미쳐 보아도.
投票(투표)에도, 연설에도, 무슨 무슨 主義(주의)에도 시원한 바람, 부드러운 鳳凰(봉황)은 나타나 주지 않았다.
억울하게 諦念(체념)만 하고 살아가는 나의 땅 祖國(조국)아. 긴 錦江(금강) 나의 사랑 나의 歷史(역사)여.
언젠가 우리들의 知性(지성) 높은 몸부림 푸른 大地(대지)를 채울 날은…….
호미 쥔 손에서 쟁기 미는 姿勢(자세)에서 歷史(역사)밭을 갈고 뒤엎어서 씨 뿌릴 그래서 그것이 百姓(백성)만의 천지가 될…….
하여, 등덜미 붙어사는 寄生族(기생족)들의 귀족습성. 進化論的(진화론적) 악종의 빈대, 빈대. 아랫도리를 후려서 면도를 밀면, 이젠 살아남은 살꽃으로 너와 나 입술을 부비고.
내 고향은 바닷가에 있었다. 굶어 죽은 누더기 五百年(오백년) 매달린 내 사랑하는 조국은 벌거벗은 黃土(황토).
살림이며 歷史(역사)며 貴夫人(귀부인)은 항시 중앙궁성 높은 大監(대감)집 위에서만 榮華(영화)되고 있었다.
[산문] <나의 설계> 서둘고 싶지 않다 - 배우 낭독
내 故鄕(고향) 사람들은 봄이 오면 새파란 풀을 씹는다. 큰 가마솥에 자운영 ․ 毒蛇(독사)풀 ․ 말풀을 썰어 넣어 삶아가지고 거기다 소금, 기름을 쳐서 세 살짜리도, 七旬(칠순) 할아버지도 콧물 흘리며 우그려 넣는다. 마침내 눈이 먼다. 그리고 洪水(홍수)가 온다. 洪水(홍수)는 장독, 상사발, 짚신짝, 네 기둥, 그리고 너무나 훌륭했던 人生諦念(인생체념)으로 말미암아 抵抗(저항)하지 않았던 이 자연의 아들 딸을 실어 달아나 버린다. 이것이 人間(인간)들의 內質(내질)이다. 오늘 人類(인류)의 外皮(외피)는 너무나 극성을 부리고 있다. 키 겨룸, 속도 겨룸, 量 겨룸에 거의 모든 행복을 소모시키고 있다. 헛 것을 본 것이다. 그런 속에 내 인생, 내 인생설계의 넌출을 뻗쳐 볼 순 없다. 내 거죽이며 발판은 이미 오래 전애 찢기워져 버렸다. 남은 것은 영혼. 『治大國(치대국), 若烹小鮮(약팽소선)』 老子(노자) 五千言(오천언) 속에 있는 말이다. 『大國(대국)을 다스림은 흡사 조그만 生鮮(생선)을 지짐과 같아야 한다.』 조그만 생선을 지지면서 저깔 수저 등을 총동원하여 이리 부치고 저리 부치고 뒤집고 젖히고 하다 보면 모두 부셔져서 가뜩이나 작은 생선살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을 것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수선피지 말고 살짝 구우라는 것이다. 나도 내 人生(인생)만은 조용히 다스려 보고 싶다. 큰소리 떠든다고 세상 정치가 잘되는 것이 아니듯이 바삐 서둔다고 내 人生(인생)에 큰 떡이 돌아오진 않을 것이다. 그날이 와서 이 옷을 벗을 때까지 산과 들을 바람결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얼마 아니 지나면 가로수마다 윤기 짙은 새 잎이 화창하게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신록의 푸짐한 經營(경영) 밑에 젊은 구둣소리가 또각또각 먼 꿈을 싣고 사라져 갈 것이다. 그 사라져 가는 언덕 너머 내 소년시절의 인생의 꿈은 사리고 있었다. 언젠가 부우연 호밀이 팰 무렵 나는 사법학교 교복 교모로 錦江(금강) 줄기 거슬러 올라가는 조그만 발동선 갑판 위에 서 있은 적이 있었다. 그때 배 옆을 지나가는 넓은 벌판과 먼 산들을 바라보며 <詩(시)>와 <사랑>과 <革命(혁명)>을 생각했다. 내 일생을 詩(시)로 장식해 봤으면. 내 일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 내 일생을 革命(혁명)으로 불질러 봤으면. 세월은 흐른다. 그렇다고 서둘고 싶진 않다.
[내레이션] 아나키스트 신동엽과 해방 그리고 전쟁
1948년(19세) : 혼란된 해방정국 하에 좌․우 대립 속에서 장기결석으로 전주사범에서 제적되었다. 시인은 무정부주의를 지지했다. 농촌 출신 학생들이 그러했듯 토지개혁을 요구하며 ‘민주 학생 연맹’에 가입했다. 이승만 정부와 친일파와 맞설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결석이 잦아져 퇴학당하고 만다. 이후 1949년 9월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한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출판사, 철공소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1950년(20세) : 한국전쟁이 일어나 낙향한다. 고향에서 민청 선전부장을 지내다 ‘국민방위군’에 소집돼 수용된다. 1951년 국민방위군이 해체 돼 부산으로 간다. 이때 간디스토마와 페디스토마에 감염된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요양한다. 이때 충청남도 일대 갑오농민전쟁 전적지를 돌며 자료를 수집한다.
[시] 진달래 산천 - 낭독(천운영 소설가) 미확정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 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 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에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춤] 그 입술에 파인 그늘(시극) - 김윤진 무용단
[내레이션] 청년 신동엽과 사랑
1953년(24세) : 부산에서 단국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후 1955년 군에 입대했다가 1년만에 의가사 제대 후 돈암동 네거리에서 헌 책방을 경영한다. 이 때 부인 인병선을 만난다. 이화여고 3학년이었던 그녀는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한다. 1957년 인병선과 결혼. 장녀 정섭과 장남 좌섭을 얻는다. 이때 인병선은 신동엽의 작품 해석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신동엽의 거의 모든 작품 배경에 깔려 있다.
[대화] 석림과 추경의 편지 - 배우 낭독
아름다운 아츰이었읍니다. 이렇게 똑똑한 일기가 추경 계신 서울에도 베풀어졌기를 바랍니다. 도시생활 반년 만에 돌아온 고향이라서 그런지 주인 없는 친구집에나 간 것처럼 서먹서먹하기 짝이 없어 처음날엔 되짚어 돌아가고 싶은 생각마저 간절했었읍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버지의 지성스런 아껴주심과 누이동생들의 안타까이 사무쳐 넘치는 귀염성, 그리고 친구들의 반가운 모임과 마을사람들과 동리 전체가 풍겨주는 어딘지 모르게 끈기있는 향토적인 온정, 거기에 마지막으로 예나 다름없이 늘 새로운 자극과 풍부한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부여의 자연, 이러한 것들이 곧 나의 마음을 이끌어 매어주어 날이 갈수록 적적한 시골의 습관에 익어가고 있읍니다. 그후, 추경의 맑은 건강 여전 청신하오며 어머님께서도 만안하시온지요. 멀리 계신 존경하옵는 인정식 선생께서와 아직 제가 모르는 변완 형께서도 이 시각 건강하옵기를 특히 조선사람된 마음에서 기원합니다. 지표도 없이 철썩이는 바다끝을 바라보면서 <석림이 추경에게 1954. 1. 22>
석림! 석림이 그 어느 날에는 꼭 쓰고야 말 것이라고 몇 번이나 예언하시던 편지를 그여코 오늘 씁니다. 그처럼 안타까이 사랑하는 석림을 버려서까지 가져야 할 길이란 생리에 순종하고 자연에 복종하는 길… 추경이 찌꺼기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찌꺼기로서 철저해보려는 의욕에서 나온 길입니다. 찌꺼기의 주요소를 배반한다는 것은 곧 추경 자신의 가치를 배반하는 것이요 추경의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석림! 제 가슴이 아니고는 세상이 구해질 것 같지 않아요. 그것만은 석림의 가슴도 또 누구의 손도 믿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너무나 자신에 대한 자신을 가지고 있어요. 그 자신을 사랑 이상의 것으로 인정하고 싶은 남과 다르게 주어진 찌꺼기로서의 추경만의 특권으로서 생각키는 것입니다. 석림! 지금까지의 우리의 사랑은 너무나도 뜨거웠고 추경의 것은 어느 한 구석 의심할 곳 없는 추경 그대로의 정열, 하나도 남김 없는 정열 전부였다는 것과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으로서 너무나 훌륭하였다고 보고 싶습니다. <추경이 석림에게 1954. 3.7.>
[오카리나 연주] 충남
[시] 향아 - 낭독(권여선 소설가) 미확정
향아 너의 고은 얼굴 조석으로 우물가에 비최이던 오래지 않은 옛날로 가자
수수럭거리는 수수밭 사이 걸직스런 웃음들 들려 나오며 호미와 바구니를 든 환한 얼굴 그림처럼 나타나던 석양……
구슬처럼 흘러가는 냇물가 맨발을 담그고 늘어앉아 빨래들을 두드리던 전설 같은 풍속으로 돌아가자
눈동자를 보아라 향아 회올리는 무지개빛 허울의 눈부심에 넋 빼앗기지 말고 철따라 푸짐히 두레를 먹던 정자나무 마을로 돌아가자 미끈덩한 기생충의 생리와 허식에 인이 배기기 전으로 눈빛 아침처럼 빛나던 우리들의 고향 병들지 않은 젊음으로 찾아가자꾸나
향아 허물어질까 두렵노라 얼굴 생김새 맞지 않는 발돋움의 흉낼랑 그만 내자 들국화처럼 소박한 목숨을 가꾸기 위하여 맨발을 벗고 콩바심하던 차라리 그 미개지(未開地)에로 가자 달이 뜨는 명절밤 비단 치마를 나부끼며 떼지어 춤추던 전설 같은 풍속으로 돌아가자 냇물 굽이치는 싱싱한 마음밭으로 돌아가자.
[내레이션] 청년 신동엽과 혁명
1959년(30세) : 1월,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석림(石林)이란 필명으로 조선일보사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입선되었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난다. 시인도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한다. 『학생혁명시집』을 편집했고, <시인정신론>․<내 고향은 아니었었네〉․<아사녀의 울리는 축고> 등 시와 평론을 발표하면서 혁명을 노래한다. 1963년 3월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진달래 산천> 등 18편의 시작을 모아 첫 시집 『아사녀』를 출간한다.
[시] 산에 언덕에 - 낭독 및 기타 연주(충남)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山(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行人(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人情(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시] 껍데기는 가라 - 배우 입체낭독 및 구음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노래] 산에 언덕에 - 그림자놀이 꿈 휴 김은희 가수
[내레이션] 시인의 죽음과 우리의 미래
1969년(40세): 4월 7일. 동선동 자택에서 간암으로 사망. 1951년 국민방위군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배고픔을 참지 못해 낙동강가에서 민물 게인 갈게를 날로 먹었던 것이 간디스토마와 페디스토마에 걸려 간암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날은 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맑았다. 신문에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가 실렸고, 장례는 3일장으로 치렀다.
[시] 서사시 ‘금강’ 중 <후화(後話) 1> - 낭독(김 근 시인)
밤 열한시 반 종로 5가 네거리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통금에 쫓기면서 대폿잔에 하루의 노동을 위로한 잡담 속 가시오 판 옆 화사한 네온 아래 무거운 멜빵 새끼줄로 얽어맨 소년이, 나를 붙들고 길을 물었다,
충청남도 공주 동혈산, 아니면 전라남도 해남 땅 어촌 말씨였을까,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소년의 눈동자가 내 콧등 아래서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들고 바삐바삐 지나가는 인파에 밀리면서 동대문을 물었다,
등에 짊어진 푸대자루 속에선 먼길 여행한 고구마가 고구마끼리 얼굴을 맞부비며 비에 젖고,
노동으로 지친 내 가슴에선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나는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섰다,
그러나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인디언 플루트 연주] 충남 [시] 추운 아침 병석에서 - 배우 낭독
간밤엔 무엇인가 왔나 봅니다 어서 창 좀 열어 보십시오
네? 무엇이?…… 눈이 쌓였에요 그리고 지금도 나리이고 있에요? …………… 앞 벌판 좀 보아 주세요 강가 솔밭에도 눈이 쌓였지요 그리고 하얀 벌판속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겠지요…… 없에요? 하나도?……아 참 올해엔 없을 거예요……
A MA MI 나의 얼골이 눈처럼 창백하지요? 지금 나의 마음 위에도 풍성한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에요 아무른 상채기가 다시 도지었에요 김이 보히시지요? 피 서린 허-연 김이 올으는 게 보히시지요?
시원한 동김치가 마시고 싶어요 바람이 불지요? 눈보라가 가로 세로 흣날리나 보지요? (괜찮아요) 난 차라리 밖을 보지 않으렵니다 A MA NI 나의 병은 금새 나아질 것만 같애요……
[노래] 좋은 언어 - 그림자놀이 꿈 휴 김은희 가수
[시] 좋은 언어 - 낭독(도종환 시인)
외치지 마세요 바람만 재티처럼 날려가 버려요.
조용히 될수록 당신의 자리를 아래로 낮추세요. 그리구 기다려 보세요. 모여들 와도
하거든 바닥에서부터 가슴으로 머리로 속속들이 구비돌아 적셔 보세요.
허잘 것 없는 일로 지난 날 言語(언어)들을 고되게 부려만 먹었군요.
때는 와요.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할 때
허지만 그때까진 좋은 言語(언어)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
[피날레-춤 연극] 오페레타 ‘석가탑’ 중에서 <달이 뜨거든(아사달, 아사녀의 노래)> - 바이올렛 씨어터 제비꽃 & 무빙 이미지그룹 반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