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시는 한때 미국 독립 영화계의 스타 감독이었으나 대중의 시야에서는 빠르게 잊혀졌다. 그는 고집스럽게 비미국적인 스타일로 낯선 미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찍고 있으며 점차 자신만의 완성을 향해 가고 있다.
짐 자무시는 1980년대 미국 독립 영화계의 스타 감독이었다. 짐 자무시의 출세작인 <천국보다 낯선>(1984)이 나왔을 때 훗날 유명한 독립영화 감독이 된 할 하틀리는 ‘그날이 마치 축제 같았다’고 회고했다. <도그마> <체이싱 아미>의 케빈 스미스 감독도 "<천국보다 낯선>을 보고 난 후 나도 이제 진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말했다. 자무시의 영화는 할리우드영화와는 다른 어법으로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레이건 시대의 할리우드에서 <람보>류의 소란스런 대작을 혐오하는 뉴욕의 젊은 감독들에게 자무시가 영웅이 되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뉴욕 타임스’의 평론가 빈센트 캔비는 ‘이 시대 미국 영화계에서 가장 모험적이고 매력적인 감독’이라고 자무시를 치켜세웠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긴 암전이 끼어들고 한 호흡을 쉬고 나면, 앞 장면과 마찬가지로 3, 4분이 넘는 길게 찍기 화면으로 하나의 장면을 구성하는 이른바 시퀀스 숏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한 <천국보다 낯선>을 통해 자무시는 새로운 형식의 발견자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무시가 일으킨 바람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후속작들에서도 되풀이된 자무시의 스타일은 애초의 효력을 잃어버렸다. 조니 뎁, 로버트 미첨, 가브리엘 번, 존 허트 등의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한 서부극 <데드맨>(1995)은 1995년 칸영화제에 출품된 뒤 미국에서 찬밥 대우를 면치 못했다. 배급사인 미라맥스는 121분의 상영 시간이 길다고 판단하고 자무시에게 한 차례 더 편집하자고 설득했지만 자무시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미라맥스가 버린 <데드맨>은 일부 극장에서만 조용히 개봉한 후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했다.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영화과가 있는 UCLA 대학의 강당에서 불과 수십 명의 관객만이 자리를 채웠고 그나마 대부분은 졸고 있었다. 어느 순간 자무시는 빠르게 자신의 관객을 잃어버렸다. 자무시는 말했다. “내 영화의 대다수는 관객을 충분히 모으지 못했다. 그러나 내 영화에도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다. 난 사람들이 대화 중에 상대방에게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흥미롭다. 내 영화는 다른 영화의 재미와는 다르다. 요즘 감독들은 대부분 스필버그주의자들이며 텔레비전의 언어를 받아들여 장난을 즐긴다. 그들은 관객을 믿지 않는다. 모든 화면을 6초 또는 7초 안에 빠르게 커트한다. 솔직히 말해서 영화를 만드는 전체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느낀다.”
천국보다 낯선 미국
짐 자무시는 형식을 ‘덜어냄으로써’ 새로운 형식을 창안한 듯이 보였다. 사실, 그의 초기 영화는 영화의 선사 시대였던 1910년대 양식을 의식적으로 모방하고 있다.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 등장해 연기를 하고 그들이 카메라 밖으로 빠지면 그 장면은 끝이 난다. 초기 무성영화 스타일의 이 어법으로 자무시는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굉장히 집중해서 볼 것을 요구하는 미니멀리즘 스타일을 추구했다. <천국보다 낯선>에서 미국에 사는 사촌 오빠 윌리를 찾아온 에바는 할 일이 없다. 도박으로 소일하는 윌리도 할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날 저녁 두 사람은 모처럼 식탁에 마주 앉아 있다. 윌리는 ‘TV 디너’라 불리는 인스턴트 식사를 먹고 있다. 에바와 윌리는 공허한 대사를 나눈다. “티브이 디너 안 먹을래?” “안 먹어, 난 배 고프지 않아.” “근데 왜 티브이 디너라고 부르지?”, “그냥... 티브이를 보면서 먹으니까... 텔레비전 말이야.” “텔레비전이 뭔지는 나도 알아.” “그 고기는 무슨 고기야?” “뭐?” “그 고기는 무슨 고기냐고?” “소고기지 뭐야.” “소고기야?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휴... 상관하지 마. 어쨌든 여기선 이런 걸 먹는다고, 고기, 야채, 디저트, 그리고 설거지할 필요도 없어.” 단조롭게 이어지는 이 대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미국적 삶의 초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것은 할리우드영화가 담아내지 않던 삶이었다.
자무시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천국보다 낯선>은 ‘일본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영향에 사로잡혀, 상상력이 풍부한 동유럽의 영화감독 스타일로 만든, 네오리얼리즘적인 블랙 코미디’다. 여기에 ‘빌리지 보이스’의 평론가 짐 호버먼은 빔 벤더스의 <거리의 왕>과 샹탈 에케르망의 <집에서 온 소식>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지적했다. 자무시가 미국 영화계의 별종인 것은 할리우드 고전영화의 전통과는 거의 끈을 맺지 않은 채 유럽영화와 일본영화에서 영화적 영감을 빌려 와 절충하고 혼합하고 재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화면과 화면 사이에 상당한 생략과 여백의 공간을 짜넣고 기존 형식에서는 눈에 띄지 않게 아주 적은 것만 취하고 덜어내는 듯한 접근법으로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이질적인 스타일로 미국 사회의 초상을 담는 자무시의 행보는 <법에 의한 굴복>(1986), <미스터리 트레인>(1989), <지상의 밤>(1991) 등에서 똑같은 스타일로 되풀이되면서 설득력이 약해져 갔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칼 파킨스를 배출한 로큰롤과 리듬 앤드 블루스의 산실, 멤피스를 무대로 같은 날 같은 밤에 벌어진 세 에피소드를 담은 <미스터리 트레인>은 멤피스를 텅 빈 유령들의 도시처럼 묘사하며 미국 대중문화의 뿌리에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한 자취를 끌어내지만 여하튼 영화는 너무 길었다. 다섯 개의 도시에서 같은 날 벌어진 이야기들을 묶은 <지상의 밤>의 구조는 <미스터리 트레인>을 또 되풀이한다. 자무시는 장르의 규칙에 눌린 할리우드영화의 덫에서 벗어나려 애썼으나 자신의 영화를 모방하고 있었다. 할리우드 바깥의 영화로부터 영향받은 스타일을 빌려 오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또다른 단계로 도약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명상적인 서부 묵시록, <데드맨>
<데드맨>은 자무시가 미국의 뿌리를 찾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가 찾아낸 뿌리는 낯선 것이라는 이상한 아이러니에 부딪힌다. "난 서부 영화 장르에 관심 없다. 존 포드를 좋아하지 않는다. 포드는 그의 등장인물을 이상화했고 미국의 도덕적 약호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서부 영화를 이용했다"고 말하는 자무시가 <데드맨>을 통해 그려낸 인디언의 초월적이고 명상적인 세계는 미국인에게 익숙한 정신의 세계가 아니다. 자무시는 이 낯선 서부극 안에 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와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가 보여준 평온한 영화적 리듬을 옮겨놓고 싶어했다. 자무시는 선조들의 문화와 삶을 부정하는 한편으로 다양한 문화권의 영향을 모아 생겨난 집합적인 문화이자 고급 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분 없이 좋은 것을 평가하는 문화인 미국 문화를 긍정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진정한 미국적 예술가이기도 하다. <데드맨>은 록과 펑크의 강력한 리듬과 오즈와 미조구치의 평정심을 안겨주는 영화적 리듬에 심취한 자무시가 수집가의 정신으로 부정의 미학을 고집한 것의 산물이다.
서부 영화에서 미화된 역사에 혐오감을 느낀 자무시는 영국 신비주의 시인 블레이크의 시세계를 영화의 화면에 슬쩍 인용해 불러오고 인디언의 신화적 삶의 그림자를 담는다. 이 영화에는 정의로운 총잡이들이 영웅적인 투쟁을 벌이는 상황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부 영화는 한때 미국영화의 자랑이었고 기쁨이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념을 전파하는 학습의 장이었다. 193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는 동안 미국 사회가 변하면서 서부 영화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아서 펜의 <작은 거인>(1970)과 같은 수정주의 장르가 융성하던 시기에도 자무시의 영화처럼 송두리째 미국의 뿌리를 거부하는 영화는 없었다. “존 포드의 서부 영화 대신, 나는 니콜라스 레이의 <조니 기타>나 프리츠 랑의 <목장의 악동> 같은 비전통적인 괴짜 서부 영화를 좋아했다”고 말하는 자무시는 주류 서부 영화에 별로 끌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장르의 전통을 희롱할 수 있었다. 그가 서부 영화의 형식을 빌려 공격하려고 한 신화의 뿌리는 다음과 같은 자무시의 말을 통해 자명해진다. “미국은 폭력과 집단 학살을 바탕으로 건설된 국가다. 북미 지역에서 죽은 인디언의 시체가 얼마인지 아는가. 2천5백만 명의 인디언이 죽었다. 이것이 미국의 실체다”.
<데드맨>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머신이라 불리는 서부의 한 동네에 도착했을 때 보는 것은 진흙탕이 질척이는 더러운 길거리 한 모퉁이에서 한 여자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구강 섹스를 시키는 난폭한 남자의 모습이다. 폭력과 타락이 만연한 이곳에서 철공소의 사장과 직원들은 거칠고 상스럽기 그지없는 말투로 뒤늦게 온 블레이크를 내쫓는다. 로버트 미첨이 연기하는 철공소의 사장은 야만적인 가부장의 이미지가 실체로 현현한 서늘한 모습이다. 어디에나 폭력이 있고 폭력의 위험으로 터질 것 같다. 우연찮게 종이로 만든 꽃을 파는 여인과 동침하게 된 블레이크는 여인이 침대 밑에 총을 감춰두고 있는 것을 보고 왜 총을 지니고 있는지를 묻는다. 여인이 대답한다. “여기는 미국이니까.” 살아남기 위해 폭력을 쓰는 그곳, 옛날 옛적 미국 서부에서 블레이크는 동침한 여인의 애인으로부터 총질을 받고 엉겁결에 그를 사살하고 쫓기는 몸이 된다.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쫓기면서 블레이크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몇 차례의 살인을 저지른 뒤 자연스럽게 총잡이가 된다. 돈과 생존 본능에 따른 폭력과 약탈의 역사가 자무시가 보는 미국 건국 신화의 실체다.
자무시는 이 낯선 신화 파괴의 현장을 흑백으로 찍었다. 그가 이 영화를 흑백으로 찍은 이유는 주인공이 잘 모르는 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색채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다. 현실이 바로 총천연색이니까. 하지만 관객은 텔레비전 시리즈 <보난자> 등을 통해 색채 서부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현실감에 익숙하다. <데드맨>은 그런 관객의 익숙함을 의도적으로 깨뜨린다. 주인공 블레이크는 낯선 흑백의 세계에서 길을 잃는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자무시의 다른 영화에서처럼 길 위에서 방황하고 끝까지 사회의 변방에 남아 있다 죽어간다.
주인공 윌리엄 블레이크는 영문도 모르는 채 ‘노바디’라는 이름의 인디언으로부터 윌리엄 블레이크라 불린다. 노바디는 윌리엄이 18세기의 불우한 신비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영혼이 되살아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스무 살 때 블레이크의 시를 읽고 큰 감화를 받은 자무시는 미국 인디언들의 생각이 담긴 책들을 모아 읽으면서 그때까지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지식을 지워버리기를 원했고 그때 갑자기 블레이크를 떠올렸다. 미국 인디언들의 생각과 블레이크의 시는 통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들판에서 곧잘 예언자의 모습을 보았노라고 한 시인 블레이크의 영혼에서 합리적인 근대 서구의 기독교 문명과는 달리 자연에서 선과 악을 동시에 보고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한 인디언 문명과의 공통점을 본다.
힙합 음악에서 사무라이 영화까지
<데드맨> 이후 자무시는 <고스트 독: 사무라이의 길>(1999, 이하 <고스트 독>)을 연출해 건재를 알렸다. ‘사무라이의 길’이란 부제가 붙은 이 영화는 뉴욕 현대 대도시에서 18세기 사무라이 교본을 지침 삼아, 몰락한 마피아 보스를 따르는 전문 킬러의 삶을 담았다. 제목처럼 흥미진진한 액션영화는 아니지만 <천국보다 낯선>과 <법의 굴복>(1986) 등의 초기작에서 보여줬던 자무시 영화의 부조리한 유머와 생기발랄한 형식 조합의 매력으로 충만하다. <고스트 독>은 갱영화, 사무라이 영화, 만화영화, 힙합 음악, 그리고 사무라이 교본인 ‘하카쿠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자유자재로 버무렸다.
주인공 고스트 독은 첨단 장비를 사용하는 현대의 킬러지만 주군에게 충성을 바치는 18세기 사무라이 교본을 삶의 규범으로 삼는다. 고스트 독이 모시는 주군은 저절로 죽기를 기다리는 한심한 늙은 마피아다. 영화에서 고스트 독은 "그와 나는 다른 고대 부족 출신이다. 우리 둘은 모두 이제 사라졌다"고 말한다. 죽음을 최고의 영예라고 여기는 현대의 사무라이 고스트 독의 초상에서 한때 미국 독립 영화계의 희망이었으나 지금은 힘든 길을 걷고 있는 영화감독의 길을 겹쳐 놓은 자무시 자신의 자의식을 엿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스트 독>은 다양한 문화권의 영향을 모아 생겨난 집합 문화가 미국 문화라고 생각하는 자무시의 영화적 혈통이 어떤 돌파력을 지녔는지를 보여준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문화적 위계다. 나는 베토벤과 록 음악, 셰익스피어와 미키 스필레인의 탐정 소설에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좋으면 좋은 것이다. 그게 만화책이건 위대한 소설이건 간에”라고 자무시는 말하곤 했다. <고스트 독>에서 짐 자무시는 장 피에르 멜빌의 <사무라이>, 스즈키 세이준의 <살인의 낙인>,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 영화를 인용하고 RZA의 랩 음악을 깔고 짓궂은 유머로 뉴욕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고스트 독>에 담긴 마피아 중간 보스들의 모습은 존 휴스턴의 <프리지스 오너>,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2>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들에게서는 향수도, 세상을 다스리는 기운도 느낄 수 없다. 무엇으로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일까.
<고스트 독>은 매우 강인한 삶의 규약을 지닌 한 남자의 이야기다. 현대인은 아무도 그런 규약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다. 고스트 독은 삶에서 꼭 지켜야 할 규약을 사무라이의 길에서 찾는다. 그가 죽는 결말은 비극적이지만 정작 감독인 자무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인생 규약은 빈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무라이였고 그의 규약은 삶의 방식뿐만 아니라 죽음의 방식과도 관계있다. 그는 그의 규약을 고스란히 지킨 채 죽어간다. 세상의 방향에 무심한 채 자신만의 규약에 몰두하는 이 현대판 괴짜 사무라이의 초상은 자무시의 속내를 적실하게 드러낸다. 미국을 ‘천국보다 낯선 어떤 곳’으로 그려낸 <천국보다 낯선> 이래 자무시의 시선은 미국에 안착하지 못했다. <미스터리 트레인>에 담긴 멤피스는 고독과 소외와 절망의 공간이고 <데드맨>에 그려진 미국 서부의 역사는 인디언의 신비주의로 치유해야 할 어떤 것이다. 자무시가 보는 미국의 현재와 과거는 텅 비어 있다. 거기에 어떤 답을 찾는 대신 자무시는 그가 나고 자란 뉴욕의 문화가 그렇듯 이질적인 것들을 한데 모으는 재능으로 그 삶을 응시하고 있다. 그는 수집가의 정신으로 부정의 몸짓을 취해 도저한 비타협주의를 밀고 나간다. 그는 여전히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내 영화는 실패작이 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할리우드의 어떤 제의에도 관심이 없다고 언론에 말한다. 1980년대 한때 소란스런 유행을 일으켰던 뉴욕 독립영화 감독들이 차례로 할리우드로 건너가 지지부진한 행보를 보였을 때도 여하튼 자무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진정한 얼터너티브
고스트 독이 끝까지 몰락한 마피아 보스를 주군으로 모시듯이 자무시는 끝까지 독립영화의 정신을 섬길 것이다. “독립영화라는 말은 모호해졌다. 얼터너티브 음악이란 말처럼 말이다. ‘후티 & 블로우피시’가 얼터너티브인가? 맙소사. 난 독립영화가 메이저 스튜디오 밑의 마이너 리그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것이 못마땅하다. 젊은 감독들에게 실제로 그런 말이 오가고 있다. ‘넌 많은 제작비를 들여 큰 영화를 찍는 거야. 넌 이제 진정한 영화감독이 되는 거야.’ 난 돈에 흔들리지 않는다. 난 명성에 안주하고 싶지도 않다. 설령 내가 끝내 변방에 머무른다 할지라도”라고 자무시는 말한다. 그 자부심은 늘 대가를 치른다. 그렇더라도 이 고집불통 감독은 완강하다. “나는 내 작품을 분석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만들뿐이고 영화 만들기를 즐길 뿐이다. 작품을 세상에 내는 것이고 어떻게 사람들이 반응하는가를 본다. 나는 찬반으로 나뉘는 반응이 더 좋다. 내가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끔찍한 일이다. 아마 영화감독을 그만둘 것이다.” <고스트 독>은 황량한 대도시를 가로지르며 날고 있는 비둘기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패기가 사라진 미국 독립 영화계에서 짐 자무시가 걷고 있는 이미지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짐 자무시가 영화로 꿈꾸는 사무라이의 길이다. |
첫댓글 커피와이후 넘넘 알고싶었던 감독인데감사하여요^^ 근데 다는 못읽고 가요..다시와서 읽어야할듯,,왜인지는 인디언님이 잘아시져
이번주에 종로로 마시고 피우러 가야겠다
헉.. 짐 자무시 ... 저 사진이 짐 자무시? 흑.. 영화는 ....거의 꼬박 꼬박 거의 다 챙겨 보았는데.. 느므, 인상파시다. 흐흐
짐 자무쉬 특이하죠?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