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RFfEbEgvBD8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https://www.youtube.com/watch?v=IqVXThss1z4
Banksy
뱅크시_벽 뒤의 남자
파라다이스시티 아트 스페이스에서 뱅크시&키스 해링 전시가 있다고 해서 보기 전에 일단 구입한 책.
연휴가 길어 전시회 관람 하루 전에 받아서 촉박하게 읽고 들어갔다.
키스 해링에 대한 도서도 함께 샀는데 전시를 다 보고 읽게 됐고, 뱅크시는 다행히 다 읽고 들어갔는데 작품이 워낙 많아서인지 많지 않은 전시 작품들이었는데도 책에서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도 있었다.
읽으면서 다양한 메시지를 광고의 형태로 전달했던, 광고천재라 불리는 이제석이 떠올랐다.
생각해 볼만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는 점에서. 그 방법은 다르지만 비슷한 구석이 있어 보였다. 이제석이 그래피티로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미술에도 한류가 있었을까...
메시지 전달을 위한 것인지, 상업적 성공을 위한 것인지, 둘 다를 위한 것인지 모르지만 자신의 작품에 대해 알리는 방법에 대해 분명 영리했다.
대중 미술의 계보가 앤디 워홀-키스 해링-뱅크시로 이어지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어 거슬러 올라가며 한 권씩이라도 읽어두려고 한다. 실제로 뱅크시는 키스 해링 작품을 오마주한 작품들이 몇 있다. 키스 해링 역시 워홀에 대해 영향을 받았음을 언급한 바 있다.
그의 행보에 대해 읽으면서 자신의 작품에 인증서를 발급하는 것들을 보고 NFT로 산 그림을 티셔츠에 넣어 팔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말이지.
아, 뱅크시의 작품은 언제, 어디에서 창작됐는지가 중요한데 제시된 작품 사진은 대부분 배경 없이 작품에만 집중되어 있어 아쉬운 점도 있다. 그 배경까지 담은 책도 있었다.
20. 미술관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신문이나 TV에서, 특히 인터넷에서 그의 사진을 처음 보고 즐거워하며 나중에는 직쩝 찾아보게 만들었다. 뱅크시는 아주 빠른 속도로 최초의 국제적인 인터넷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림이 많아 읽기 쉬울거라는 건 착각이었다. 일반적인 책의 크기보다 큰 판형이었던 데다가 상하좌우 여백이 별로 없고, 줄간격도 좁았으며, 글씨 크기까지 작은 편이라 내용이 의외로 많았다.
45. ‘태그’는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선택한 이름이며, 기법 면에서는 초보적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다음은 ‘스로우업’이다. 두 가지 색으로 된 두 개의 글자를 말한다. 색깔 하나로는 윤곽선, 나머지 다른 색으로는 윤곽선을 채운다. 그 뒤에 나오는 게 ‘더브’다. 더브는 두 가지 색으로 쓴 풀네임이다. 그 다음 단계가 ‘피스’나 ‘마스터피스’인데, 이건 배경 위에 정교하게 쓴 이름이다. 이ᄄᆞ금 글자만큼이나 배경을 정교하게 그리기도 한다. 다음은 ‘와일드 스타일’이다. 글자를 퍼즐처럼 엮은 것인데, 각각의 아티스트가 다른 이의 스타일을 ‘공격’하는 경쟁적인 서체이다. 글자를 아예 읽을 수 없을 때가 많다. 마지막으로 ‘프로덕션’이다. 대개는 ‘크루’나 친한 패거들이 함께 만들고 규모가 크다.
71. 내가 마지막으로 본 <마일드 마일드 웨스트>는 열정적인 자원봉사자들이 페인트 얼룩을 지워낵 모습이었다. 아파트가 아직 지어지지 않아서 그림은 유리로 둘러싸여 있지 않았고, 여전히 CCTV 한 대가 돌아가는 벽에서 보호받고 있다. 뱅크시가 오늘날 ‘현대 영국에서 가장 나쁜 것 중 하나’라고 말한 바로 그 보안 카메라 말이다. - 생각해 보면 세상은 모순이다. 생각과 현실이 다르게 돌아간다. 양귀자의 ‘모순’도 이런 내용이려나.
100. 그러나 작은 전시회의 시대는 지났다. 뱅크시는 이제 스케일과 놀라움을 추구했다. 하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2003년 7월 그가 해크니의 옛 창고에서 선보인 획기적인 전시회 <알력>은 팝업이 반영구적인 행사로 변질되기 전에 열렸던 진정한 ‘팝업쇼’였다. 이를 통해 뱅크시는 영국 미술의 새로운 흐름, 즉 무리에 들어올 준비가 되어 있던 스트리트 아티스트들과 벽에 그림을 그리고 캔버스를 파는 아티스트들의 운동을 이끄는 리더라는 지위를 확립했다. -맛집이 생기면 주변에도 활기가 돈다.
104. 그러나 그해에 이번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쪽에서 수지맞는 일이 생겼다. 11월에 출판사 센추리에서 뱅크시의 『월 앤 피스』(-읽어 보고 싶은데 절판이다.)를 내 놓은 것이다. 이는 뱅크시가 자비 출판한 책 세 권을 바탕으로 몇몇 추가를 비롯해 취향의 문제에 따른 몇몇 삭제를 거쳐 화려하게 다시 꾸민 것이다.
110. 뱅크시는 주류 예술세계 밖에서 솜씨 좋게 자신의 세계를 펼쳐보였다. 하지만 뱅크시의 본격적인 활약은 이제부터였다.
116. 작품을 서서 쳐다보거나 벽에 붙은 작품 정보를 읽고 나서도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 당혹스러워하는 관람객은 없었다. - 문학이든 미술이든 창자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 만큼이나 보고 듣고 읽는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는 바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봐도 모르는 작품은 결국 아무 의미가 없는 무엇이다.
125. 그러니까 더할 나위 없이 대중적이고 거의 공짜에 가까운 이런 전시조차 뱅크시가 바랐을 법한 관람객들에게는 충분히 다가가지 못했던 것이다. - 생존이 급한 사람들은 자신이 안정될 때까지 다른 곳에 눈을 돌리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까지는 이룬 사람들은 뱅크시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내가 그랬듯이.
127. “많은 비평가들이 이런 종류의 예술을 좋아하지 않는 건 검증이나 해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설명하거나 맥락에 끼워 넣을 필요가 없는 작품은 그들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을 테니까요. 애초에 나는 이해하기가 너무 쉽기 때문에 예술이 아니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아요.” -그러고보니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디자인이고, 어디까지가 광고일까 싶기도...
134. 뱅크시의 미술이 그렇게 인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예술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마찬가지로 그가 인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예술이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대중적이라고 해서 가벼운 것도 아니고 대중적이지 않다고 해서 무거운 것도 아니다. 향유층이 다른 정도?
157. 라자리데스가 없었다면 뱅크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인지도, 영향력, 그리고 돈을 얻지 못했으라리는 것도 분명하다. -1. 미술품값이 천정부지지만 생각해 보면 그 돈은 화가가 받은 게 아니다. 특히 뱅크시의 경우 수십 달러 정도에 판 작품들이 한 두 번의 과정을 거쳐 천정부지로 뛴 경우가 많았다. 2. 배트맨에게 알프레드가 있듯 혼자 잘난 사람은 없더라. 조력자....
171. “그는 한 사람이에요. 지금은 너무 커졌지만, 그가 곧 브랜드죠. 그래서 일할 사람들을 두었는데, 특히 큰 조각품을 만들 때 사람들이 필요했죠. 하지만 여전히 그림을 모두 직접 그리고 스텐실도 직접 만들어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뱅크시에게서 나오기는 했지만 남에게 맡겨야 했던 작품도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는 물론 스텐실에 아주 뛰어나지만, 그렇다고 조각이나 애니매트릭스에도 뛰어난 건 아니다. - 미술 서적을 읽을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내용이다. 창작자의 아이디어가 중요해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고, 인정하고 안 하고는 본인 재량이다. 조영남의 법정 분쟁이 사뭇 민망하다. ‘기술’에서 시작한 ‘Art’가 진짜 예술이 되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173. 영감을 주는 뱅크시가 없다면 어떤 종류의 뱅크시들도 없을 거라는 점이다. / 뱅크시 팀을 살펴보면 볼수록 나는 이 팀이 그저 뱅크시가 큰 프로젝트 때문에 도움이 필요해서 꾸린 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팀은 그의 명성, 상업적 권리, 작품 가격을 지키는 영구적인 조직이며, 그가 전통적인 갤러리 시스템의 바깥에서 움직이기는 하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한 여타 아티스트들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활동한다는 걸 분명히 인지했다. / 이 팀이 그리도 숨기려는 것은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뱅크시의 정체성이 아니라, 여러모로 아웃사이더가 이제는 인사이더라는 사실이다.
177. ‘건축적 걸작들’을 해체하는 것은 적어도 ‘내밀하고 부유한 가정의 영역에서 박물관이라는 공공의 영역’으로 옮기는 일이다. 그러나 뱅크시와 르코르뷔지에의 여정은 ‘보이는 것에서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공공 영역에서 판매 가능한 것으로 거꾸로 가는 여정이다.’
184. ‘스트리트 아트’의 포인트는 자연적인 환경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본래 일시적인 거예요. 좋은 작품이 사라지면 실망스러울까요? 맞아요. 하지만 그게 인생이죠. 몇몇 ‘예술 병자’들이 그 그림이 나오자마자 떼어내서 갤러리에 거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있어요. 작품의 힘은 환경에 있었어요. - 생각해 보니. 그 많던 시절연인들은 지나갔기에 아름다웠을지도 모른다. 그걸 박제해 봐야 흑역사일 뿐일지도.
185. 또 다른 게시물은 갤러리에 걸린 이 작품이 ‘새장에 갇힌 사자 같다’고 표현했다. 결국 갤러리 측과 벽 소유즈들 간의 소송은 해결되었고, 갤러리 측은 2,500달러를 지불하고는 벽화에 정식으로 제목을 붙였다. -1. 정작 그린 뱅크시는 소유권이 없었던 걸까... 소유권까지는 모르지만 뱅크시는 자신의 그림을 인증함으로써 자신의 작품을 증명했다. 2. 미술작품의 제목은 누구나 지을 수 있는 걸로.
196. 펍 벽은 철거되지는 않았지만 전문 복원회사에서 이미지를 알루미늄 기판에 옮기고 원래 자리에는 복제품을 남겼다. -어떻게 했다는 것일까...
201. 나는 뱅크시가 자신의 작품을 옮기지 못하도록 점점 더 복잡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 맥락이 중요하니까.. 맥락이 사라지면 의미를 잃도록.
206. 경매장의 가격이라는 잣대로 살펴보자면 뱅크시의 경력은 네 시기로 나눌 수 있다. 2007년과 2008년, 2008년 7월(대부분 유찰 ㅎㄷㄷ) 이후, 2010년과 2011년, 그리고 마침내 2018년 이후...
211. 대다수는 갤러리에 발을 들여놓는 대신에 온라인에서 프린트를 구매해서 벽에 거는 걸 선호했다. -NFT 작품에도 발 한 번 담가 봐야하나....
214. www.banksy-prints.com’에서 누군가가 여태까지 나온 뱅크시의 모든 프린트를 목록으로 만들려 헌식적으로 노력했따. / 목록이 너무 불어나서 2010년 중반에 중단되었다. - 뱅크시 작품 하나쯤 사놓고 싶다. 기념으로. 프린트 한 장 쯤은 욕심낼 수 있지 않을까!!!!
221. 뱅크시는 과거로부터 한 가지 교훈을 얻었따. GDP 웹사이트에서는 ‘좋은 투자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마음에 ㄷ는 물건을 사달라’고 호소했다. 여기에 더해 GDP에서 물건을 구입한 지 2년이 지나야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음날 이베이에서 GDP 상품들은 사라졌다. / 간단히 말해 뱅크시는 유럽에서 자신의 상표를 보호하려 했다. 그는 2014년에 조용히 상표를 등록했다.
225. 뱅크시는 자신과 관련한 모든 굿즈에서 한 푼도 얻지 못하고(원한 적도 없지만) 그의 인생에 닥친 이 시점의 문제는 어떻게 돈을 버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걸 어ᄄᅠᇂ게 다루느냐이다. -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돈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주는 기분은 어떨까.
235. 이번 팝업쇼는, 구매자들이 그림에 수백만 달러는커녕 수천 달러라도 입찰하기 위해선 경매인, 전문가, 카탈로그, 관객, 화려함 같은 게 주는 확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놀랍도록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뱅크시의 말로는 리허설 때는 ‘항상 제대로 작동’했다. 하지만 정작 당일에는 그림이 절반쯤 조각나다가 파쇄기가 멈추는 바람에 소녀의 머리 일부와 풍선이 프레임 안쪽에 남았다. 구매자는 여태까지 뱅크시를 산 적 없었던 독일 여성이었는데, 소더비는 그녀에게 반파된 이 그림의 낙찰을 취소할 기회를 주었다. / 현명하게도 그녀는 그림을 구입했다. -그녀는 정말 현명했다.
239. 뱅크시는 조각난 이 그림을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서 <사랑은 쓰레기통에>라고 명명하고는 인증서도 새로 발급했다. -그러니까 NFT??
243. ‘이론이 없으면 그림을 볼 수 없다. (…) 현대미술은 완전히 문학이 되었다. 그림을 비롯한 작품들은 오로지 텍스트를 설명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러니까. 그냥. 향유층이 다른 걸로?
246. 물론 현대미술 세계가 끝장난 것은 아니지만, 뱅크시는 거의 혼자 힘으로 새로운 관람객을 위한 새로운 예술세계를 만들어서는 기성 예술세계와 나란히,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활동하고 있다. 두 세계는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그러니까!!
249. 상업적인 성공은 그래피티 아티스트에게는 실패의 표지죠. 사회에서 그릇된 사람들이 얼마나 챙겨가는지를 보면, 돈을 번다는 건 이기적인 범속함의 징표로밖에 안 보여요. -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랬다~~~
251. 뱅크시는 자신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바로 그것, 백만장자의 집을 꾸미는 트로피가 되었다. 뱅크시는 인터넷에서 사고팔린다. 아이러니컬하게되 인터넷은 그가 거리의 무법자로서 경력을 시작할 때 전 세계를 상대하는 갤러리로 삼았던 곳이다.