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만난 나의 청춘
― 77번째 생일에 떠난 추억 여행
77번째 생일을 맞아 나는 부산으로 향했다. 미국에 사는 두 아들이 정성껏 보내준 생일축하금을 받아 들고, 오래전 나의 청춘이 머물렀던 도시 부산을 다시 찾았다.
사람들은 생일이면 좋은 음식을 먹고 선물을 받으며 기쁨을 나누지만, 이번 생일만큼은 내 삶의 발자취를 천천히 되짚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추억이 깃든 부산으로 내려왔다.
부산역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부산교회였다. 젊은 시절 수많은 기도와 눈물, 그리고 희망이 스며 있는 곳이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묵상을 하며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았다.
이어 범내골 성지로 향했다. 눈물의 바위에 앉아 감사의 기도를 드리니, 어느새 77년 인생의 장면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가운데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 것은 지금으로부터 38년 전 부산에서의 기억이었다.
당시 신동아건설은 63빌딩을 건설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건설회사였다. 회사는 부산에서 대한항공 직원조합아파트 공사를 수주했지만,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착공조차 하지 못한 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회사 안에서도 가장 난해한 현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때 내가 현장소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그러나 주민들을 만나고 관계자들과 대화하며 한 걸음씩 문제를 풀어 나갔다. 결국 착공의 길을 열었고 어려운 공사도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부산 지역 여러 주택조합에서 신동아건설에 공사를 맡기고 싶다는 요청이 이어졌다.
이후 당리동 사하구청조합주택과 남산주택조합 아파트 공사를 수주하게 되었고, 회사는 내가 수주한 당리동 현장을 맡아 달라며 다시 부산으로 내려보냈다.
해운대에서부터 시작된 부산 생활은 당리동현장과 장림동 현장까지 이어지며 어느덧 10년 세월이 흘러갔다.
돌이켜 보면 부산은 내 인생에서 가장 뜨겁게 일했던 시절의 무대였다. 수많은 건물이 올라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지만, 그 시간 속에는 남모를 외로움도 함께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환고향하여 고창에서 생활했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개구리와 올챙이를 잡으며 뛰어놀았고, 고창 묘향성 주변을 누비며 건강하게 자라났다. 아내는 여성연합 고창지부장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했고, 학업도 게을리하지 않아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나는 부모님께 고창 읍내에 단독주택을 지어 드렸다. 부모님께서는 서울과 고창을 오가며 고향 친구들과 정답게 어울리시며 행복한 노후를 보내셨다.
그러나 정작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부산 현장에서 보내야 했다.
2주에 한 번 주어지는 휴일이면 가족을 만나기 위해 부산에서 고창까지 달려갔다. 지금처럼 고속도로가 잘 연결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일반국도를 따라 여섯 시간 넘게 운전해야 했다. 월요일 아침 출근에 맞추려면 새벽 두 시에 집을 나서야 했다.
고된 길이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방학만 되면 부산으로 내려왔다. 우리는 해운대와 태종대, 광안리와 자갈치시장, 그리고 남해안 곳곳을 함께 다니며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바둑도 배우고 한문도 익히며 건강하게 성장해 갔다.
그 아이들이 이제는 미국에서 치과의사가 되어 각자의 삶을 훌륭하게 살아가고 있다.
세월은 참 빠르다.
이번에 부산을 다시 걸으며 문득 깨달았다.
그 시절 나는 건물을 짓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보니 내가 진정으로 지은 것은 아파트가 아니었다.
가족의 미래였고,
부모님의 편안한 노후였으며,
아이들의 꿈이었다.
건설 현장의 콘크리트는 세월과 함께 낡아가지만, 가족과 함께 쌓아 올린 사랑과 추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단단해진다.
범내골 성지에서 내려와 자갈치시장을 거닐며 늦은 점심을 먹었다. 사람들은 분주히 오가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어느새 30여 년 전 부산의 거리로 돌아가 있었다.
현장 사무실의 불빛.
야간 작업을 마치고 바라보던 부산의 야경.
그리고 가족을 만나기 위해 어두운 새벽길을 달리던 기억들.
그 모든 장면이 한 편의 영화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인생은 앞으로 걸어갈 때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뒤돌아볼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나는 이번 부산 여행을 통해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되었다.
젊은 날 땀 흘리며 일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하고, 묵묵히 기다려 준 가족이 있었던 것도 감사하다.
그리고 77세가 된 지금, 건강한 몸으로 다시 부산을 찾아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감사하다.
부산의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했다.
“하늘부모님, 부족한 인생이었지만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남은 생애도 지난날처럼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니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말없이 내 어깨를 감싸 안아 주는 듯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번 부산 여행은 단순한 생일 여행이 아니었다.
젊은 날의 나를 다시 만나고,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확인하며, 하늘의 은혜를 되새기는 순례의 길이었다.
부산의 바다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고, 어느새 나도 인생의 황혼에 서 있었다.
그러나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후회보다 감사가 더 많았다.
젊은 날 흘린 땀도, 가족과 떨어져 지낸 외로움도,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하늘의 축복이었다.
나는 부산역으로 향하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참 잘 살아왔구나.”
그리고 그것이 77번째 생일에 하늘이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임을 알 수 있었다.
2026년 6월
부산에서
성호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