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비상경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출장비를 줄이고, 상반기 성과급의 일부를 ‘자진 반납’하도록 했다. 경영지원실 인력을 현장사업부로 배치하고 정규직을 중심으로 고용도 줄이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경영복귀가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비상경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다.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삼성전자의 문제는 결코 일개 기업의 내부 문제가 아니다.
스마트폰 사업의 부진, 후발업체의 따라잡기 압력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로 유명한 1993년의 신경영 선언이 그렇듯 비상경영 선언은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삼성전자의 미래 움직임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제시되었다. 따라서 좀 이른 감은 있지만, 이번 비상경영에서도 포스트 이건희 시대의 행보를 읽어보려는 시도는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번에 표방한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대응책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오히려 퇴행적인 면이 보여서 의아스럽고 안타깝다.
비상경영의 결정적 계기는 삼성전자의 2분기 매출액(전년 동기대비 –8.9%)과 영업이익(전년 동기대비 –24.6%)이 급락했다는 데 있다. 표면적으로 가장 큰 원인은 대부분의 수익을 가져다주었던 스마트폰 사업의 부진이다. 전년 동기에 32%에 달했던 세계시장점유율은 2분기에는 25.2%까지 하락했다. 이에 비해 주요 경쟁사인 애플은 세계시장 점유율이 소폭 하락(-1%p)하기는 했지만, 매출액 자체는 여전히 12% 증가했으며, 3위 업체인 중국의 하웨이는 큰 폭으로 매출액과 세계시장점유율을 증가시켰다. 자료의 신빙성에 의문이 있기는 하지만 설립된 지 4년여밖에 되지 않은 중국 토종기업인 샤오미(小米)사가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쳤다는 소식도 외신을 탔다.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잘 알려져 있어서 피를 흘려야 하는 경쟁시장(소위 레드오션)이다. 따라서 경쟁자가 속출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새로운 업체의 성장과 시장 나눠먹기 압력이 유독 삼성전자에 집중되는 모습이라는 데 있다. 이를 두고 삼성전자가 갖고 있는 성장방식의 특성에 대한 지적이 국내외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 내용은 2009년 이후 7~8조 원 수준으로 급증(2009년 이전까지 분기별 영업이익은 4조 원을 넘지 못했다)한 삼성전자의 분기별 영업이익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시장이라는 것이 삼성전자 스스로 연 시장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한 근거이다. 이미 누군가 만들어 놓은 시장에 얼마나 빨리 들어가 상품을 개량하고, 대량 생산으로 효율성을 높여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삼성전자의 성장방식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후발업체가 애플을 따라하기는 어렵지만 삼성전자를 따라하기는 쉽다. 이 때문에 후발업체의 등장으로 인한 경쟁압력이 애플이 아닌 삼성전자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혁신 능력과 소프트웨어 경쟁력이라야
삼성전자가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은 비용절감과 가격인하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래서야 스마트폰 시장에서 수익성 악화를 막을 방법을 찾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진단이 삼성전자의 수익성이 2009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또 향후 새로운 시장을 찾는 등 다른 대응책을 찾아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지만, 그 방식이 애플이나 구글과 같이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새로운 시장을 스스로 창출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라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성장을 끌고 온 TV,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어디에서도 삼성전자가 스스로 만들어낸 경우는 찾을 수 없다.
이번에 내놓은 비상경영이라는 대응책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핵심이 비용절감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협력업체의 납품가격을 ‘후려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갑을(甲乙) 문제의 악화다. 삼성이 수익성악화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혁신능력과 소프트웨어 경쟁력이라는 데 대해서는 거의 이견이 없다. 그러나 허리띠 졸라매기가 혁신능력과 무슨 관련을 갖는지 알 수 없으며, 그룹의 모든 구성원이 총수 한 명만 바라보는 현재의 체제로는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포스트 이건희 시대의 비전으로 총수체제의 근본적인 개혁을 삼성 스스로에게서는 기대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한국경제의 비극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